전설의 건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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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건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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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건물 (2)
2022.02.09.
[어디서든 해당 건물 세입자를 호출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듬직한 두 오크가 나타났다.
“취익?”
“취?”
주민성은 당황한 표정의 오크를 보며 만족했다.
가르취와 차크취는 주민성이 급조해낸 대충 기다림의 시련에 제대로 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이다! 취익!”
“깜짝취!”
제르취는 영혼임에도 지금의 사태에 두통이 오는지 미간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보상을 내놔라! 대장!”
“콜라취!”
주민성은 피식 웃으며 배불뚝이 오크들에게 보상을 넘겼다.
“제르취. 너도 마실래?”
“취익! ……나는 커피가 좋더군.”
“참나.”
그렇게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음료를 손에 쥔 기묘한 일행은 즐거운 마음으로 목을 축이며 건물에 진입했다.
‘최악이라고 해 봐야 소유권이 있는 건물이겠지.’
주민성은 전설 건물을 쉽게 챙길 거라는 생각은 진작 접고 있었다.
이곳은 평범한 움집조차 주인이 있는 세계였으니까.
‘긍정적으로 가자.’
촘촘한 블록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웅장해 보이는 건물의 대문이 주민성을 가로막았다.
딱 봐도 굳건해 보이는 문이었다.
“가르취. 차크취. 문 좀 열어줘.”
“취익!”
“취!”
쿠구구구구!
가르취와 차크취의 근력은 이미 탈오크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둘의 팔뚝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모습에 제르취까지 감탄할 정도였으니 확실했다.
“놀랍군. 크라노돈의 고기를 이 정도로 흡수해 내다니.”
그동안 오크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이유.
크라노돈의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한 이유라면, 긴 시간 동안 고기를 구워내는 터무니없는 방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힘들게 먹어 봐야 영양소가 대부분 파괴된 크라노돈 고기를 먹었을 테니까.
쿠구구!
“취익! 문이 열렸다! 대장!”
“입장취!”
주민성은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드디어.’
이제 한 걸음만이 남은 상황.
지금처럼 웅장한 건물을 소유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주민성의 가슴은 더욱 부풀어만 갔다.
“가자.”
“취익!”
대망의 한 걸음을 장식하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어라?”
놀랍게도 건물의 소유권은 없었다.
이는 시련까지 예상했던 주민성마저 당황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정말 그냥 가져도 돼?”
“취익?”
“미쳤취!”
[보유 건물 목록에 태양의 순례지가 추가됩니다.]
“어어?”
[최초로 전설 등급 건물 소유에 성공합니다.]
[만물 소통 권한이 부여됩니다.]
[소유한 건물 내부라면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
최초의 전설 등급은 과연 달랐다.
이것만으로도 외국어 학습 과정을 단번에 졸업한 셈이니까.
특히 오크를 제외하곤 말이 통하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환영할 만한 능력이었다.
‘다행이다. 이제 상대가 누구든 대화는 해 볼 수 있겠어.’
건물 내부의 살기를 뿜어대는 누군가.
적어도 평범한 몬스터는 아닐 터였다.
제르취의 제보에 따르면 이 장소는 진정한 전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주민성은 나름대로 보상에 만족하며 메시지를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전설 등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이용료를 소모하여 건물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강화 목록은 건물 성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건물의 부가 능력이 발현됩니다.]
[태양 빛을 흡수해 이용료로 환원합니다.]
‘이게 뭐지?’
이번에는 주민성조차 알기 힘든 내용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쿠구구구구!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취, 취익!”
“지진취!”
남은 메시지는 건물주 등급 상승과 관련된 내용뿐.
이에 주민성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지진은 무슨.”
이곳은 지상에 붙어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허공에 떠 있는 기묘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방금의 흔들림 역시 조금은 예측할 수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건물 부가효과와 관련이 있겠지.’
건물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변화라면, 주민성의 건물 소유로 인한 부가효과의 발동을 예로 들 수 있었다.
즉, 태양 빛을 흡수해 이용료를 환원하면서 생기는 진동이라는 소리.
‘아니면 건물 안에 있는 누군가의 짓이거나.’
확실한 답은 직접 내부 광장으로 진입해야만 알 수 있었다.
태양의 순례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의 건물이었으니까.
“들어가자.”
“취익!”
주민성과 오크 일행은 몇 번이고 비슷한 대문을 거쳐 거대한 광장에 도착했다.
“…….”
제르취가 말하던 진정한 전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취, 취!”
“취익!”
이곳의 진정한 전사는 오크만이 아니었다.
광장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있었다.
물론 오크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곳의 대표일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때, 무리에 있던 오크 하나가 가르취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취익?”
오크의 관심은 오로지 가르취와 차크취에게만 있었다.
“그건 둘째 치고. 다음 차례는 나다. 넘볼 생각 마라.”
“취, 취익!”
적대적인 태도였지만, 공격해 올 기세는 없었다.
주민성은 지금의 무관심에 만족하며 상황 파악에 집중했다.
‘다음 차례라.’
주민성은 광장의 다양한 몬스터들을 살폈다.
그리고 태양의 순례지 밖에서도 느꼈던 끈적한 살기.
살기가 집중된 장소를 포착했다.
그곳엔 다양한 몬스터들이 몰려있었다.
‘저게 다 진정한 전사급이라.’
약해 보이는 몬스터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제르취 이상은 될법한 수준이었다.
태양의 순례지로 향하는 조건은 강함이 기준인 모양.
‘시선은 전부 계단 너머군.’
몬스터들은 생각보다 질서 정연하게 계단에 몰려있는 그대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계단 너머는 덩치 큰 몬스터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네. 적어도 한국에는 없는 개체야.’
오크의 어휘를 되짚었다.
‘취익 소리를 내지 않는 오크라.’
주민성은 명상소에서 잠시 대화했던 순례자 오크를 떠올렸다.
‘확실히 그 오크도 취익 소리는 없었지.’
뜬구름 잡는 소리를 많이 하긴 했지만, 순례자 오크는 영혼이 되었음에도 발음만큼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젠 한 가지 정보가 더 있었다.
‘마찬가지로 전사급은 됐을 테고.’
비슷하게나마 제르취도 그랬다.
당황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취익 소리는 내지 않았으니까.
‘강하면 발음이 명확하다 이건가?’
상당히 그럴듯한 가설이었지만, 100%는 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취, 취, 취!”
“……어이. 신입. 말할 줄도 모르나?”
“취익! 무섭다!”
“취취취!”
가르취와 차크취가 그 예시였다.
이 둘은 주민성조차 고전하던 움집의 시련을 순식간에 클리어할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취익 소리는 여전했다.
‘에휴. 그보다 저기까지 어떻게 가야 하지?’
몬스터들이 향하는 계단 너머.
그곳에는 태양의 순례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전부 뚫고 갈 자신은 없는데.’
건물의 소유권은 주민성에게 있었지만, 함부로 행동하기엔 난감함이 있었다.
상대의 강함이 가늠되지 않을뿐더러 통제 구역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워.’
광장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언제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테스트를 조금 해 봐야겠군.’
주민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먼 위치에 인벤토리를 띄워 올렸다.
‘이 정도쯤…….’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인벤토리를 조정한 주민성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몬스터들 사이로 건물 잔해를 떨어트렸다.
그 순간.
파스스슷!
어느 몬스터의 손짓 한 번으로 건물 잔해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순서는 지켜라. 건방진 것들.”
만물 번역 능력 덕분에 건물 잔해를 없앤 몬스터가 하는 말은 주민성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반응을 보이는 몬스터도 있었다.
“우습군. 겨우 그 정도냐.”
동시에 다른 몬스터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가루가 된 건물 잔해에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우지지직!
‘미친.’
놀랍게도 흩날리던 건물 잔해는 이전의 모습으로 복구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성지의 규칙에서 벗어나지도 않겠지.”
심지어 복구된 건물 잔해는 모종의 힘으로 추진력까지 받아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심지어 여기서 제3의 몬스터까지 가세했다.
“쓰레기 놈들. 시끄럽게 굴지 마라.”
파앗!
건물 잔해가 순식간에 액체 상태로 변하고.
“소란스럽군.”
사아악!
구석에서 묵묵히 있던 몬스터까지 가세해 액체가 된 건물 잔해를 그대로 증발시켰다.
‘미친. 미친.’
주민성은 몬스터들이 보여 준 능력의 향연에 소름이 돋았다.
‘전부 보스급이잖아!’
몬스터들이 선보인 힘은 물론,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말조차도 무게감이 잔뜩 실려 있었다.
‘걸리면 곱게 못 죽겠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너무나 강한 상대였다.
마냥 임시 권한만을 믿을 수 없을 정도.
‘그래도 수확은 있었어.’
계단 근처의 몬스터들 또한 규칙과 순서라는 말을 언급했다.
이는 통제 구역과도 일정 수준 연관이 있었다.
‘이곳은 직접적인 싸움이 금지된 장소야.’
이렇게 끈적한 살기 속에서도 몬스터들은 서로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전부 혼잣말을 했었지.’
종족이 달라서인지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 모양.
모두의 말을 온전히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주민성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계단과 가장 가까이 있던 몬스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귀찮게 됐군. 대가를 치르겠다.”
뜬금없이 대가를 치른다는 몬스터의 말과 함께 메시지가 쏟아졌다.
[태양의 순례지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를 자원으로 소모하는 건물입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되지 않습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갑자기 이용료?’
황당함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37대 치프 기르탄이 요청한다. 분란의 해결을 위해 힘의 사용을 허락받고 싶다.”
기르탄이라는 보스급 몬스터의 요청과 함께 주민성에게도 추가적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용자 기르탄이 대기실 사용 권한을 요청합니다.]
‘아, 내가 소유주구나.’
지금의 요청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분란의 해결이라는 말이 들어간 순간, 저 몬스터의 타겟이 자신이 될 거라는 사실은 자명했으니까.
‘응. 거절.’
[대기실 사용 권한 요청을 거절합니다.]
주민성으로선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저 몬스터에겐 지금의 거절이 상당이 충격이었던 모양.
기르탄은 엄청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 갑자기? 어째서! 대체 무슨!”
그것은 다른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작을 부리는군.”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주먹이 통하지 않는 건 아니지.”
[건물 이용자 파이로가 통제에서 벗어납니다.]
[건물 이용자 차르타크가 통제에서 벗어납니다.]
[건물 이용자 풀리착이 통제에서 벗어납니다.]
……
주민성은 메시지가 가리키는 이름을 다른 몬스터일 것으로 판단했다.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살기가 기르탄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죽인다.”
“죽이고 나서 생각하지.”
“나쁠 건 없구나. 후후…….”
몬스터들은 저마다 혼잣말로 사형을 예고했다.
그리고 만물 소통 능력을 갖춘 주민성은 모든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젠장. 여기 남아 있으면 무조건 휘말리겠어.’
물론 이 건물의 주인은 주민성이지만, 저마다의 언어를 번역해 줄 의리는 조금도 없었다.
애초에 몬스터였으니까.
따라서 주민성은 곧장 뒤로 달리며 소리쳤다.
“가르취! 차크취!”
“취익!”
“급하게 기다림의 시련이다!”
“취익! 급하다!”
“콜라취!”
[텐트 112, 119가 수납됩니다.]
두 오크의 수납은 간단했다.
문제는 주민성이었다.
건물 폭발의 수십 배는 거뜬히 넘길 정도의 충격파가 주민성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콰과과!
“으아!”
임시 권한이 있어 모든 타격에 면역이라지만 몸을 가누는 건 당연히 불가능.
게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심상치 않았다.
“황야의 대군주 파이로. 최우선자의 책임을 묻겠다.”
“성지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 일존 차르타크가 직접 죽인다.”
쿠구구구구구!
2차 충격파는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쿵! 쿵!
그러는 와중에도 건물 기둥은 어찌나 튼튼한지 튕겨 나가는 건 주민성의 몫이었다.
“젠장!”
광장은 벽이 없는 드넓은 장소였다.
그리고 태양의 순례지는 공중에 떠 있는 건물이었다.
이대로라면 오크 마을로 귀환하는 건 순식간이리라.
“오늘의 오크 마을은 보고 싶지 않아……!”
주민성은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았던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관조. 태양의 순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