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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에게 물어봐 (1) (67/250)


벌들에게 물어봐 (1)
2022.02.06.


주민성의 손길이 직접 닿아서일까.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확보되었음에도, 땅굴 벌들은 잠잠하게 주민성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위이잉!

“좋아. 그래야지.”

주민성과 벌들의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

거처를 파괴했으니 원수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것은 여왕벌의 기준일 뿐.

다른 벌들은 전부 잠들어 아무런 상황도 파악하지 못했을 뿐더러, 고블린 꽃은 땅굴 벌의 새로운 기호식품이 되었다.

게다가 벌집과 땅굴 벌 전체가 강화되었으니 지금의 주민성은 벌들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여왕님들만 와 봐.”

위잉!

빼곡한 벌집과 땅굴 벌들 틈바구니에서 큼지막한 벌 다섯 마리가 솟아올랐다.

“계산하셔야죠. 고객님.”

위이잉!

주민성이 베푼 것은 특혜가 아니었다.

엄연히 거래였다.

땅굴 벌의 재화는 수컷 땅굴 벌이었으니까.

“마리당 20마리니까 총 100마리 되겠습니다.”

위이이잉!

그러자 여왕벌들은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주민성은 벌집을 뜯어내며 답했다.

뚜두둑.

[벌집 조각이 수납됩니다.]

“흥정은 안 됩니다. 고객님.”

위이잉…….

[벌집 조각이 수납됩니다.]

[벌집 조각이 수납됩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인벤토리에 수납되는 벌집은 늘어만 갔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주민성만 이득인 상황.

위윙!

그제야 지하에서 작은 땅벌들이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민성이 기다리던 재화, 수컷 땅굴 벌이었다.

“오호.”

숫자는 따로 셀 필요가 없었다.

계산은 메시지가 하니까.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벌집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땅굴 벌(수컷) 100마리가 수납됩니다.]

“오케이. 제대로 받았어.”

위이잉!

주민성은 설레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의 수납은 기존의 수납과 조금 다른 판정이었기 때문이다.

“순수 생명체 수납은 처음인데. 이게 되네.”

생명체는 소유물이 아니었다.

따라서 생명체만 수납하는 것은 불가능.

대신 주민성은 텐트 포장을 이용한 편법을 통해 콩이나 최선아, 배불뚝이 오크 듀오를 수납한 경력이 있었다.

“……그럼 이것도 가능할까?”

주민성은 최근 잘 사용하지 않던 능력을 떠올렸다.

능력의 정체는 소유물 복제.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이 능력은, 게이트 탐험 초기에 큰 도움이 되었던 능력이었다.

물론 지금은 자산가치도 빵빵한 데다, 텐트도 넘치도록 많아서 비상용으로 아껴 둔 능력이 되었지만.

“투자 가치는 충분해. 능력은 많을수록 좋고.”

주민성이 노리는 건 최초 행동 보상이었다.

이번에 가야 할 장소는 태양의 순례지라는 미지의 위험지대였으니까.

“후우.”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땅굴 벌 한 마리를 꺼내 빠르게 능력을 사용했다.

위이잉!

“소유물 복제.”

[소유물이 복제됩니다.]

[재사용까지 남은 시간 20시간]

여기까지는 기존의 소유물 복제 패턴이었다.

평소대로라면 다음 메시지는 보유 건물 목록에 복제품이 추가되고 소유물 복제와 건물주 등급 상승 메시지가 간헐적으로 뜨는 정도.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달랐다.

[땅굴 벌(수컷)이 복제됩니다.]

[최초로 생명체 복제에 성공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업적입니다.]

[모든 차원에 존재하는 곤충의 신뢰를 얻습니다.]

“……패시브?”

갑에 익숙해져서일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업적이었음에도 부여된 능력은 생각보다 애매한 느낌이었다.

상대가 어떻든 건물로 유인해서 이용료 청구만 꽂아 넣어도 일정 수준의 신뢰 관계 정도는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없는 것보단 낫겠지.”

처음부터 화끈한 능력은 기대하지 않았다.

건물주는 전투 능력이 아니었으니까.

주민성은 메시지를 되새기며 새로 생긴 곤충 친화 능력의 응용 방법을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곤충 한정 정신 간섭계 능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고민을 이어가던 순간, 땅벌의 날갯짓 소리가 정신없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투투둑!

“응?”

주민성은 눈가를 찌푸리며 소음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렸다.

“…….”

소음의 근원지는 땅벌을 복제했던 텐트 주변.

그곳에선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뭐야. 너희들 설마…….”

바닥엔 땅벌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죽였어?”

위이잉!

여왕벌 다섯을 대표로 형성된 땅벌 무리가 주민성의 주변을 맴돌았다.

왠지 더욱 친근한 느낌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동족을 죽인 이후의 친근감이라는 점.

“……이건 쓰면 안 되겠네.”

죽어 있는 땅벌은 주민성이 복제했던 땅벌로 추정된다.

유일하게 주민성의 손등에 올라탄 벌은 한 마리뿐이었으니까.

[땅굴 벌(수컷)이 수납됩니다.]

주민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땅벌을 수납했다.

“복제는 완벽했을 텐데…….”

복제된 땅벌은 기존의 땅벌과 완벽하게 일치했을 터.

그럼에도 땅벌 무리는 복제된 땅벌을 아무렇지 않게 구분해내 확실한 죽음을 선사했다.

곤충에게도 곤충 나름의 윤리가 존재하는 모양.

“에휴. 그냥 생명체 복제는 하지 말자. 능력 얻었으면 됐지.”

방금의 사건은 분석조차 꺼려질 정도의 끔찍한 변수였다.

이 감정은 주민성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해괴한 짓을 하는군….”

문가에서 묵묵히 있던 제르취마저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쯧. 생존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으로 치자.”

“해괴한 소리까지…….”

주민성은 핵심을 짚으며 제르취에게 맞받아쳤다.

“먼저 해괴한 짓을 시작한 건 너야. 제르취.”

“…….”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도 너고.”

생명체 복제가 위험한 능력으로 판단됐으면 그것으로 끝.

주민성은 이런 일에 얽매일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살생이라면 몬스터를 상대로 수없이 해 왔으니까.

“나는 어떻게든 살아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그것만큼은 누구도 방해 못 해. 절대.”

“…….”

주민성은 대답 없는 제르취를 뒤로하고 묵묵히 벌집을 썰어냈다.

[벌집 조각이 수납됩니다.]

[벌집 조각이 수납됩니다.]

……

작업은 인벤토리에 벌집 조각이 수백 개쯤 들어갈 때까지 반복됐다.

중간 중간 벌집을 질겅이며 여왕벌의 권능 테스트를 병행하는 것은 덤.

[10분간 여왕벌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 해당 건물 세입자를 호출할 수 있습니다.]

“벌집. 여왕벌 호출.”

[여왕벌의 권능을 발동합니다.]

[해당 건물 세입자 중 여왕벌을 호출합니다.]

[권능 종료까지 남은 시간: 9분]

위이잉!

첫 여왕벌의 권능은 성공적이었다.

주민성은 곧장 다음 테스트에 돌입했다.

“벌집. 여왕벌 호출.”

주문은 같았지만, 이번엔 여왕벌이 벌집이 아닌 양봉소에 머물러 있는 조건이었다.

[여왕벌의 권능을 발동합니다.]

[해당 건물 세입자 중 여왕벌을 호출합니다.]

[세입자가 해당 건물에 없습니다.]

[권능 종료까지 남은 시간: 8분.]

“이건 또 안 되네? 오케이. 하나 더 배웠고. 다음은…….”

주민성은 메모장에 호출 조건을 끄적이며 다른 표본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번엔 여기가 좋겠군. 푸줏간. 스취.”

[여왕벌의 권능을 발동합니다.]

[해당 건물 세입자 중 스취를 호출합니다.]

주민성의 지휘를 받는 오크 중 하나인 스취는 여왕벌과 조금 다른 케이스였다.

스취의 집인 푸줏간 소유권은 주민성에게 넘어왔으나, 건물 이용자인 스취는 주민성에게 이용료 청구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아닌 대상입니다.]

[여왕벌의 권능이 취소됩니다.]

“이번엔 아예 남은 시간까지 사라지는구나.”

이번 테스트는 상당한 수확이었다.

나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변수를 미리 예방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다음은……. 휴…….”

주민성은 땅이 꺼지듯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들 살아는 있으려나…….”

다음 테스트는 게이트에 있는 동료 호출이었다.

“선아 씨는 차에 있었고……. 신우빈은 경비실인데 경비실은 내 소유가 아니고…….”

호출 조건은 생각할수록 까다로웠다.

이용료를 청구했던 대상과 머무는 건물이 일치해야 하는 것은 물론, 건물의 소유까지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용료 청구를 했던 대상……. 그리고 이용료를 청구했던 건물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라면……!”

주민성은 주먹을 힘껏 쥐었다.

조건에 일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 과정!”

송몽룡을 제외한 판자촌 능력자들은 교육 과정을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심지어 협회에서 본격적인 게이트 조사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농성을 벌이고도 남을 사람들이었다.

“……근데 누굴 부르지?”

새로운 난관이었다.

협회 간부가 게이트까지 들이닥친 이상, 학교 또한 긴급 상황에 돌입했을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지휘관급은 안 돼.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 순간, 주민성은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호출이 성공해 버리면 게이트는 더 위험해지잖아…….”

판자촌 능력자들은 엄연한 전투 능력자들.

만약 그들과 협회 간부들이 대치 중이라면, 전투원 한 명의 이탈만으로도 전황이 급격히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여왕벌의 권능은 일방통행이었다.

“돌려보낼 수가 없으니까……. 젠장.”

결국, 주민성은 마지막 테스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선 하위 차원에서 최대한 많은 능력을 얻고 게이트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송몽룡 씨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송몽룡은 주민성이 여태까지 봤던 능력자 중, 가장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한 인물.

심지어 송몽룡은 호위 서비스까지 받은 상태라, 시간 정지 능력자는 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순식간에 무너지진 않을 거야. 제발 버텨 주길.”

주민성은 굳은 표정으로 벌집 채취를 마무리했다.

위이잉!

땅굴 벌들은 여전히 주민성에게 친근감을 보이며 주변을 날아다녔다.

양봉소를 빠져나갈 생각은 없는 모양.

“아, 고블린 꽃도 회수해야 하는데.”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고블린 꽃을 대체할 식품을 고민했다.

“꿀은 없으니 대충 당분이면 괜찮으려나.”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있던 사탕 한 봉지를 꺼내 지하실에 뿌렸다.

“조금만 참아. 애들 시켜서 꽃이라도 찾아보라고 할 테니까.”

위이잉!

대충 벌들을 달랜 주민성은 지하실에 인벤토리를 보냈다.

벌집이 너무 빼곡해서 원격 수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고블린 꽃 회수.”

원격 수납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의 표정은 황당하게 바뀌어 있었다.

“뭐지?”

한 줄만 떠올라야 할 메시지가 여러 줄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 꽃이 수납됩니다.]

[고블린 꽃이 수납됩니다.]

[고블린 꽃이 수납됩니다.]

……

주민성이 지하실에 투척한 고블린 꽃은 고작 한 송이.

지금의 메시지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고블린 꽃을 생각나는 대로 꺼냈다.

“……이게 왜 진짜야?”

주민성의 손엔 고블린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위이잉!

“아, 맞다. 여기 지하실 아닌데.”

주민성은 뒤늦게 꽃향기를 경계했다.

하지만 땅벌이 추락하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꽃이 젖어있어 향기가 퍼지지 않거나, 땅벌들이 강화되어 수면 향에 내성이 생겼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위이이잉!

땅벌 무리는 흡사 메뚜기떼와 같은 움직임으로 꽃다발에 달라붙었다.

“얘들 눈치 빠르네. 두 개만 주고 가져가라.”

위이이잉!

주민성은 꽃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수면 향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고블린 꽃이 수납됩니다.]

[고블린 꽃이 수납됩니다.]

“신기하네. 나중이 기대되는군.”

주민성은 뒤늦게 밝혀진 꽃의 저력에 감탄했다.

이 꽃이 평범하진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미약한 성장 환경만 갖춰져도 몇 시간 만에 증식하는 건 상식을 아득히 넘어선 결과였다.

그야말로 고블린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꽃이었다.

“후후. 좋아. 좋아.”

주민성은 순례길에 앞서 자유롭게 수납할 수 있는 벌, 그리고 여러모로 활용이 가능한 벌집을 챙겼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다음은 벌들을 통제할 차례였다.

동족 포식의 위험성을 생명체 복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목격한 이상, 개체수를 조절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벌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얻은 능력이 있었으니까.

“작업 지시.”

위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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