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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세요 양보하지 말고 (3) (66/250)


드세요 양보하지 말고 (3)
2022.02.05.


주민성은 또다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이 어째서 전설 등급 건물과 연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나와 같은 사례. 아마도 이 사람은 유물의 진짜 피해자겠지.’

유물의 이전 사용자는 서풍 길드의 SS급 능력자.

SS급 게이트를 토벌할 정도로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는 길드의 일원이었다.

‘사망 원인은 광증. 몬스터에 의한 피해가 아니었어. 애초에 몬스터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 능력자도 아니었겠지.’

과잉 전력 편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능력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 정도로.

끝없이 나오는 몬스터에 비해 인간은 그 수가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고등급 능력자라면 더더욱.

때문에, 서풍 길드는 SS급 게이트 토벌에 앞서 압도적인 전력과 확실한 전술을 갖춘 상태였을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영혼석도 얻었겠지.’

표본은 하나뿐이었지만, 주민성은 제르취의 언행을 통해 영혼석이 나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몬스터는 원한을 품고 죽으면 영혼석을 남기니까.’

실제로 제르취는 주민성에게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 해 보고 텐트포에 황당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제르취는 지금도 복수를 꿈꾸고 있다.

“취, 췩! 쳐다보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에휴. 너한테 뭘 바라냐.”

주민성은 제르취를 향해 피식 웃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계인의 마지막 거처도 패스하자.’

전설 건물이라는 상품이 걸려 있었지만, 상품의 가치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진 않았다.

그곳에서 만날 몬스터는 오크가 아닌 미노타우로스.

그것도 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진짜배기 괴물이 있을 테니까.

“결국, 이번에도 하나만 남는군.”

“네 목숨이 하나 남았다는 건 좋은 소식이군.”

주민성은 제르취의 비아냥을 무시하며 고대의 영혼에게 물었다.

“태양의 순례지. 알지? 알 거야. 알아야만 해.”

“취, 취익?”

고대의 영혼마저 움찔거릴 정도의 강렬한 눈빛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것마저 모르면 나는 양봉가가 되어 버릴지도 몰라.”

“취, 취잇! 나에게 묻지 마라!”

“응?”

색다른 반응이었다.

거리가 멀다거나 위험한 느낌이 아닌, 대답 자체를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고기 먹을래?”

“아, 악마! 우리는 제르취처럼 타락한 영혼이 아니다!”

“안 통하네. 그럼 너희들 몫은 내가 먹을게.”

“취, 취익? 정말인가?”

“오잉.”

고대의 영혼들은 오히려 주민성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모양.

타락하지 않은 순수한 영혼다웠다.

“그래. 고기는 배고플 때 먹기로 하고. 그보다 태양의 순례지부터 말해 줘. 여기서 가까워?”

거리야말로 주민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건물 폭발을 이용한 기약 없는 비행은 바다라는 변수에 막혔기 때문이다.

“……태양의 순례지는 한때 우리가 관리했던 성지다.”

“가깝다는 거네?”

“그곳은 멀고도 가까운 곳이니…….”

“얼씨구.”

고대의 영혼은 홀린 듯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보고자 하면 눈이 멀 것이고, 가까이하면 타 죽을 것이다…….”

“아…….”

처음엔 좋은 느낌이었지만, 고대 영혼의 혼잣말이 길어질수록 태양의 순례지라는 장소는 위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화상은 타격인가? 그럼 실명은?’

타죽거나 눈이 멀거나.

전부 물리적인 타격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하지만 희망이라면 있었다.

주민성의 방어체계는 임시 권한이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좀 더 설명해 줘. 태양의 순례지에 대해서.”

“취익! 나보단 저 친구가 나을 거다.”

고대의 영혼은 또 다른 오크를 가리켰다.

붉은 천으로 눈을 동여매고 있는 오크였다.

이것은 주민성에겐 큰 희망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태양의 순례지를 직접 겪어 봤다는 말일 테니까.

“나 말고 다른 이에게서 잊혀진 성지가 언급될 줄이야.”

“…….”

건물 탐색 능력은 설명하기도 난감한 능력.

굳이 고대의 영혼이 느끼는 감동을 파괴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성은 사소한 문답은 생략하고 핵심부터 물었다.

“혹시 태양의 순례지 가 봤어?”

“그렇다. 내가 마지막 순례자였으니까.”

“오.”

순례자답게, 눈앞의 오크는 정신 수양이 잘된 영혼이었다.

취익 소리는 조금도 들려오지 않을 정도.

“좋네. 태양의 순례지가 어디야? 여기서 가까워?”

“가깝고도 먼…….”

“위치만 말해 줘.”

“…….”

순례자 오크는 손을 뻗어 문밖을 가리켰다.

그곳은 마을 입구가 있는 장소.

더 나아가면 크라노돈을 토벌했던 장소였다.

“저 산 너머 태양과 가장 가까워지는 곳. 그곳이 태양의 순례지다.”

“산도 아니고 산 너머는 뭐야.”

“수양이 부족하구나…….”

주민성은 이곳까지 걸어오지 않고 날아왔기에 주변 지형에 대해서 제법 파악하고 있었다.

주변엔 태양과 가깝다고 비유할 정도로 높은 산은 없었다.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태양과 가깝다면 적어도 고지대일 가능성인 높은데.’

그 와중에도 순례자 영혼은 말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시련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언제쯤 끝이 날는지…….”

“…….”

시련이라면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폭풍의 시련이라든가 기타 등등.

배불뚝이 오크 형제가 1초 만에 끝냈던 것들도 시련이라는 범주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왠지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주민성은 명상소 문밖으로 나가 순례자 영혼이 가리켰던 장소를 둘러봤다.

보이는 건 오로지 밤하늘뿐이었다.

“시련. 내가 한번 해 볼게. 방법이나 알려 줘.”

“저, 정말인가? 취익!”

순례자 영혼은 여태까지의 수양을 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지 그제야 취익 소리를 뱉었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구원이!”

“알았으니까 빨리.”

순례자 영혼은 주민성 근처로 날아왔다.

하지만 그 한계는 문 언저리까지.

명상소를 빠져나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를 구원할 새로운 순례자가 희생을 자처했습니다. 부디 보살펴 주십시오……. 취익!”

“……참고로 말하는데, 희생은 안 해. 절대.”

“취익. 이미 늦었다. 나의 여정은 너에게 이어졌으니.”

그 순간, 순례자 영혼은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손짓을 더해가며 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새로운 태양의 순례자가 되었습니다.]

[태양의 순례지로 갈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태양의 순례지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뭐야. 이것도 메시지야?”

“그, 그분의 목소리가 들린 건가?”

“……아니야.”

번역이 이상하게 적용됐는지, 다른 고대의 영혼들까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저자는 우리와 종족부터가 다른데!”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취잇!”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지도 몰라!”

“……아니라고.”

주민성의 목적은 단순히 전설 등급 이상의 건물을 파밍하려는 목적이었지, 오크를 구원한다거나 희생을 자처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하……. 됐다. 어쨌든 길은 보이네.”

메시지가 뜬 직후.

주민성의 눈에는 새로운 길이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하늘로 향하는 길이.

“어디 한번…….”

주민성은 조심스레 눈앞의 반쯤 불투명한 길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반대쪽 발도 올렸다.

“오오!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태양의 순례자!”

주변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주민성이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것으로 보였으니까.

“이대로 나아가라! 취익!”

“너만 믿는다!”

“취이익!”

생각지도 못했던 열렬한 응원.

주민성은 다시 땅을 밟는 것으로 주변의 바람을 단숨에 꺾었다.

“읏차.”

“취익?”

고대의 영혼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봤다.

“왜. 뭐.”

“어, 어째서 돌아오는 거냐! 취익!”

“준비는 하고 가야지.”

주민성이 예상하는 태양의 순례지는 절대 평화로운 장소가 아니었다.

우연히 거리만 가까웠을 뿐.

“취, 취잇! 성지를 모욕하다니!”

화를 내는 고대의 영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민성도 마찬가지.

“너희들도 안전을 모욕하고 있잖아.”

“안전? 그게 뭐냐!”

예상대로 이곳의 영혼들은 안전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오크는 태어날 때부터 싸움에 특화된 신체를 타고났으니까.

“나는 살을 깎아서라도 뼈를 취한다는 생각이 없다 이 말이야.”

“취익! 살코기가 더 맛있다!”

“쯧쯧.”

주민성은 난리 통이 되어버린 명상소를 뒤로하고 양봉소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벌집도 제법 말랐겠지?”

“갑자기 벌집인가?”

주민성의 뒤엔 제르취도 따라붙었다.

영혼임에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다 명상소를 자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는 제르취는 주민성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였다.

“너도 태양의 순례길에 동행하도록.”

“헛소리 마라. 나는 갈 수 없는 성지다.”

“아니야. 갈 수 있어.”

“취익?”

주민성에겐 자신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하급 이하의 건물들만 소유하던 주민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일 등급을 얕보지 마라. 간다면 가는 거야.”

“허, 헛소리…….”

“후후…….”

제르취는 여왕벌의 권능으로 호출할 수 있는 세입자에 해당한다.

명상소에서 이용료를 청구했던 전적이 있었으니까.

이는 배불뚝이 오크 형제도 마찬가지.

“어허. 너는 여기까지. 입구에서 대기하도록.”

“크윽!”

어느새 양봉소에 도착한 주민성은 정신없이 코를 고는 즈쉬와 배불뚝이 오크 듀오를 지나 지하실 문을 열었다.

끼익.

동시에, 폭발하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푸타타타타타!

“취, 취익! 재앙이다!”

“전쟁취!”

당황한 건 주민성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했다는 정도.

지하실 문은 인벤토리에서 꺼내진 텐트에 의해 막혀 있었다.

“휴. 깜짝이야.”

간단한 원리였다.

건물 부가효과엔 소음 차단도 있었으니까.

서둘러 지하실 입구를 틀어막은 주민성은 잠에서 깬 오크들에게 말했다.

“별일 아니야. 자라.”

물론 별일 아닌 것은 주민성 기준.

움집의 오크들은 게이트에서의 오크와 달리 겁이 많았다.

크라노돈이 포효하기만 해도 지하로 숨을 정도였으니.

“취익! 도망쳐야 한다! 대장!”

“무섭취!”

“에휴.”

주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인벤토리에서 고블린 꽃을 꺼냈다.

아니, 꺼내려 했다.

“아, 지하에 두고 왔었지.”

디버프 용도로만 사용되던 고블린 꽃은 땅굴 벌에겐 버프 덩어리였다.

꿀의 단맛을 끌어올리는 용도로도 쓰였으리라.

“취익?”

“어쩔 수 없네. 그냥 자라. 옆집 가서 자든가.”

태양의 순례지가 시련과 관련된 이상, 가르취와 차크취의 컨디션 관리는 필수.

이 정도 배려심은 주민성에게도 있었다.

“취익. 알겠다.”

“꿀잠취!”

그 와중에도 즈쉬는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쟤도 데려가.”

“알겠취!”

차크취가 즈쉬를 가볍게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여태까지의 고기 투자가 아깝지 않은 엄청난 힘이었다.

주민성은 뿌듯함을 느끼며 텐트에 들어갔다.

“와.”

지하실과 이어진 텐트 바닥은 땅벌들에 의해 쉴 새 없이 꿀렁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증식했다고? 어떻게 되어먹은 번식력이야?”

건물주와 이용자라는 관계는 형성되었지만, 이 정도로 수가 불어나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은 주민성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풀어 두기도 난감했다.

메뚜기 떼와 비슷한 수준의 재앙이 하위 차원을 강타할 테니까.

“여왕벌이 다섯 마리였지.”

이쯤 되면 양봉소 고유효과로 나타날 고대의 여왕벌에게도 자연히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고대의 여왕벌이랬으니 땅벌류는 아닐 테고. 그렇다고 말벌류도 아니겠지. 양봉소니까.”

말벌은 꿀을 생산하지 않는다.

때문에 고대의 여왕벌은 양봉소에 어울리는, 꿀을 생산하는 개체 중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여왕벌이 중요한 게 아니야.”

주민성이 신경 쓰는 건, 답 없이 증식하는 땅굴 벌에 관한 대책이었다.

“이대로라면 습성 자체가 바뀔지도 몰라.”

여태까지 땅굴 벌이 먹던 것은 지하실의 습기와 이끼.

여기에 고블린 꽃 한 송이가 추가되어 봤자 폭증한 식사량을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동족 포식인가.”

건물주의 능력이 개입된 이상, 지하의 땅굴 벌은 이전의 평범한 땅굴 벌이 아니었다.

그런 땅굴 벌이 동족 포식을 통해 공격성에 눈을 뜨면 오크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소한 머릿수 조절은 해 줘야겠네. 땅굴 벌 먹이도 구하고. 어휴.”

양봉업자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기는 순간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온 주민성은 텐트를 조심스레 밀어 공간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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