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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세요 양보하지 말고 (2) (65/250)


드세요 양보하지 말고 (2)
2022.02.04.


주민성은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벌집을 골라 조심스레 뜯어냈다.

어떤 고유효과를 선택해도 이득인 상황.

여기서 더욱 큰 이득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역할은 메시지에 달려있었다.

“간다. 건물 포식.”

주민성은 눈을 감은 채, 벌집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음.”

건물 부가효과가 적용된 데다, 완성도도 훨씬 높은 벌집이었다.

당연히 이전에 먹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았지만, 땅굴 벌의 식사가 부실해서인지 단맛은 부족했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

질겅질겅.

벌집의 식감은 생각보다 질긴 편이었다.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오는, 조금 무른 느낌의 껌과 비슷했다.

“맛은 합격이고……. 다음은 결과인가.”

눈을 감았기 때문에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다.

건물이 된 벌집을 먹음으로써 생기는 변화를 직접 체감하기 위함이었다.

“음.”

하지만 아쉽게도 느껴지는 변화는 없었다.

그나마 짭짤한 감자칩이 먹고 싶다는 수준의 변화라면 있었지만.

처음부터 벌집의 효능은 소화력 강화로 정해져 있었다.

건물로 판정됨으로써 새로운 변화가 있길 바랐던 건 주민성의 욕심이었다.

“역시 큰 변화는 없는 건가. 이러면 육각 결계가 유력해지는데…….”

하지만 육각 결계를 택하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모든 타격에 면역되기 때문에 원하는 크기의 벌집을 미리 썰어 둬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씹을 수 없게 변하기 때문에 음식으로서의 가치 또한 사라진다.

물론 평생 사용해도 무방한 절대 방어구가 생기기에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 메시지 확인만 하고 결정하자.”

주민성은 천천히 눈을 뜨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최초 달성 보상이었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소화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피식자의 힘을 일부 포식합니다.]

[최초로 건물을 포식했습니다.]

[건물 관조 권한이 부여됩니다.]

[10분간 건물을 관조할 수 있게 됩니다.]

[관련 능력이 해금되어있지 않습니다.]

[건물주는 별도의 공간으로 격리됩니다.]

“오잉?”

건물 관조는 상당히 특이한 능력이었다.

심지어 관련 능력은 해금되어 있지 않은 상태.

즉, 1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건물을 관찰하는 능력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 역시도 사용하기 나름이겠지만 당장 떠오르는 사용처는 회피 용도.

“적어도 10분간 대인 능력 정도는 피할 수는 있겠네. 격리가 뭔지 꺼림칙하지만.”

주민성은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고 다음 메시지를 읽었다.

[유일 등급 건물 일부가 흡수됩니다.]

[10분간 여왕벌의 권능이 건물주 권한에 이식됩니다.]

[어디서든 해당 건물 세입자를 호출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든 해당 건물 세입자를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여왕벌의 권능에는 해당 건물 일부가 소모됩니다.]

“…….”

이번 메시지는 그 어떤 평가도 내릴 수 없었다.

평범한 벌집이 유일 건물로 탈바꿈된다는 것은, 감히 주민성조차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선사했던 것이었다.

“와.”

고대 건물들이 앞으로 선사해 줄 고대의 물건들.

이것들은 주민성이 하위 차원에 머무는 기간에만 얻을 수 있는 한정 상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왕벌의 권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벌집을 먹을 뿐인데 고대의 물건들을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다라.”

주민성은 고대의 물건들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었다.

몬스터 부산물이 유용한 자원으로 쓰이는 정도의 상식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이 물건들의 가치는 현대의 가공 장인들이 더욱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분명 쓸 만한 물건이 되겠지.”

주민성은 고대의 물건을 활용해서 만든 완제품을 상상했다.

“고대의 옷감으로 만든 의류, 고대의 씨앗을 짜낸 기름, 고대의 장작으로 제련한 무기와 방어구……. 물론 그 이상도 있을 거야.”

주민성은 주먹을 힘껏 쥐며 주어진 보상에 전율했다.

“여기서 방어구를 선택하고 이런 권한을 포기한다? 어림도 없지.”

그리고 결정했다.

“고유 효과를 지정한다. 땅굴 벌 강화로.”

[고유 효과 지정 권한이 발동됩니다.]

[땅굴 벌의 신진대사가 초대폭 강화됩니다.]

[일회성 권한입니다.]

[고유 효과 지정 권한이 소멸합니다.]

고유 효과가 정해짐과 동시에,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푸드드드!

땅굴 벌의 날갯짓 소리는 헬리콥터 소리라고 착각할 정도로 컸다.

동시에, 고블린 꽃에 의해 잠들어 있던 땅굴 벌들까지 깨어났다.

푸드드드드드드!

“어휴. 이거 장난 아니네. 일단 나가야겠군.”

이젠 벌집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고유 효과가 정해짐으로써 강화된 일벌들까지 알아서 일할 테니까.

주민성은 텐트로 끌어 올려 귀를 막은 채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취잇! 지진이다!”

“멸망취!”

양봉소의 오크들 역시 새로운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다.

건물 부가효과로 소음이 차단되고, 진동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요란하긴 하네.”

지금의 진동은 벌집이 신나게 지어진다는 증거.

주민성은 진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분 좋게 미소지을 수 있었다.

“별거 아니야. 머지않아 안정기에 돌입할 테니까.”

“취익! 대장은 예언가인가!”

“신통취!”

이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때.

주민성은 오크들과 함께 양봉소를 빠져나왔다.

“취이이이!”

다른 움집에선 오크의 코골이 소리가 한창이었다.

“아직 새벽인가. 건물 탐색.”

[이미 탐색 중인 건물이 있습니다.]

[탐색 완료까지 6시간 남았습니다.]

다음 행선지는 전설 등급 이상의 건물이 있는 장소.

주민성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챙길 계획이었다.

“언제 현실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준비는 최대한 해야겠지.”

주민성은 명상소에 도착함과 동시에 잠을 청했다.

체력을 최대한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후우. 역시 내 건물이 가장 편해.”

주민성은 눈을 감은 채, 잠시 현실을 떠올렸다.

“……막막하군.”

임시 권한이 적용 중이긴 했지만, 현실 속 상황은 여전히 막막했다.

한창 협회 간부들과 대립하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쯤 그쪽은 어떠려나…….”

당시 황태범의 능력은 무력화시킬 수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만을 지키는 수단이었을 뿐.

주민성에겐 동행자가 있었다.

“이번엔 선아 씨라도 도망은 힘들겠지.”

장비빨에 건물주빨까지 더해진 최선아의 능력은 F급을 초월했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협회 간부는 최소 S급 이상일 테니.

“운전기사님이야 소속이 신성이니까 괜찮겠지. 신우빈이 힘 좀 써 줬으면 좋겠는데.”

그나마 주민성이 의지할 사람은 신우빈이었다.

신우빈은 협회와 신성에 동시에 소속된 데다, 협회 간부에게도 꿀리지 않는 권력이 있었다.

“어떻게든 피해 없이 수습만 잘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주민성은 최악의 결과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최악의 상황이 들이닥친다면 주민성에겐 희생당한 사람들의 몫까지 대신해서 복수를 해 줘야 할 책임이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강해져서 돌아가자.”

짝!

주민성은 양 볼을 치며 자신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정신이 아니군.”

“킥킥! 명상은 처음인 게야!”

“음?”

제르취를 비롯한 고대의 영혼들의 목소리였다.

‘명상소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지.’

주민성은 머쓱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눈앞에는 오크의 얼굴들 대신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건물의 부가 능력이 발현됩니다.]

[명상을 통해 신체를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희박한 확률로 깨달음을 얻습니다.]

“아.”

명상소 역시 고유의 효과를 가진 건물이었다.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굳건한 투쟁심이 발휘됩니다.]

[정신 간섭 능력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위 차원은 노다지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주민성은 행복한 표정으로 제르취를 바라봤다.

“짜식. 고맙다.”

“…….”

의도는 분명 달랐겠지만, 결과적으로 제르취는 영혼석을 남김으로써 하위 차원으로 갈 수 있는 열쇠가 되었다.

“보답은 제대로 해 드릴게.”

“췩.”

전설 등급 건물이 어디에 있든, 주민성은 이 작은 오크 부락을 부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세입자를 호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이상, 이 마을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들은 주민성의 소유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콜라 캔에 햄버거 정도면 뭐든 바꿀 수 있겠지.’

주민성은 제르취와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6시간 뒤, 기다리던 건물 탐색의 결과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탐색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위 차원에 속한 전설 등급 이상의 건물.]

[다섯 개의 건물이 확인되었습니다.]

“탐욕스럽구나. 식사를 하루에 세 번씩이나 한다니. 너는 정말….”

“제르취. 잠깐만. 타임.”

“…….”

주민성은 곧장 메시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해당 건물은 서대륙 고대 요새에 존재합니다.]

[해당 건물은 망자의 땅에 존재합니다.]

[해당 건물은 바닷속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합니다.]

[해당 건물은 태양의 순례지에 존재합니다.]

[해당 건물은 이계인의 마지막 거처에 존재합니다.]

“…….”

주민성은 말을 잃었다.

난해한 설명 때문이었다.

여기선 제르취를 비롯한 고대의 영혼들에 자문할 필요가 있었다.

주민성은 그중에서 가장 늙어 보이는 고대의 영혼을 지목했다.

“질문 좀 할게. 여기는 서대륙이야?”

그나마 알기 쉬워 보이는 서대륙의 고대 요새.

메시지 최상단에 있던 만큼, 주민성이 얻기 쉬운 건물일 가능성이 컸다.

“취익? 이곳은 동대륙의 끝이다.”

“……그래?”

둥근 것은 지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주민성은 건물 폭발을 통해 하늘을 날았던 만큼, 하위 차원 역시 둥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즉, 여기서 동쪽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서대륙에 도착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럼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어떻게 돼?”

“당연한 걸 묻는구나! 취익!”

“그냥 말해 주라.”

고대의 영혼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죽는다.”

“왜?”

주민성도 자신은 있었다.

어떤 괴물을 상대하던 맞아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죽음의 바다를 지나야 하거든. 키킥.”

“죽음의 바다라…….”

건물 탐색 결과 중엔 바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도 바닷속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선택지는 주민성이 가장 꺼리는 선택지였다.

‘바다는 내가 가장 피해야 할 곳이지.’

바다는 임시 권한과 관련 없이 주민성을 익사시킬 수 있는 위험한 장소였다.

‘건물 폭발로 날아가는 거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바다에 빠질 확률도 높겠지.’

건물 폭발을 엄청나게 잘 다룬다면 계속해서 공중을 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 능력은 평소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능력이었다.

즉, 실수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변수에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것으로 주민성은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단념했다.

동시에 바다 속 건물 파밍이라는 선택지도 사라졌다.

“휴. 여기서 서대륙까지는 얼마나 걸리는데?”

“취익. 50년이다.”

“…….”

오크 기준으로 50년.

제대로 계산조차 하기 힘든 수준의 거리였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선택지도 비교 대상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망자의 땅은 어디야?”

“취, 취익!”

자신만만하던 고대의 영혼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대충 설명해 줘도 돼.”

망자의 땅은 이름만 봐도 위험한 장소였다.

죽은 자의 땅이었으니까.

그리고 주민성이 익사 말고도 경계해야 할 것엔 영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은 죽은 자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래? 여기 있는 오크들도?”

“……그렇겠지. 취익. 제르취를 제외한다면.”

“오호.”

고대의 영혼은 제르취만을 지목할 뿐.

주민성에겐 시선조차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망자의 땅도 제외인가.’

이것으로 남은 선택지는 태양의 순례지, 그리고 이계인의 마지막 거처였다.

이중 주목할 것은 이계인이라는 단어였다.

‘이계인은 나 같은 사람을 칭하는 거겠지.’

이와 관련된 정보는 고대의 영혼들조차 모를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단서는 주민성에게 있었다.

‘나 말고 이 유물을 착용했던 사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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