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세요 양보하지 말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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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세요 양보하지 말고 (1)
2022.02.03.
양봉소.
이곳은 과거 즈쉬의 집이었고, 지금은 차크취의 소유이자 주민성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건물이 되었다.
“달콤한 냄새!”
“벌꿀취!”
주민성은 건물 부가효과를 만끽하는 오크 형제를 뒤로하고 지하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거기서 대기.”
“알겠다! 취익!”
“대기취!”
오크 형제의 개입을 차단한 주민성은 조심스레 지하로 진입했다.
지하 공간은 생각보다 넓은 편이었다.
오크가 몸을 눕힐 수 있을 정도의 공간, 그리고 구석엔 땅굴 벌이 만들어 놓은 듯한 벌집이 듬성듬성 솟아있었다.
“생각했던 벌집과 다른데?”
땅굴 벌집은 흔히 알고 있는 벌집의 형태가 아니었다.
이것은 벌집보단 거미가 만들어낸 하얀 고치가 기괴하게 솟아오른 느낌에 가까웠다.
주민성은 망설임 없이 땅굴 벌집에 손가락을 꽂아 넣었다.
푹!
손가락이 벌집에 박히고, 땅굴 벌의 벌침이 손가락에 박히는 복합적인 소리가 울렸다.
주민성은 침을 쏘아댄 벌의 변화를 관찰했다.
“확실히 꿀벌은 아니네.”
땅굴 벌은 흔히 알고 있는 꿀벌과 달랐다.
침을 쏘고 바로 죽어 버리는 개체가 아니었던 것.
주민성은 그대로 벌집을 휘저었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보유할 수 없는 건물입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습니다.]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진 이전에 실험했던 두꺼비 집과 같은 결과.
물론 이대로 벌집을 먹어도 포식과 건물주 능력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주민성은 탐욕스러웠다.
벌집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때문에 주민성은 다음 편법을 준비하기 위해 벌집을 그대로 뜯어냈다.
“내부는 벌집 모양 맞네.”
위이잉!
벌들은 여전히 주민성의 손가락을 미친 듯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타격은 없었지만.
“……진액보단 이게 더 효과있겠지.”
당장이라도 벌집을 입에 넣어 달콤한 맛을 느끼고 싶었지만, 주민성은 극한의 보상을 위해 인내했다.
“소유권이 먼저야.”
주민성은 벌집을 뜯지 않은 반대쪽 손을 활용해 인벤토리를 운용했다.
인벤토리에서 꺼내진 것은 평범한 중식도.
처억!
주민성은 그대로 뜯어낸 벌집을 중식도에 발랐다.
다른 벌집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위이이이잉!
파괴되는 벌집이 늘어날수록 땅굴 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자기 집을 부수는 상대를 내버려 두는 건, 사람도 하지 않는 짓이었으니까.
처억.
어느새 중식도는 벌집도에 가까운 형태가 되었다.
“공간이 없으면 만들면 돼.”
건물을 소유하는 조건.
그것은 주거 공간이었다.
때문에 주민성은 벌집을 파괴했다.
이는 곧 공간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였다.
“이쯤이면 되겠지.”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이미 조립되어 있는 텐트를 꺼냈다.
툭.
그리고 인벤토리를 잘 조준해 고블린 꽃을 심었다.
정확히는 ‘세웠다’ 쪽에 가까웠지만.
“잠시 후에 다시 보자.”
작별인사는 땅굴 벌을 향한 것이었다.
고블린 꽃은 심지 않아도 효과가 발휘되니까.
“잘 자.”
투두둑!
지하는 밀폐 공간이었다.
그리고 주민성이 소유한 공간이기도 했다.
건물의 부가효과는 발동되고 있었다.
하지만 부가효과의 적용은 건물주가 허락한 생명체에 한정된다.
주민성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점이었다.
후두두둑!
한창 광분하던 땅벌들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고블린 꽃의 수면 효과 때문이었다.
“쾌적한 작업 환경이군.”
주민성은 땅굴 벌을 밟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 지하실 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하실 문을 벌집으로 도배했다.
물론 벌집 모양은 잔뜩 망가져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액체 괴물에 가까워졌지만.
“잘되려나.”
주민성의 노림수는 지하 공간 전체를 벌집으로 만드는 것.
이는 양봉계의 상식을 뒤엎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민성은 건물주였다.
그리고 벌들은 불법 세입자나 마찬가지.
이곳에선 뭘 하든 주민성의 의견이 최우선인 공간이었다.
“대충 벌집 도배는 끝났고.”
주민성은 다시 벌집이 있던 위치로 돌아가 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여왕벌을 찾기 위함이었다.
“대충 큰놈이 여왕벌이겠지?”
당연한 이치였다.
산란에 적합하게 진화한 여왕벌은 다른 벌들보다 배가 클 테니까.
“오. 이건가?”
주민성은 섬세하게 여왕벌을 골라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총 다섯 마리의 여왕벌 포획에 성공했다.
“얘들이 핵심이구나.”
땅굴 벌은 몬스터라고 하기엔 곤충에 가까웠고, 나름의 규칙을 가진 생명체였다.
동족 간 소통이 가능한 것은 덤.
때문에 주민성은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제발 통해라.”
주민성은 포획한 여왕벌들을 텐트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텐트에 속삭였다.
“이용료 청구.”
위잉!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은 70%]
“예스!”
다행히 예상은 적중했다.
벌은 예상보다 훨씬 성실한 곤충이었다.
주민성은 기쁜 마음으로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
[이용료는 땅굴 벌(수컷) 20마리입니다.]
“와. 생각보다 터프한 화폐네.”
어찌 보면 여왕벌다운 화폐이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뒤, 여왕벌 다섯 마리가 깨어났다.
건물 부가효과를 받은 덕분이었다.
위잉!
텐트를 빠져나온 여왕벌은 주민성 주변을 잠시 맴돌았다.
“이용료 잊지 마십쇼. 고객님.”
말을 마치자 여왕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 봤자 지하 공간 한정이지만.
“이 정도면 됐나?”
주민성의 노림수는 단순한 이용료 청구가 아니었다.
여왕벌들의 한집살이를 강요한 것.
즉, 서로의 공간에 대한 구분을 없앴다는 말이었다.
“읏차.”
주민성은 그대로 캠핑용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아 여왕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위이이잉!
건물 부가효과를 받은 여왕벌들은 이제 보통의 여왕벌이 아니게 되었다.
날갯짓 속도부터 자잘한 움직임까지.
평소의 배 이상을 뽐내기 시작했다.
“부하들이 자고 있으면 대장이 일해야지 뭐.”
여왕벌은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최우선은 자신의 거처, 그리고 세력을 구축하는 것.
위이이잉!
여왕벌들은 고블린 꽃에 잠시 머물다가, 빠르게 부서진 벌집이 있는 지하실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임시 벌집을 짓고 산란을 시작했다.
“다행이다.”
주민성이 계속 자리를 지켰던 이유는 여왕벌끼리 싸우게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여왕벌은 이용료 청구에 소속감이 생겼는지 서로 협조하는 모습이었다.
“근데 한 마리는…….”
사람 다섯이 모이면 한 명은 반드시 또라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 법칙은 벌들에게도 적용되는지, 한 마리의 여왕벌은 엉뚱한 장소에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건물 부가효과를 받은 덕분에 그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위이이이잉!
“이것은 올바른 행동인가?”
위잉!
“댓츠 노노. 그렇지 않다.”
주민성은 그대로 괴짜 여왕벌의 건축물을 뜯어냈다.
뚜두두둑!
뜯어낸 건 벌집이라고 하기엔 축축하기 짝이 없는 기괴한 분비물에 가까웠다.
“진액도 나름대로 맛은 있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주민성은 그대로 예비 벌집을 입에 넣었다.
이 정도 퍼포먼스는 보여야 여왕벌의 기행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소화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피식자의 힘을 일부 포식합니다.]
[소화 완료까지 남은 시간 5분.]
[땅굴 벌집이 흡수됩니다.]
[소화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오! 이것도 벌집은 벌집이구나. 그보다 이 효과는…….”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는 혜택이었지만, 포식자의 허기와 연계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소화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벌집을 꾸준히 먹음으로써 포식자의 허기가 가지는 비중은 더욱 커질 수도 있었다.
언젠가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정확히 말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까지 소화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대박이다! 쉿! 쉿!”
주민성은 여왕벌을 다그치며 입구 쪽으로 유도했다.
위잉!
다행히 벌집을 먹힌 여왕벌은 결국 다른 여왕벌 무리에 합류했다.
주민성은 기쁜 미소를 지으며 여왕벌 관찰을 재시작했다.
‘결과가 기대되는군.’
단순히 급조된 벌집의 포식 효과는 소화력을 강화하는 수준.
소유권까지 얻어내 건물로 판정된 벌집의 효과는 상상만 해도 설레는 기분이었다.
“쉿. 쉿.”
주민성은 여왕벌의 건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땅굴 벌집은 일단 높게 쌓는 특징이 있었는데, 여기서 벌집이 뻗어 가려는 방향을 손으로 막는 방식이었다.
자연히 벌집이 뻗어가는 방향은 지하 공간의 벽면으로 바뀌었다.
“좋아. 착하다.”
부가효과 덕분에 여왕벌의 행동 속도는 어마무시했다.
그 와중에도 나름대로 서열까지 정해졌는지, 공간을 확보한 한 마리의 여왕벌은 산란을 시작했다.
“신기하네.”
어느덧 지하실 밖에선 오크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민성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 여왕벌 관리에 매진했다.
“쉬잇. 쉿.”
작업은 상당히 진행되어 지하 공간의 벽면은 끈적한 여왕벌의 분비물로 가득했다.
이것이 굳으면 벌집이 되는 모양.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여태까지의 노력을 보답 받는 순간이 찾아왔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초거대 벌집이 추가됩니다.]
양봉소의 지하 공간이 벌집이라는 별개의 건물로서 분리되는 순간이었다.
“됐다!”
왜애앵!
주민성은 결과에 크게 감동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해서 완성한 최초의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최초로 건축에 개입했습니다.]
[작업 지시 권한이 부여됩니다.]
[건축업자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게 됩니다.]
[최초로 개성적인 건물을 건축했습니다.]
[해당 건물은 유일 등급이 부여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유일 등급 고유 효과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고유 효과 지정 (일회성) 권한이 부여됩니다.]
[고유 효과 목록이 개방됩니다.]
“미, 미쳤다…….”
고유 효과 선택.
그동안의 건물 고유 효과는 주민성을 단 한 번도 실망케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선택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단다.
주민성은 주먹을 있는 힘껏 쥐며 고유 효과 목록을 살폈다.
“와…….”
고유 효과 목록은 기존 건물 부가효과의 강화판이었다.
주민성은 그중 유력 후보 세 가지를 추려냈다.
[육각 결계: 모든 타격 면역]
[감옥: 특정 대상을 영구히 가둘 수 있는 감옥 활성화]
[땅굴 벌 강화: 땅굴 벌의 신진대사 초대폭 강화]
육각 결계는 임시 권한과 동일한 능력이었기에 가장 눈에 띄는 고유 효과였다.
그리고 특정 대상을 영구히 가둘 수 있는 감옥 또한 인벤토리보다 더욱 안정적인 수단이었다.
마지막으로 땅굴 벌 강화는 복합적인 건물 강화라고 볼 수 있었다.
산란 속도부터 벌집 개축 속도, 꿀 생산까지 모든 것을 아울러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으니까.
“전부 탐나긴 하는데…….”
언젠가 임시 권한이 끝난다면, 육각 결계는 건물 잔해를 대신할 압도적인 성능의 방패가 될 수 있었다.
감옥은 생명체 전용 인벤토리로서 활용할 수 있었다.
땅굴 벌 강화는 전투 보조와 미래를 위한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후우. 일단 소거법으로 가자.”
주민성이 목록에서 가장 먼저 제외한 것은 감옥이었다.
인벤토리는 주민성이 가장 잘 다루는 능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건 타협할 수 있는 수단이야.”
다음은 육각 결계와 땅굴 벌 강화였다.
육각 결계는 임시 권한이 적용 중인 지금으로선 쓸모가 없지만, 미래엔 상당히 유용한 능력이 될 것이 확실했다.
“육각 결계는 벌집 수십 덩이만 뜯어내도 평생 쓰겠지……. 후우. 일단 신중 하자. 일회성이니까.”
주민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땅굴 벌 강화에 대해서 고민했다.
“종합적인 강화. 밸런스는 확실하겠지.”
아직 고유 효과를 선택하지 않은 지금도 새로운 땅굴 벌의 알은 수백 개가 산란되어 있었다.
이것은 전부 미래의 재산이 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실제 양봉업자를 만나 전문적인 조언을 받게 된다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여지도 있고, 새로운 군체를 탄생시킬 수도 있었다.
“땅굴 벌을 강화하면 수벌도 화폐가 아닌 전투원이 될지도 모르겠네…….”
고민의 시간은 계속 이어졌다.
주민성은 여전히 선택을 망설이고 있었다.
“더욱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고민이 길어지자 어느새 주변까지 벌집이 깔리기 시작했다.
주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발목에 붙은 벌집을 떼어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포식!”
주민성에겐 마지막 판정 수단이 남아있었다.
벌집을 먹음으로써 얻는 효과.
이것은 지금의 결정 장애를 순식간에 완치시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좋아. 먹어 보고 결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