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패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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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패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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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패스 (2)
2022.02.02.
‘명령은 분명 해 뒀는데?’
메시지엔 긍정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주민성은 이것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젠장.’
가르취와 차크취가 가만히 있었으면 이런 메시지도 뜨지 않았을 테니까.
주민성이 당장 꺼내야 할 건 텐트가 아니라 뜬금없이 존경심이 한계를 초월한 오크 둘이었다.
‘텐트 112, 119.’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두 오크를 포장했던 텐트를 꺼냈다.
“…….”
텐트 안에는 건장한 오크가 아닌, 배불뚝이 오크 둘이 있었다.
“취익! 이것도 너무 맛있……!”
“감탄취!”
“…….”
가르취와 차크취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텐트에 몸이 엉켜 있는 가르취는 족발을 포장째로 뜯어먹고 있었고, 차크취의 입 주변엔 피자 토핑이 가득했다.
“취익! 대장이다! 여기 너무 좋다! 대장!”
“존경취!”
“…….”
존경심이 멋대로 한계를 초월한 이유가 밝혀졌다.
“내 비상식…….”
인벤토리에 챙겨 둔 건 평범한 비상식이 아니었다.
포장만 뜯어도 삶아지는 맛족발과 8가지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특수 조리된 자동 가열 피자였다.
가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취익!”
주민성이 허탈해하는 사이, 시험을 진행하던 오크는 재빠르게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너희들…….”
주민성에게 시험은 나중의 문제였다.
통과하면 좋고, 실패해도 잃는 건 없는 시험이었으니까.
“취익! 대장! 아직 다 먹지 못했다! 돌려보내라!”
“진상취!”
지금의 풍경은 끔찍했던 기억 한 가지를 떠올렸다.
“콩이도 그랬었지…….”
인벤토리만 들어가면 마석을 축내던 콩이도 그랬었다.
물론 그땐, 명령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다.
절대 을인 콩이는 명령만 해 두면 마석을 먹지 않았으니까.
“너희들한텐 명령도 했었잖아…….”
“취익! 대장의 명령은 너무 좋다! 또 명령해라!”
“존경취!”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조회해 손해를 파악했다.
그리고 지휘권의 허점을 알게 된 수업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쁜 놈들……. 반절이나 먹어치웠네…….”
말이 반절이었지 혼자서 1년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심지어 두 오크는 비싼 음식만 골라서 먹어치웠다.
‘다음부턴 꽁꽁 묶어야겠군.’
주민성은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손해를 메꾸고자 마음먹었다.
한계를 초월했다는 문장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 만큼, 반드시 써먹을 구석이 존재할 것이 분명했다.
“너희들. 일 좀 하자.”
“취익! 명령인가! 좋다!”
“명령취!”
“……그래.”
뭔가 명령에 대한 의미가 달리 이해된 것 같지만,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존경을 받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리라.
“저 오크. 잡아 와.”
“취익?”
“취?”
그 순간, 가르취와 차크취의 풍만한 뱃살이 요동쳤다.
쾅!
“크헉!”
“취익!
“늦었취!”
두 오크가 사라진 건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아, 안 돼! 취익!”
시험관은 어느새 두 오크에게 붙잡혀 있었다.
“어?”
그것으로 시험은 종료.
메시지가 미친 듯 쏟아졌다.
[대리인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상속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건물의 소유자는 황무지 오크 가르취로 변경됩니다.]
[건물주는 대리인을 통해서도 권리를 행사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재봉소가 추가됩니다.]
[건물의 부가 능력이 발현됩니다.]
[고대 등급 고유 효과가 발현됩니다.]
[재봉소 어딘가에서 고대의 옷감이 가끔 생성됩니다.]
[건물 소유권이 변경되어 고대의 영혼을 추방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와.”
고대 등급 건물다운 어마어마한 혜택이었다.
오크 듀오에 대한 원망조차 순식간에 씻겨 나갈 정도.
걱정했던 소유권 문제도 해결됐다고 볼 수 있었다.
지휘 권한 덕분에 건물의 실소유자인 가르취가 건물주 대리인으로 판정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봉소는 주민성의 건물이나 마찬가지.
‘최초 보상은 나중에 받자. 어차피 다 내 건데.’
배불뚝이 오크 형제도 결국은 보상이었다.
최초 권한은 아니지만, 이것도 결국은 보상이라는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욱 그랬다.
최초 권한 이상으로 활용성이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이곳의 모든 건 보상이었다.
‘돌아가려나 보군.’
주변 풍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험장의 오크는 보이지 않았다.
고대의 영혼으로 판정되어 추방됐다고 봐야 했다.
‘아, 참.’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
건물 잔해는 이곳에서 구할 수 없는 한정된 자원.
주민성은 잔해를 수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취익! 신기하다!”
“재밌취!”
풍경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정신없이 잔해를 수납하자 어느새 주민성과 배불뚝이 둘은 오크 마을로 돌아와 있었다.
“벌써 끝난 건가?”
“응. 다른 건물도 작업할 거니까 따라와.”
“……흠.”
재봉소엔 콰취도 남아있었다.
차분한 제르취와 달리, 콰취는 금단현상에 빠진 것처럼 주민성을 절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취익!”
“왜. 뭐.”
콰취는 잔뜩 위축된 와중에도 주민성을 간절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고기를 줘! 취익!”
“아, 그랬었지. 따라와.”
“취익!”
이 세계에서 정해진 재화가 크라노돈의 조각 뼈라고 해서 다른 부위가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
이제 크라노돈의 고기는 가치를 완벽히 인정받았다.
그리고 주민성은 새로운 재화를 마음껏 활용했다.
“정말 먹어도 돼? 취익!”
“응. 먹어. 계산했으면 먹어야지.”
고기파티가 빠르게 재개되고, 주민성은 콰취가 먹는 고기의 양을 교묘하게 늘렸다.
“마음껏 즐겨 둬. 후후후…….”
“취익! 취이익!”
-가열 완료까지 6분. 6분.
-특급 가열이 시작됩니다.
무려 6분짜리 특급 가열.
평소보다 더욱 많은 고기에 다른 오크들은 열광했다.
“취익! 고기 많다!”
“나도 집을 주겠다! 취이!”
처음이 어려웠을 뿐.
그 이후는 일사천리나 다름없었다.
주민성은 단 6분의 투자로 오크 마을의 모든 움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다녀와라.”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었다.
주민성과 오크 형제는 곧장 상속시험에 돌입했다.
[상속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통과 시 건물의 소유권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시험관이 등장하고.
“날 밀어서 넘어뜨려 봐라!”
“취익취!”
[대리인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상속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건물의 소유자는 황무지 오크 차크취로 변경됩니다.]
[건물주는 대리인을 통해서도 권리를 행사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공구 제작소가 추가됩니다.]
[건물 소유권이 변경되어 고대의 영혼을 추방합니다.]
시험이 끝났다.
그렇게 시험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초.
“다음!”
주민성의 쾌진격에 제르취조차 당황하기 시작했다.
“취익! 이런 미친놈!”
오히려 움집을 오가는데 더욱 시간이 소요될 정도.
주민성은 오크 형제가 자유롭게 날뛰는 것을 허락했다.
[시험의 장으로 이동합니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7분]
“폭풍 속에서 위대한 걸음을……!”
“취익! 걸었다!”
[대리인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상속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가호가 깃든 조각상을 부숴 봐라!”
“망취!”
[대리인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상속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힘을 증명해라!”
“취익!”
[대리인이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상속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10초 이상 지연되는 시험은 없었다.
괜히 오크 마을이 아니었는지, 시험 내용은 유독 오크 친화적이었다.
덕분에 모든 시험을 빠르게 통과한 주민성은 소유한 건물들의 스펙을 정리하며 행복한 시간을 맞이했다.
‘이거 조금 애매한데?’
-재봉소 어딘가에서 고대의 옷감이 가끔 생성됩니다.
-곡물 정제소 어딘가에서 고대의 씨앗이 생성됩니다.
고대 건물들에는 각 건물에 어울리는 고대의 물건이 생성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이런 고유 효과는 절대 나쁘지 않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
단지 주민성 본인이 이곳에서 영원히 살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관리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겠군.’
알아낸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휘력의 미묘한 차이도 알아냈다.
가르취, 차크취와 달리 즈쉬와 스취에겐 건물주 대리인의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것.
‘문제는 대리인을 늘리느냐 마느냐인데.’
오크의 존경심이 한계를 초월하게 만드는 방법은 이미 검증됐다.
현대의 맛을 일깨워 주면 그만이다.
물론 소모되는 식량이 어마어마하다는 게 함정.
‘일단은 현상 유지가 낫지.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고.’
바로 다음 날이면 건물 탐색의 결과도 나타나기 때문에 주민성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주민성이 생각한 현상 유지엔 마을의 유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들 모여 봐. 고기 더 있어.”
“취익! 고기! 고기!”
“이건 특식이야.”
주민성이 꺼낸 것은 크라노돈의 꼬리였다.
제르취가 유독 챙겼던 부위니 만큼, 효능은 다른 부위보다 훨씬 압도적이리라.
“먹고 싶지?”
“쿠워어어!”
“취! 취!”
오크를 다루는 건, 어떻게 보면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보다 단순하다고 할 수 있었다.
먹을 것에 엄청나게 약하다는 특징 때문이다.
주민성은 곧장 다음 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움집의 전 소유주들을 향한 명령이었다.
“너 저기 살지?”
“그렇다! 취익!”
“집 어딘가에서 골동품이 숨겨져 있을 거야. 그걸 찾아서 차크취한테 넘겨.”
“좋다! 무조건 한다! 그러니 고기를 줘라! 취익!”
골동품은 건물에서 생성될 고대의 물건들을 뜻했다.
주민성은 오크를 잔뜩 고양 시켜 고대의 물건들을 손쓰지 않고 편하게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그렇게 세심한 주문이 끝나고, 마무리 미끼를 뿌렸다.
이는 오크가 반드시 일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했다.
“고기 파티는 내일 할 거야.”
“취익? 어째서!”
“고기가 더 있다고 했지, 굽는다고 한 적은 없잖아.”
억울하게 인벤토리를 털린 이상, 이 정도 경계심은 이젠 필수나 다름없었다.
“내가 말한 물건들을 챙겨와야만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무조건이야.”
“취익! 간다! 찾으러!”
오크들이 순식간에 흩어지고, 주민성 곁엔 제르취와 배불뚝이 오크 둘만이 남게 됐다.
“……너는 정말 사악하구나.”
“칭찬 고맙다.”
주민성은 제르취에게서 시선을 돌려 가르취와 차크취를 바라봤다.
“…….”
“취익!”
“취!”
둘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존경심이 가득한 표정이 어떤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너희는 뭐 할래? 집도 없잖아.”
“취익! 이젠 집 따위 없어도 된다! 대장! 따라간다!”
“노숙취!”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제르취가 나타난 순간부터 영원한 밤이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여태 흘려보낸 시간은 건물 탐색의 남은 시간을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야.’
주민성은 주어진 시간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할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벌집부터 챙겨야겠군.”
“취익? 벌집?”
“달콤취!”
주민성은 즈쉬의 집 지하에 벌집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즈쉬의 집 소유권 또한 챙겼다.
주민성은 수첩을 펼쳐 보상 내용을 점검했다.
-양봉소 어딘가에서 고대 여왕벌이 가끔 생성됩니다.
즈쉬의 집은 양봉소였다.
어찌 보면 집 지하에 벌집이 있다는 게 당연할 정도.
여기서 주민성은 새로 나타날 여왕벌을 경계했다.
‘여왕벌이 몬스터라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
아무렇지 않게 주인의 마석을 먹어대는 콩이부터 자기 물건 아니면 전부 부숴대는 신우빈, 인벤토리 털이범으로 존재감을 각인한 배불뚝이 듀오까지.
세상엔 변수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여왕벌 또한 변수로서 주민성에게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었다.
간단한 이치였다.
즈쉬의 집엔 이미 벌집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고대 벌이 아닌, 땅굴 벌의 벌집이.
하지만 지금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대비만 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엔 주민성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여왕벌이 출몰한다는 정보가 있었고, 적어도 오크 마을 내에선 압도적인 영향력과 무력을 갖춘 오크 형제도 주민성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제든 구워삶을 수 있는 제르취의 힘도 빌릴 수 있었다.
“양봉소로 가자.”
“취익! 양봉소로 간다!”
“꿀잠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