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패스 (1)
(62/250)
오크 패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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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패스 (1)
2022.02.01.
“뭐 하다 이제 왔어?”
“크흠! 너는 알 것 없다.”
제르취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주민성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취익?”
반대로 콰취는 주민성을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흡사 미친놈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그보다 제르취. 넌 알지? 건물 상속받는 방법.”
“……상속?”
“응.”
그제야 제르취의 시선이 주민성을 향했다.
“네가 상속을 받겠다고? 이 집을?”
“어. 문제 있어?”
“……전혀.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군.”
“…….”
주민성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건물 상속과 관련되어 수많은 문제가 엮여 있음을.
“지금 바로 상속을 시작하지. 저 아이 머리 위에 손을 올려라.”
“……아니. 잠깐 기다려.”
“음?”
주민성은 경계심을 높였다.
상속에 있어 직관적이지 않은 미지의 행위가 전제된다는 건, 반드시 경계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임시 권한의 유일한 허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와 관련된 행위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은 자신을 포함해 정신계 능력에 노출된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봐 왔으니까.
“찜찜하거든.”
주민성은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 소리쳤다.
“가르취! 차크취!”
“취익!”
“취!”
주민성은 제르취보다 신뢰할 수 있는 오크 듀오를 호출했다.
‘이러면 최소한 수습은 할 수 있겠지.’
잠시 후, 가르취와 차크취가 움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동시에 가르취의 손바닥이 콰취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이놈입니까! 취익!”
“혼내 준취!”
쩌억!
“취익! 갑자기 때리는 건 너무하다!”
콰취가 뒤통수를 부여잡고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이곳에서도 갑은 주민성이었다.
“아, 때리지 않아도 괜찮은데.”
“취익!”
“뭐 어쩌겠어. 너희들 방식이잖아. 튼튼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오크에겐 자신을 변호해줄 변호사도, 처벌을 위한 경찰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주민성은 오크의 방식 또한 존중할 수 있는 드넓은 마음씨를 가졌다.
“하여튼. 너희들 나 대신 일 하나만 하자.”
“취익! 말씀하십시오!”
“명령취!”
주민성은 곧장 콰취의 머리를 가리켰다.
“취힉!”
이에 당황한 콰취가 서둘러 손을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오크 듀오는 이미 마을의 강자로 다시 태어났다.
어설픈 방어는 통하지도 않을 수준으로.
짜악!
쩌억!
“아, 그냥 손만 올려.”
“취익!”
“알겠취!”
잠시간의 침묵.
주민성은 제르취를 닦달했다.
“제르취. 시작해.”
“…….”
제르취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동시에 가르취가 물었다.
“췩! 대장. 제르취가 누굽니까? 멋있는 이름인데.”
“얘잖아.”
아무렇지 않게 제르취를 가리키던 주민성은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
잠자코 있던 제르취가 말했다.
“이 아이들은 나를 볼 수 없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이건 주민성도 속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오크들이 신나게 먹고 있는 크라노돈을 토막 낸 건 다름 아닌 제르취니까.
“뭐야. 너. 은신 능력도 있어?”
“……이해력이 떨어지는 종족이군. 나는 종족의 원수에게만 관여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런 주술이었고. 원한 관계없이 나를 볼 수 있는 자는 마찬가지로 죽은 자뿐이다.”
죽어서도 살아 복수하는 기묘한 현상은 오크 특유의 주술이었던 모양.
다시 생각해 보니 엉켜 있던 퍼즐이 맞아 가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르취와 대화하던 오크도 고대의 영혼으로 적혀 있었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주민성은 가르취에게 답했다.
“제르취라고 있어. 너희들 조상쯤 되겠지.”
“취익! 대장은 조상이 보이는구나!”
“위대취!”
설명은 이것으로 충분했다.
주민성에게 중요한 것은 건물의 상속이지 제르취의 과거 사정이 아니었으니까.
“하여튼 알겠고. 상속 시작.”
“……취익.”
“뭐 해? 상속받을 오크 여기 있잖아.”
제르취는 말없이 주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함정 맞지?”
“……악마 놈.”
“이제 정상적인 상속법이나 알려 줘.”
“……함정이 아니다.”
“그럼?”
“……이 아이들은 견뎌내기 힘든 시험이다.”
“시험?”
“취익.”
제르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초대 족장들은 너도 봤겠지만.”
“그게 누군데?”
“……네놈의 부름에 모인 자들 말이다. 모르는 척하진 않겠지.”
“……대충은 알 것 같아. 그래서 시험이 뭔데.”
제르취가 말하는 초대 족장은 아마도 명상소에 모여든 고대의 영혼을 뜻하는 모양.
“선대의 의지를 받드는 시험이다. 운 좋은 놈. 족장의 명맥이 끊기지만 않았어도 너는 나와 대면하기 전에 시험부터 치러야 했을 거다.”
명상소의 소유자가 없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소유자 부재 덕분에 빈집을 쉽사리 얻었으니 운이 좋은 것도 사실.
주민성은 제르취의 말을 경청했다.
“다른 집은 얘기가 다르다. 후손이 아닌 자의 상속은 선대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지. 그리고 이 집은 대대로 가장 날렵한 전사를 배출했던 집안이다.”
“……아. 그래서 가장 날렵하게 집을 포기했구나.”
“…….”
콰취는 세상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험. 별거 없겠네.”
“……악마다운 자신감이군.”
콰취를 볼수록 자신감이 샘솟았다.
‘이렇게 부끄러운 후손이라면 시험 난이도는 볼 것도 없겠군.’
주민성은 결과를 쉽사리 예측할 수 있었다.
‘나 정도면 프리패스지.’
경쟁 사회 속에서도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이 바로 주민성이었으니까.
혹시라도 머리를 쓰는 문제가 나와도 마찬가지.
“췩! 시험이 뭐야?”
“몰라취!”
게다가 오크에겐 공부라는 개념도 없다.
‘좋아. 지르자.’
마음을 다잡은 주민성은 오크 듀오의 손을 치웠다.
그리고 질문했다.
“너희들 내 부하 맞지?”
“취익! 당연하다! 가르취는 대장의 부하다!”
“졸개취!”
원하던 대답이 들려왔다.
덕분에 다음 제안은 더욱 쉬워졌다.
“그래. 대장이니까 명령 몇 개만 하자.”
“췩! 말해라!”
“에취!”
급히 텐트를 펼쳐 차크취의 재채기를 막아낸 주민성은 그대로 두 오크를 포장했다.
“가만히 있어 주라. 신기한 경험일 거야.”
“취익! 어둡다!”
“편안취!”
포장이 끝나고, 주민성은 텐트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오크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들, 안에서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이건 수련이야. 가만히 있어야 해.”
“취익! 재밌겠다!”
“기대취!”
이미 콩이를 통해 인벤토리를 털려본 경험이 있는 주민성은 두 오크에게 가만히 있음을 추가로 명령했다.
물론 지휘권도 적용되고 있었지만, 혹시 모를 변수를 방지하는 차원이었다.
[텐트 112가 수납됩니다.]
[텐트 119가 수납됩니다.]
이것으로 보험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주민성은 그제야 콰취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반질반질한 콰취의 머리는 제법 좋은 감촉이었다.
“시험. 시작해.”
“……해괴한 짓을 하는군. 그래도 상관없겠지.”
오크 포장에 대해선 따로 지적하지 않으려는 모양.
제르취는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반면, 제르취는 흐릿해지고 있었다.
성불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살아서 돌아오길 바란다.”
“……살아서?”
제르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험의 장으로 이동합니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7분]
다행히 능력은 유지되는 모양.
주민성은 주먹을 쥐며 내심 환호했다.
“아. 아.”
목소리가 나오는 걸 확인하고.
슥.
인벤토리에 있던 사탕도 꺼내 물었다.
“좋아. 다 할 수 있네.”
시험의 장은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로써 시험 프리패스 확률은 99%에 육박한다고 볼 수 있었다.
“뭘 할 수 있지?”
“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옛날 오크는 뒤에서 등장하는 게 하나의 전통인 모양.
주민성은 그대로 고개를 돌리고 상대와 마주했다.
“…….”
눈앞의 오크는 상당히 세련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옷감 디테일에도 상당히 신경을 썼는지 오크보단 사람에 가까울 정도.
더불어 압도적인 강함이 느껴졌다.
‘잘 보여서 나쁠 건 없겠지.’
주민성은 공손함을 유지하며 좋은 첫인상을 심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안녕하세요. 집 받으러 왔습니다.”
“집이라. 유창한 오크어를 사용하는 외부인이군. 재미있어. 너는 어떤…….”
주민성은 왠지 모르게 투머치한 토크의 기운을 감지했다.
‘될 수 있으면 추가 인연은 건물과 맺고 싶은데.’
주민성은 오크라는 종족이 사람 말을 더럽게 안 듣는, 콩이 계열의 몬스터라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오크는 한번 보고 헤어질 상대.
많은 대화는 필요 없었다.
“네. 시험 주세요.”
“……시험.”
목소리는 또다시 뒤에서 들렸다.
날렵함은 가속계 능력자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
“그 집에는 엄연히 주인이 있을 터.”
세련된 오크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봤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살기와 함께.
“네. 콰취라는 오크입니다. 시험 주세요.”
“……그 아이의 이름도 알고 있나?”
“같이 있었거든요. 시험 주세요.”
팟!
어느새 날카로운 단검이 주민성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이 정도면 S급 가속계라고 해도 믿겠는데?’
심지어 시험을 달라고 세 번이나 재촉했음에도 가볍게 무시하는 멘탈까지 갖춘 상대였다.
하지만 주민성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믿는 구석인 임시 권한이 빵빵하게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혹시 시험 내용이 목 안 잘리고 버텨라. 이런 겁니까?”
“크하하! 제대로 미친놈이군. 그런 시험을 원하나?”
“저야 좋죠. 빨리 합격하면 서로 윈윈인데.”
“……괴상한 말이구나. 그 단어…….”
“제발 시험 좀 주세요. 제발요.”
“……좋다. 건방진 아이야.”
곧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속 시험이 시작됩니다.]
[시험 통과 시 건물의 소유권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난, 죽이는 법을 잊었다. 아니, 죽일 자격이 없다고 해야겠지…….”
“…….”
주민성은 노골적으로 오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제발요.”
“……너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 좀.”
“……날 잡아라. 그게 시험이다. 내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통과……!”
휙!
말은 많아도 세련된 오크의 실력은 진짜배기.
주민성의 손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뭐냐. 그 힘없는 손짓은? 외부 상속자가 맞는가?”
“피지컬이 약점이라서요.”
“피……. 뭐?”
휙!
시험 내용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눈앞의 오크를 잡을 수단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냥 잡혀 주면 안 됩니까? 집주인이 포기했는데.”
“……췩! 크흠! 포기?”
“네. 어디 보자…….”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뒤져 콰취가 집을 넘기기 전, 마지막으로 넘긴 물건을 꺼냈다.
“이것도 콰취에겐 꽤 소중한 물건이었겠죠.”
주민성이 꺼낸 물건은 콰트리취의 그림자라는 이름의 안대였다.
“서, 서, 선대의! 취익! 이런 미친놈!”
크게 당황하는 거로 보아 안대는 확실히 가치 있는 물건이 맞는 듯했다.
“이 정도면 증거가 되겠죠? 쉽게 쉽게 갑시다.”
“건방진 놈! 가문의 원수였구나! 너는 영겁의 세월 속에서 비참히 죽어 가리라!”
“……아까는 못 죽인다면서요.”
정곡을 찌르니 오크의 분노는 쉽게 조절됐다.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내가 잡히지 않는 이상, 너는 이곳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겠지.”
츠츳!
그 말을 끝으로 오크는 멀찍이 떨어져 주민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후우.”
방금의 선언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을 암시한다.
죽을 때까지 잡히지 않겠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럼에도 주민성의 표정엔 여유가 가득했다.
“옛날 오크는 다 저런가?”
말이 통해서일까, 게이트에서의 오크와 달리 이곳에서 만난 오크들은 생각보다 위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빈틈이 보였다.
예를 들면, 지금 같은 상황도 쉽게 극복할 방법이 존재한다.
“전부 메꿔 버리면 잡히겠지.”
시험의 장은 일단은 돔형 야구장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고 주민성은 얼추 비슷한 수준의 건물 잔해를 보유하고 있었다.
즉, 이 공간은 주민성이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시험관 오크가 하늘을 날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쿠웅!
너무 커서 평소 잘 쓰지 않던 건물 잔해가 지면으로 추락했다.
“후후후.”
“흥! 안 통한다!”
카앙!
“통하는데?”
평범한 오크의 단검이 현대의 콘크리트를 뚫어낼 리 없었다.
“취익! 건방진 수를!”
오크의 자세가 돌변했다.
뭔가 큰 기술을 쓰려는 모양.
주민성은 더욱 빠르게 잔해를 떨어뜨려 오크를 방해했다.
쿵! 쿠웅!
그렇게 공세가 이어지고, 오크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건물 잔해의 잔량이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주민성은 미로 방식으로 공간을 메꿔내며 효율을 챙겼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돼.”
상대가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 터라 존댓말을 건넬 이유도 없어졌다.
이번엔 주민성이 오크를 시험에 들게 할 차례.
“취췻! 괴이한 주술이로다!”
“합격지 딱 대.”
주민성의 시큼한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쿵! 쿵! 쿵!
공간이 급속도로 메워지며 오크가 도망칠 공간도 한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이! 무슨 짓이냐! 그만둬라!”
“규칙상 상관없잖아?”
“취익! 그렇게 치르는 시험이 아니란 말이다!”
쿵! 쿵! 쿵!
이젠 미로마저도 건물 잔해에 메꿔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건물 잔해가 소진되고, 남은 공간은 10평 남짓.
휙!
“취익! 소용없다!”
“흐음……. 조금 애매한가.”
안타깝게도 둘 사이엔 피지컬이라는 장벽이 존재했다.
주민성은 건물 잔해를 대체할 물건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텐트 백 개쯤은 더 꺼내야 하나? 내구도 강화가 버텨줄지 모르겠네.’
그 순간, 뜬금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직속 수하 가르취의 존경심이 한계를 초월합니다.]
[직속 수하 차크취의 존경심이 한계를 초월합니다.]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