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고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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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고기 (4)
2022.01.31.
“취익? 유료?”
처음은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유료라는 개념이 없는 모양.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고기 몇 덩이를 더 꺼내 두고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물물교환. 고기는 쓸만한 물건과 바꿔 준다. 참고로 나는 집을 좋아한다.”
번역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으나,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오크들의 말투까지 구사했다.
“취익! 위엄이 느껴지는 상인은 처음이군!”
“고기에서도 위엄이 느껴진다! 췩!”
지휘력의 영향도 소소하게나마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고기 냄새에 이끌렸지만, 지금의 오크들은 주민성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고기의 가치에 관해 설명해 줄 차례.
“이 고기. 크라노돈의 고기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곳의 오크라면 누구보다 크라노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지, 지배종! 취익!”
“미친 상인이다!”
왜인지 여론이 나빠지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가르취와 차크취가 나섬으로써 분위기는 다시금 반전되기 시작했다.
“우리 대장은 미치지 않았어! 췩!”
“고기 맛있취! 힘이 솟아취!”
고기 맛에 대해선, 이미 눈앞의 두 오크가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검증은 끝나있었다.
그럼에도 오크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유가 뭐지? 분명 원수나 다름없는 몬스터일 텐데.’
주민성은 시험 삼아 크라노돈의 거대한 갈비뼈를 빈 공터에 떨어트렸다.
쿠웅!
“이것이 놈의 갈비뼈다. 크라노돈은 죽었다.”
“취익!”
크라노돈의 뼈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갈비뼈는 좌중을 압도했다.
“못 믿겠으면 직접 만져 보든가.”
“취, 취익!”
황당하게도 갈비뼈를 들어 올리는 오크는 가르취와 차크취였다.
“쿠오오오! 근육이 솟는다!”
“취이이이! 근육취!”
크라노돈 고기의 효능인 신체 능력 향상.
이는 포식자의 허기처럼 특이한 권한 권한이 없어도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눈앞의 두 오크는 누가 봐도 어린 오크는커녕 헬스 중독자로 보일 수준이었으니까.
여기서 더욱 황당한 건, 저 둘의 퍼포먼스가 효과적이었다는 사실.
“취익! 저 힘은 진짜다…….”
“하지만 지배종은 무섭다!”
이것이 뒤 순번의 반응이었고.
“물물교환! 고기! 바꿔 준다! 취!”
“쿠워! 다음은 나야!”
앞 순번은 고기와 바꿀 물건을 챙기러 각자의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 뭐든 좋은 걸로 잔뜩 챙겨 와.”
고기 맛은 두말할 것 없었고, 효능 또한 엄청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거기에 갈비뼈를 공개함으로 출처까지 증명되었으니 오크로선 탐욕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오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소지품들을 챙겨와 주민성에게 검사를 받았다.
“이건 뭐야?”
“말린 황무지렁이다! 취! 고소한 맛이다!”
“…….”
사람은 지렁이를 먹지 않는다.
설령 식용 지렁이가 있다 한들 먹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망설이고 있었다.
크라노돈의 사냥에 성공하고 먹는 것과 관련된 권한이 생겼기 때문이다.
“귀한 식량이다! 취!”
“……좋아. 이거라면 한 입 정도는 되겠지.”
상당히 꺼려지는 비주얼이었지만 이것도 결국은 식량, 챙겨 둬서 나쁠 건 없었다.
주민성은 오크가 건넨 지렁이를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말린 황무지렁이가 수납됩니다.]
지렁이의 이름은 정말로 황무지렁이였던 모양.
말린 황무지렁이를 건넨 오크가 자신 있게 외쳤다.
“쿠취취! 이제 고기를 구워라! 상인!”
“…….”
톡.
주민성은 불판에 크라노돈 고기를 올리고 마석 화로를 가동시켰다.
-가열 완료까지 2초. 2초.
-특급 가열이 시작됩니다.
“취익?”
원래라면 감탄만 나왔어야 할 상황.
지렁이를 건넨 오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급 가열이 완료되었습니다.
불판에 올려진 고기는 지렁이만 한 양을 뽐내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취익! 고기가 너무 적다!”
“좋은 물건을 줘야 많이 주지.”
주민성은 억울한 표정을 짓는 오크를 뒤로하고 물건 심사를 재개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취, 취익……!”
이것은 전부 주민성이 의도한 계산법이었다.
집까지 홀랑 털어먹으려면 이 정도 교환비는 갖춰야 할 테니까.
“너무한다! 취익!”
“그래?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쿠워어!”
지렁이를 건넨 오크는 지렁이만한 크라노돈의 고기를 재빨리 입에 넣었다.
“쿠어어! 너, 너무 맛있다! 취이!”
하지만 감탄은 잠시뿐.
오크는 공허감에 휩싸였다.
“더, 더 먹고 싶다! 취익! 고기를 내놔!”
“그럼 물건 더 가져와. 집이면 더 좋고.”
“취익! 집은 안 되는데……. 아! 그게 있군! 기다려라!”
주민성은 새콤한 미소를 짓곤 오크를 외면했다.
“자, 다음 오크. 물건 제출해.”
“취, 취익! 지렁이보단 양이 많다!”
다른 오크가 내민 것은 투박한 토기에 담긴 끈적이는 무언가였다.
“…….”
“귀, 귀한 식량이다! 취!”
“……설명.”
오크는 긴장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취췻! 달콤한 맛이 난다! 땅굴 벌의 진액이다!”
“……벌? 내가 아는 그 벌?”
“그래! 고기 많이 줘라! 취취!”
“마, 맙소사.”
진액은 도저히 먹기 힘든 비주얼을 자랑하고 있었다.
끈적한 액체 속에 둥둥 떠다니는 무언가가 벌 시체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비위가 상할 지경.
그런데도 주민성은 땅굴 벌 진액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대박. 너는 합격.”
“취?”
주민성은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수많은 권한의 연계법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벌집도 집이잖아?’
대충 만든 두꺼비집도 건물로 판정되는 마당에 벌집이 건물로 판정 안 될까.
심지어 벌집은 건물로 판정됨과 동시에, 사람이 먹을 수도 있는 식품.
즉, 벌집은 건물주 능력과 포식자의 허기가 동시에 적용되는, 그야말로 완전식품으로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만약 집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주민성은 흥분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어디서 구했어?”
“우리 집 지하에 벌집이 있다! 취이!”
벌집이 있는 움집이라면 가치가 남다르다.
주민성에겐 눈앞의 오크를 기억해둘 필요성이 있었다.
움집의 소유권까지 있다면 더더욱.
“그래? 집은 어딘데? 너 이름은?”
“구애하는 건가? 취취? 내 남편은 오래전에 이곳을 떠났으니 나쁠 건 없구나. 취취!”
“……제발 집 주소랑 이름만……. 구애하는 거 아니니까.”
“취취! 튕기는 모습도 제법 매력적이구나. 내 이름은 즈쉬. 기억해둬라. 취.”
[황무지 마을 오크 즈쉬가 지휘에 따릅니다.]
착각에 이은 자발적인 지휘 합류까지.
“집은?”
“저기다. 취취!”
놀랍게도 즈쉬가 가리킨 움집은 마을에서 가장 큰 움집이었다.
“오늘 밤이라면 찾아와도 좋다. 취취.”
주민성은 다짐했다.
저 오크의 살림살이만큼은 전부 털어먹기로.
터억!
미운 오크, 고기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었다.
따라서 주민성은 정량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 적당한 크기의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가열 완료까지 3분. 3분.
-특급 가열이 시작됩니다.
“취! 취! 취!”
“다음 오크.”
어느덧 반나절이 흐르고, 주민성 주변은 건장한 오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취익!”
남이 보면 오크들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이, 이게 마지막입니다. 취이…….”
반말에 명령조라는 끔찍한 혼종어를 구사하던 오크들에겐 언제부턴가 유교 사상이 주입되어 있었다.
“흠. 똑같은 거 많은데. 일단은 받아 두지.”
“감사합니다! 취익!”
[황무지 진주 30개가 수납됩니다.]
황무지 진주 같은 특이한 보석류부터, 말린 식품과 다양한 구황작물까지.
주민성의 인벤토리엔 하위 차원의 각종 물건이 거침없이 수납되고 있었다.
-가열 완료까지 3초. 3초.
“취이이…….”
여전히 오크들의 식탐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5분이라는 특급 가열 최고 기록도 깨지지 않았다.
철저하게 물건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가격 균형을 맞춘 덕분이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움집이었으니까.
“취이! 고기 챙겼으면 물러가!”
“꺼져취!”
“취이…….”
가르취와 차크취의 위상도 크게 바뀌었다.
이 또한 주민성의 개입 덕분이었다.
“불만이면 싸워 보든가! 취!”
“맞짱취!”
주민성은 물물교환을 진행하면서 오크들의 서열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 중 가르취와 차크취, 두 오크는 마을에서도 무시 받는 최약체 오크였다.
그리고 크라노돈의 고기는 서열을 뒤집는 기적을 일으켰다.
“먹였으면 곱게 돌려보내.”
“취익! 알겠습니다! 대장님!”
“충성취!”
주민성은 의도적으로 두 오크에게 추가적인 고기를 배급하며 권력을 실어 줬다.
덕분에 충성심이 오르는 건 당연했고, 지금은 제르취에 견줄 만큼 덩치도 커졌다.
그 대가로 두 오크는 주변 질서 정리라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고기를 더 줘라! 취!”
뻐억!
빈손으로 덤비는 오크에겐 물리적인 치료도 허가했다.
“취익!”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움집을 포기한 오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당한 노안의 오크였다.
“취이! 집을 넘길 테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래? 그러면 집부터 먼저 봐야겠는데.”
“췩! 저 집입니다. 취익…….”
오크가 가리킨 집은 다른 집에 비해서도 꽤 허름해 보이는 움집이었다.
“좋아. 앞장서. 고기는 나중에 구울 테니 기다리도록.”
“취잇! 다녀오십시오!”
이젠 새로운 서열이 완전하게 자리 잡았다.
그중 핵심은 지휘를 따르는 가르취와 차크취, 스취, 주쉬였다.
‘추가 지휘는 더 안 되는 건가.’
지휘력이야 대폭 상승했지만, 지휘 한도가 늘어나는 게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절대 을과도 비슷한 방식이니 쉽게 납득할 수도 있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취익.”
“음.”
주민성은 오크의 안내를 받으며 움집에 진입했다.
[소유자가 있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자: 콰취 (상속받음)
[소유권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음…….”
오크가 집을 포기했음에도, 소유권은 여전히 변경되지 않았다.
“소유권은 나한테 있어. 그렇지?”
“취익! 그렇습니다!”
주민성은 오크를 바라봤다.
“췩? 왜 그러십니까?”
“네가 아직 집주인이라는데.”
“그, 그럴 수가! 췩!”
오크는 진심으로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다.
“취! 그럼 고기 못 먹습니까? 안 됩니다! 먹을 겁니다!”
조금 미안해지려는 찰나, 알아서 양심의 가책까지 덜어주는 오크 덕분에 주민성은 힘을 얻었다.
“응. 못 먹어. 집을 제대로 넘겨야지.”
“어, 어째서! 취잇!”
주민성은 메시지를 뚫어질 듯 바라보며 질문했다.
“이름. 콰취 맞지?”
“취익? 마, 맞습니다! 취!”
“집 상속은 어떻게 받았어?”
“상속?”
상속이란 단어 자체를 모르는지 오크는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너 혼자 살지?”
“취, 취익! 나는 늙은 수컷입니다! 구애하지 마십시오!”
“…….”
콰취는 처음으로 집의 소유권을 포기한 오크였다.
즉, 최초 포기자로서 수많은 보상을 쥐고 있는 열쇠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민성은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다.
텐트를 머리에 돌돌 감아 끓어오르는 화를 진정시킨 것은 덤.
“그럴 일 없으니까 대답만 해.”
“취익!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정확히는 모르지만 30년 전쯤? 취이.”
아이러니하게도 콰취가 이 움집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시점은 게이트가 발생한 시기와 비슷했다.
“더 자세히 말해 줘.”
“췩! 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취잇!”
“골치 아프네.”
주민성은 움집 내부를 둘러보며 고민을 이어갔다.
‘뭔가 놓친 게 있는데. 대체 뭐지? 상속과 관련된 능력이 따로 있는 건가?’
텅 빈 집에선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물건이란 물건은 전부 주민성의 인벤토리 안에 있었으니까.
“저 밑엔 뭐 없어?”
주민성은 지하로 가는 문을 가리켰다.
“예! 전부 고기와 바꿨습니다! 취익!”
재산을 홀라당 털렸는데도 콰취의 표정엔 고기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이 마을의 모든 오크는 길바닥에서 자도 문제없을 정도로 강해졌으니까.
“에휴. 옛날 일이라면 제르취에게 물어봐야겠군.”
“불렀나.”
“…….”
주민성의 뒤엔 위엄을 되찾은 제르취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