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고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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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고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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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고기 (3)
2022.01.30.
오크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뒤에서 끊임없이 투덜대는 오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악마 놈.”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제르취의 말투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주민성은 이 말투를 컨트롤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고기 맛있었지?”
“취잇! ……나, 나쁜 자식! 하지 마라!”
“흐즈 므르!”
“쿠워어어!”
“야. 꼬리는 제대로 들어야지.”
“……제기랄!”
크라노돈의 꼬리.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는지 큰 반항은 없었다.
투덕거린 끝에 둘은 오크 마을에 도착했다.
“음?”
신체 능력이 향상되면서 감각도 예민해진 걸까.
주민성은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취, 췻! 다른 종족이야!”
“조용히 해! 숨자!”
목소리가 들린 덕분에 주민성은 목소리가 들리는 위치를 곧장 파악할 수 있었다.
인기척의 정체는 오크.
그것도 상당히 앳돼 보이는 느낌의 오크였다.
“거기 오크 둘. 정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둘이서 속삭임을 이어갈 뿐.
“취잇! 우리 말을 쓰고 있어!”
“어떻게 하취?”
당황할 때마다 취취 거리는 건, 모든 오크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주민성은 새로 알게 된 TMI를 조용히 묻어 버리곤 미끼를 꺼냈다.
“너희들. 배 안 고프니? 고기 있는데.”
“…….”
어느새 주민성의 손 위엔 돌돌 말린 텐트가 올려졌다.
대충 봐도 중량감이 느껴지는 텐트.
그 안에는 크라노돈의 고깃덩이가 들어있었다.
“이거 엄청 맛있거든. 췻췻 소리가 절로 나올걸?”
“취췻! 시끄럽다!”
화를 내면서도 본능을 거역할 수 없는 제르취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오크 둘이 고개를 내밀었다.
“고기! 취!”
“먹고 싶취!”
주민성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오크를 유혹했다.
“그래. 먹자. 이리 와.”
주민성은 오크들을 이끌고 마을 중심부에 도착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무대를 세팅했다.
철컥!
“췻!”
철컥! 철컥!
“취췻!”
마석 화로가 설치되고, 주위론 텐트가 깔렸다.
그러는 와중, 이상하게도 제르취는 말이 없었다.
심지어 크라노돈의 꼬리를 마석 화로 옆에 두고 명상소로 발걸음을 옮기기까지.
‘뭐지?’
잠시 이상함을 느꼈지만, 투혼 갑옷과 얽혀 있는 제르취는 결국 주민성 곁으로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순위는 고기를 굽는 것.
-특급 가열이 시작됩니다.
“췻! 취췻! 굽는다! 고기!”
어린 오크들은 주민성이 안내한 텐트 안에서 크게 환호하고 있었다.
“고기 처음 먹어취!”
“나도! 나도! 취!”
누가 봐도 오크는 육식계 몬스터.
실제로 인천 게이트의 오크는 능력자를 잡아먹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런데도 눈앞의 어린 오크들은 해괴한 감탄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취! 무슨 맛일까?”
“분명 야콘보다 맛있겠취!”
주민성은 어린 오크들의 대화를 통해 크라노돈의 고기가 아닌, 고기 자체의 가치를 상향 조정했다.
‘식량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한 걸까.’
반응하는 오크는 점점 늘어났다.
움집마다 하나씩.
“취이!”
“취! 대체 저건 뭐지?”
아직까진 경계하는 분위기.
하지만 이 분위기는 잠시 후면 반전될 것이 분명했다.
위이이잉!
소금이 분사되고.
철컥!
-열기 보호막을 미세하게 개방합니다.
향까지 중요시하는, 그야말로 미식가를 위한 사치스러운 옵션까지 조작했다.
‘첫인상은 중요하지.’
열기 보호막 사이로 참을 수 없는 향기가 퍼져 나갔다.
“취! 취! 취!”
오크들의 반응 역시 즉각적이었다.
몰래 숨어서 고개만 내민 오크부터, 농기구를 쥐고 경계하던 오크까지 전부 뛰쳐나올 정도.
“얘들아. 고기가 먹고 싶어?”
한때 잘나가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명대사였다.
상대의 간절함을 알고도 건넨 말이었기에 더욱 히트한 대사였다.
지금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곳의 모든 오크들에게 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묻는다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고기가! 취익! 먹고 싶다!”
새어 나오는 열기 때문에 직접 손대진 못했지만, 고기를 먹겠다는 의지와 열정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순서는 지켜야지. 다들 들어가서 기다려.”
“취이?”
오크들에게 질서라는 개념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럼에도 주민성은 질서를 강요했다.
확신이 있었으니까.
“순서 안 지키면 고기도 없다.”
“취익! 들어간다!”
“비켜! 내가 먼저다! 취!”
물론 강경책도 마련되어 있었다.
바로 건물 잔해 감상회였다.
쿠궁!
“취익!”
오크들은 주민성의 작품에 감탄을 뱉곤 말을 잃었다.
그렇게 질서가 바로잡히고, 5분이 지났다.
-특급 가열이 완료되었습니다.
치이이이이!
고기 감상회는 건물 잔해 감상회보다 더욱 큰 반응을 얻어냈다.
“취, 취익!”
이번에 완성된 고기는 시식용이었다.
첫 시식은 가장 먼저 텐트에서 대기하던 어린 오크.
“자.”
“췩! 취익!”
반응은 예상하던 그대로였다.
“취이이! 이것이 고기!”
“나는 살아 있다취!”
주민성은 오크들의 호들갑을 뒤로하고 다음 계획을 진행했다.
“스취가 누구니?”
“취익?”
일곱 번째 텐트 안에서 침을 흘리던 오크가 반응했다.
녀석이 스취이리라.
“너구나?”
“그, 그렇다! 취!”
요구 사항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까다로웠다.
소유권을 넘겨받으면 그만이지만, 방법을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저 집. 네 것 맞지?”
“취잇?”
주민성이 가리킨 움집의 소유자는 스취.
이는 메시지가 검증했으므로 확실했다.
“아니야?”
“취익?”
황당하게도 스취로 추정되는 오크는 순진한 눈망울을 한 채 고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욕심 하난 확실하군.’
상대가 바라는 것이 명확할수록, 상황은 주민성에게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탐낼 물건이라면 인벤토리에 가득했으니까.
딸칵!
“췻?”
주민성은 어느새 인벤토리에서 캔 콜라를 꺼내 자랑하듯 들이켜고 있었다.
“크으!”
“취잇!”
주민성은 추가로 현대식 리액션을 선보였다.
“캬아아아! 역시 탄산은 콜라가 진리지!”
여기에 과장된 표현, 그리고 유명 방송인의 유행어까지 응용해 오크들의 상상력을 돋웠다.
“톡 쏘는 탄산의 청량감! 달콤한 목 넘김! 이것이 콜라다! 킹카콜라!”
“취, 췻…….”
스취로 추정되는 주민성의 과장된 표현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싸구려 텐트에 뒤는 없었다.
금방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
“스취. 집 소유권 넘겨주라. 고기에 콜라까지 추가해 줄게.”
“코, 콜라?”
“어. 이것이 콜라다. 킹카콜라.”
주민성은 두 모금 정도 남은 콜라 캔을 스취에게 건넸다.
“일단 마셔 봐.”
“……췻.”
마석 화로 퍼포먼스 덕분에 오크들의 식욕은 완벽히 사로잡혀 있었다.
여기에 한 번도 마셔 보지 못했던 음료까지 오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취! 뭐 해! 빨리 마셔 봐!”
어느새 텐트 주변엔 다른 오크들까지 몰려 스취를 닦달했다.
동시에 눈앞의 오크가 움집 소유주인 스취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좋아. 소유자는 확실하고.’
남은 건 스취의 반응뿐.
“취아아악! 커헉! 크헉!”
당황스럽게도 스취의 반응은 주민성의 예상과 큰 차이를 보였다.
“뭐, 뭐야!”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콜라가 주민성의 얼굴에 뿜어지지 않았다는 것.
오크에게 탄산음료는 난도가 너무 높았던 모양이다.
“아오!”
“취엣! 취엣!”
사레까지 들렸는지 스취는 쉴 새 없이 기침을 반복했다.
덕분에 주변의 오크들까지 겁에 질린 것은 덤.
“자. 물 마셔. 물.”
“취잇!”
주민성은 물병 뚜껑까지 직접 따는 성의를 보이며 스취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뜬금없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황무지 마을 오크 구제에 성공했습니다.]
[황무지 마을 오크 종족의 지휘권이 활성화됩니다.]
[지휘 가능한 오크: 스취, 가르취, 차크취]
놀랍게도 방금의 행위는 구제로 판정됐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건, 지휘 가능한 오크가 스취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해괴한 이름의 오크 둘이 추가로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크허! 고맙다!”
“…….”
여기서 주민성은 다시 한번 놀랐다.
이어지는 스취의 행동 때문이었다.
“이대로 질 수 없다! 취익!”
“……잉?”
남아 있는 콜라는 한 모금가량.
스취의 콜라 레이드가 재개됐다.
“크워어!”
스취의 두 번째 콜라 레이드 결과는 성공.
놀라운 적응 속도였다.
“…….”
“더 없나? 취익!”
스취는 자신의 성과에 크게 도취되어 있었지만, 하찮기 짝이 없었다.
눈앞의 오크는 제르취처럼 근육이 다부진 체격도 아닌, 약골 그 자체였으니까.
“콜라는 둘째 치고.”
“췻!”
“지휘 좀 받을래?”
“취익?”
지휘권의 사용법은 여타 다른 능력들과 마찬가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황무지 마을 오크 스취를 지휘합니다.]
스취의 눈빛이 변하며 투지를 일으켰다.
“쿠어!”
하찮아 보이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정도면 소유권을 넘겨받을 단서가 될 테니까.
“집도 줄래?”
“쿠, 쿠어?”
“소유권. 넘겨.”
메시지는 잠잠했다.
‘이것도 아닌가?’
주민성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취의 변화를 지켜봤다.
하찮긴 해도, 일단은 투지를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이것도 나름의 성의라 할 수 있었다.
“쿠어어…….”
“옳지. 짜란다. 짜란다. 짜란다.”
주민성은 박수까지 쳐 가며 스취를 응원했다.
그 결과.
“취익! 이젠 고기가 먹고 싶다!”
“…….”
아쉽게도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지휘권의 쓰임새는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단은 원하는 것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려나.’
임시 권한이 유지되는 한, 시간은 주민성의 편.
주민성은 오크가 적대해오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 기다렸다가 고기 먹어라.”
“킹카콜라도 잊지 마라! 취!”
이 정도면 스취가 기억력이 좋은 건지, 지휘력이 발휘되어 기억력이 좋아졌는지 헷갈리는 수준.
‘지휘 가능한 오크는 더 있으니까.’
주민성은 다음 희망을 향해 텐트를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잃었다.
“…….”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텐트 밖에선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장판을 주도하는 건.
“취이이!”
“취이이이!”
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마리의 오크였다.
그것도 전사급으로 예상되는.
둘은 마석 화로를 뒤집은 채 한 방울씩 떨어지는 육즙을 받아먹고 있었다.
“…….”
주민성에겐 둘을 뜯어말리고도 남을 시간이 있었다.
순번을 어겼기에 경고와 함께 페널티를 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둘의 대화가 마음에 걸렸다.
“더! 더 먹고 싶다! 취!”
“고기취!”
첫째로 고기를 시식한 어린 오크의 말투였다.
심지어 인원수도 같다.
“설마…….”
건장한 오크 둘과 주민성의 눈이 마주쳤다.
“취익! 대장이다!”
“대장취!”
주민성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스취 앞에선 잠잠하던 메시지가 지금은 신나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무지 마을 오크 가르취가 지휘에 따릅니다.]
[황무지 마을 오크 차크취가 지휘에 따릅니다.]
둘의 정체는 스취에게 콜라를 먹일 때부터 지휘가 가능했던 오크였다.
‘자발적으로 지휘에 따르는 건 정말 예상 밖이네.’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음 메시지는 높은 확률로 주어지는 건물주식 보상이다.
[강제성이 없는 지휘에 성공합니다.]
[오크 종족에 대한 지휘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보상은 지휘력 상승.
정확한 효과는 알 수 없지만, 대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나름 만족할 만한 성과라 볼 수 있었다.
[오크에게 대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새로운 호칭, 오크 삼인장이 부여됩니다.]
[직속 수하는 지휘관에게 존경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오크 삼인장이라는 괴상한 칭호까지 부여됐다.
“아니……. 됐으니까 집 달라고…….”
“대장취!”
“대장! 취익! 고기가 필요하다!”
둘에게서 존경심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제르취는 이런 개판을 예상하기라도 한 걸까.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대장취!”
“고기취!”
가르취와 차크취에 공세가 계속 이어졌다.
‘한소리 해야겠군.’
주민성은 고블린들을 다스렸던 경험을 참고삼아 지휘체계부터 재정립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르취. 차크취.”
“말해라! 대장!”
“고기취!”
“땅 파면 고기가 나와? 맡겨놨어?”
“대장은 땅을 파도 고기를 찾아낸다! 존경스럽다! 췩!”
“고기취!”
잔소리 효과는 터무니없이 미약했다.
가르취와 차크취는 콩이과에 가까운 오크였던 것.
심지어 이 마을 오크들의 지능은 전체적으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저놈은 땅만 파도 고기를 찾아낸다!”
“고기를 가져와라!”
대기하던 오크들마저 진상으로 돌변했다.
“안 되겠군.”
주민성은 그대로 인벤토리를 개방해 마석 화로를 수납했다.
“취익?”
“고기취!”
시선의 중심이었던 마석 화로가 사라지자, 모든 시선이 주민성을 향해 쏟아졌다.
지금이 한마디 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제부터 고기는 유료로 전환되었음을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