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고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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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고기 (2)
2022.01.29.
쩌억!
고깃덩이가 찰진 소리와 함께 불판에 안착했다.
“취, 취잇!”
멀쩡히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날숨부터 뱉는 제르취.
그 표정에선 뚜렷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무슨 속셈이냐! 악마!”
주민성의 눈빛엔 문명의 무서움을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철컥!
마석 화로의 출력을 높이기 위해선 몇 가지 과정이 필요했다.
“잠자코 보고 있어. 판단은 얘가 한다.”
“네가 하는 게 아니라?”
“그래.”
주민성은 마석 화로에게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코라에산 무기와는 본질부터가 달랐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핸드 메이드에 리미티드 에디션. 그리고 품질 보증서.”
“취이?”
수작업, 한정판, 품질 보증서.
이것이 모두 합쳐진 상품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품질 보증서는 TV에 갖다 대기만 해도 책임자의 이름과 제작 과정, 사용된 능력들과 소비된 마석의 일련번호까지 고스란히 출력된다.
“거기다 제작에 투입된 능력자만 수십.”
“취잇!”
“이것이 유니크다.”
철컥! 철컥!
추가적인 조작이 이어지고, 마석 화로가 주민성의 부름에 답했다.
-육류 가열 모드로 전환됩니다.
“취익!”
주민성은 말없이 뒤로 물러나 뒷짐을 졌다.
-육류의 품질을 측정합니다.
-육류의 밀도를 측정합니다.
-육류의 선도를 측정합니다.
-육즙의 함량을 측정합니다.
……
화로는 불판에 올려진 크라노돈 고기를 계속해서 분석했다.
-적정 가열 온도가 확인되었습니다.
-특급 가열 모드의 잠금장치를 확인해 주십시오.
-잠금이 해제되어 있습니다.
그동안의 조치는 전부 지금을 위한 것.
주민성은 마석 화로의 성공을 자신했다.
“제르취. 물러서.”
“취! 취이! 악마의 사술!”
제르취는 마석 화로를 노골적으로 경계했다.
“뭔지는 몰라도 사악함이 느껴진다!”
그러는 와중에도 뒤로 물러나는 모습은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제르취. 이것도.”
“뭐, 뭐냐!”
“뒤집어써라.”
화로는 특급 가열을 예고했다.
이는 최소 S급 이상의 발화계 능력자가 뿜어대는 화력과 맞먹는 수준.
텐트를 뒤집어쓰지 않는다면, 크라노돈의 고기보다 먼저 완성되는 건 오크 고기이리라.
-가열 완료까지 5분. 5분.
-정제 산소가 배출됩니다.
-열기 관리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특급 가열이 시작됩니다.
안내 음성이 종료와 함께, 마석 화로가 작동했다.
화륵!
화로에서 뿜어지는 불은 아름다웠다.
푸른빛을 넘어 바다 빛을 자랑하는 불꽃은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크라노돈의 고기를 감싸고 있었다.
“취! 취! 재앙의 불!”
주민성은 호들갑 떠는 제르취를 무시하며 오직 고기만을 바라봤다.
치이이이!
크라노돈의 힘줄이 녹아내리고, 한없이 질겨 보이던 고기의 단면은 먹음직스러운 갈색빛으로 변했다.
“말도 안 돼! 취! 전설로만 내려오는 이야기였는데!”
제르취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는지 쉴 새 없이 눈을 비비며 화로를 바라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드 톱질을 경험해 본 주민성은 예전의 평범하던 일반인이 아니었다.
졸부 그 자체였다.
“고기엔 소금이 빠질 수 없지.”
인벤토리에서 나온 건 프랑스 정부에서 직접 관리할 정도로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 소금이었다.
“들어봤냐? 마석열 정제 소금이라고?”
“모, 모른다! 취!”
“후후.”
주민성은 텐트천으로 손을 감싼 채 마석 화로를 추가 조작했다.
-가열 중인 육류에 소금을 분사합니다.
-입자 보호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입자 침투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위이잉!
마석 화로는 단순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특급 화력에 소금이 증발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물론, 고기에 스며든 소금은 빈틈없는 최상의 맛을 끌어냈다.
“쿠어어…….”
불향과 육향이 뒤섞여 식욕을 마구 자극했다.
이는 이미 죽은 제르취의 영혼마저 쏙 빼놓을 정도.
“내가 각오하랬지?”
마석 화로의 사용은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다시 먹게 될 궁극의 포쁠 한우를 맛보기 위함이었다.
“방값도 깎아 줬겠다. 이거 큰맘 먹고 꺼낸 거야.”
“허억…….”
방값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급히 정신을 차린 제르취는 막중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대체…….”
대가의 가치를 후려칠 필요는 없었다.
부담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가치는 끝을 모르고 치솟을 테니까.
“후후후…….”
제르취가 낙담하는 사이, 친절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특급 가열이 완료되었습니다.
치이이이!
열기 보호막이 해제되고, 뿌연 연기 속에서 크라노돈의 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취! 취! 취!”
오크 특유의 기차 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흥분할 때 내는 소리라도 되는 것처럼.
“이 정도면 먹을 수 있겠지?”
“다, 당연하다! 취!”
한껏 무게 잡던 제르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주민성에게 동화되었는지 눈빛엔 탐욕이 가득했다.
“이, 이것만 있으면 일족의 부흥이……!”
제르취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탁!
“에헤이. 아직 안 끝났어.”
“…….”
인벤토리에서 초진동 능력이 부여된 최고급 마석 나이프와 A급 관통력이 부여된 포크가 꺼내졌다.
“교양을 잊지 마라.”
“……알았다! 취!”
텐트를 몸에 감은 채 식탁에 앉은 것부터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를 지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교양이다……. 앗 뜨거!”
철퍽!
“……플레이팅까진 필요 없겠지. 고기는 많으니까.”
마무리 세팅은 간단하게 끝났다.
남은 것은 시식뿐.
“너 근데 먹을 수는 있지?”
“……이거라면 괜찮다.”
사아아!
주민성은 초진동 나이프를 활용해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냈다.
다음은 고기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차례.
“먼저 먹어 봐.”
“췻!”
제르취는 크라노돈의 고기를 조심스럽게 집어 입에 넣었다.
“쿠, 쿠워어…….”
“…….”
꿀꺽.
크라노돈 고기가 삼켜지는 순간.
제르취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존재 자체가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소멸당해도 여한이 없다……. 취…….”
누가 봐도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듯한 표정.
이젠 바뀐 말투에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야! 성불하지 마! 대가 안 치러?”
주민성은 급히 제르취의 멱살을 잡았다.
“취익?”
수차례 뺨을 치며 제르취의 정신을 돌려 놓은 주민성은 남아 있는 고기를 서둘러 입에 넣었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성불하려는 거야?”
마석 화로를 거친 크라노돈의 고기는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맛을 선사했다.
“…….”
감칠맛부터 식감, 적절한 간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심지어 포쁠 한우와 비교해도 될 정도.
“우와…….”
그렇게 감탄하며 고기를 삼키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포식자의 허기가 발동됩니다.]
[소화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피식자의 힘을 일부 포식합니다.]
[소화 완료까지 남은 시간 10분.]
“아, 포식도 새로 생겼었지.”
포식자의 허기는 오크 지휘권과 마찬가지로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특권이었다.
“일단 먹자.”
“나, 나는……. 취!”
“넌 성불 금지야.”
“나도 고기가 먹고 싶다! 취!”
“그러니까 초심을 잃지 말았어야지. 복수심은 대체 어디 간 거야?”
“나쁜 놈!”
“오케이. 먹어.”
“취익!”
10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눈앞의 고기를 정신없이 먹어치우면 그만이었으니까.
“과연 악마! 취잇! 이런 고기라면 우리 종족은……!”
“시끄러! 고기 더 썰어 와!”
“알겠다취!”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소화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피식자 크라노돈의 힘이 흡수됩니다.]
[신체 능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차원 지배종의 포식에 성공합니다.]
[알 수 없는 계약에 구속된 지배종입니다.]
[차원 지배종의 포식에 실패했습니다.]
“음?”
그동안 주민성을 괴롭혀 왔던 등급 페널티.
신체 능력 하락을 메꿀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체감은 잘 안 되는데? 그보다 포식 실패는 뭐지.”
실패라는 메시지에 잠시 낙담하기도 했지만, 유용한 정보 한 가지는 얻을 수 있었다.
차원 지배종.
이것은 크라노돈이 하위 차원의 강자임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단서였다.
“얘보다 더 센 놈은 없다 이거지? 근데 얘도 계약이 문제네. 찝찝하게.”
주민성, 그리고 송몽룡을 비롯한 판자촌 능력자들까지.
이들은 하나같이 거지같은 계약을 해 버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것도 일단 기억해 두는 게 좋겠군.”
주민성은 이번에 떠오른 메시지를 메모장에 옮겨 적곤 제르취를 기다렸다.
콰지지직!
“잉?”
콰지지직!
분명 제르취는 크라노돈의 시체를 한 번에 썰어내긴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하지만 썰어내는 행동에서 작은 차이가 느껴졌다.
“거친 식감! 취!”
콰직!
이전의 도끼질이 날카로운 한 방이었다면.
“씹는 맛! 취!”
콰지직!
고기를 먹고 지능이라도 떨어졌는지 도끼질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영혼을 깨우는 맛! 취!”
콰지지직!
“저게 미쳐 버렸나…….”
제르취는 신나게 도끼질을 이어 갔다.
이것까진 괜찮다.
오크의 식문화를 접할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도끼를 쥐는 법이었다.
콰지지지!
“전설의 고기! 취!”
“…….”
제르취는 도끼를 반대로 세운 채 휘둘렀다.
날이 없는 부분으로.
“무슨 역날 도끼도 아니고. 참나.”
역날 검은 들어 봤어도, 역날 도끼는 처음이었다.
아니, 역날 도끼라는 말도 부끄러웠다.
저건 몽둥이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종족의 부흥! 취!”
우지직!
가공할 정도의 괴력.
크라노돈의 시체는 몽둥이질만으로 신나게 뜯겨 나가고 있었다.
“더 세진 건가? 하긴. 나도 강해지는데 몬스터라고 다를까.”
도끼질을 가장한 몽둥이질은 꽤 볼만했다.
‘그냥 고기를 챙겨 갈까?’
고기의 더욱 좋은 활용법이 떠올랐다.
제르취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것만 있으면! 취!”
쩌적!
“수많은 전사가! 취!”
쩌억!
“탄생한다! 취!”
쿵!
제르취가 뜯어낸 것은 크라노돈의 거대한 꼬리.
“쿠워…….”
어느 정도 해체가 끝났는지 제르취는 주민성에게 고깃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받아라. 고기.”
“…….”
주민성은 말없이 고기를 받아들었다.
뜯긴 고기는 그대로 텐트에 담고, 피는 물통에 받았다.
피 같은 경우엔 두 종류로 나눴다.
물통을 텐트로 감싸 건물 부가효과를 적용한 것, 그리고 부가효과를 적용하지 않고 수납하는 두 종류의 방식이었다.
뼈도 마찬가지.
그렇게 주민성은 크라노돈의 모든 부산물을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뭐 하냐.”
“취췻?”
아직 수납하지 않은 부위가 있었다.
하지만 제르취는 주민성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말했다.
“꼬리 고기. 가지고 싶은데. 취.”
“누구 맘대로?”
“췩?”
제르취의 의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크라노돈의 꼬리엔 남다른 효능이 있었을 테니까.
종족의 부흥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저거 다 내 거야. 알지?”
“……취익.”
주민성 역시 크라노돈 꼬리에 관심이 있었다.
정력에 좋아 보이는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정력에 좋은 음식은 여기서도 귀하겠지.’
뭐가 되었든 수요가 크면 돈이 된다.
주민성은 이 사실을 항상 상기하고 있었다.
“크, 크라노돈은 나도 함께 잡았다!”
제르취는 어울리지 않게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이것으로 크라노돈 꼬리의 가치는 예상보다 더욱 크게 잡아도 되는 셈.
“꼬리가 갖고 싶어?”
“그래!”
“그럼 대가를 치러야겠지.”
“취익!”
크라노돈의 꼬리가 오크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면 충분했다.
처음부터 크라노돈 고기 일부는 오크에게 넘길 생각이었으니까.
‘소유권만 넘겨받는다면야 뭔들.’
주민성에겐 크라노돈의 고기보다 움집들이 더욱 가치 있었다.
오크 마을의 움집 등급은 무려 고대급이니까.
하지만 명상소를 제외한 건물의 소유권은 다른 오크들에게 있었다.
“고기는 줄게.”
“저, 정말인가? 취?”
오크 지휘권이든, 크라노돈의 고기든 나쁜 선택지는 없었다.
지휘권은 이용료 청구와 더불어 오크를 노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며, 크라노돈의 고기는 오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가능성이 존재했다.
주민성은 뭐든지 이용할 계획이었다.
“대신, 너희는 날 위해 일해야 해.”
“……악마와 똑같은 말을 하는구나.”
“지구에선 그게 보통이야. 받은 만큼은 일하는 게 원칙이지. 밥값은 하자.”
“방값과 비슷한 말이군…….”
제르취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 없는 논쟁임을 깨달았다.
“어차피 내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잔뜩 있구나……. 취이.”
“아시는구나.”
이미 제르취는 호구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고기 맛에 취해 성불까지 시도했을 정도.
“……대가를 치르겠다.”
“그래. 꼬리는 직접 끌고 와.”
“그러지.”
주민성은 부푼 마음으로 앞장섰다.
오크 마을에서의 정산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