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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고기. (1) (58/250)


무기는 고기. (1)
2022.01.28.


제르취가 하는 말은 황당무계한 소리가 아니었다.

뚜렷한 공격성을, 그것도 주민성 자신에게 보인다는 것은 방어 체계가 깨졌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용료가 청구된 상태일 텐데?’

이용료 청구 능력은 언제나 필승카드였다.

그래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당황은 당황일 뿐.

“어떻게 죽이려고?”

건물주 능력의 근간은 지키는 것에 있었다.

임시 권한이 있고, 투혼 갑옷이 있다.

사전 요격을 위한 인벤토리 컨트롤 역시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하며 익숙해진 상황.

“지금의 나라면 가능하다.”

“……그래?”

주민성은 이용료 청구에 허점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제르취와의 전투를 시뮬레이션했다.

‘물리적인 공격은 문제없어. 임시 권한마저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이라면…….’

임시 권한의 약점은 존재했다.

크라노돈의 경우처럼 호흡할 수 없어지는 상황이 대표적이었다.

고블린 꽃 역시 같은 맥락.

게다가 제르취가 언데드, 또는 영혼이라는 전제를 덧붙이면 새로운 공격 수단도 예상할 수 있었다.

‘신체가 아닌 영혼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겪어 본 적도, 본 적도 없는 가상의 공격.

그저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

허황된 상상이 아니었다.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이곳, 하위 차원부터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주민성은 투혼 갑옷을 조작해 확실한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철컥!

투혼 갑옷이 형태를 바꿨다.

이 형태는 풀 플레이트 아머도, 고슴도치도 아니었다.

쿠쿵!

쿠쿠쿵!

삼각대가 펼쳐져 땅을 받치는, 갑옷과는 거리가 먼 뼈대만 남은 피라미드 형태였다.

‘이렇게도 되네.’

삼각대가 적절하게 중심을 잡아 준 덕분에 주민성은 허공에 떠 있었다.

“오지 마. 이용료만 내.”

“…….”

철저한 거리 유지.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낸, 검증된 안전 수칙이었다.

“…….”

이용료 인벤토리는 제르취 곁에 띄워져 있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거기서 가만히. 이용료만 내.”

제르취는 답하지 않았다.

저벅.

대신 한 걸음으로 응수했다.

“에헤이! 이러면 돈 안 받는다? 장사 안 하는 꼴 보고 싶어?”

“…….”

평범한 한 걸음일 뿐이었지만, 이는 중요한 단서였다.

제르취의 공격 수단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 죽일 수단은 근접 공격인가. 가까이 가면 안 되겠군.’

쿠궁!

제르취와 주민성 사이에 건물 잔해로 된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오지마.”

제르취를 죽일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예를 들면 장벽 안에 함정을 설치한다든지.

“말 안 듣지? 그럼 나도 막 나가.”

제르취는 죽어도 부활한다.

심지어 복수심을 품으면 더욱 강해진다.

때문에 주민성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든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다.

“…….”

제르취는 갈등했다.

움집에 남아 있는 오크들이 생각나는지 머뭇거리는 낌새가 아주 잘 보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건 제르취였다.

[명상소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

다행히 제르취의 선택은 이용료 납부.

주민성은 긴장한 표정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을 주시했다.

“쿠워어…….”

제르취는 나지막이 숨을 뱉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뒤.

“쿠헉……!”

제르취가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크라노돈의 피였다.

“어, 어째서……!”

제르취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피를 토하는 이유는 주민성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급한 불이 꺼졌다는 사실만이 밝혀졌을 뿐.

[건물 이용자는 건물주를 적대할 수 없습니다.]

이용료가 납부됨과 동시에 건물 이용자에 대한 제약이 복구됐다.

이용료 청구 상태와 이용료 납부 상태엔 엄연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건물 이용자는 전과 다르게 부가효과를 확실하게 받는다는 점.

그리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따지면 머리 아파져.”

건물주에 대한 적대가 확실하게 차단되는 점이었다.

‘하루 정도는 버텨 주겠지.’

건물 이용 시간은 24시간.

이는 곧 제르취에게 공격받지 않는 시간이기도 했다.

“제르취. 우리 좀 쉽게 가면 안 되냐?”

“……너는 나의 원수, 그리고 일족의 원수다.”

제르취는 완고했다.

그래서 알기도 쉬웠다.

24시간 뒤, 건물 이용자에서 벗어난 제르취가 이어갈 행동에 대해.

‘건물 이용 기간 끝나면 또 공격할 것 같은데……. 크라노돈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고.’

제르취에게 받은 조각 뼈는 총 73개.

그중 목걸이에 있던 조각 뼈를 제외한다면, 크라노돈 한 마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조각 뼈는 72개로 봐야 했다.

‘이용료 재탕도 힘들겠지.’

여태 장기 이용자를 만들어온 꼼수는 사용할 수 없었다.

제르취는 절대 을도 아니었을뿐더러 이용료 납부에 협조한 이유도 결국은 복수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놈은 제약이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던가.

제르취는 그 말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었다.

‘다른 크라노돈이 쉽게 보일 리도 없고.’

크라노돈은 누가 봐도 생태계를 파괴하는 몬스터.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툭하면 괴성을 내지르는 습성도 다른 크라노돈을 물리기 위함이었으리라.

결국, 여기서 주민성이 해야 할 건 완급 조절이었다.

이용할 건 이용하며 지금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제르취가 해 올 미지의 공격에 대해 완벽한 대책을 마련할 것.

이것만 지켜진다면 하위 차원에서 주민성을 위협하는 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보다…….’

제르취에게만 신경을 쏟기엔 거슬리는 것 한 가지가 있었다.

눈앞의 크라노돈 시체였다.

주민성은 터덜터덜 걸으며 크라노돈의 시체 앞에 섰다.

“이거 어디다 써?”

오크들이 쌓아 온 문명 수준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크라노돈의 조각 뼈는 귀중한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일 터.

이는 크라노돈을 사냥에 수많은 오크의 희생이 따른다는 점이 증명했다.

“다른 부위도 용도는 있겠지?”

단순한 조각 뼈조차 고대 등급 건물 이용료였다.

그리고 크라노돈의 피는 제르취에게 기묘한 변화를 안겨주고 이용료 청구의 페널티를 상쇄시킨다.

“너에게 손해는 없을 거다. 다른 오크도 마찬가지야.”

제르취는 말없이 주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르취. 우리 이제 말 통하잖아. 얘기 좀 하자.”

“…….”

주민성은 제르취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원하는 거 있어? 말해 봐. 나 죽이는 거 말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

제르취가 귀를 쫑긋거린 것.

주민성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시체 조금 나눠 줄까? 아니면 조각 뼈? 조각 뼈라면 전부 돌려줄 수 있는데.”

“……필요 없다.”

“그럼 뭔데. 말해 봐.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준다니까?”

제르취는 의외의 답변을 해 왔다.

“악마의 제안은 언제나 달콤하다. 하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

“대가?”

“…….”

제르취는 입을 꾹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뭔가 맺힌 게 많았던 모양.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당연히 대가는 치러야지.”

“그래서 네가 악마라는 거다.”

현대인의 견해와 원시인 오크의 견해가 대립했다.

주민성은 이 사실에 희망을 느꼈다.

‘여기서 설득만 성공하면……!’

설득의 성공은 곧 대화 주도권을 가져올 기회.

이 점에서 주민성은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야. 받아.”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제르취에게 던졌다.

찰그락!

제르취가 목걸이를 받아드는 순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모, 목걸이! 대체 무슨 생각이냐!”

“어라?”

처음은 기분 탓일 가능성이 있어 침묵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뭐냐! 악마! 이미 준 물건이잖나!”

“얼씨구?”

이번엔 확실했다.

“너 말투가…….”

“그럴 수밖에. 이 목걸이는 선조의 지혜가 담긴 신물이니까.”

변한 건 제르취의 말투였다.

무뚝뚝하게 ‘다’로만 끝나던 말투가 사라졌음에 주민성은 내심 기뻐했다.

심지어 감정도 더욱 풍부하게 전달됐다.

“그보다 이 목걸이는 이용료로 냈을 텐데?”

“대충 방값 깎아 준 셈 쳐.”

“……그게 대가인가? 방값은 또 뭐지?”

소통이 가능하다 해도 오크는 오크.

제르취는 서비스의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아. 잘 모르는구나?”

여기서 주민성은 냄새를 맡았다.

아주 진한 호구의 냄새를.

“목걸이. 중요한 물건 맞지?”

“……그래.”

혹시라도 번역될까, 주민성은 있는 힘껏 혀를 굴리며 영어를 발음했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 너는 모를 거야.”

“무슨 뜻이지?”

“나는 너에게 중요한 것을 줬으니, 너도 중요한 것을 줘야 한다는 뜻이지.”

여기까진 어느 정도 맞는 얘기였다.

물론 인간의 기준에서.

“완전한 악마의 논리구나! 정체를 드러내라!”

“나 악마 아니고 인간이야. 그보다 우린 더욱 건설적인 얘기를 해야 해. 너는 목걸이를 받았으니까.”

목걸이의 가치가 만능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목걸이를 준 사람은 나니까, 내가 먼저 퀘스쳔할게. 크라노돈의 시체에 관해 설명해 줘. 참고로 거부권은 없다.”

“이, 이런……. 그렇다면 이 목걸이는 됐다.”

“어? 이거 환불이야? 그러면 너는 목걸이 두 개를 돌려줘야 하는데? 우리 규칙이거든.”

존재하지도 않던 끔찍한 규칙이 되살아나고.

“거기다 10년간 날 위해 일해야 해. 환불 할래?”

“마,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나도 방값을 깎아 주겠다! 목걸이를 받아라!”

“응? 너 집 없잖아. 건물주도 아니고.”

“…….”

“나는 건물주거든. 세상에 있는 건물은 다 내꺼야. 너도 봤잖아? 오크의 건물도 예외는 아니라는 거.”

낙담하고, 당황하고, 분노하고.

제르취의 표정이 쉴 새 없이 변했다.

“나는 재앙을 피해 새로운 재앙을 끌고 왔는가…….”

“걱정하지 마. 내가 계산 하나는 확실하거든.”

주민성은 최대한 믿음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기랄. 끔찍하군.”

“…….”

제르취의 마지막 표정은 후회, 그리고 체념이었다.

“……대가를 치르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그에 대한 대가도 함께 치르겠다.”

생각보다 심각한 반응에 주민성은 표정을 숨겼다.

“새로운 대가도 모두 치르겠다. 남은 아이들만은 살려다오. 우리 종족의 마지막 희망이다.”

“…….”

자신의 복수심을 죽이고, 부탁을 해 오는 모습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무슨 종족의 희망까지 나와. 게이트에 오크 엄청 많더만.”

“게이트라면…….”

“우리가 처음 만난 곳.”

“침공 차원문인가…….”

단어는 달랐지만, 뜻은 같았다.

여기서 주민성은 제르취와 입장이 다름을 느꼈다.

“그래. 너희는 게이트를 통해 침공했지.”

“우리가 살려면, 너희가 죽어야 한다.”

“응? 왜?”

“그것이 우리 종족이 받아야 할 대가니까.”

“…….”

이야기는 급격한 속도로 진지해졌다.

“이곳에 전사라 부를 수 있는 오크는 단 하나도 없다. 전부 늙거나 어린 오크뿐.”

“무슨 게이트가 새로운 터전이야? 거기보단 여기가 훨씬 나아 보이는데?”

실제로 이 땅은 황량했다.

그렇다고 농사를 아예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은 아니었다.

때문에 게이트보단 이곳이 낫다는 게 주민성의 생각이었다.

“크라노돈도 그래. 너 아까 저놈 먹었잖아.”

“…….”

“먹은 것이 아니다. 받아들인 것이지.”

“하여튼. 식량은 충분히 될 텐데?”

제르취는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절대 쉽게 먹을 수 없다. 크라노돈의 고기를 먹기 위해선 1년간 불을 지펴야 하고, 썩지 않는 주술을 걸어야 하니까.”

“음?”

크라노돈의 고기는 대충 봐도 질겨 보였다.

하지만 먹지 못할 수준도 아니었다.

“제르취. 저 고기 조금만 잘라 줄래?”

“설마 그건 대가인가?”

“응. 대가 중 하나야.”

“하나. 기억하겠다.”

제르취는 그대로 등을 돌려 크라노돈의 고기를 썰어냈다.

그것도 한 번에.

‘목걸이 때문인가? 힘도 훨씬 세진 것 같네.’

제르취의 변화를 분석하는 사이, 고깃덩이가 주민성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FFF급은 반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로.

통!

임시 권한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목이 꺾여 즉사할 정도의 힘이었다.

“뭐냐. 너희 종족은 얼굴로 고기를 받나? 신기하군.”

“아오.”

주민성은 화를 삭이며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각오해라.”

인벤토리에서 나온 물건은 최고급 마석 화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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