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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세상 레이드 (2) (57/250)

저세상 레이드 (2)2022.01.27.

어느덧 제르취의 죽음은 300회를 넘겼다. “크라아아아!” “쿠워어어!” 카가가가각! 이제 제르취의 도끼는 크라노돈의 날카로운 발톱마저 막아내고, 도리어 밀어내는 경지에 도달했다. “와.” 이젠 확신이 생겼다. 제르취가 강해졌다는 사실에. 쿠구구구! 힘, 속도. 무엇하나 뒤처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S급 신체 강화 능력자 수준은 되겠는데?” 제르취가 선보이는 힘의 원천은 검은 기운에 있었다. 분노할수록, 복수심이 커질수록 넘실대는 이 기운은 제르취를 집어삼킨 상태였다. “정말 특이한 차원이군.” 호로록! 주민성은 보온병에 담긴 십전대보탕을 들이켜고 뜨거운 숨을 뱉으며 고민했다. “후우. 저 싸움의 승패는 곧 갈릴 테고. 문제는 제르취인데.” 제르취는 싸움에 완전히 몰입했다. 주민성에 대한 복수마저 잊은 것 마냥. 이것은 부활해도 마찬가지. 주민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저걸 어떻게 돌려놓지?” 이용료 납부 확률 1%. 메시지는 언제나 정확했다. 주민성은 이용료 납부가 실패할 경우를 떠올렸다. “조각 뼈가 박살 나거나. 제르취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흐음.” 고민은 끝이 없었다. 1%는 주민성이 죽을 확률에 가까운 수치였으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군.” 제르취가 이성을 잃는 원인은 검은 기운의 증폭. 이유는 모르지만, 이 기운은 제르취가 죽을수록 강해진다. 때문에 주민성의 사고는 반대로 흘러갔다. “과하게 살려 보자.” 다행히 주민성의 능력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쪽으로 탁월한 효과를 지녔다. 그뿐이랴. 수면 장애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비법도 가졌다. “후후후.” 주민성의 오른손엔 고블린 꽃이 들려있었다. “막타쯤은 내가 먹어도 괜찮겠지.” 주민성은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된 것 마냥 고블린 꽃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벼랑에서 추락했다. “크롸아아아!” “쿠워어어!” 크라노돈과 제르취는 주민성이 추락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광! 쿵! 자세가 이상해 착지엔 실패했지만, 피해는 없었다. 주민성은 그대로 크라노돈에게 향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네.” “크롹?” 크라노돈이 주민성을 포착했다. “얘들아. 싸움은 나쁜 거야.” 주민성은 극도로 긍정적인 화법을 사용했다. 검은 기운을 조금이라도 억제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한숨 자자?” 크라노돈이 대답은 깔끔했다. 쾅! 거대한 공룡 발이 자신을 찍어 누르는 건 제법 신기한 경험이었다. 푸스스슥! 주민성은 흙을 털어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돼요. 안 돼.” 고블린 꽃은 이미 주민성의 품속에 있었다. “얘는 면역 아니란 말이야.” 주민성의 목표는 제르취. 크라노돈이 아니었다. “이러면 나빠요. 벌을 줘야겠어요.” 근처에 최선아라도 있었다면 극도의 자괴감을 느꼈겠지만, 하위 차원에 사람이라곤 오직 주민성뿐. 부끄러움이 사라진 인간은 위대했다. “입 벌려. 미세먼지 들어간다.” “크롸아아아아!” 인간은 도구를 사용했다. 심지어 그 도구를 응용하기까지. 푸스스스스스! 인벤토리는 크라노돈의 기관지에서 절묘하게 미세먼지를 뿜어냈다. 중간중간 호흡을 방해할 건물 잔해는 덤. “크롹! 칵!” 미세먼지에 당황한 크라노돈의 신체가 기울었다. 그리고 제르취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쿠워어어어!” 푸걱! 새까만 도끼가 크라노돈의 몸에 큰 상처를 남겼다. 허나 이것만으론 결정적인 타격이 될 수 없었다. “오. 좋은데?” 인간은 상대의 약점을 공략할 줄도 알았다. 인벤토리는 어느새 크라노돈의 상처 위에 떠 있었다. “이것도 해 보고 싶었단 말이지.” 크라노돈의 상처 위에 소금 포대가 뿌려졌다. 파스스스! “크콱! 카악! 카아악!” 인간은 잔인함을 타고난 종족이었다. 지구의 패자가 인간인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인간은 연구를 반복했다. 개중엔 고통에 관한 연구도 포함되어 있다. 이 연구 결과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상식으로 정착했다. “카아아악!” 이쯤 되면 잠을 자라는 건지 아프라는 건지 구분도 힘든 수준. 안타깝게도 크라노돈은 오크와 달리 소통 가능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프지? 그러니까 죽어 버리렴.” 부끄러움이 사라진 주민성은 거침없었다. 유명 능력자의 유행어도 아무렇지 않게 응용할 정도로. “크가각!” 푸걱! 제르취의 도끼질 역시 속도를 더해나갔다. 크라노돈의 모든 공격이 주민성에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외형 변경.’ 어느새 투혼 갑옷의 형태는 고슴도치처럼 변해 있었다. 푸욱! 원시 괴물은 인간의 응용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크각! 크가각! 크르륵…!” 쿠구궁! 크라노돈은 결국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이후는 도끼 찍는 소리의 연속. “쿠워우! 쿼우!” 푸걱! 푸걱! 제르취는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크라노돈을 향해 정신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여기서 주민성이 해야 할 건 하나뿐. “너 안 자니?” “쿠워!” 고블린 꽃은 조금만 시각을 달리해도 방어력을 무시하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생물에겐 수면욕이 존재하니까. “쿠워어어!” 크라노돈은 잠들었지만, 제르취에겐 고블린 꽃의 효력이 없었다. 생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안 먹히네.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했지.” 여전히 제르취는 크라노돈의 팔뚝을 찍고 있었다. 결정타는 안겨 주지 못하는 상황. “그런다고 막타 안 바뀐다.” “쿠워!” 주민성은 제르취의 통제 방법을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다음 작전 카드를 꺼냈다. “참 별짓을 다 한다. 나도.” 주민성이 꺼내든 건 휴대용 샤워기였다. 촤아아아! 거대한 물통에 담겨 있는 건 평범한 물. 이런 평범한 물에도 주민성의 능력이 가미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라면 효과가 있겠지.” 건물 부가효과는 물통에도 적용됐다. 무려 수십 종류의 정화 효과를 거친 물은 성수 그 자체. “너도 일단은 죽은 몬스터잖아?” 국내의 수많은 게이트 중엔 언데드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도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장소는 경북 칠곡의 가산산성 게이트. 게이트 등급은 D급이었다. “그 게이트는 노후를 위해 따로 공부 좀 했었거든.” 이 게이트엔 주민성이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었다. 투자만 한다면 최소 수익이 보장된다는 특징이었다. “원래는 각성 3년 차쯤 자립하고 가려던 게이트였는데…….” 촤아아아아! “쿠, 쿠워어어!” 언데드 몬스터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약점의 정체는 정화수. 정화수를 맞은 언데드 몬스터는 마석만 남기고 순식간에 녹아 버리기 때문에 가산산성 게이트는 상당한 인기를 자랑한다. 입장료까지 있을 정도로. 게다가 지역의 대표 길드인 고바 길드에 낼 상납금은 덤. 촤아아아! “쿠어어어어!” “오. 효과 좋네.” 거기에 다소 비싸지만,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사기와 소모품인 순도 99.9999% 정화수만 갖추면 사냥 준비는 그것으로 끝. 언데드 몬스터가 출몰하는 게이트는 능력자 등급과 상관없이 수익이 보장되는 귀족 사냥터로 유명했다. “물론 이것도 유통하면 불법이겠지. 여기선 내가 법이지만.” 그리고 깨끗한 물은 언데드에게 치명타. 지금의 방법은 조잡했지만, 정화수의 성능만은 확실했다. 촤아아아아아! 제르취 세척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물 한 통이 고갈될 때까지. “음. 좋네.” 결과는 엄청났다. 일렁이던 검은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심지어 제르취는 정화수에 증발까지 해 버린 상태. 목소리는 주민성 등 뒤에서 들렸다. “……너는 정말 악마다.” “왔어?” 정화수의 타격이 컸는지 제르취는 휘청이고 있었다. “좀 쉬고 있어. 크라노돈 아직 안 죽었으니까.” “놈의 목을 자르겠다.” “안 돼. 가만히 있어. 내가 죽일 거니까.” “…….” 다행히 제르취는 주민성의 의견을 따랐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지만. “넌 나를 기만하고 있다.” “응? 호로록!” 크라노돈의 숨통을 끊기는커녕,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밥은 먹어야지. 임마.” “너는 직접 죽인다고 말했다.” “그래. 알아서 곧 죽겠지. 그게 내가 죽이는 거야.” “…….” 주민성이 보유한 능력중 가장 강력한 능력이라면 역시 건물 폭발. 하지만 이것은 변수를 가져올 능력이었다. “내가 때리면 조각 뼈가 남아날 거라고 생각하냐? 너 나한테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 안 나?” “……기억난다. 넌 악마였다.” 제르취의 정신을 돌려놓는 것으로 조각 뼈를 얻을 확률은 잠정 80% 이상. 여기서 쓸데없이 화력을 자랑할 필요까진 없었다. “건물주는 조용히 월세를 기다리는 법.”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호로로록! 주민성은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했다. 메시지가 쏟아진 건, 라면 냄비가 비워질 때쯤이었다. [하위 차원의 포식자 크라노돈을 토벌했습니다.] [포식자의 허기를 일부 인계받습니다.] [소화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후후후후.” 제르취를 토벌하면서 깨달은 것이 한가지 있었다. 보스급 몬스터를 토벌하면 건물주 능력이 반응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크라노돈은 누가 봐도 보스급 몬스터였다. “바로 이거지.” “악마놈. 미쳤다.” “이용료나 내. 얘 죽었으니까.” “……알겠다. 약속은 지킨다.” 푹! 푹! 제르취가 크라노돈의 조각 뼈를 채취하는 사이, 주민성은 새로 인계받은 능력에 대해 고민했다. ‘근데 이거 좋은 건가?’ 포식자의 허기는 오크 종족의 지휘권 같은 애매한 혜택이었다. ‘그래도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쓸모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삶의 질을 높여 줄 혜택이었기 때문이다. ‘음식 맛에 더 신경 써야겠군.’ 오랜 시간 동안 즐기는 미식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푸욱! 푸욱! “제르취. 아직이야?” “……아직이다.” 크라노돈의 조각 뼈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살점을 파헤치는 수준이었던 것. “제르취. 혼잣말 좀 할게.” “…….” 무언의 긍정을 확인받은 주민성은 그대로 건물 탐색 능력을 사용했다. “건물 탐색.” [건물을 탐색합니다.] [조건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하위 차원에서.” [하위 차원 내의 건물을 탐색합니다.] “전설 등급 이상의 건물.” [전설 등급 이상의 건물을 탐색합니다.] 이번 옵션은 상당히 심플했다. 건물 폭발이라는 이동 수단이 있는 이상, 주민성은 하위 차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여기서 언제 빠져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챙길 수 있는 이득은 전부 챙겨야겠지.’ 유물의 부작용으로 오게 된 하위 차원은 기연으로도 작용했다. 이곳의 유일한 인간은 주민성 혼자였으니까. ‘독점 찬스를 놓칠 순 없지.’ 하위 차원에 존재하는 보스급 몬스터부터 건물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차지하는 건, 오직 주민성만이 가진 기회였다. “끝.” [탐색을 시작합니다.] 지이잉! [탐색 완료까지 24시간 남았습니다.] “……하루인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마침 주민성에겐 더 알아볼 것이 존재했다. ‘오크 마을부터 알아봐야겠군.’ 움집의 오크들은 크라노돈을 겁내고 있었다. 주민성은 자신이 크라노돈을 토벌했음을 알릴 생각이었다. ‘말은 통하니까.’ 다음은 간단하다. 지상으로 올라온 오크들에게서 차원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될 테니까. 거기에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을 방법까지 알아내면 금상첨화. “후후후…….” 움집은 고대 등급이 보장된 건물. 오크의 거주권을 유지시키고 소유권만 넘겨받는다면 그야말로 최선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해야 할 게 산더미군.” 그 외에도 다크울프를 찾는다거나, 최고 등급인 신화급 건물까지 발견한다면 더욱 바빠지리라. 그렇게 행복회로를 태우는 사이, 제르취는 주민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났다.” “오. 그럼….” “…….” “…….” 주민성은 이용료를 받으려던 행동을 멈췄다. 제르취의 분위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야. 왜 그래.” “이용료. 낸다.” 제르취의 손에는 수십 개의 조각 뼈가 들려있었다. 흔쾌히 받아들여야 할 이용료였다. 하지만 제르취의 분위기가 너무나 살벌했다. 레이드 당시와 흡사한 수준. “이용료. 낸다.” “…….” 제르취의 입가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용료. 낸다.” “……너. 설마 마셨냐?” 제르취의 몸에선 붉은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용료 낸다. 다음은 악마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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