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함정 (2) (52/250)

함정 (2)2022.01.22.

“뭐 해! 빨리 안 오고!”

주민성은 차 안에서 신우빈을 살폈다.

‘위협당한 흔적은 없네.’

심지어 신우빈 뒤편엔 전속 호위도 멀쩡히 붙어 있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운전기사는 조금 안도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주민성은 방심하지 않았다.

가짜 인부를 직접 겪어 봤기 때문이다.

‘최면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는데.’

당시 최면에 걸렸던 능력자는 둘.

그리고 최면 능력의 한계는 알 수 없었다.

최소 두 명 이상의 능력자를 상대로 최면을 걸 수 있다는 사실만이 검증된 상황이었다.

“야! 뭐 해!”

차량의 문이 열리지 않자 신우빈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금만 더 지켜볼게요.”

안타깝게도 주민성 일행 중엔 탐색계 능력자가 없었다.

그리고 협회엔 수많은 계열의 능력자가 존재한다.

만약 저격계 능력자 한 명만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어도 저항은 불가능.

“민성 씨. 제가 먼저 나가 볼까요? 저 빠르잖아요.”

“아뇨. 위험해요.”

지금의 광경은 위화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마중을 명령했으면 모를까, 신우빈이 직접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으니까.

심지어 다른 경비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맞다. 선아 씨. 망원경 있죠?”

“아, 네! 경비실 안이라도 볼까요?”

“예.”

특수 선팅 덕분에 차량 내부는 보이지 않을 터.

덕분에 최선아는 맘 편히 조수석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놈들이 노리는 건 나겠지.’

이유는 모르지만, 괴롭힘의 규모는 처음부터 엄청났다.

언론에 박제하고 협회의 최고위 간부가 붙을 정도로.

지금 이 상황이 함정이라면, 상대로선 타겟을 최우선으로 식별하는 것이 우선.

지금은 모습을 감추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으으음…….”

“뭔가 보여요?”

“안에 누가 있긴 해요. 정장 바지에 남성 구두밖에 안 보이지만.”

“흠.”

신원이 분명하지 않은 남자가 경비실에 있다는 정보가 추가됐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했다.

정장 차림은 게이트 탐사에 적합한 복장이 아니지만, 신성쯤 되는 기업에 다니는 직원이라면 활동성까지 겸비한 고가의 정장을 입는 게 보통이니까.

물론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그 남자의 정체는 유물을 전달하고 안내해 줄 전문가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기사님. 유물 전달은 신우빈씨가 직접 합니까?”

“아뇨. 관리 부서가 따로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게 당할 가능성은요?”

“유물 관리팀은 자기 몸과 유물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능력자를 채용합니다.”

이건 꽤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그럼 S급은 되겠네요?”

“예. 최소가 S급으로, 해외에서 발견된 유물을 운송하는 관리팀장은 SSS급 능력자입니다.”

“와우……. 그 사람이 이곳에 온 건가요?”

“……아닙니다. 이번에 주민성 님이 받게 되실 유물은 200억대의 물품으로 S급이 전담합니다. 또한, 유물의 가격이 수천억대가 아닌 이상 팀장이 전담할 일은 없습니다.”

SSS급 능력자는 유명 길드에 소속되거나 길드의 대표로 활동하기 때문에 채용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버젓이 SSS급 능력자를 채용했다는 건, 신성의 자금력과 수완이 상상 그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신우빈 씨.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직접 나왔다라……. 혹시 경비실 안에 있는 사람이 유물 관리팀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예. 구두 바깥쪽에 신성 마크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선아 씨.”

“네!”

최선아는 곧장 망원경의 출력을 올려 구두를 자세히 살폈다.

“어! 있어요! 신성 마크! 엄청 작은데 이거 맞아요?”

“맞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탕탕탕!

“야! 주민성! 뭐 하는데!”

어느새 신우빈이 차량에 접근해 유리창을 마구 두드리고 있었다.

“문 안 열어? 막 나가는 거야? 어?”

쾅!

차량 뒷좌석에서 큰 충격음이 울렸다.

신우빈의 발차기가 작렬한 것이다.

심지어 차량 수리비라곤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터프한 발길질이었다.

그런 당당한 모습에 차량 내부는 혼란에 휩싸였다.

“진짜 별거 없는 건가?”

“그, 그런 것 같은데요…….”

이건 누군가에게 약점을 잡힌 태도가 아니었다.

신우빈 그 자체였다.

쾅쾅!

“야! 미친놈아! 이건 또 무슨 지랄인데! 언제까지 사람 세워둘 거냐고!”

“도, 도련님!”

어느새 차량 뒷좌석 문이 찌그러졌다.

급기야 전속 호위까지 신우빈을 말릴 정도.

“이건 문을 열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 그러게요…….”

주민성은 창문을 살짝 열고 신우빈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립시다. 사람이 왜 이렇게 급해?”

“뭐? 내가 친히 마중까지 나왔는데 그런 말이 나와?”

다시 창문을 닫은 주민성은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기사님. 방어 모드요.”

“……예?”

“크흠. 시간이 필요하니 능력 사용 부탁드립니다.”

“아, 그런 뜻이었군요.”

방어모드는 차량에 탑재된 기능이 아니었다.

운전기사의 능력이었다.

“야! 주민성!”

또다시 신우빈의 발차기가 작렬했다.

쿵!

이번엔 달랐다.

운전기사의 보호 능력에 의해 도리어 타격을 입은 건 신우빈이었다.

“아오!”

운전기사 역시 주민성처럼 창문을 빼꼼 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너……! 너어어!”

여기서 신우빈은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했다.

해고라느니 기타 등등의 폭언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뭔가 의아함을 느낄 만도 했지만, 주민성의 신경은 이미 텐트에 쏠려 있었다.

“민성 씨? 갑자기 무슨 텐트를?”

“에고. 자리가 좁네요. 조금만 비켜 주세요.”

“아? 네?”

차 안에서 꺼내진 텐트는 한 개가 아니었다.

무려 10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보유 건물 999개를 채우는 건데.’

판자촌 능력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주민성이 보유한 건물은 990개.

1000개째에서 다음 임시 권한이 발동될 확률이 유력했기에 일부러 조절한 수치였다.

‘정말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200억짜리 유물도 애들 장난은 아니야. 자축한다 치자.’

주민성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번 임시 권한을 받고 나면, 다음 임시 권한인 10000개의 건물 보유까지 너무나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시 권한은 언제나 정말 필요한 상황에 쓰이는 게 옳았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텐트 768이 추가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텐트 769가 추가됩니다.]

……

“선아 씨. 혹시 모르니까 더 감아요. 기사님도.”

“예? 아, 네!”

소유권이 확보된 텐트는 그대로 구겨져 최선아와 운전 기사에게 넘겨졌다.

‘진짜 별일 아니기만 해 봐. 전부 갚아 줄 테다.’

[보유 건물 목록에 텐트 776이 추가됩니다.]

어느새 보유 건물 목록은 999개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1000번째 건물 보유를 앞둔 상황.

그 와중에도 신우빈은 전속 호위와 한창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내 핸드폰 어딨어! 폭격 명령이라도 해야지 원!”

“도련님! 안 됩니다! 참으세요!”

“으아아아! 주민성!”

세계 최고이자 최강의 대기업, 신성의 후계자라고 보기엔 굉장히 경박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뭔가 다급해 보이는 느낌도 있었다.

그 모습에 주민성은 뭔가 평범한 상황이 아님을 확신했다.

‘확실하다. 저건 평소의 신우빈이 아니야.’

1000번째 건물이 될 텐트의 보유 준비도 끝난 상황.

‘제발 이번 메시지는 간략하게 나왔으면 좋겠는데.’

신우빈이 저렇게 급해 보일 정도면, 정말 한시가 급한 일이라는 뜻.

이번 상황도 모든 메시지를 읽는 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핵심만 읽기로 마음먹은 주민성은 그대로 텐트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집중해서 메시지를 바라봤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텐트 777이 추가됩니다.]

행운의 번호까지 설계해 둔 상황.

주민성은 엄청난 임시 권한이 발동되길 희망했다.

‘제발 간략하고 강한 거로!’

[보유 건물 목록이 1000채가 되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강력한 권한이 부여됩니다.]

놀랍게도 이번 권한은 임시 권한이 아니었다.

주민성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메시지를 더욱 빠르게 읽어나갔다.

[고대 등급의 건물이 해금됩니다.]

[이제부터 고대 등급의 건물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전설 등급의 건물이 해금됩니다.]

[이제부터 전설 등급의 건물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신화 등급의 건물이 해금됩니다.]

[이제부터 전설 등급의 건물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응? 어라?”

여태까지 알고 있던 건물 등급은 상중하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 고대, 전설, 신화라는 생소한 등급이 밝혀졌다.

심지어 보유 권한까지 준단다.

이건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메시지가 알려 준 등급의 건물은 엄청난 효과를 안겨 줄 테니까.

그런데도 주민성은 웃을 수 없었다.

“더 줘…….”

“네? 민성 씨? 괜찮아요?”

“글씨 더 달라고……. 더 읽고 싶어…….”

메시지는 여기까지였다.

간략한 메시지라는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내가 잘못했어……. 제발 상세하고 꼼꼼하게…….”

“민성 씨! 정신 차려요!”

“아. 일단 기도부터 하자.”

주민성은 난데없이 기도를 시작했다.

“제발요……. 이건 아니지……. 제발 임시 권한도 줘…….”

“민성 씨! 정신 차리라고요! 아 쫌!”

찰싹!

주민성은 신우빈의 소란과 최선아의 따귀와 멱살잡이까지 인내하며 눈을 감고 기도에 매진했다.

“제발 제발 제발…….”

기도를 마친 주민성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오.”

“민성 씨?”

놀랍게도 메시지는 있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해 임시 권한이 주어집니다.]

[10분간 모든 타격에 면역됩니다.]

예전의 임시 권한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지만, 주민성은 이것으로 만족했다.

“초심을 되찾으라는 뜻인가.”

“네? 무슨 소리예요?”

“아니에요. 다녀올게요.”

벌컥!

“……성 이 미친……! 아오. 놀래라.”

“유물. 빨리.”

주민성의 칼답에 베였는지 신우빈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반격했다.

“경비실.”

“고고.”

“…….”

둘은 말없이 경비실에 도착했다.

경비실 안엔 운전기사가 말했던 유물 관리팀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유물 관리팀 이철수라고 합니다.”

주민성은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경비실부터 둘러봤다.

‘이상하게 깨끗하군.’

서류가 가득 차 있던 서류함은 텅텅 비어 있었고, 남은 건 컴퓨터 몇 대와 의자뿐이었다.

“유물. 바로 받으면 됩니까?”

“예? 아, 그렇습니다.”

주민성은 그대로 신우빈을 바라봤다.

“빨리 입고 나갔다 와. 정리 끝나면 보고하고.”

나갔다 와.

보고하고.

신우빈의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확실한 건, 경비실 밖에 제3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뜻.

그리고 주민성에게 허용된 시간은 10분이 전부였다.

“유물 주십시오.”

“어라?”

이철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신우빈을 쳐다봤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눈빛뿐이었다.

“크흠! 여기 유물입니다.”

유물은 방어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지금은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제3자가 누구인지, 10분 안에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인지가 중요했다.

“바로 들고 갈게요.”

“아, 예!”

주민성은 그대로 유물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물은 나가면서 착용하지 뭐.’

유물은 유물.

방어구의 형태라면 방어구로 기능할 것이 확실하다.

심지어 임시 권한이 발동된 지금이라면 방어구조차 무의미한 상황.

주민성은 그대로 경비실 문을 박찼다.

퉁!

“음?”

주민성은 갑자기 간지러워진 이마를 긁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어? 안 통하네?”

누군가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다. 너 진짜 믿는 구석이 있긴 하구나?”

게이트 입구, 정확히는 찻길 근처에서 몇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다. 유명인. 황태범이라고 한다.”

황태범이란 이름은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SS급 폭발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협회 간부급.

“와. 이게 몬스터 다 터뜨린다는 내폭이구나.”

“그래. 너는 회피 능력자였구나? 신기하네. 건물주라던데.”

투퉁!

퉁!

간지러운 기분의 정체는 황태범의 능력.

임시 권한이 없었다면 주민성의 삶은 지금이 마지막이었을 게 분명했다.

“건물주 맞아. 건물주한테 맞아는 봤어?”

“어라?”

주민성은 반쯤 걸친 유물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인벤토리에서 텐트포를 꺼냈다.

“이제 내 차례네.”

“어어? 뭐야! 왜 안 터져!”

그렇게 유물의 착용이 끝난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7분]

[투혼 갑옷과 제르취의 영혼석이 연동됩니다.]

[하위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https://novel-phinf.pstatic.net/20211129_217/novel_1638163815353ddQtj_JPEG/fffEAB889%2BEAB1B4EBACBCECA3BC_650x855.jpg?type=w500_2g" al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