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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1) (51/250)

함정 (1)2022.01.21.

F급 게이트 경비실. 이곳에서의 근무는 다른 게이트 경비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연봉은 다른 경비원들과 같았지만, 받는 보너스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보너스는 신우빈을 보필하는 대가로 받는 금액이다. “…….” 경비원은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경비실에만 존재하는 세 가지 원칙 때문이다. 알아서. 조용히. 잘. 이것만 지켜도 통장에 꽂히는 액수가 어마어마했다. 경비원이 아닌 D급 능력자였다면 상상도 못 할 만큼. “왜 가만히 있어?” “도, 도련님!” 경비는 신우빈에게 명령을 받았다. 명령 내용은 눈앞의 방문자에 대한 대응. 이것은 신우빈이 정한 삼대 원칙에 맞게 수행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뭐 하나.” “그, 그게……!” 경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방문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협회 내부에선 상당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 그, 그, 그……!” “미친놈인가?” “얘 전에 봤을 땐 싹싹해서 좋았는데.” 방문자의 정체는 협회 간부. 심지어 방문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전원 간부로 구성된 협회의 최정예들이었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군.” “그러게 말이야. 저래야 정상인데.” 다행히 경비원은 정상의 범주에 속했다. 미친 듯이 떨고 있었으니까. 이것은 물론 간부들 기준. 신우빈의 기준은 이들과 달랐다. “야. 뭐 해. 방문자 기록해.” “아! 네!” 신우빈의 명령은 지극히 정석적이었다. 덕분에 경비원의 손은 뒤늦게나마 움직였다. 삼대 원칙에서 조금 벗어날 뻔했지만, 지금의 명령이라면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게이트 점검. 이 게이트는 당분간 임시 폐쇄다.” 게이트 점검. 다른 게이트에선 상당히 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등급에 맞지 않는 이레귤러가 등장했다는 뜻이니까. “입은 언제나 무겁게.” “예. 알겠습니다…….” “좋네.” 간부들의 시선은 신우빈에게 꽂혀있었다. 하지만 그뿐. 최고위 간부인 임진석조차 신우빈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데, 다른 간부라고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 줄은 제대로 섰다!’ 신우빈의 심드렁한 표정 덕분에 경비원은 힘을 낼 수 있었다. 협회 간부들만 게이트로 보내면 끝나는 일이니까. 알아서 조용히 잘. “즉시 게이트를 폐쇄하도록 하겠습니다!” 덜커덕! 덜컥! 경비원은 요란하게 물건을 나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바뀌길 바라며. “잠깐.” “예?” 협회 간부의 시선이 경비원에게 돌아갔다. “잠깐 나가 봐. 신우빈 씨와 할 얘기가 있으니.” 경비원은 망설였다. 원래라면 곧장 나가는 게 정답이지만, 눈앞의 간부는 지갑을 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투웅! “끅!” 털썩. 그것이 경비원의 마지막이었다. “눈치가 없어졌군.” SS급 능력자 황태범. 그는 임진석과 달리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도련님!” 어딘가에 숨어 있던 신우빈의 전속 호위가 동시에 나타났다. “잘난 도련님 제외하고. 다 나가.” “흐익! 예!” 돈보다 소중한 게 목숨이라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 이제 눈치를 보는 경비원은 없었다. “즉시 퇴장하겠습니다!” 그렇게 경비실 안에는 신성 측 인원들, 그리고 협회 간부들만이 남게 됐다.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멀쩡한 놈을 왜 죽여?” “그게 멀쩡한 거로 보이나? 뇌까지 돈에 절었는데?” “그쪽 뇌는 피에 절었나 보네?” “으득!” 신우빈의 도발로 분위기가 더욱 험악해지려는 순간. “거기까지.” “…….” 간부들 뒤편에서 임진석이 나타났다. 직접 맞붙어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남겨 온 실적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무리 손이 먼저 나가는 황태범도 임진석 앞에선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예.” 신우빈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임진석과 눈을 마주쳤다. “다시 만나는군.” “……하. 왜 왔는지 알겠네.” 처음부터 선이 없는 자. 그리고 선을 넘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자. 둘은 너무나 상극이었다. 그래서 임진석은 뒤로 물러나 있었고, 신우빈은 유일하게 임진석을 경계했다. “회장님 명령이다.” “…….” 임진석은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의 정체는 소집 명령서. 협회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강제성을 지닌 서류였다. 이것은 신우빈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무에 협조해 줘야겠어.” “……하. 이런 걸 왜 말단 경비한테 내미는 거야?” 신우빈은 이 서류가 가진 강제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협회의 간부들에게도 통하는, 신성의 대표조차 거스를 수 없는 명령서였다. “……그래. 뭔진 몰라도 협조하지. 그래서 명령은?” 임진석은 내심 안도했다. 그리고 전율했다. 정회장의 힘을 다시 한번 체감했기 때문이다. “……주민성 불러. 모르는 척하진 않겠지?” “응?” 신우빈 입장에선 의외의 명령이었다. 최근 신성에서 내부적으로 꾸미는 계책과 관련된 조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주민성? 내가 알고 네가 아는 그 주민성?” “…….” 신우빈은 일부러 주민성을 강조하며 다른 간부들의 표정을 살폈다. ‘오호라.’ 확실히 주민성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반응이 있었다. 다른 간부들에게서 하나같이 불만스러운 표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강제로 동원됐군.’ 신우빈은 더욱 신나게 주민성을 강조했다. “FFF급 능력자 주민성 맞지?” “……그렇다. 신성의 VVVIP 주민성. 그놈을 불러라.” 임진석도 나름의 대비를 해온 모양. 주민성 언급을 통해 분위기 반전은 어렵다고 느낀 신우빈은 변화구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아, 존댓말도 해야겠구나. 하여튼 간단하지요. 바로 부른다요?” “……음? 좋다.” 그제야 임진석에게서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다른 간부들 역시 신우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부른다고요. 명령인데 불러야지요. 뭐. 어차피 볼 일도 있었고요.” “……뭐?” “유물 대여해 주기로 했거든. 요. 250억짜리. 요.” 왠지 리듬까지 타며 흥을 올리는 신우빈의 모습에 임진석은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신우빈의 본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화한다? 요?” “……잠깐.” “왜? 요?”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 반쯤 미친 듯한 표정. 그리고 신우빈의 알콜 중독 이력. 이것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방관자 코스프레? ……신 회장!’ 신성 측에서 처음으로 협회에 한 방 먹였던 그때. 심신 미약을 주장하며 귀신같은 수완을 발휘하던 신 회장도 지금의 신우빈처럼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또 함정인가? 젠장!’ 뭔가를 알아차린 임진석은 급하게 작전을 수정했다. 물론 다른 간부들의 불만도 심해지지 않는 방향으로. “……아니다. 전화해도 좋아. 우리는 이곳에서 기다리지. 찾아가는 것보단 이쪽이 맞겠군.” “……그래?” 효과는 있었는지, 신우빈의 눈썹이 잠시 굳었다가 풀어졌다. 그리고 곧장 누군가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주민성 불러. 유물 준비됐으니까. 어. 어. 바로 오라고 해.” 딸깍. “유물 대여는 계약된 내용이니까 전달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 신성이 보유한 유물은 곧 협회의 자산. 적어도 유물은 안전할 거다.” “그럼 됐고.” 임진석의 목표는 주민성. 미래의 신성 대표가 될 사람과 지금 이상으로 관계가 틀어지는 건 임진석에게도 곤란했다. 신성의 존재는 정 회장에게 큰 이득이 되니까. ‘놈만 없어지면 돼. 그러면 전부 원래대로 돌아간다.’ 생각을 마친 임진석은 간부들을 향해 말했다. “우린 근처에서 은신한다.” “예.” 이곳에 모인 협회 간부만 다섯. 전부 요인 암살에 극도로 특화된 능력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신우빈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난 또 뭐 대단한 일이라고. 아, 나 F급이니까 싸움은 빼 줘야 한다?” 임진석은 신우빈이 걸어오는 심리전을 무시하며 경비실을 빠져나갔다. “……다섯으로 안 될 텐데.” * * * 주민성은 운전기사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S급 게이트에서 나온 유물이군요.” “예.” 옆에는 최선아가 함께였다. “축하드려요. 민성 씨.” “감사합니다.” 무려 200억대의 가격을 자랑하는 유물. 그것도 S급 게이트에서 나온 유물이다. 압도적인 유물의 이력에 가슴이 웅장해질 법도 했지만, 주민성의 눈빛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너무 빠른데.’ 주민성에겐 의심이 남아 있었다. 모습을 숨긴 채 자신을 노리는 협회 간부의 신중함 때문이었다. ‘송몽룡 씨 의식이 없을 때가 차라리 좋았는데.’ 그땐 적어도 크룩스와 콩이, 그리고 정예 고블린 라이더가 있었다. 하지만 경비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크룩스 같은 예외를 제외한다면,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게이트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런 실험도 있었다. 몬스터를 강제로 게이트에서 끄집어내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는 몬스터의 사망. 체내 마석이 줄어들고, 최후엔 완전히 마석이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예전 그 멤버 그대로인데.’ 건물 부가효과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안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는 강대한 몬스터 세력이 성장하는 모습이 생각보다 기억 속에서 강하게 자리 잡은 모양이다. 게이트에선 패왕, 사회에선 FFF급 능력자라는 극단적인 차이도 괴리감을 증폭시켰다. 전투력 측정기가 존재한다면 100만이던 주민성의 전투력은 지금쯤 1000 정도로 줄었을 터. “아……. 벌써 블링이들이 보고 싶어요.” 몬스터가 없어 허전한 건 최선아도 마찬가지. “가속 능력자니까 남들보다 훨씬 빠르잖아요. 금방 다녀오면 돼요.” “헤헤. 그게 유일한 위안이에요.” 차량 속도 기준으로 몇 십 분이면 도착하는 경비실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그 사실이 불편했다. ‘경비실로 부르는 이유가 뭘까.’ 신우빈은 똑똑했다. 갑질을 위한 신분, 그리고 갑질 그 자체를 타고났다. 하지만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무식한 갑질은 하지 않는다. ‘거래 장소가 마음에 걸려.’ 실제로 신우빈은 유물이 넘어왔다고 언급했었다. 만약 유물을 직접 받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면, 확실한 신성 측 안마당에서 거래하는 게 안전하다는 게 주민성의 생각이었다. 아무리 최고의 대기업이고 신우빈이 기행을 일삼는다지만, 200억대의 유물을 경비실에서 거래한다? 이것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기사님.” “예.” “유물. 어디서 받을 예정이었나요?” “원래라면 강남에 있는 도련님 사옥에서 넘겨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운전기사 역시 지금의 호출은 의아했던 모양.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 주고 있었다. “흠……. 하필이면 경비실이라.” 몬스터를 활용할 수도 없다. 소유할 수도 없는 건물이다. 결국, 주민성은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둬야만 했다. “차 잠깐만 세워 주세요.” “예.” 차량에서 내린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신기하게 생겼는데?” “텐트포입니다. 비상용 무기죠.” “우와……. 민성 씨 무기는 대체 몇 개인지 모르겠어요.” “읏차! 별거 아닙니다. 잠시 뒤로 가세요.” “아! 네!” 주민성은 그대로 텐트포의 세팅을 시작했다. 화약을 대신할 텐트를 욱여넣고, 비어 있는 공간엔 건물 잔해를 가득 채워 넣었다. 쿠르르르! “우와!” [텐트포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 ‘여차하면 임시 권한도 망설임 없이 써야 해.’ 그 외에도 주민성은 인벤토리 속 보유 물품 목록을 점검하며 아직 소유하지 않은 텐트의 번호를 기억했다. 고블린 꽃은 덤. “저도 장비 점검이나 해 봐야겠어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최선아와 함께 물건들을 점검하던 도중, 신경 쓰이는 물건이 한 가지 떠올랐다. 물건의 정체는 영혼석. 주민성은 영혼석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영혼……. 영혼이라…….’ 주어진 단서는 영혼. 죽는 것과 관련이 있는 단어였다. ‘혹시 모르니까 챙겨 두자.’ 생각해 보면 영혼석도 유물이라고 봐도 된다. 다크오크는 누가 봐도 보스급이었으니까. ‘가능성은 최대한 높여 둬야지.’ 주민성은 영혼석을 인벤토리가 아닌 품속에 넣었다. 어떻게든 효과가 있길 바라며. “저 준비 다 했는데, 선아 씨는?” “저도 준비 끝났어요.” “좋습니다. 다시 가시죠.” “네!” 긴장한 탓인지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주민성은 차량 내부에서 경비실 주변을 살폈다. “조용하네요. 평소처럼.” “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평화로운 경비실이었다. 다만 운전기사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을 뿐. “주민성 님.” “네?” “뭔가 이상합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왜요?” 운전기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비실을 응시했다. “저희 직원이 나오기로 약속되어있습니다.” “…….” “직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비상사태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도련님이 위험한 상황이거나, 죽었거나.” 그 순간, 경비실 문이 열렸다. “야! 빨리 안 오고 뭐 해!” 직접 경비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신우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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