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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살림살이 (2) (50/250)

게이트 살림살이 (2)2022.01.20.

주민성과 일행들은 무사히 학원까지 도착했다. “크흠. 수고하셨습니다.” 기절했던 송몽룡도 깨어남과 동시에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고하셨어요.” 강력한 전력인 송몽룡이 기절한 탓에 주민성은 주변 경계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며 이동했다. 다행히도 우려하던 습격은 없었지만. “민성 씨!” “아이고! 왜 이렇게 늦었어!” 최선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도 재회했다. “별일 없었어요? 불편하진 않았고요?” “네. 황당하게도……. 여기가 집보다 편해요.” “다행이네요.” 주민성은 건물 부가효과를 적용받고 있음에도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크룩스와 고블린 라이더에게 세부적인 명령을 계속해서 내린 데다, 작은 엄폐물도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조치하며 이동했기 때문이다. “대장님!” “오.” 봉춘향을 비롯한 판자촌 능력자들과도 재회했다. 포섭 활동이 성공적이었는지, 주변엔 수많은 몬스터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은 잘 마무리됐군요.” “그렇습니다!” 주민성은 봉춘향에게 그동안의 소식들을 보고받았다. 패잔병 오크를 추가로 포획하기도 했고, 이용료 청구를 당해 광분 상태였던 고블린이나 다른 몬스터까지 빠짐없이 포섭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좋습니다. 다음 교육과정도 힘내 주세요.” “예!” 교육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송몽룡을 제외한 판자촌 능력자들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들의 발걸음은 호위 서비스로 얻은 몬스터들과 소통하기 위함인지 유난히 가벼워 보인다. ‘학교도 지내긴 참 좋은데 거리가 아쉽단 말이지.’ 학원과 학교는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다. 폐허 도시에 있는 학원의 경우, 강력한 고블린들이 잔뜩 모여 사는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학교. 학교는 주민성이 보유한 건물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스펙을 자랑했다. 특히 축제를 앞둔 시기로 복구가 되었는지 비교적 쓰임새 많은 물자가 가득한 게 매력. 이 물자들은 판자촌 능력자들이 교육과정을 진행하면서 필요에 따라 소비될 예정이다. ‘그래. 학교는 한 달 뒤. 그때부터 손보자.’ 생각을 정리한 주민성은 문득 학교에서 챙겨 둔 몇 가지 물품이 떠올랐다. 그중에선 비교적 재사용 시간이 긴 소유물 복제까지 사용했을 정도로 가치 있는 물건이 있었다. “다들 식사 안 하셨죠?” “간식 말고는 통 먹은 게 없어요.” “후후. 좋습니다.” 모처럼 긴장된 상황도 끝난 마당에, 주민성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라면 어떠세요?” “라면? 나쁘지 않지.” “저 김치 있어요!” 여기까진 평범한 반응이었다. 인벤토리에서 이 라면이 나오기 전까진. “이, 이건……!” “후후……. 전설의 그 라면입니다.” 주민성이 일반인 시절 가장 많이 먹은 식품을 꼽으라면 역시 라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성비 좋고, 배부르고, 맛도 있었으니까. 심지어 라면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해박한 편이었다. “27년 전,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단종된 그 라면이죠.” “오호.” 이에 최선아나 최선호는 평범하게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는 데 반해, 이수길을 비롯한 중년층들은 크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내가 아는 그 라면이 맞는가?” “어릴 때 미친 듯이 먹었었지…….” 이렇게 인기 있는 라면이 단종된 이유는 라면회사 대표의 고집 때문이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만들겠다는 뚝심으로 제대로 된 성과는 이뤘다. 결과물이 시대를 뒷선 게 문제였을 뿐. “이 라면의 생산 공정은 전부 수작업이었다고 해요. 사소한 건더기를 말리는 것도 기계를 이용하지 않는 자연 건조방식이었죠.” 주민성은 라면 냄비를 세팅하며 자신의 지식을 맛깔나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면 역시 전부 직접 튀깁니다. 기름은 일정 시간마다 교체하고, 엄격한 품질 검사까지 거쳐 갔죠.” “도저히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는 라면이네요.” “맞아요. 당시에도 이 라면은 큰 인기를 얻었어요. 문제는…….” 쪼르르르! 보글보글보글! 마석 버너는 라면 냄비에 들어간 물을 순식간에 끓여냈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게 문제예요. 이 라면회사는 끝까지 수작업을 고집했거든요. 그럼에도 공정 규모는 한정되어있고, 인건비 균형도 맞춰야 하고.” “끄응…….” “문제는 내부에서 생겼더라고요.” “어땠는데요?” 라면이 미친 듯 팔려나가며 수많은 투자도 들어왔다. 이 정도면 성공하고도 남을 수준이었지만 여기서 라면회사 대표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 이상한 면에서 고집이 센 것이 문제였다. 라면의 맛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 공정의 품질 관리 절차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여기서 가장 고통받는 것은 결국 일반 직원들. 직원들 대부분은 혹독한 업무 강도로 일을 그만뒀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소송까지 당하며 라면회사는 헬피엔딩을 맞이한다. 주민성은 이 모든 것들을 라면을 조리하며 조리 있게 설명했다. “시대를 너무 뒷선 라면이었죠.” “와……. 그 말이 진짜 맞네요. 요즘은 수작업 공정도 능력으로 쉽게 메꿀 수 있잖아요.” “그러게요.” 완성된 라면은 주민성의 라면 조리 노하우를 모두 담아낸 걸작이었다. “흐허허! 회사는 모르겠고 일단 맛부터 봐야것어야!” “민성이가 설명은 참 잘했는데 이 냄새는 참을 수가 없어!” 여기서 라면을 곧장 흡입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최선호처럼 라면 봉투를 보고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다. “형! 이거 유통기한이!” “아, 그건 괜찮아. 의미 없거든.” 주민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라면은 복구됐을 뿐, 발굴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27년 전의 기술이라면……. 아! 진공포장이네요?” “어……. 그런가? 그쪽은 잘 모르겠네? 일단 먹자.” “네! 형!” 호로록! “크어!” “크하!” 몬스터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전부 사람들이 내는 소리였다. “내 마지막 극찬은 포쁠 한우가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는데…….” “형님! 포쁠 한우는 언제 드셨어?” “아…….” 난데없이 추궁당하는 이수길부터. “감사합니다!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 계속 눈치만 보다가 라면 맛에 치인 가짜 인부들. 후루룹! 후룹! “이게 진짜 라면이라니!” “이거만 먹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과묵하게 동향만 살피던 운전기사에 송몽룡까지. 라면 맛에 대해선 하나같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 이거 두 박스 밖에 없는데……. 더 드실 분?” “저요! 저요!” “크흠!” 그렇게 폐허 도시의 새벽은 어울리지 않는 화기애애함으로 마무리됐다. 다음날 늦은 아침. 주민성은 최선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폐허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단 손볼 구역은 이곳입니다.” “허허. 생각보다 규모가 크구먼.” 주민성은 건축을 하기에 앞서 구획부터 정했다. “학원과 꽃집 사이. 이 사거리를 기준으로 건축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음. 확실히 입지는 좋네.” 옆으로 가면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기 위한 비석이 있고, 그 반대편은 학교가 있는 방향이었다. 다른 길엔 학원과 꽃집은 서로 마주 보는 구조로서, 공사만 잘 마친다면 사냥과 장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위치라고도 할 수 있었다. “건물은 새로 올릴 거예요. 기존 건물들이 아깝긴 하지만…….” “이거 다 폐건물인데요? 상관없지 않아요?” “상관있는데…….” 이번에 주민성이 눈물을 머금고 철거하려는 건물은 레스토랑부터 신문사, 마사지샵 등 건물 등급이 높아 소유되지 않는 건물들이었다. 이것들의 진정한 가치는 오로지 주민성만이 알고 있었다. “제 능력으로 봤을 땐 이것들이 다 복권이거든요……. 정말 어쩔 수 없이 철거하는 거니까 다들 신경 많이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원은 아끼지 않을게요.” 물론 등급이 높은 건물을 소유하는 방법은 있었다. 건물을 반파시켜 소유하는 식의 편법이었지만. 하지만 지금의 장소는 미래의 중심가. 본격적인 건물주로서 뿌리를 내릴 장소였다. ‘이 자리는 언젠가 거대 빌딩이 들어설 테니까.’ 최선호가 지었던 게임 속 거대 빌딩. 주민성은 언젠가 그 빌딩을 실제로 재현할 계획이었다. “음. 뭐 능력은 잘 모르니까 그렇다 치는데…….” 김 씨는 뭔가 염려하는 표정이었다. “건축 자재. 어떻게 할 거냐. 저 건물처럼 폐급 재활용하는 건 아니지?” “물론 아니죠.” 폐급을 사용한다면 할 수 있었다. 부가효과 덕분에 건물이 무너질 염려도 없으니까. “콘크리트랑 철근 가격 견적 좀 부탁드릴게요.” “응? 그건 전문가가 따로 있는데? 그보다 콘크리트만?” “예. 그거면 돼요.” 건물주 능력이 판정하는 건물의 기준은 상당히 범위가 넓었다. 막말로 흙을 파서 두꺼비 집을 만들고 손가락만 넣어도 건물로 판정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게이트 탐험 초기, 콩이에게 사냥을 시키고 아무 생각 없이 흙장난을 치다가 검증되었던 부분이었다. ‘판정일 뿐이라 아쉬웠지.’ 판정은 판정에 불과했다. 당시 메시지는 이렇게 나왔기 때문이다. [보유할 수 없는 건물입니다.] 건물은 건물인데 보유할 수는 없다. 여기서 주민성이 생각한 건물 보유 조건은 주거공간이었다. 이 생각을 실천하는 데 있어선 다양한 건축자재가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단순히 밖과 단절되며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끝이니까. “다른 설비도 필요할 텐데?” “당장은 실험이 목적이거든요.” “흠……. 그래. 진행은 네가 하는 거니까.” 보유할 수 있는 건물의 최소 견적은 텐트. 그리고 사용하는 건축자재는 가장 최소한의 자재면 충분했다. ‘건물은 절대 만만하지 않아.’ 공사가 복잡해지면 건물의 등급이 높아져 보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위험성이 있었다. ‘당장 보유할 수 있는 건물만 해도 폐급 중에서도 훨씬 폐급인데.’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한 수준인 꽃집의 등급마저도 하급으로 판정된 상황. 주민성이 원하는 건물은 부실해 보이면서 깔끔한, 기묘한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건물이었다. ‘분명 최초 메시지가 뜬다.’ 건물주 능력은 최초라는 단어에 의미를 부여했다. 건축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보유까지 성공한다면 새로운 능력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100%. 건물주 등급의 성장은 덤이리라. “그리고 선아 씨.” “네?” “마석 정산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전 여기서 할 게 더 있어서요.” “얼마든 맡겨 주세요!” 호위 서비스로 남은 현금을 모조리 탕진한 상황. 당장 건축 자재를 구매하기 위해선 마석 정산이 필수였다. “학원 안에 기사님 계시니까 같이 다녀와 주세요.” “네!” 운전기사의 소속은 신성. 노출된 정보는 말 잘 듣는 몬스터에 대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분들은 여기서 지내면서 불편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주세요.” 그때, 가짜 인부 듀오가 손을 들며 물었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자유 시간은 없어요?” “음…….” 가짜 인부 듀오의 본질은 능력자. 그것도 C급 게이트에서 충분히 1인분을 할 수 있는 능력자였기에 이들에겐 사냥 욕심이 있었다. “자유 시간은 있는데 돌아다니는 건 금지입니다.” “왜요?” “불만이세요?” “아, 아닙니다…….” 한때는 이들 또한 피해자로서 어느 정도 배려해 줄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복을 직접 걷어차지만 않았어도. 만약 주민성에게 힘이 없었다면 이 둘은 확실한 가해자로 남았으리라. “뭐라도 성과가 있어야 배려해 주죠. 이용료 또 낼래요? 아니면 도시로 돌아갈래요?” 물론 이들에게도 권리는 있다. 집으로 돌아갈 권리도 있고, 땀 흘려 일하고 보상을 받을 권리도 있다. 물론 집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협회 간부를 만나 최면에 걸려 실컷 이용당하는 최후를 맞이할 테지만. “아닙니다…….” “네. 그래야죠. 여기선 양아치짓 하지 마세요.” “예…….” 이들 역시 알고 있었다. 이곳은 인력 사무소도, 도시 한복판도 아니라는 걸. 그리고 이 게이트, 폐허 도시의 왕이 주민성이라는 사실도 알고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민성아. 우리는 저쪽 거리 좀 둘러봐도 괜찮지?” 여기서 둘을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수길에게 사정을 들었기 때문이다. “예. 아저씨들. 다녀오세요.” 주민성은 고블린에게 몰래 손짓하며 아저씨들의 호위를 맡겼다. 그리고 잠시 후. 최선아와 운전기사가 주민성을 찾아왔다. “도련님 연락입니다. 유물이 준비되었다고 경비실로 오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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