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게이트는 처음이지? (4)2022.01.18.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처를 입은 오크였다. 다크울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민성은 쉽사리 놈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오크가 딛는 황무지 주변이 전부 새까맣게 물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어어어어!” 한때 주민성의 각성 목표 등급은 C급. 따라서 국내의 모든 C급 게이트의 특징, 몬스터에 대한 각종 정보는 이미 사전에 공부해 둔 상태였다. “뭐야 저건?” 지금의 현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책에도, 영상에도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키긱!” 제법 강해 보이는 고블린 라이더들마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크르르르!” 콩이마저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에 주민성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오크를 휘감고 있는 검은 기운은 그저 시야를 차단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파스스스! 오크 주변에 있는 건물 잔해가 바스러지고 있었다. ‘방출계인가. 난감하네.’ 여기서 오크의 목숨을 단번에 끊을 만한 인물은 송몽룡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시간을 멈춰도 눈앞의 새까만 기운은 사라지지 않을 것도 분명했다. ‘이러면 시간 정지 카드는 못 쓰고…….’ 송몽룡 역시 지금의 상황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를 악물며 오크를 노려볼 뿐. 콩이나 다른 몬스터들 역시 할 수 있는 공격이 근접공격뿐이라 난감한 상황이었다. ‘크룩스. 크룩스는 어디 있지?’ 학교에 있어야 할 콩이가 이곳에 있다는 건, 마찬가지로 학교에 있던 크룩스 또한 주변 어딘가에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크룩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룩스! 좀 나와 봐!” 오크는 점점 주민성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상처 입은 몸이라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크룩스! 저놈 좀 어떻게 해 봐!” 밤은 임박했고, 이대론 주변이 전부 어둠에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 여기선 보스급의 강력한 방어력과 징검문을 앞세운 압도적인 기동력, 그리고 확실한 공격력을 지닌 크룩스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크룩스으으!” 그리고 희망 어린 메시지가 떠올랐다. [크룩스가 저놈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200만 원입니다.] [저놈은 각성을 마친 다크오크입니다.] 각성이라는 의미심장한 키워드가 들어간 단편적인 정보였다. 이로써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크룩스의 투머치한 정보료가 청구될 거라는 사실을. “추가 정보는 됐고!” “크룩…….” 예상대로 크룩스의 시무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오크가 있는 방향에서 들렸다. “견제! 견제만 어떻게든 해 줘!” “크룩!” 주민성은 크룩스에게 소극적인 대응을 명령했다. 과거 콩이의 부상을 통해 목숨의 위기를 겪은 바. 주민성이 가진 가장 강력한 몬스터 전력인 크룩스를 허무하게 잃을 수 있는 명령은 자제했다. ‘막타는 어떻게든 내가 먹어야지.’ 건물주 등급은 강력한 몬스터를 사냥할수록 크게 상승하는 특징이 있었다. 주민성이 얻어야 할 건 마석뿐만이 아니라 능력의 성장이라는 전리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낯익은 구체가 다크오크 위에 생겨났다. ‘징검문.’ 구체가 커지며 크룩스가 모습을 드러내고, 강력한 일격이 다크오크의 머리를 향했다. 그리고 다크오크의 무기와 크룩스의 몽둥이가 부딪쳤다. 쾅! “크루우욱!” “쿠어!” 몬스터끼리의 힘 싸움. 둘의 힘은 호각이었지만, 한 가지 작은 차이가 있었다. “쿠워?” 왠지 다크오크가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쿠어어!” “크룩!” 하지만 동요도 잠시. 다크오크는 크게 분노하며 크룩스에게 응축된 기운을 뿜어냈다. “크룩.” 크룩스는 이 공격을 받아내지 않았다. 아무런 미련 없이 징검문을 통해 새까만 폭풍 속에서 빠져나왔다. “쿠워어어어어!” 단순히 빗나간 공격이었지만, 다크오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크워어어!” 크룩스와 다크오크의 경합. 짧은 순간이었지만, 주민성은 나름대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너. 그리고 너. 이거 잡아.” “크엑!” 몇 번의 명령을 통해 잉여전력이던 고블린 라이더가 효과적인 노동력으로 전환됐다. 물론 여기서 콩이는 변수를 만들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너희는 같이 잡고.” “크에엑!” 저마다 텐트 천을 최대한 넓게 편 고블린들. 그 사이에 있던 송몽룡이 물었다. “저, 저는 뭘 하면 될까요?” “기습에만 대비해 주세요.” “예!” 시간 정지는 다크오크와 상성이 나쁠 뿐. 송몽룡은 혹시 모를 협회의 공격에 누구보다 확실한 대비책으로 활약할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의 안전까지 놓치지 않은 주민성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진행했다. “좋아. 그대로 가만히…….” “키익!” 텐트와 텐트를 연결해 고블린에게 맡긴 상황. 그리고 인벤토리에선 미세먼지 한 움큼과 물 한 통이 튀어나왔다. “됐으면 좋겠는데…….” 촤륵! 한때 꽃집을 보수할 때 써먹던 조합이 텐트에 덧씌워졌다. “건물 보수.” [텐트 72가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 [보수가 필요 없는 건물입니다.] [강화 보수로 판정되어 기본 내구도가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오오.” 메시지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텐트 94가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 [강화 보수로 판정되어 기본 내구도가 강화됩니다.] [보수된 건물이 연동되었습니다.] [최초로 건물 연동에 성공합니다.] [연동된 건물은 하나의 건물로 취급됩니다.] [이름이 없는 건물입니다.] [효과가 반감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실로 오랜만에 떠오른 최초의 발견을 알리는 메시지. ‘이것도 고블린 꽃처럼 이름을 지어야겠군.’ 그리고 연동이라는 단어는 주민성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줬다. ‘연동이라…….’ 연동이란 단어는 처음 게이트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건물주 능력이 연동된다는 메시지. 그때부터 주민성은 메시지를 끊임없이 접할 수 있었고, 능력을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도 따로 설명은 없고.’ 연동 메시지는 불친절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능력을 알아서 찾아내야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용료 청구가 그랬다. ‘상관없어. 용도는 확실하니까.’ 주민성의 나름의 전략. 전략의 정체는 원거리 무기의 확보였다. 그리고 이 보수된 텐트는 주민성의 최초 원거리 무기가 될 예정이었다. 그것도 수백 미터 이상 떨어진 적을 물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후후후.” 가장 보편적인 원거리 무기는 총이었지만, 주민성의 욕심은 그 정도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 게다가 건물주 능력으론 총 같은 섬세한 무기를 만들 수 없다는 한계도 존재한다. ‘우선 이름부터 지어 두자.’ 이미 강화보수로 인해 내구도 강화가 보장된 상황. 효과가 반감되지 않으려면 어떤 이름이든 지어 줄 필요가 있다. “텐트포.” [연동 건물의 이름이 텐트포로 정해졌습니다.] [연동 효과가 정상적으로 적용됩니다.] 금속이라곤 텐트의 뼈대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주민성이 만들려는 원거리 무기의 정체는 대포였다. 그리고 연동된 텐트는 포신이자 포대로서 활약할 예정이었다. ‘강화는 확실하게 됐으니까 몇 개 더 만들어 두자.’ 고블린들은 텐트를 잡고, 주민성은 건물을 보수하며 연동시키는 행위가 몇 차례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크룩스는 다크오크의 공격을 회피하며 주민성과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쿠어어!” “……크룩!” 밤도 점점 가까워지면서 다크오크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장소까지 멀어졌다. 이젠 고함도 한 템포 늦게 울릴 정도. 주민성은 휴대용 조명이 달려 있는 모자를 착용하고 작업에 계속해서 매진했다. “건물 보수. 건물 보수.” “키익!” 텐트포는 몇 번의 추가적인 개선을 거쳤다. 보수 재료에 마석을 추가하고, 텐트의 뼈대엔 철근을 추가로 욱여넣는 방식이었다. [텐트포의 내구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텐트포의 내구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외형도 제법 대포 같은 모양이 완성되었다. 실제로 곁눈질하던 송몽룡이 황당한 표정으로 대포같이 생겼다고 했으니 확실하다. “그래요? 이제 제대로 쏴 봐야겠네요.” “그, 그걸요? 아니 뭘요?” “대포요. 정확한 이름은 텐트포입니다.” “…….” 그렇게 완성된 텐트포는 실전 투입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콩아.” “컹!” 콩이는 주민성이 중간 중간 던져 준 마석을 받아먹으며 제자리에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이제 마석값 해야지? 태워 주라.” “컹!” 기특하게도 콩이는 자세를 낮추며 주민성을 위에 태웠다. “크으. 역시 좋은 마석을 먹인 보람이 있군.” “컹! 컹!” 다른 고블린 라이더 역시 주민성의 명령 한 번이면 언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날 지키도록.” “키엑!” 그렇게 주민성은 고블린 라이더의 호위를 받으며 다크오크를 쫓았다. “쿠워어어어!”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밤눈이 어둡지 않다. 불편한 건 주민성과 송몽룡뿐. 핸디캡을 줄이기 위해선 조명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고블린 제군은 조명을 하나씩 들도록.” “키에엑!” 주민성은 휴대용 조명을 고블린들에게 지급했다. 그리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다크오크의 기운이 닿지 않는 범위까지만 접근해. 공격은 전부 회피하고.” “키엑!” 주민성은 그대로 폐허 위에 올라가 텐트포를 설치하기 위한 지지대를 세웠다. 이에 곁에 있던 송몽룡이 물었다. “……이것도 대포입니까?” 송몽룡은 주민성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직접 설명하기에 지금 하는 행동은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실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음. 일단은 대포 지지대요.” 주민성이 예상하는 텐트 발사 방식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건물 폭발하는 거 봤었죠?” “……예.” “텐트포 안에 다른 텐트를 넣어서 폭발시킬 겁니다.” “…….” 건물 안에 건물을 넣어 폭발시킨다. 이것만으론 대포가 성립될 가능성이 없었다. 일단 건물이 터지면 주변의 다른 건물이 폭발에 휘말릴 테니까. 하지만 주민성은 대포를 성립시켰다. 다른 건물보다 훨씬 내구도가 강화된 연동 건물을 완성 시켰고, 포구를 형성시켜 폭발력이 한 방향으로 쏠릴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포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끄응…….” 주민성은 게이트에 관해서만 공부한 게 아니었다. 송몽룡처럼 능력과 무기를 혼합해서 활용하는 케이스는 꽤 흔했으니까. 주민성은 무기에 관한 공부도 빠트리지 않았다. 그것은 심지어 구시대의 무기인 대포도 포함된다. “설명하기는 좀 어렵고. 일단 보세요.” 텐트포가 지지대에 고정되고, 주민성은 조명을 든 고블린 라이더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대충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하고…….’ 동시에 텐트포를 들어 올려 포신이 하늘을 바라보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포구엔 또 다른 텐트가 덮였다. “이거 살짝만 잡아 주세요. 힘주지 말고.” 송몽룡은 주민성의 생각을 따라올 수 없었다. 그저 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가장 편한 수단이었다. “으앗.” 쿵! 쿵! 쿠르르! 포구를 덮었던 텐트엔 작은 건물 잔해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텐트는 대포 가장 밑바닥에 깔리고, 건물 잔해들이 차곡차곡 포신에 채워졌다. “이, 이제 다 된 건가요?” “네.” 상식을 파괴하는 대포가 발사 준비를 마쳤다. 텐트포는 이제 힘으로 제대로 지탱할 수 없는 수준. 주민성은 재빠르게 텐트포의 각도를 맞추기 위한 잔해들을 바닥에도 쏟아냈다. 쿠구구구! “음. 조금만 더 낮춰 볼까.”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오케이. 됐다.” 건물 잔해를 수납하며 각도의 수정까지 마치자, 텐트포는 어느새 다크오크를 조준하고 있었다. “괘, 괜찮을까요?” “쏴 보면 알겠죠.” 정밀한 조준은 필요 없었다. 잔뜩 쑤셔 넣어진 건물 잔해는 밀집도가 떨어지는 대신, 드넓은 범위를 동시에 포격할 수 있는 산탄이 되기 때문이다. “후우우…….” 주민성은 한차례 심호흡을 하고. “전부 후퇴!” “키에엑!” 고블린 라이더를 후퇴시켰다. “크룩스으으!” “크룩!” 어느새 주민성 곁엔 징검문이 열리며 크룩스도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했다.” “크룩.” 크룩스의 몸엔 그간의 사투를 알리는 상처가 가득했다. “힘들었지?” “크루…….” “그래. 정보는 괜찮아. 나중에 쉬면서 치료하자.” 정보료 지출을 사전에 차단한 주민성은 크룩스에게 건물 테라피를 약속했다. 뒤이어 고블린 라이더들이 재빠르게 주민성 주변으로 귀환했고, 다크오크는 여전히 사라진 크룩스에 분노하고 있었다. “쿠워어어어어어!” 바로 지금. 지금이 텐트포를 발사할 타이밍이었다. “444번 텐트. 건물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