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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게이트는 처음이지? (3) (47/250)

어서와 게이트는 처음이지? (3)2022.01.17.

어느덧 게이트엔 저녁노을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 풍경은 언제 봐도 운치 있네요.” “노을이요?” “네.” 지금은 게이트를 탐험하는 능력자에게 있어 가장 긴장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게이트의 밤은 도시처럼 밝지 않았으니까. 설령 챙겨온 휴대용 조명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제한된 시야는 관련 능력자가 파티에 없으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 “그보다……. 추격은 미뤄야 하지 않을까요?” 송몽룡의 의견은 타당했다. 작전은 아직 진행 중이었지만, 밤이 되면서 생기는 핸디캡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왜요? 벌써 피곤해요?” “아뇨. 피곤하진 않은데……. 시간이 좀…….” 시간을 멈춘다고 해도 밤이 낮으로 바뀌는 건 아니었다. 밤은 S급 능력자에게 있어서도 난처한 시간이었다. “밤이라고 해 봐야 그냥 어두울 뿐인데.” 주민성은 여태껏 불안에 떨며 밤을 지새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보유 중인 건물 내부는 자취방보다 훨씬 편안했고, 심리적인 안정 효과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곁엔 언제나 보호자가 존재했다. 충견과 불충견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콩이부터 시작해서 수천의 고블린을 이끄는 크룩스까지. 이젠 최선아를 비롯한 사람들에다 든든한 판자촌 능력자들도 이 게이트에 존재한다. 게이트 내부에 적군보다 아군이 더 많은 상황은 조금도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조명도 있으니 걱정 마요. 이 근방 길은 상태가 나쁘지 않으니 지도만 보면서 가면 돼요.” “…….” 하지만 송몽룡의 여전히 걱정이 많았다. “그럼 야간부턴 능력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능력은 제가 신호할 때만요.” “네?” 주민성에겐 확신이 있었다. 작전이 꼬였다면 지금처럼 여유롭게 대화를 나눴을 시간도 없었을 테니까. 삐빅! 일부러 30분 간격으로 맞춰둔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이번엔……. 편의점 9. 중식집.” [잠시 후 지정된 건물이 폭발합니다.] [해당 건물은 보유 건물 목록에서 사라집니다.] [자산 가치가 하락합니다.] 투쾅! 콰과과과! 폭음은 여전한 거리감과 함께 울려 퍼졌다. 첫 폭음에 당황하던 송몽룡도 이젠 제법 적응했는지 주민성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위해 고민했다. “끄응……. 이게 기만 전술이었나? 늙어서 그런지 기억이 안 나네…….” 70대로 보이는 송몽룡의 정체가 사실은 16세였다는 사실부터가 기만이었다. “포격과 관련된 능력도 아니고……. 그런데도 주기적인 폭발이면……. 으음…….” 전술 교본부터 시작해서 여태까지 읽었던 각종 전문서적의 지식을 되뇌어 봐도 소용없었다. 지금은 교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겠죠?” “네. 정말 괜찮습니다.” 누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능력,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능력 사용법. 이것은 단지 지극히 안전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 전술이었다. “변수는 저도 지긋지긋해요.” 송몽룡과의 동행은 단순히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심리가 아니었다. 이것마저도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인선이었다. 주민성을 쫓는 건 오크 라이더 말고도 더 있으니까. “무작정 능력을 아끼라는 게 아닙니다. 적재적소. 정말 필요할 때는 제가 먼저 요청할 테니까.” “정말이죠?” “네. 정말로. 진짜로.” 주민성이 가장 염려하는 대상은 협회 간부였다. 게다가 또 다른 협회 능력자, 그것도 추적 관련 능력을 갖춘 인물이 개입한 상황. 최선호를 비롯한 일반인들을 게이트에서 가장 안전한 학원으로 보낸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반드시.” 주민성은 이번 기회에 배수의 진을 치는 마음가짐으로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패배는 곧 죽음. 무승부도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자들이 물고 씹을 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사역한다, 일반인을 납치했다, 불법 건축물을 세우고 있다 등등. 다음 여론몰이는 지옥 그 이상일 게 확실했다. ‘이번 문제만 제대로 풀어내면 된다.’ 협회와의 갈등이 해결되었을 땐 엄청나게 희망적인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성에겐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건물 부가효과를 통한 온갖 질병의 회복.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줄 호위 서비스. 마석을 손쉽게 수급하기 위한 인프라 확보. 언젠가 신성 회장이 될 신우빈과의 연줄. 앞날을 더욱 기대할 수 있는 젊음까지. “다 잘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예! 믿겠습니다!” 주민성의 확신 가득한 미소 때문이었을까. 그제야 송몽룡도 기분 좋게 웃으며 주민성을 쫓았다. ‘작전을 전부 설명해 주고 싶긴 한데…….’ 송몽룡은 확실한 강자에 속한다. 그에 반해 단점도 확실했다. 정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첫 만남부터 트라우마를 일으켰던 것도 있었고, 표정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단점도 있었다. 때문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대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는 없었다. ‘그냥 지금처럼 케어만 계속하자.’ 오크 라이더 사냥 역시 확실하게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의 규모는 첫 웨이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전부 마무리되면 억대는 확실해.’ 오크, 그리고 다크울프. 놈들은 전부 중급 마석을 품은 개체였다. 앞으로도 능력을 활용함에 앞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걸 확인한 이상, 미끼와 사냥꾼 역할은 반드시 둘 다 성공시켜야만 했다. “여기네요.” 주민성과 송몽룡은 1차 건물 폭발 지점에 도착했다. “와……. 무슨 폭발력이…….” 건물 폭발의 위력은 첫 임시 권한 당시보다 훨씬 진화되어 있었다. 주변이 전부 황무지가 된 것은 물론, 몬스터 시체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수준. 다만 몬스터가 있었던 증거만은 확실히 있었다. “그래도 마석은 못 부수네요.” 주민성은 흙먼지가 가득한 마석을 주워 잠시 집중한 후 인벤토리에 넣었다. [중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 ‘이게 되네.’ 주민성은 그대로 나머지 마석들을 회수하고 지도를 펼쳐 오크 라이더의 동선을 재검토했다. ‘저쪽으로 갈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겠군.’ 생각보다 훨씬 강한 폭발력 덕분에 오크 라이더의 행방을 더욱 알기 쉬워진 상황. 이 사실은 오크 라이더로서도 마찬가지였다. 잡다한 건물들이 바스러지며 주민성의 현 위치가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크는 희미한 발자국만으로도 상대를 추적할 수 있고, 다크울프는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괜찮아. 이리와.” “키, 키익?” 철저하게 은‧엄폐를 유지하며 주민성 주변을 수행해 온 고블린 라이더의 모습도 포착되었다. “이걸 이제 알았네.” “저, 저도 몰랐습니다……. 와…….” 이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고블린과 데빌도그라서 가능한 묘기였다. 주민성 자신도 몰랐던 안전장치가 드러난 순간. ‘이러면 선택지가 더 늘어나네?’ 주민성은 히죽 웃으며 주민성을 수행한 고블린 라이더를 칭찬했다. “그래그래. 아주 좋아.” “어, 어라?” 다만, 송몽룡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고블린…….” “왜요?” 송몽룡이 가리킨 고블린은 은근히 자신을 과시하는 고블린이었다. “나 누워있을 때 놀러 온 고블린 맞지?” “킥?” “맞네! 맞아! 저 흉터!” 고블린의 뺨엔 꽤 예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흉터가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에게 흉터는 매우 흔한 것. 주민성이 구분할 수 있는 고블린은 오직 크룩스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야! 이렇게 또 볼 수 있다니!” “고, 고블린이 왜요?” 주민성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노인이 아이처럼 방방 뛰는 모습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흉터. 절대 잊을 수 없지. 간호해 줘서 고마웠어!” “키, 키엑…….” 황당하게도 주민성도 아닌 제삼자가 몬스터에게 간호받았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밝혀졌다. 더욱 슬픈 건 괜히 이런 사소한 에피소드에도 질투심이 생긴다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마석을 먹여 가며 업어 키운 콩이는 아무것도 없구나…….” 콩이가 다쳤을 때도,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며 마석을 핥아먹을 때도. 가끔은 몰래 건물을 빠져나가 홀로 몬스터를 사냥할 때까지. 주민성은 언제나 한결같이 콩이를 보살폈지만 제대로 된 보답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게이트 진입 이후 다쳤던 이력 자체가 없었지만 나름의 불만 정도는 있었다. “건물주 등급 낮을 땐 허리가 그렇게 아팠었는데…….” 주민성은 건물주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으으…….” 마음도 고독하고 몸도 고달프던 시절. 보상심리가 팽배하던 그 시절. 콩이는 언제나 주민성의 재산을 탐닉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인벤토리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도, 귀신같이 마석만 찾아 골라 먹는 실력도 일품이었다. 때문에 주민성이 여태껏 날린 마석의 값어치는 심리적인 피해 보상이 합쳐져 평생 벌어도 메꿀 수 없는 크기로 성장했다. “내 마석……. 이럴 때 콩이가 마석이라도 물어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크르르…….” “…….” 주민성은 그제야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허리춤에 감겨 있던 텐트가 풀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 어쩐지……. 부가효과가 풀렸구나…….” 건물 부가효과 중 하나인 심리적 안정은 상당한 중독성이 있었다. 특히, 있다가 없을 때의 상실감이 매우 컸다. “…….” “컹!” 텐트는 여전히 콩이의 입에 물려 있었다. 주민성이 반응하지 않자 텐트를 잡아당긴 모양.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컹! 컹!” 학교에서 빈둥대고 있어야 할 콩이가 주민성의 뒤에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마석을 많이 먹었는지 덩치는 예전보다 더욱 커졌고 움직임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 심지어 털의 뽀송뽀송함은 전문적인 관리를 받았을 거라 착각할 수준의 광택을 뽐내고 있었다. “맙소사…….” 주민성은 본능적으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콩이의 입가에 붙어 있는 마석 조각의 빛깔이 범상치 않다는 걸. “컹!” “그래……. 착하지? 입 주변 좀 닦아줄까?” 툭. 콩이의 입가에서 마석 조각 한 개가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반대쪽 손으론 인벤토리에 있던 중급 마석을 꺼내 대조했다. “안 돼…….” “대, 대장님?” 털썩! 최대한 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콩이는 언제나 주민성의 예상을 뛰어넘는 변수로서 활약했다. “하하하…….” 콩이는 분명 잘했다. 잠재적인 위협인 오크 라이더를 아주 순조롭게 제압했으니까. “왜 고블린처럼 충신이 못 되는 거니……. 개 맞아?” “크르르……. 컹!” 깨끗한 세척 마석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더러워도 마석만 온전히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으아…….” 현실을 자각하자 좀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충신들 다 어디 갔어.” 고블린들의 손아귀에는 상납할 마석 대신, 오크의 개성 넘치는 신체 부위가 들려있었다. 특히 피눈물을 흘리는 오크의 표정은 생전 마지막 기억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너희들……. 전부 학교 고블린이구나?” “키엑!” “컹?” “콩이는 나가 있어. 굶기 싫으면.” “컹!” 절대 을인 콩이는 주민성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 다만 불룩 튀어나온 배를 왠지 모르게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뿐. ‘그래. 절대 을은 절대 을이야. 통제할 수 있다.’ 콩이는 문제아지만 은견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넘어갈 수 있다. 다만, 고블린 같은 경우엔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었다. “그거 말고. 마석을 주지 않으련?” “키, 키엑…….” 중급 이상의 몬스터 신체 부위는 분명 가공품으로서의 가치가 존재한다. 합성 가죽을 이용해 제법 질긴 무구를 만들기도 하고, 다크울프의 단단한 이빨이나 발톱은 능력의 출력을 미량 올려주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몬스터의 신체 부위를 챙기는 행위는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이거 못 쓰잖아…….” 게이트 내부에선 시체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썩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아니지. 아니지. 나한테는 부가효과가 있잖아.” 희망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이것을 사업에 접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확실히 선호는 이런 식으로 전부 챙겼었지.” 그리고 유통 과정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순서였다. “어? 뭐야. 이거 왜 안 썩었어?” “키엑!” 이에 대해선 몇 가지 가정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건. 일부러 몬스터를 살려 뒀든지, 몬스터가 근처에 있든지. 그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밤이 찾아왔다. “대장님!” “쿠워어어어어!” 오크. 그것도 온몸이 새까맣게 물든 오크가 주민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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