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게이트는 처음이지? (1)2022.01.15.
오크와 다크울프의 등장은 나름대로 최고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러면 나가리 아닌가.” 단지 등장한 몬스터의 조합이 문제였다. “쿠오오!” 오크는 자신들의 먹이인 인간을 단번에 알아봤고, 본능적으로 협력 사냥을 할 줄 아는 개체였다. 이는 다크울프도 마찬가지. 둘의 성향은 너무나 비슷했다. “크르르르!” 심각한 주민성과는 다르게 판자촌 능력자들은 기쁨의 포효를 질러댔다. “키에에에엑! 대장님! 다크울프입니다!” “오크다! 오크! 키에에에엑!” “…….” 포효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이어지는 오크의 특이한 행동 때문이었다. “취힉! 쿠후!” “크라!” 다크울프는 주민성을 노려보며 자세를 낮추고, 오크는 빠르게 위에 올라탔다. 악명 높은 오크 라이더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판자촌 능력자들은 이놈들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뭐, 뭐야. 오크가 왜 저래?” “그래봐야 포섭 가능한 몬스터다. 동요하지 말고 포섭 활동에 전념하도록.” “예! 키에에에엑!” 판자촌 능력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오크 라이더의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면, 주민성에겐 난감한 상황이었다. ‘내 쪽이랑 너무 가까운데.’ 오크 라이더가 비교적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관없나.’ 주민성에겐 확실한 근거리 제압 수단도 있었다. “이용료……! 큭!” 놀랍게도 주민성의 이용료 청구는 취소됐다. 이용료 청구의 약점은 무생물. 그리고 지금 눈앞에 날아오는 것은 오크가 던진 투척 도끼였다. 쐐애애액! ‘잔해!’ 주민성은 급하게 인벤토리에서 건물 잔해를 꺼내 정면을 틀어막았다. 쾅! ‘무슨 힘이……!’ 방금은 건물 잔해에서 충격파가 일어날 정도의 공격이었다. ‘이놈들 지구전이 주력 아니었나?’ 공격 패턴도 여태껏 알던 것과 상당히 달랐다. 오크 라이더는 압도적인 방어력과 회피력을 앞세운 게릴라 전술과 지구전으로 악명이 높았지, 힘으로 찍어 누르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설마…….’ 자신의 공격이 막힌 오크는 크게 분노했다. “쿠오오오오!” 부가효과를 받고 있음에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괴성! ‘설마 내가 약하다는 걸 아는 건가?’ 주민성은 한 가지 차이를 알아차렸다. 기본적으로 오크를 상대하는 능력자 파티는 평균적으로 C급 이상. 게이트 원정 파티는 나름의 과잉 전력으로 구성된다. ‘몬스터까지 나를 무시하는구나.’ 즉, 오크 라이더는 강자를 사냥하는 방법과 약자를 사냥하는 방법을 구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약자에 속한다 이건가.’ 이를 증명하듯 정면에 있던 텐트가 하나둘 부서지기 시작했다. 우지직! 우직! [텐트 216이 크게 손상됩니다.] [텐트 217이 크게 손상됩니다.] ‘젠장! 접근해 온다!’ 텐트 몇 개의 손해라면 괜찮았지만,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콜록!” 오래된 건물 잔해가 오크의 공격에 바스러지면서 흙먼지가 뿜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텐트를 이용한 내구도 강화를 쓰는 방법도 존재했지만, 날붙이와 텐트 천의 상성이 너무 나빴다. ‘오크 놈들. 운이 좋군.’ 오크 라이더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투척 도끼 한번 던진 것으로 최강의 능력 중 하나인 이용료 청구를 억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람까지 고지대를 점하고 있는 주민성을 향해 불어 오크 라이더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큭!” 주민성은 허리춤에 감겨 있던 텐트를 풀어 얼굴을 감싸 미세먼지의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 동시에, 불어오는 미세먼지도 수납하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쿠오오오!” 이용료 청구는 단순하고 강력했지만, 조건부라는 단점이 존재한다. 건물을 특정해야 하고, 그 건물에 대상이 들어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직! 우직! [텐트 318이 손상됩니다.] [텐트 316이 손상됩니다.] ……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용료 청구의 시기를 놓쳤다. 텐트가 오크 라이더의 접근을 지연시키고는 있었음에도, 다크울프의 기동력은 주민성의 눈보다 빨랐으니까. “후우!” 다른 오크 라이더까지 달려들며 텐트의 손상을 알리는 메시지가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단생활을 하는 개체답게, 목소리가 큰 인간의 대장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건 주민성도 마찬가지. “준비는 완벽했어.” 이용료 청구가 무력화된 건 의외였지만, 이곳은 준비된 전장. 오크 라이더가 가속 능력을 쓰는 것이 아닌 이상, 주민성의 말하는 속도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삼육구.” [텐트 413이 수납됩니다.] [텐트 416이 수납됩니다.] [텐트 419가 수납됩니다.] …… “삼육구삼육구삼육구.” 빼곡하게 설치되어 있던 텐트가 듬성듬성 사라졌다. 그리고 눈앞의 오크 라이더가 주민성에게 접근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텐트는 수백 개. 비어 버린 공간은 순식간에 구덩이 함정으로 변했다. 콰직! 콰지지직! 쿵! 털썩! 쿠궁! “케엥!” “크췩!” 빼곡하게 세워져 있던 텐트가 듬성듬성 사라지자, 탄력받은 가속력은 되레 독이 되었다. 쿵! 쿵! 대부분의 오크 라이더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맨땅에 자빠지는 엄청난 장관이 펼쳐졌다. “쿠옥!” 어떻게든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사라지지 않은 텐트에 팔을 뻗는 오크도 있었다. 콰득! “쿠오오옥!” 안타깝게도 속이 텅 빈 텐트는 오크의 중심을 더욱 무너뜨릴 뿐. 이것은 텐트를 순서대로 점령한 주민성의 꼼꼼함과, 가상의 몬스터가 접근해 오는 상황까지 대비한 치밀함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구삼육…….” 최전방에 있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무력화되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더 이상 삼육구를 외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취익! 취익!” 오크가 오크다운 소리를 내고. “크릉……!” 다크울프는 기세를 잃고 주춤거렸다. “이제 누가 강자일까?” “……취익!” 이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콜록!” “키에엑…….” “대, 대위님?” 목이 터지라 소리치던 판자촌 능력자들도. 곁눈질하며 전투를 지켜본 송몽룡도. 충격에 말을 잃었다. ‘조금 무리했네.’ 과도한 능력 사용에 의해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주민성은 이를 내색할 수 없었다. 강약약강의 오크 라이더는 빈틈을 보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기세를 끌어올릴 테니까. “취이익!” 시야가 다시 확보되고, 몬스터가 주춤대는 순간. 그리고 집중에 필요한 시간까지 확보했다. 주민성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용료 청구.”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 주민성은 지금의 소강상태까지 기회 삼아 몬스터를 최대한 줄여 나가기 시작했다. “취이이익!” 쿵! 광분해 자빠지는 오크부터 시작해서. 콰직! “크취익!” 다른 오크 라이더를 물어버리는 다크울프까지. 이렇게 또다시 반절의 오크 라이더가 무력화됐다. “쿠오취!” 문제는 비교적 후방에 있던 오크 라이더였다. “취이쿰!” “으쿠취!” 더 이상 나타나는 몬스터는 없었다. 하지만 전장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간단한 의사소통을 마친 오크 라이더가 동시다발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여태껏 악명을 떨쳐 온 지구전을 펼치겠다는 의미이자, 주민성을 본격적인 사냥감으로 정했다는 신호였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게이트에서의 밤은 몬스터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상대는 다크울프. 놈은 어두울 때 더욱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다. 심지어 밤중에만 발현하는 새까만 안개는 오크의 존재감을 숨기기까지 한다. “대, 대장님! 도망가는 놈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주민성에겐 원거리 저격 능력도, 추적을 위한 가속 능력도 없었다. 이럴 땐 다른 능력자들에게 의지하는 방법도 있었다. “……아까워라.” “대장님! 잘 안 들립니다!” 하지만 주민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활약할 생각이었다. ‘저게 다 돈인데 양보할 순 없지.’ 몬스터는 돈이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마석이 있으니까. 여기서 주민성은 한술 더 떠 몬스터로 사업을 구상하려는 사람이었다. “괜찮습니다! 여기 무력화된 놈들만 포섭해 주세요!” “예!” 오크 라이더를 끝으로 몬스터 웨이브는 멈춘 상황. 아래쪽에선 송몽룡이 황당한 표정으로 주민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잘 봤어요?” “예…….” 건물 부가효과는 병을 치료할 뿐, 노화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러니까 능력 아끼세요. 정말 위급할 때만 쓰고.” “……예.” 주민성은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있었다. 16살의 소년이 이렇게까지 늙었다는 건, 집단 내에서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라와요. 보는 것만으로 도움 될 겁니다.” “제대로 배우겠습니다.” 주민성은 송몽룡에게 교과서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건물주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면 주변 사람, 주변 사물, 더 크게는 주변 환경까지 전부 이용해야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송몽룡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키에에에엑!” “취익……. 취익…….” 주민성과 송몽룡은 비석을 뒤로하고 오크 라이더가 사라진 방향으로 묵묵히 걸었다. “이렇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네. 이럴 때 쉬어야 해요.” 짧은 싸움이었지만, 주민성은 과도한 능력 사용으로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놈들은 밤이 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크울프 특성은 알죠?” “아뇨……. 잡아만 봤어요…….” “…….” S급 능력자와 FFF급 능력자의 시각차는 매우 컸다. 송몽룡에게 몬스터는 단순히 능력을 사용하는 대상이었을 뿐. 이 정도면 판자촌 능력자들을 이렇게까지 압박해낸 신우빈을 재평가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오크와 다크울프. 이놈들은 오크 라이더로 유명합니다. TV에서도 특집 방송이 꽤 나왔었죠.” “그랬군요…….” 주민성은 오크 라이더의 특징과 인천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설명했다. “맙소사, 거기서 A급 능력자까지 죽은 거예요?” “네. 굉장히 비참하게.” 동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A급 능력자조차 탈진 상태에 빠져 생방송으로 유언을 남기고 죽은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였다. 실제로 밤의 오크 라이더는 집요하고 악랄하게 능력자를 괴롭히며 지치게 만든다. “놈들이 가장 활약하기 좋은 지형은 저런 곳이죠.” 주민성이 가리킨 방향은 신성 측 차량이 지나가지 않은, 폐허 도시에서 조금 벗어난 폐건물 숲이었다. 이곳은 게이트 탐험 초기, 콩이와 함께 점령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인천 게이트처럼 몸을 숨기기 좋아 기습에 용이하죠.” “…….” 그제야 송몽룡은 긴장하며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여기는 인천 게이트가 아니니까.” 송몽룡은 잘 모르고 있었다. 이쪽 방면은 학원과 꽃집이 있는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 위험하잖아요!”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조용한 장소였다. 하지만 송몽룡은 평소보다 더욱 경계하고 있었다. 건물 안쪽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존재감이 문제였다. 송몽룡은 근처에 있는 폐건물을 주시하며 말했다. “몬스터, 저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노골적인 걸 봐선 함정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어……. 음…….” 송몽룡의 질문은 정답이었지만, 주민성은 이를 오답으로 결론 내렸다. “맞는데. 아닙니다.” “……네?” 그 순간. “……키엑!” “헉!” 철퍽! 송몽룡이 경계하던 건물에서 오크 라이더가 튀어나왔다. 정확히는 오크 라이더의 시체. 그리고 송몽룡을 놀라게 한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건물에 있던 건 몬스터가 맞습니다. 함정도 맞는데, 안에서 함정을 판 몬스터가 아군이니까 송몽룡 씨 질문은 오답입니다.” “…….” 이 상황은 주민성이 고블린 군단에게 내린 간단한 몇 가지 명령 때문이었다. “키엑! 키엑!” 실제로 고블린은 주민성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평소에는 몸을 숨겨라. 적대하는 몬스터는 죽여라. “키익! 키엑!” “그래. 잘했다. 너는 학원에 가도 좋다.” “키헤익!” 공을 세워라. 그러면 학원에서 살게 해 주겠다. 이것은 주민성이 걸어 둔 경품이었다. “맙소사……. 여기까지 생각해 둔 작전이었습니까?” “네.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 된다고 했었죠?” “……와.” “잘 봐요. 이젠 우리가 사냥할 시간이니까.” 집요하고 악랄한 사냥법은 오크 라이더의 전유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