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서비스 (3)2022.01.14.
“…….” “…….” 당연하게도 주민성에게 100억이란 돈은 없었다. 남은 현금이라곤 200만 원 남짓. ‘가격표가 뭐 이래?’ 봉춘향 역시 메시지를 눈으로 욕하고 있었다. “저, 저는 괜찮습니다…….” 메시지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돈을 내면 등급에 맞는 능력을 공유받을 수 있을 테니까. “크흠!” 이때, 수첩을 힐끗거리던 김 대위가 나섰다. “등급은 다음에 공유해도 괜찮지 않나?” “……네. 그렇습니다.” 호위 서비스는 이미 적용되고 있었다. 능력을 공유받지 않아도 호박술사는 이미 몬스터. 나름대로 D급 능력자를 위협할 만한 전투력을 갖췄다. 하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 봉춘향은 현실을 직시하고 체념했다.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껏 받은 도움이 있는데, 입 싹 닦고 모르는 척할 거로 생각했나?” “…….” 어느새 봉춘향 주변엔 판자촌 능력자들이 모여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S급은 확실히 무리지만, A급은 가능하겠지. 가격이 5억 정도라지?” “…….” 판자촌 능력자들은 다 같이 돈을 벌어서 봉춘향에게 몰아줄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부담스럽습니다. 차라리 해외 루트를 통해 제가 직접 각성하는 것이 가격 면에서 훨씬 저렴합니다.” “아, 그런 방법도 이젠 가능하구나…….” 봉춘향은 이미 차선책을 마련한 듯, 판자촌 능력자들의 제안을 차분히 거절했다. 이런 생각은 주민성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심어줬다. ‘어? 임시 서비스는 등급에 상관없이 몬스터가 능력을 공유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신우빈 같은 사람에겐 기절초풍할 만한 생각이었다. 돈만 있다면 본인의 등급과 관련 없이 자신을 최우선으로 호위하는 고등급 몬스터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지비도 사람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야.’ 몬스터는 급여를 받지 않는다. 자잘한 마석 섭취는 선택 사항일 뿐, 필수도 아니다. 이는 심지어 게이트에서 충당이 가능한 수준. 어쩌다 무리해서 몬스터가 다쳤을 경우? 도시에서 치료는 못 받겠지만, 게이트에선 주민성의 건물이 곧 병원이나 다름없었다. 즉, 서비스 비용만 부담하면 추가 비용의 지출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었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건 소유권.’ 코볼트를 비롯한 다른 몬스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블린과 데빌도그를 상대로는 주민성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거 전세나 다름없네?’ 호위 서비스는 기존 능력자들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상품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임시 서비스라는 추가 특혜가 있다. ‘수요층도 있어.’ 일반인 중에서도 수요층은 존재한다. 김 씨 아저씨들처럼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회사에서 지위를 쌓아 생계에 지장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각성 스캐너 사용을 찝찝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건물의 상품성을 더 높여서 끼워 팔아 봐야겠군.’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봉춘향의 입담은 판자촌 능력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1억이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지금도 다른 부대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끄응…….” 봉춘향이 말하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주민성은 메리트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봉춘향 씨의 임시 서비스는 보류하겠습니다.” “예. 그게 맞습니다…….” “보류 기한은 능력 각성 전까지.” “……잘 못 들었습니다?” 전투력은 능력자들이 아니더라도 몬스터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봉춘향은 이 집단에 있어서 컨트롤 타워나 다름없는 존재. 머리를 써야 하는 역할이었다. 이는 최선아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대체 불가능.’ 그리고 주민성에게 있어 각성 스캐너의 신뢰도는 한없이 마이너스에 가까웠다. “각성하면 C급 이상은 될 것 같죠?” “오래전 봤던 통계상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봉춘향은 괜히 육군 총장의 딸이 아니었다. 일반인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정보들도 섭렵한 모양이다. 물론 지금에 와선 구식 정보이긴 하지만. “댓츠 노노. 그렇지 않다.” “잘 못 들었습니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최악의 확률이 존재한다면 그것에도 대비하는 게 좋습니다.” “……예.” “그리고 이 랜덤 뽑기는……. 비싸지만 확실하죠. 돈만 있다면 A급이 보장되니까.” 임시 서비스의 전망은 아주 밝았다. 이용자의 증가는 곧 표본의 증가이니까. “저 믿고, 보류합시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결국은 대장의 부탁이었다. 봉춘향은 주민성의 제안에 순순히 응했다. “자자. 이제 마무리 작업합시다.” “예!” 호위 서비스 덕분에 텐트 설치 작업은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이윽고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다. 판자촌 능력자들은 교육과정을 통해 몬스터를 사로잡을 수 있었고, 주민성은 건물들을 이용해 몬스터를 무력화할 방법이 있었다. “식사 끝나면 오늘의 마지막 활동이 있겠습니다.” 판자촌 능력자들은 주민성이 나눠준 도시락을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 뭔가 더 있습니까?” “키익!” 이미 판자촌 능력자들은 호위 서비스를 만끽하며 부가효과까지 받고 있었다. 컨디션은 언제나 최상. 오후 늦은 시간에 생긴 추가 작업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 삼지 않았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라면에 밥만 말아 먹을 수 있다면 뭐든지!” 주민성은 뿌듯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몬스터 웨이브. 한 번만 더 하시죠.” “…….” 일순간 찾아온 정적.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몬스터 웨이브는 너무나 힘든 기억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자선 사업가가 아닐뿐더러,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억제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부상자는 전부 회복됐고. 사망자도 없습니다.”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 주민성은 어느새 선동꾼이 되어 사람들을 장악했다. “몬스터 웨이브는 돈이 됩니다. 아주 큰 돈이요.” 그뿐만이 아니었다. 판자촌 능력자들이 가진 능력에 대한 찬양은 기본이고, 교육 과정과 복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주민성 역시 이 비석의 변화를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제가 직접 보고 싶습니다.” “대위님. 이번엔 대장님도 있지 않습니까.” “끄응…….” 주민성이 바라는 건 비석의 영구적인 통제. 즉, 최선호가 보여 줬던 아름다운 형태였다. “예. 준비는 최대한 했습니다.” 비석 주변에 꼼꼼하게 텐트를 깔아 둔 이유는 보유 건물을 늘리기 위한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주에게 있어서 건물은 최강의 방패이자 무기. 이것은 전부 몬스터에 대항하기 위한 것들이었다. “식사는 여기까지 하지.” “예!” 김 대위 역시 각오를 끝낸 모양. 일부러 밥을 많이 먹어서 몸을 무겁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간단한 식후 운동이니까.” “…….” 여기서 긴장감이 없는 사람은 오직 주민성뿐이었다. ‘몬스터가 달라졌다지만…….’ 주민성은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간단합니다. 후방에서 무력화된 몬스터를 포획하세요. 아, 포섭 활동인가?” “예……? 전투가 아니고요?” “다른 분들도 오늘 교육 과정은 수료하셔야죠.” “그건 그렇지만…….” 걱정 어린 눈빛이 쏟아졌지만, 학교에서 보여 줬던 주민성의 활약이 떠올랐는지 이내 납득하는 모습이었다. “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준비는 완벽했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 줄 뿐. “그럼 갑니다.” 주민성은 텐트를 가로질러 비석 앞에 손을 올렸다. 지이잉. 주민성의 손이 닿은 비석이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대위님. 비석 색깔이 이상하지 말입니다.” “일단 지켜보자.” “예.” 뒤에서 들리는 대화에 조금 긴장도 됐지만, 비석의 변화는 이전과 동일했다. 고블린과 데빌도그가 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치는 나쁘지 않군.’ 첫 몬스터 군단이 출몰한 곳은 주민성이 설치한 텐트 바로 위. “케에엑?” 고블린은 본능적으로 손에 들려있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중심을 잡았다. “키에엑!” 주민성은 그런 고블린에게 인사했다. “어서와. 게이트는 처음이지?” “키야아악!” 조롱을 눈치챘는지, 그저 사람이 싫은 것인지 고블린은 분노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텐트를 헤집고 주민성에게 접근하려는 행동은 당연지사. “어? 그거 내 건데?” [텐트 328이 매우 미세하게 손상됩니다.] 떠오른 건 손상 메시지뿐. 임시 권한만 있었다면 고블린은 그대로 막대한 페널티를 입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도 페널티를 먹일 수단은 충분하다. 그게 단지 수동이라는 게 흠이다. “어? 너 텐트에 발 넣었어? 이용료 청구.” “킥?” 유치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명분이었지만, 이용료 청구는 절대적이었다.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은 0%] [절대 을은 두 개의 개체만 보유 가능합니다.] [절대 을 개체를 이미 보유 중입니다.] [이용료 청구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전에 봤던 익숙한 메시지. 주민성은 다음 결과를 알고 있었다. “키야아아악!” “끼히이이!” 절대 을의 한도에 막혀 버린 몬스터는 쉽사리 광분한다. “지금입니다!” “지, 지금입니까?” “네!” 판자촌 능력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용기 내어 외쳤다. “키, 키에에엑!” “그것이 아닙니다! 키에에에엑!” “……와.” 직접 보는 포섭 과정은 주민성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키에에에엑!” “키익!” “오! 됐다!” 괴상하게 외치는 것으로 정말 몬스터가 포섭된다는 사실이었다. “와. 저게 되네. 그보다 몬스터가 점점 늘어나는데…….” “크르르!” 주민성에게 몬스터들을 제압할 수단은 넘쳐났다. 단지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방법이 고민될 뿐. “일단 유인부터 하자.” 크룩스면 모를까, 하급 몬스터들은 텐트에 제대로 된 피해를 끼칠 수 없었다. 오히려 텐트 숲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크라악!” 하지만 텐트를 빠져나와 도약하려는 데빌도그도 있었다. “응. 거기 있으렴.” [텐트 421이 수납됩니다.] “켕!” 딛고 있던 텐트가 사라면서, 데빌도그는 자연스럽게 지면과 충돌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데빌도그를 죽임으로써 얻는 최하급 마석보단 전투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용했다. “그냥 말 듣자.” 최악의 상황이 찾아온다면 텐트를 뒤집어쓰고 건물 폭파를 활용하겠지만, 판자촌 능력자들은 최선을 다해 몬스터를 사로잡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콜록!” “키익!” “성공입니다!” 능력자들은 능력을 쓰지 않고, 몬스터는 텐트 숲에서 허우적대는 기묘한 핸디캡 매치가 지속되었다. 그 와중에도 주민성은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방향을 주시했다. ‘다른 몬스터가 나올 때가 됐는데…….’ 잠시 후. 비석 근처에서 수상해 보이는 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른 몬스터가 쏟아졌다. “나왔다!” 오크는 아직이었지만, 코볼트, 호박술사 등 D급 수준의 몬스터가 출현했다. ‘점점 강한 놈이 나오는 방식인가?’ 몬스터 웨이브가 왜 이렇게 변질되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주민성의 사고를 지배했다. “수납. 이용료 청구. 수납.” “크게겍!” “쉬익!” 주민성의 시야엔 메시지들로 가득했다. 텐트를 수납했다는 것과 이용료 청구를 했다는 메시지들이었다. “좋아. 무력화는 성공했고……. 지원 좀 받아야겠는데.” 그와 동시에. 코볼트 집단 근처에서 송몽룡과 오크가 등장했다. “콜록! 콜록!” “오잉?” “제가 하면 안 되네요. 계속 키에에엑 거려봤는데.” “키에에에엑일걸요? 그보다 능력은…….” 송몽룡은 이전보다 훨씬 늙은 모습이었다. 시간을 멈추고 코볼트 주변에서 포섭 시도를 한 모양. “노화는 어떻게 안 되는 겁니까?” “아, 이건 시간이 좀 지나야 해결됩니다.” “어느 정도요?” “한 달 정도요……. 그쯤 쉬어야 10년쯤 젊어집니다.” “…….” 송몽룡의 능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늙는다는 페널티가 너무 치명적이었다. “송몽룡 씨는 후방에서 봉춘향 씨와 대기해 주십시오.” “예…….” 송몽룡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텐트 사이를 헤쳐 나가는 사이. 또 다른 괴성이 들려왔다. “쿠어어어!” “어?” 이건 주민성도 알고 있었다. 아주 유명한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크라아아!” 이번에 등장한 몬스터는 오크와 다크 울프. 인천의 악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