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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못 참지. (2) (41/250)

이건 못 참지. (2)2022.01.11.

주민성은 데빌도그에 올라 비석을 향해 달렸다. “크르릉!” “그래. 쭉쭉 가자.” 비석에 가까워 갈수록 주변 건물의 상태는 처참했다. 큰 전투가 있었던 모양. “아이고 아까워라…….” 현재로서 부서진 건물들의 소유권은 주민성에게 없었지만, 저 건물을 가질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 모든 것들이 전부 주민성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웨이브를 일으킬 거면 곱게 싸울 것이지.” 건물 상태가 완파 직전이었다면 학원이나 꽃집처럼 복원 가능성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아니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주민성의 아른거리는 기억에만 존재할 뿐, 지금은 완벽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이러면 선호도 난감할 텐데.” 비어 버린 부지는 활용하기 상당히 난감했다. 최선호는 전문적인 건축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전한 건설에는 반드시 건물주 능력을 통한 보정이 필요하다. “에휴.” 주민성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비석 앞에 도착했다. 그곳엔 녹초 상태인 능력자들과 아군 몬스터들이 한가득 뻗어 있었다. “어으…….” “이게 무슨…….”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진 않았다. 능력자들이 제법 활약한 모양. 그럼에도 주민성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했다. ‘뭐야, 저것들은?’ 주변엔 수많은 고블린과 데빌도그들이 죽어 있었다. 이것만 본다면 이상한 광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곳에 고블린과 데빌도그도 아닌, 다른 시체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오크가 여기 왜 있어?’ 주민성은 능력자가 되기 전부터 친구들과 잡을 몬스터들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그 외에도 D급 게이트에서 볼법한 코볼트, 호박 술사의 시체도 있었다. ‘몬스터 소환 능력자라도 있던 건가?’ 또 다른 괴상한 능력자의 존재까지 의심했다. 주민성 본인이 그런 범주에 속했기 때문이다. “크음…….” 주민성이 잠시 서 있자, 주변에 누워 있던 능력자들이 전부 잠들었다. 수면향의 효과는 엄청났다. 그 와중에도 고블린들은 부지런하게 최하급 마석들을 골라서 나르고 있었다. “키익! 키익!” 문제는 최하급 마석을 제외한 마석들을 고블린들이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꿀꺽. 주민성의 마음속에 한 줄기 탐욕이 생겼다. ‘저것들만 챙기면 손해를 조금은 메꿀 수 있겠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잠든 상황.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은 한정되어 있었다. ‘일단 판자촌 사람들은 마석 회수에 불만 없을 테고…….’ 주민성은 잠들어있는 정장 차림의 신성측 능력자들을 살폈다. ‘이들 역시 월급을 따로 받겠지. 추가 수당도 신우빈이 주면 되고.’ 마석 회수에 대한 정당성도 확보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뿐. ‘인벤토리. 주변의 마석 회수.’ 주민성은 잠시 집중해 인벤토리를 운용했다. 높아진 건물주 등급 덕분에 마석을 회수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넓었다. [중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하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 인벤토리가 알아서 마석을 회수하는 사이, 주민성은 신우빈을 찾기 위해 주변을 걸었다. 그리고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공터에 낯익은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신우빈의 전속 호위와 김 대위가 졸음을 견디고 있었다. “으음……. 대장. 오셨습니까?” “……이게 다 뭡니까?” “아, 이건 설명하기가…….” 김 대위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옆에 있는 전속 호위의 눈치가 보이는 모양. ‘보안이 필요한 정보인가.’ 김 대위의 생각을 이해한 주민성은 꽃다발을 살랑거리며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우빈 씨, 안에 계십니까?” “……예.” 전속 호위 또한 몰려오는 졸음의 원인을 찾기 위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지만, 주민성의 천연덕스러운 태도는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동시에, 텐트 안에서 신우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주민성이야?” “그렇습니다. 도련님.” 곧장 텐트 문이 열리고 신우빈이 얼굴을 내밀었다. “아오. 좁아 죽겠네.” “그럼 나오시든가요.” “아, 그건 좀…….” 신우빈은 이미 텐트의 효능에 눈을 뜬 모양이다. 그리고 텐트 안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대장님!” “…….” 봉춘향이 있었고, 판자촌 능력자들의 전대 대장이었던 노인도 있었다. “……크흠!” “괜찮으십니까?” “예. 덕분에 살았습니다. 보통 텐트가 아니더군요.” “…….” 신우빈과 마찬가지로 노인 또한 텐트 밖으로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좁아 터진 싸구려 텐트 안엔 주민성이 들어갈 공간 따윈 없었다. “어휴. 보기만 해도 답답하네.” 그럼에도 주민성은 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만들 수가 없었다. 손에 들려 있는 꽃다발 때문이었다. “대장님도 오셨으니……. 조금만 쉬겠습니다…….” “도련님. 죄송…….” 털썩! 털썩! “네. 쉬세요.” 김대위와 신우빈의 전속 호위가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에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고 있던 능력자들은 진작에 잠든 상황. 이 수면향을 견딜 수 있는 건, 건물의 부가효과로 내성이 생긴 아군 몬스터와 텐트 안에 있는 인원들뿐이었다. “……주민성. 무슨 짓이냐.” 모처럼 신우빈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봉춘향이 외쳤다. “몽룡!” “음!” “무, 무슨 짓이야!” 황당하게도 노인의 이름은 몽룡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름보다 놀라운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주민성이 눈 깜빡하는 사이, 신우빈은 몽룡에 의해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무슨 능력이지? 가속 수준이 아닌데?’ 가속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아무런 풍압도 느껴지지 않았고, 텐트 역시 멀쩡했으니까. “야! 주민성! 너 미쳤어?” “……내가 할 말인데. 그쪽 미쳤습니까?” “하…….” 봉춘향 역시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우빈 씨. 무슨 꿍꿍입니까.” “뭐라는 거야! 나 아무 짓도 안 했어! 억울하다고! 오히려 너희들 지원해 준 건 나잖아!” “그건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쪽 없이도 해결될 일입니다. 그리고 대장님은 당신에게 따로 할 말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은 전부 주민성편이었다. 심지어 몬스터까지. 그리고 신우빈은 F급 능력자였다. 이런 상황 때문이었을까, 봉춘향이 눈치 빠르게 밥상을 깔았다. 노인 역시 협조적이었다. 여기서 주민성이 역할은, 숟가락으로 차려진 밥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음.”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예전에 구매했던 탁자를 꺼내고 그 위에 꽃을 올렸다. 꽃이 있는 한, 제삼자가 개입해 올 가능성은 없다. “뭐 일단, 카드는 잘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이딴 대우냐?” “지원도 감사합니다. 그쪽 없어도 해결될 일이라곤 하지만.” “…….” 이에 대해선 신우빈도 억울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정말 판자촌 능력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용건만 말해. 포승줄 더럽게 답답하니까.” “오. 얘기가 빨라서 좋네요. 신우빈 씨를 비롯해서, 신성측 직원들이 제 건물들에 손해를 끼쳤습니다.” 정확히 따진다면 미래의 건물이겠지만. “무슨 건물?” “주변을 보고도 모르겠습니까?” 비석 주변은 말 그대로 초토화된 상태. 멀쩡한 건물이라곤 단 한 채도 없었다. “야! 그거 나만 그랬냐? 얘들도……! 콜록! 콜록!” “……?” 왜인지 봉춘향이 노인을 보고 끄덕이고, 신우빈은 사레가 들어 미친 듯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노인의 능력인가?’ 주민성은 새삼 자신의 운이 좋았음을 통감했다. 노인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본의 아니게 건드린 것이 결과적으로 주민성을 살린 것. “신우빈. 우리 관계가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위 능력자를 상대로 이러면 안 되지.” “…….” 고위 능력자는 몽룡 노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 대장은 나보다 훨씬 강하니까.” “…….” 고위 능력자는 주민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거 난감하네.’ 주민성이 괴상한 능력들로 유별나게 강한 면모를 보여 왔다곤 하나, 노인은 진짜배기 고위 능력자. FFF급다운 빈틈을 보이면 역으로 제압당하는 건 주민성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화풀이는 자제해야겠군.’ 상황을 파악한 주민성은 태도를 살짝 바꿨다. “신우빈 씨. 유물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물은 내 쪽으로 넘어왔다. 주민성. 협박은 역효과라는 걸 명심해라.” “협박한 적 없는데 왜 그러실까? 하하…….” 도시에서 신나게 질러댄 덕분에, 주민성의 인벤토리엔 수백 개의 싸구려 텐트가 들어있었다. “자자. 일단 텐트는 개인당 하나씩 씁시다.” 주민성은 재빠르게 텐트 2개를 더 설치해 몽룡 노인과 봉춘향에게 분배했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이용료 청구 능력을 활용해 확실한 갑을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있었지만, 건물주 능력은 주민성에게 수많은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었다. ‘저런 타입은 실력 행사로 증명해 보이는 게 낫겠지.’ 이런 생각들을 뒤로한 채, 주민성은 신우빈의 포승줄의 매듭을 풀었다. ‘매듭 엄청 꼼꼼하네. 이걸 순식간에 해버린다고?’ 주민성은 다시 한번 노인의 능력에 감탄했다. “주민성. 다신 날 열 받게 하지 마라.” “아, 네네.” “하.” 신우빈은 불만이 엄청나게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 역시 노인의 능력을 똑똑히 봤다. 노인의 능력엔 분노를 자연스럽게 조절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젠장. 이런 식으로 계약에 빈틈이 생길 줄이야.” “허허. 어쩌겠나.” 노인 역시 지금의 상황에 크게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텐트의 효과도 포함해서. 털썩. 신우빈의 포박을 해제한 주민성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대화를 이끌었다. “일단 상황부터 얘기합시다. 여기 신우빈 씨도 있으니까 제 능력과 관련된 내용은 제외하고 있었던 일만 얘기해주십시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비석에 도착한 시점부터…….” 봉춘향의 설명은 조금 길었다. 이를 요약하자면, 판자촌 능력자들이 비석에 도착해 몬스터 웨이브를 인위적으로 일으켰다는 이야기였다. “몬스터 웨이브에 다른 몬스터가 섞여 나왔다 이 말입니까?” “……예. 지구상에 처음으로 게이트가 나타났을 때와 비슷한 현상입니다.” 봉춘향은 심각하게 말했지만 주민성의 입꼬리는 끊임없이 씰룩였다. ‘여기서 더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면 다른 게이트에 갈 필요도 없어지잖아? 대박인데?’ 예전 같으면 주민성도 걱정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최선호를 통해 시야가 더욱 넓어졌기 때문이다. ‘비석 주변을 어떻게든 건물화 시킨다면……!’ 만약 계획대로만 이뤄진다면 몬스터 웨이브가 더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기쁨이 가득한 수확 행사가 될 일이었다. “대, 대장님?” 입가를 마구 씰룩이는 주민성이 걱정되었을까. 봉춘향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크흠! 아, 그랬군요. 피해는 어느 정도죠?” “대부분 부상을 입긴 했지만. 사망자는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가장 강한 몬스터는 뭐였죠?” “와이번입니다.” “……엥?” 이는 주민성도 순순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이번은 B급 게이트에서도 중간 보스급의 위치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 적은데? 신우빈측 능력자들이 강해서 그런가?’ 주민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신우빈을 바라봤지만, 신우빈의 시선은 노인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이다. 저놈 혼자서 전부 처리했어.” “…….” 신우빈이 노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했다. 봉춘향 또한 그랬다. ‘능력자들은 원래 노인 공경을 안 하는 건가?’ 전투 중엔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건물 부가효과로 심리적 안정 효과까지 적용된 상황. “저기, 몽룡 노인께선 전대 대장 아닙니까?” “맞습니다.” “…….” 의문이 더욱 확실해졌다. 다나까를 고집하던 봉춘향조차 노인을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아, 너 모르는구나? 저거 얼굴만 늙은이야.” “또 묶이고 싶나?” “쳇.” “…….” 주민성으로 하여금 중재하기도 난감한, 황당한 대치였다. “나만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겁니까?” “아, 오해하실 만도 합니다. 몽룡아. 네가 직접 말해.” “응…….” 노인은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대장님. 저 사실 16살이에요. 등급은 S급이고.” “…….” “능력은…….” 충격적인 건 나이뿐만이 아니었다. 등급도 놀라웠지만, 더욱 충격적인 건 노인의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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