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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못 참지. (1) (40/250)

이건 못 참지. (1)2022.01.10.

“게이트까지 얼마나 걸리죠?” “30분이면 충분합니다.” “네.” 리무진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인력 사무소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탑승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리무진엔 사무실을 지켜야 할 이수길도 탑승하고 있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인데, 협회에서 수상한 능력자들을 부리고 있어요. 아마 사무소까지 타겟일 거예요.” “허…….” 특정 장소에서 있던 일들을 알아내는 능력자는 주민성에게 있어 터무니없이 찝찝한 존재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막장 계약을 하는 능력자들이 인권을 존중하고 일반인을 배려한다는 희망을 품기보단, 자신이 직접 주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현명했다. “저희는 일단 게이트로 갑니다. 운전 기사분도 방어에 특화된 능력자시니까 같이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해요.” “그렇다면 그렇겠지.” 의아해하는 이수길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차량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와! 이게 다 뭐시여!” 리무진 안에는 고급 와인부터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는 기본이고, 지루함을 달래 줄 신성 계열사의 각종 제품이 비치되어 있었다. 다만 주민성은 술보단 보약을 즐기는 쪽이라 손대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필요한 물건은 전부 인벤토리에 담아 두기 때문에 남의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목적지는 게이트입니다. 아마도 뛰어야 할 테니 적당히 드세요.” “끄응…….” 달리기는 주민성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막막했다. 건물주의 부가효과 덕분에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FFF급이라는 등급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원도 많아 최선아 혼자서 업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최선호의 경멸 어린 표정까지 받으면 정신적인 데미지 또한 상당할 터. ‘결국은 직접 뛸 수밖에 없나.’ 주민성이 내심 안타까워하던 사이, 운전기사는 정신없이 운전석에 있는 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운전엔 안정감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유능한 운전기사의 표본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뭔가 내용물이 빽빽한 서류까지 출력되기 시작했다. ‘뭐지? 이 와중에도 다른 일을 하는 건가?’ 운전기사는 서류를 잠시 읽고는 또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차량번호 7777. 게이트 내 차량 출입을 승인받았습니다. 동승 인원은 기밀이며, 관련 서류는 전송해 뒀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허억!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주민성은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의 후계자가 신뢰하는 인물의 유능함은 차원이 달랐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임무를 수행하고, 주민성을 배려해 동승 인원까지 기밀에 붙였다. 메시지를 의인화한다면 분명 운전기사 같은 사람이리라. “현장까지 즉시 돌입하겠습니다.” “예? 그러고 보니 정확한 위치는 못 들었는데요?” “통화 기록과 위치를 조회했습니다. 도련님이 계신 장소는 구 안양 시가지입니다.” “아…….” 돈이 많으면 자잘한 대화의 귀찮음도 사라지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주민성에게 난처한 상황이었다. 기존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원에 들러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려고 했는데…….’ 운전기사가 말하는 구 안양 시가지는 폐허 도시였다. 그리고 주민성의 본진인 학원도 폐허 도시에 있었다. 게다가 이 도시엔 비석이라는 특이사항이 한 가지 존재한다. ‘몬스터 웨이브…….’ 통화음에 섞여 들려오던 몬스터의 괴성. 그리고 다급했던 상황. 마지막으로 사건 장소. 이 모든 것들이 몬스터 웨이브와 관련 있다는 사실은 주민성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냐인데.’ 기본적으로 게이트 내부는 변수가 많다. 그리고 변수 덩어리인 콩이가 있다. ‘크룩스나 고블린 라이더라면 명령대로 잘 숨어 있겠지만, 콩이는 아닐 테고.’ 주민성은 한숨을 짓곤 빠르게 바뀌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혔다. 그러자 후방 거울 너머로 수심 어린 최선아의 표정이 보였다. “……선아 씨? 무슨 일이에요?” “아……. 통화, 저도 들었거든요.” “네. 그랬었죠.” 최선아는 뭔가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편하게 말해요. 우리 다 한 팀인데.” “……아까 민성 씨 통화할 때, 블링이 목소리가 들렸어요.” “…….” 최선아가 말하는 블링이는 가속 능력을 쓰는 고블린 오 형제 중 한 마리였다. ‘선아 씨가 들은 게 착각이 아니라면 신우빈도 걔들을 봤다는 건데?’ 상황은 점점 복잡해졌다. 잘 숨겼다고 생각한 고블린까지 변수를 일으킨 모양. ‘걔들은 학교에 있었는데?’ 게다가 통화음 너머 다급하게 들렸던 제삼자의 목소리. 그가 곧 판자촌 능력자일 가능성도 생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신우빈은 나를 통한 수습을 원한다.’ 주민성은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고뇌였다. ‘통화는 가능했어. 현장의 통제는 제대로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최선아의 심각한 목소리 때문인지 리무진 내부는 침묵에 휩싸였다. 차량이 워낙 좋은 탓에 배기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도로는 갈수록 한산해져 리무진의 속도 또한 빨라지기 시작했다. “곧 게이트 입구에 진입합니다.” “…….” 곧이어 주민성에게도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절박한 심정으로 택시에서 바라본 풍경이었다. ‘저 경비실은 언제 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군.’ 이때, 운전기사가 차량을 다시금 조작하기 시작했다. “초가속 모드로 전환합니다. 예상되는 현장 도착시간은 3분 뒤입니다.” “……예?” 삐빅! 삑! 이 리무진은 주민성이 상식적으로 알던 리무진이 아니었다. 철컥! 철컥! 위이이잉! 차량의 변화는 조수석에 있는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미친.’ 여태 잘 굴러가던 바퀴가 사라지고, 차체의 색깔 자체가 반투명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바깥에서 차량의 내부는 볼 수 없다. “공기의 저항이 사라집니다. 차량에서 내리기 전, 안내를 따라 주십시오.” “…….” 키기기긱! 철컥!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변신하는 차량은 실제로 완성되어 있었다. 왜 그렇게 강한 협회장이 고작 기업에 불과한 신성을 경계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민성이 텐트를 끔찍하게 아끼는 것처럼, 신성은 자신들의 기술을 끔찍하게 아끼고 있던 것이다. 끼릭! -초가속 모드 전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주민성은 대답을 위해 벌렸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초가속을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쿠콰콰콰콰! “…….” 초가속 모드는 최선아의 가속 능력과 차원이 달랐다. 그녀가 왜 F급이었는지, 고등급의 가속 능력자의 출력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쿠콰콰콰콰콱! 공기의 저항은 없었다. 대신 저항하려던 공기가 주변을 찢어발길 뿐이었다. ‘아, 안 돼!’ 건물이 완파되었다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게이트 탐험 초기에 소유했던 최하급 건물들이었다. 차량이 워낙 빠른 탓에 말릴 틈도 없었다. 그렇게 수십 개의 건물이 완파되고, 주민성은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건물을 보수하다 보면 건물주 등급도 상승할거고…….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파괴된 건물이 50채를 넘어가고, 주민성의 심경엔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게 다 신우빈 때문이잖아?’ 결국, 파괴된 건물이 100채를 돌파했다. “헤헤헤……. 헤헷……. 이건 못 참지. 으헤헤.” “미, 민성 씨?” “……시가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주변이 차량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속도를 낮추겠습니다.” 주민성의 눈치를 보던 운전기사가 뒤늦게 속도를 낮췄지만, 상황은 이미 늦었다. “아뇨. 차 여기서 세워요……. 헤헤헤.” “……예.” “형! 괜찮아요?” “아, 그래그래. 선호가 있었구나. 정신 차려야겠지……. 일단 전부 내려 주세요.” 차량에서 내린 주민성은 슬픈 표정으로 메시지를 하나하나 지워 나가며 말했다. “저기 학원 보이시죠? 제가 심혈을 기울여 고친 건물이라 안전할 겁니다. 거기로 대피하세요.”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응? 다들 뭐 해요?” “……민성아.” “네?” “대체 어떤 학원을 말하는 거냐.” 주민성이 리모델링한 학원은 폐허 도시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에 속했다. “저기 잘 보이는 건물이요.” “응? 돌무더기를 말하는 거냐?” “어라?” 이수길의 의아한 대답에 주민성은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학원을 바라봤다. “어?” 학원 건물이 있던 자리엔 어느새 거대한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그것도 무려 8층 건물의 높이로. “이봐! 주민성! 얘기가 다르잖아! 우릴 매몰시키려는 셈이냐?” 가짜 인부도 실상은 능력자였다. 여차하면 능력을 써서라도 주민성을 제압하려는 모양. 이런 수단까지 선택할 정도로 학원 건물이었던 돌무더기는 위태로운 모양으로 세워져 있었다. “음. 이게 사정이 좀 있는데……. 절대 안 무너지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 주민성의 차분한 설명 덕분에 경계는 다소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경계가 대폭 상승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키익?” “키게겍!” 돌무더기 안에서 고블린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키엑! 키엑! 키엑!” 심지어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기까지. “민성아! 저거 몬스터잖냐!” “아……. 그게……. 쟤들은 제 부하거든요.” “…….” 실제로 고블린들은 주민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키익! 키엑! 키익!” “……보세요. 공격 안 하죠?” “…….” 고블린들의 목청이 커지자, 주변의 건물에 숨어 있던 다른 고블린들까지 합류했다. 심지어 꽃집에서 나온 한 고블린은 쓰레기 비닐 조각으로 꽃다발까지 만들어서 주민성에게 건넸다. “키게겍!” “…….” 한시라도 빨리 신우빈에게 합류해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주민성은 꽃다발을 홀린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저 꽃은…….’ 꽃집의 보수를 끝내고 나서 자라게 된 이름 없는 꽃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크룩스와의 전투로 꽃집의 상태가 크게 나빠지고, 다신 자라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꽃은 고블린들의 노력으로 되살아났다. “키엑!” “그래.” 주민성은 조심스레 꽃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 고유 효과로 자란 식물을 최초로 수확했습니다.] [식물의 고유 효과가 발견되었습니다.] [수면향을 내뿜는 꽃입니다.] [식물의 고유 효과가 5배 증폭됩니다.] [이름이 없는 식물입니다.] [효과가 반감됩니다.] 주민성은 홀린 듯이 꽃의 이름을 지었다. “민성 씨? 괜찮아요?” “……이름은 고블린 꽃.” [식물의 이름이 고블린 꽃으로 정해졌습니다.] [수면향이 정상적으로 발생합니다.] 메시지가 추가됨과 동시에 수면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으어어…….” “큭!” 털썩! 털썩! 향을 맡은 가짜 인부 두 명이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텐트를 받지 않은 또 다른 한 사람. 운전기사는 필사적으로 저항을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끄아아…….” 털썩! 상당히 강력한 방어 능력을 보유했다고 판단되는 운전기사마저 쓰러졌다. 물리적인 방어에 특화된 모양. ‘뭐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설마?’ 잠들지 않은 사람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정확히는 공통적으로 허리에 두르고 있는 물건. 바로 텐트였다. ‘건물 부가효과 덕분인가.’ 조금 취한 것 같은 기분만 들 뿐. 수면욕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점이 있었다. “키에엑!” 고블린들 또한 잠들지 않은 것이다. 수면향에 면역이 되어 있거나, 건물 안에서 지내며 부가효과를 오랜 기간 받았기 때문이리라. “후후.” 주민성은 꽃의 효과에 크게 만족했다. 이렇게 온갖 일이 벌어지는 게이트 안에선 꽃을 써먹을 구석이 어떻게든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고블린들.” “킥!” “나를 제외하고 여기 있는 전부, 학원으로 안내해.” “키익!”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능력으로 형성된 갑을관계는 명령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킥!” 쓰러진 사람들은 직접 나르고,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돌무더기로 보이는 학원을 향해 걸어갔다. “아저씨. 일 끝나면 바로 돌아갈게요. 그동안 건물 내부라도 구경하세요.” “어? 그, 그래…….” 최선아와 다르게 이수길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몬스터를 직접 보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는 모양. “후후.” 고블린들을 건물로 들여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 주민성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꽃을 반드시 건네줘야 할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데빌도그. 아무나 나 좀 태워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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