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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결과 (3) (39/250)

학습의 결과 (3)2022.01.09.

계약을 마치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응접실을 빠져나온 주민성은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했다. 이수길과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는 김 씨와 박 씨였다. “아저씨! 잘 지내셨어요?” “이야! 이 녀석 잘생겨진 것 봐라?” “걱정한 보람이 없구먼그래!” 김세창, 박봉걸. 이 둘은 이수길의 인력 사무소를 대표하는 최고의 에이스들이다. 단순 노동직이 아닌 수많은 전문 기술들로 무장한 덕분에 웬만한 C급 능력자들과 비교해도 벌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무난하게 각성을 하고도 남을 재산이 있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 지금의 직업에 만족하는 케이스였다. “수길 아저씨한테 얘기는 들으셨죠?” “그래. 대충은 들었다. 상당히 난처해 보이던데.” “예. 아저씨들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건물 잔해를 이용해서도 건축은 가능하지만, 주민성은 여기서 좀 더 욕심을 낼 생각이었다. 낙후된 자재로 지은 건물보단, 새로 만든 자재들로 제대로 된 신축 건물을 지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 제대로 얘기해 보자꾸나.” 실무 외적인 부분은 김 씨의 담당이었다. 전국구로 활동하던 박 씨 같은 경우엔, 수많은 지역의 사투리가 섞여서 말을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게이트에서의 안전 보장. 이것이 최우선이다.” “물론입니다.” “게이트는 F급이라고 하던데, 사람들의 발길도 적고.” “많이 알고 계셨네요.” “따로 조사는 해 봤다. 하루 이틀 작업으로 끝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 말이야.” 김 씨는 자신이 조사한 정보들을 차분히 풀어냈다. ‘유동 인구부터 미래의 접근성까지 조사하셨을 줄이야.’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들이니만큼, 미래를 생각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하고 진지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이 작업은 협회에서도 허가해 주지 않는다는 점.” “…….” 나머지는 전부 괜찮았지만, 게이트 내부는 건축이 허가되지 않은 지역이라는 사실이 주민성의 유일한 약점이었다. 하지만 이 약점은 커버해 줄 수 있는 인물이자 기업이 존재한다. “제 뒤엔 이것이 있습니다.” 주민성은 골드 카드를 내밀어 보였다. “이런건 보여 줘도 모른다. 녀석아.” “아, 죄송해요. 저는 신성과 일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신우빈과요.” 이때, 박 씨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뭐시여? 신우빈이?” “아, 아세요?” “알다마다! 그 망나니를 모를 리 없제!” “설마 구면……?” “으이!” 박 씨는 남은 믹스커피를 단번에 들이켜며 말했다. “금마가 부산에서 뭔 짓을 한 줄 아나?” 주민성은 박 씨의 쏟아지는 설명을 경청했다. “미친.” 박 씨의 경험담은 부가효과를 받는 주민성조차 경악할 정도였다. 대충 정리하자면, 멀쩡한 산과 빈민촌을 전부 밀어버리고 건물을 세웠다가 마음에 안 든다며 단번에 철거한 일화였다. 이어지는 이야기의 내용은 더 심각했다. 건물을 철거하고 지하 벙커를 짓는 과정에서 건설 책임자를 발로 걷어찬 것으로 모자라 고소까지 해 징역살이까지 보냈다고 한다. “아…….” “그 사건 이후로 신우빈이와 작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제.” “왜요?” “이쪽 업계가 전부 그랴. 돈이 전부가 아니여.” 이해하기 힘든 얘기였지만, 해당 업계의 룰이 그렇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납득해야 할 이야기였다. “그래도 돈 계산은 확실했죠?” “당연하지. 그것도 못 받았으믄 고것이 신성을 물려받기나 하겠어?” 박 씨는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작업했던 모든 것들이 신우빈의 지시 한 번에 전부 무너졌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건설 책임자가 문제였나. 분명 아무 이유 없이 막장짓을 할 인간은 아니었는데. 따로 알아 보는것도 좋겠군. 얕볼 상대는 아니니까.’ 주민성은 자신의 안목을 믿기로 했다. 특히, 돈계산이 확실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저씨. 제가 이것 하나는 보장할 수 있습니다.” “뭔디.” “신우빈은 제 작업을 절대 철회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가당키나 하당가?” 주민성은 자신있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가 갑이거든요.” 김 씨와 박 씨가 벙찐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주민성의 낯빛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건물과 관련된 모든 일에선 무조건 건물주가 갑이었다. 처음부터 건물주는 그런 능력이었다. “이 카드가요. 신성의 VVVIP 전용 카드예요.” “VVVIP?” “네. 신성과 관련된 모든 사업장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카드요.” “그쪽 매장은 전부 비싼 물건만 파는거 아니여?” “맞아요. 이 카드는 무료로 다 해 줍니다.” “아이고. 세상 말세구먼.” 신성과의, 정확히는 신우빈과의 신뢰의 증표도 있다. 막대한 가격의 유물도 받기로 했다. 주민성이 보여야 할 것은 자신의 미래 가치뿐. “아저씨. 안전은 확실하게 보장되고요. 수당도 확실하게 챙겨 드립니다. 그리고.” 여기서 김 씨와 박 씨를 설득할 만한 확실한 카드가 한 가지 더 있다. “작업하신 건물의 지분도 어느 정도 드릴게요.” “지, 지분? 부자들만 있다는 그거?” “네.” 아무리 김 씨와 박 씨의 수입이 좋다고 해서 특정 사업체의 지분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둘은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때문에 이런 제안은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제 능력명은 잘 아시죠?” “건물주였지? 나 어릴 때 잘나가던…….” “네. 맞아요. 일하지 않아도 돈이 벌리는 체험을 해 보시죠.” 김 씨와 박 씨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민성은 추가적인 퍼포먼스를 펼쳤다. ‘인벤토리.’ 천장에 까만 구체가 떠올랐다. “어이쿠! 이게 뭐시여!” “민성아! 여기 일반인 구역이다!” 주민성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주문을 외웠다. “여태 제가 번 돈입니다.” “응?” 촤르르르! 팔랑거리는 지폐가 아니었다. 너무 많아서 무거워진 지폐 뭉치가 쏟아졌다. 촤르르르르르르! “으어어어!” “이게 다 얼마여!” 촤르르르르르르르르! 묵묵히 이 광경을 지켜보던 최선아는 조용히 동생의 눈을 가렸다. “최선호 눈 감아. 애들이 보기 너무 자극적이다.” “누나, 뭐야 갑자기.” 사무실 앞에서 안쪽을 힐끗거리던 운전기사마저도 주민성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다 제 능력으로 번 돈이에요! 방송 출연료? 그거 300만 원밖에 안돼요.” 쿠르르르르르! 뒤이어 쏟아지는 건 마석이었다. “이건 전부 마석이죠. 개당 만 원 정도에 정산 받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가는 게이트의 몬스터들에게 얻은 거고요.” “이 많은 게 전부?” “네.” “아이고. 몬스터 씨가 말랐겠구먼.” 퍼포먼스의 효과는 굉장했다. 심지어 청소도 필요 없는 퍼포먼스였다. 물건 회수도 인벤토리가 할 테니까. “좋은 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는 거죠.” “크흠! 민성이 말이 맞지! 대단한 녀석이야.” 함께 포쁠 한우를 먹은 전적이 있는 이수길마저 주민성 편이었다. “허, 이사장까지?” “민성이 성품은 자네도 잘 알잖나?” “끄응……. 그보다 그 흉측한 텐트 좀 치우고 말하게!” 이러는 와중에도 이수길은 주민성의 텐트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젠 굳이 텐트를 칠 필요도 없고, 몸에 감기만 해도 부가효과가 적용되는 걸 깨달은 상태이기까지 했다. “허허. 이것도 민성이 능력일세.” “마침 잘됐네요. 텐트를 좀 더 사 왔거든요.” 주민성은 곧장 텐트 설치에 착수했다. 이는 나름의 건축 작업으로서 텐트를 건물로 취급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아니, 얘기하다가 말고 갑자기?” “으허허!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잉!” 박 씨는 이미 주민성의 퍼포먼스에 넘어온 상태. 아슬아슬한 상태인 김 씨만 설득하면 끝날 일이었다. 철컥! “완성입니다. 세창 아저씨. 들어가 보세요.” “거참. 이건 또 무슨 능력인데?” 비록 일반인이라곤 하나, 김 씨 역시 많은 능력자를 접했다. 그리고 일반인과 섞여 지내는 많은 F급 능력자들과도 지내 본 경험이 있었다. 여태까지 봤던 대부분의 F급 능력자는 커피를 끓이거나 콘크리트를 빨리 굳게 만드는 허무한 능력들뿐. “무슨 능력이냐니까?” “에이. 들어가 보면 알아요.” 하지만 주민성은 달랐다. FFF급임에도 어디서 돈을 잔뜩 벌어 희한한 검은 구체를 띄워 돈과 마석을 뿌려대지 않나, 이젠 대충 만든 싸구려 텐트에 들어가 보라는 권유를 해 온다. 주민성의 기상천외한 행동은 김 씨에게 묘한 호기심을 심어 줬다. “그럼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마. 얘기는 나와서 하지.” “물론이죠!” 그리고 잠시 후. “으어어어……. 좋다…….” “그렇죠? 잠시만 쉬세요.” 이젠 박 씨까지 텐트에 합류했다. “크어어어어…….” “으어어어…….” “아, 아저씨? 아직이에요?” 해가 중천에 떠오르는 동안에도. “아저씨…….” “민성아. 조금만. 조금만 더…….” “게이트는 어떻게…….” “아, 그거 이미 가는 거로 확정이야. 그러니 좀 더 쉴게…….” “하하……. 감사합니다.” 현장직으로 장기간 일해 온 김 씨와 박 씨에게 그동안 쌓였던 피로는 주민성의 상상 이상이었다. 이미 김 씨와 박 씨는 게이트행에 동의한 상황. 건축가와 인부를 구한다는 목적이 달성됐다. “민성 씨. 두 아저씨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식사나 하고 오죠.” “그럴까요?” “거기다 응접실에 있는 능력자 두 명도 밥은 먹여야 하잖아요.” “아, 깜빡하고 있었네요.” 가짜 인부는 이제 진짜 인부가 되었다. 게다가 둘은 협회에게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이젠 숙식부터 보호까지 주민성의 몫이 된 셈. ‘아저씨들한테 계약서는 실례겠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김 씨와 박 씨는 이수길처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좋아요. 그럼 인력 사무소에서 볼일은 다 마쳤네요.” “수고하셨어요.” “형! 이제 게이트로 가는 거예요?” 일이 끝난 걸 눈치챈 최선호도 신나는 표정으로 주민성에게 달려왔다. “미안. 아직 기다릴게 하나 남아 있어서.” “아하…….” 이수길과 마찬가지로 최선호 또한 텐트의 집중 치료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젠 조금도 아픈 기색이 없네.’ 평범한 싸구려 텐트에 건물주 능력만 묻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텐트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해 판매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 ‘역시 이건 중요한 지인이 아니면 임대로만 넘기는게 나을 것 같은데.’ 텐트의 가치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본 주민성은 인력소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주민성은 운전기사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도 신우빈 씨 연락이 없는데요.” “도련님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경비잖아요.” “그렇습니다.” “…….” 운전기사는 워낙 과묵한 사람이라 얻을 정보가 많지 않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눌까요?” 심지어 텐트의 유혹도 거절한다. “필요 없습니다.” “…….” 이 정도면 거의 텐트를 마약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제가 곤란해서 그래요.” 이미 주민성은 하루 동안 골드카드를 쓰고 갑질하며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 주민성은 이런 시간을 경계했다. 꿈같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증만 커질 뿐. 여전히 FFF급 능력자로서 자리를 못 잡았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휴.” 운전기사와 마찬가지로 주민성 또한 골드카드를 마약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이것도 결국은 남의 돈이니까.’ 잠시 인상을 찌푸린 주민성은 합의안을 내놓았다. “그럼 신우빈 씨한테 제 근황이라도 보고해 주세요.” “그건 제 개인 업무입니다만…….” “제 개인 충동으로 신성 계열사 순회 공연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이것이 최대한의 합의안이었다. 게이트에서 할 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지만 게이트로 돌아가기엔 200억짜리 유물이 마음에 걸린다. 신우빈만 빠르게 움직여 준다면 회사에도 이득이고 주민성에게도 이득인, 서로에게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그렇다면 비서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간 울리던 통화음이 멈추고, 운전기사는 사무적으로 용건을 말했다. “주민성 씨 관련 사항입니다.” 통화음엔 다른 목소리도 섞여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몬스터의 괴성이었다. -쿠어어어! -온다! 막아! -큭! 듣고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던 운전기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것은 주민성도 마찬가지. “방금, 몬스터의 괴성이 들린 것 같은데요.” “…….” 주민성의 질문에 다급히 정신을 차린 운전기사가 말을 이었다. “주민성 씨가 도련님과의 대화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 -키야아아악! 이때, 신우빈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주민성이야? 전화기 내놔! -예? 도련님? 분위기를 알아챈 운전기사는 주민성에게 말없이 휴대폰을 건넸다. “저기요. 신우빈 씨. 유물…….” -주민서어어엉! “……지금 게이트 내부입니까?” -이 미친놈아! 지금 유물이 문제야? 게이트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아! 당장 게이트로 돌아와! 와서 얘기해! -키에에에엑! 게이트에선 무언가 또 다른 난리가 일어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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