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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결과 (2) (38/250)

학습의 결과 (2)2022.01.08.

봉춘향은 습득력을 타고났다. 모스 부호마저도 단 하루 만에 외운 전적이 있었다. 고블린의 괴성도 다르지 않았다. 단 몇 초 만에 억양부터 성조까지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키에에에엑!” “키익?” 무슨 말인지는 봉춘향 자신도 모른다. 그저 효과가 있으니까 따라 한 것이다. “키에에에엑!” “크아악!” 그 결과, 예상을 뛰어넘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도 블링이를 비롯한 네임드 고블린들의 외침보다 더욱 큰 변화가. “키이이익!” 봉춘향 주변에서 날뛰던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전향했다. 놈들은 그대로 전향되지 않은 다른 몬스터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직! “크이익!” 같은 장소에 있던 모든 판자촌 능력자들이 경악했다. “복명복창 합니다! 키에에에엑!” “…….” 봉춘향의 색다른 모습에 능력자들은 말도 잊고, 전투도 잊으며 경악했다. “지금 이렇게 멍때릴 때가 아닙니다!” “마, 맙소사!” 이러는 와중에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쌓여 가는 상황. 심지어 공격 능력의 사용은 블링이가 통제하고 있었다. 때문에 선택지라곤 포섭 활동밖에 없다. “이것도 교육 과정입니다! 합시다!” 여기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추가됐다. 바로 유 중위였다. “키에에엑!” “그게 아닙니다! 좀 더 길게! 첫 음은 반드시 고음으로! 소리의 떨림도 부족합니다!” “키에에에엑!” 인간으로서 쌓아 온 무언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지만, 이는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기도 했다. 전투가 아닌, 그저 목소리만으로 일반인이 몬스터를 전향시키는 경우는 전 세계를 통틀어 찾아봐도 지금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쿵! “크륵!” 배신자에게 찾아오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몬스터의 입장에서 이 순간만큼은 배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엑!” 봉춘향과 유 중위는 주변의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고 쉴새 없이 소리쳤다. 그렇게 결국, 수천의 몬스터는 아군이 되어 다른 몬스터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대, 대위님! 전황이 역전됐습니다!” “이런 미친! 진짜 효과가 있다고?” 눈앞의 보이는 것들은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이었다. 상황은 봉춘향과 유 중위의 목이 쉴 즈음 정리됐다. “……헉! 헉!” 배신하지 않은 몬스터는 전부 죽었고, 남은 몬스터들은 그대로 전향한 데빌도그에 올라타 고블린 라이더가 되었다. “대장은 대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능력자로서도, 한때 수백의 군인을 지휘하던 대위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말도 안 되는 전력 증강을 가능케 한 주민성은 상상 그 이상의 존재가 된 것이다. 동시에,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기도 했다. “30일.” “…….” “그 안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대로 도태된다.” 김 대위의 말에 반박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뒤통수를 때리는 몬스터는 있었다. “키익!” 빠악! “……고블린 그 이하의 존재가 될지도 모르지.” “…….” 지금도 김 대위는 이미 블링이보다 서열이 낮다. 휴식을 허락받은 사람은 오직 봉춘향과 유 중위뿐. 나머지 판자촌 능력자들은 몬스터들의 재촉으로 비석 앞까지 밀려났다. “키익!” “다시 웨이브를?” 판자촌 능력자들은 교육 과정이 끝났다는 메시지를 한차례 접한 바 있다. 즉, 교육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전향이 끝난 고블린 라이더는 폐허 도시를 향해 유유히 떠나 버렸다. 터억! 블링이의 손바닥이 다시금 비석에 붙었다. 이 행동 이후에 발생할 일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교육 과정은 모두가 포섭 활동에 참여해야 끝나는 것이었다. “제, 젠장! 다시 웨이브가 일어난다! 준비해!” “키에에에엑!” “아직 아니야!” 비석이 빛나고, 또 한 번의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 여기까진 익숙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심지어 블링이를 비롯한 네임드 몬스터들마저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쿠어어어어어!” “크라라라!” 비석 너머의 문에서 나타난 것은 고블린과 데빌도그도 있었지만 다른 몬스터들이 더욱 많았다. 다른 게이트에서 발견될 법한 몬스터들이었다. “어, 어째서 다른 몬스터가!” 개중엔 고등급 게이트에서 볼 법한 몬스터까지 섞여 있었다. “저건 와이번이잖아! 여기 F급 게이트 아니었냐고!” “비상 사태다! 전투 준비이!” 이번엔 김 대위의 판단이 적절했다. 다른 네임드 고블린들은 다른 몬스터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가속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블렁! 콜록! 나도 태워서 갑니다!” 목이 쉰 봉춘향도 재빠르게 합세했다. 블렁이가 가는 방향은 크룩스가 있는 학교. 그리고 근처의 아파트에는 판자촌 능력자 중 가장 강한 능력을 보유한 전대 대장, 노인이 있었다. 만약 의식을 회복한 노인이라면 반드시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춘향아! 부탁한다!” “네! 꼭 살아서 버텨 주십니다!” “오냐!” 떠난 것은 봉춘향 뿐만이 아니었다. 기력을 소진한 유 중위도 게이트 입구 방향으로 이동하는 블랑이의 뒤에 올라탔다. “저는 경비대에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협회는 안된다! 반드시 신성 쪽 사람들만 불러!” “예!” 김 대위는 난데없는 고등급 몬스터 웨이브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전선을 지휘했다. “저 중엔 고블린과 데빌도그도 있다! 최대한 포섭 활동을 병행한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에엑!” 콰지지직! 쿵! F급 게이트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수준의 공방이 오가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 * * 한편, 주민성은 최선아와 최선호를 데리고 텐트를 비롯한 온갖 물품들을 사재끼며 신성 계열사를 순회했다. 하루의 마무리도 마찬가지. 신성 계열사의 5성급 호텔 또한 최고였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구나.” “형도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아냐. 나는 FFF급인걸.” 주민성의 자존감은 하늘 높이 치솟아 위성까지 띄운 상황. 자신을 FFF급이라고 소개하는 과정마저도 은근히 즐길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형. 오늘은 게이트에 가는 건가요?” 최선호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회복됐다. 불치병 환자라곤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태였다. “벌써 게이트에 가고 싶어?” “당연하죠! 진짜 건물을 지을 수 있잖아요!” “그래. 볼일만 끝내고 바로 게이트로 가자.” “네!” 주민성에겐 아직 도시에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크게는 두 가지. 신우빈에게 유물을 전달받는 것, 그리고 인력 사무소에서 인부를 조달받는 것이었다. 부가적으론 이용료를 청구했던 가짜 인부들과의 재 만남도 있었다.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다. [24시간째 이용료 납부가 없는 대상이 존재합니다.] [이자를 붙여 청구 기한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자산 몰수를 통해 이용료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이용료 미납자는 임시 을로 전환됩니다.] 메시지는 가짜 인부들에게도 떴을 게 분명했다. 모든 선택권 또한 주민성에게 있었다. ‘조치도 제대로 했으니 괜찮겠지.’ 여기서 주민성의 선택은 재회. 임시 을에 대한 조치는 원격으로도 가능했다. 때문에, 가짜 인부들은 주민성과 관련된 모든 사항에 대해 언급이 불가능하다. 건물주 능력과 최면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우위는 갑인 주민성에게 있었다. “어제 갔던 인력 사무소로 갈게요.” “예.” 운전기사의 도움으로 쾌적하게 인력사무소에 도착한 주민성은 느긋하게 가짜 인부들을 맞이했다. “또 만났네?” “크윽!” 텐트를 뒤집어쓴 가짜 인부들은 필사적으로 주민성에게 매달렸다. 이들이 매달리는 이유는 뻔했다. 배후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도와줘!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고!” “그래! 제발 우리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이들의 입장은 주민성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밖에만 나가면 어느새 협회의 간부가 접근해 최면을 걸어대고, 집에 처박히면 이용료 청구의 페널티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성은 이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사람 함부로 무시하니까 큰코다치지.”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했잖아!” “어쩔 수 없잖아! FFF급을 보고 어떻게 안 비웃냐고!” 심지어 책임을 주민성에게 전가하기까지. 도저히 동정심이 생길 수가 없는 태도였다. “아무튼 돈 낸다고!” “응, 나 돈 많아. 청구는 했지만 돈은 필요 없어.” 도움에는 도움으로. 적반하장엔 적반하장으로. 이것이 주민성의 사고관이었다. 특히 저세상 화법은 상대를 분노하게 만드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꼬우면 치든가.” “크윽!” 임시라도 갑을 관계가 형성된 이상, 페널티는 오로지 을이 받는다. 주민성은 이마저도 이용해먹을 수 있었다. [임시 을이 갑을 상대로 불만을 가집니다.] [위협도가 상승해 페널티를 추가합니다.] “이건 또 뭐야! 젠장!” “정력 감퇴는 너무하잖아!”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이득이 굴러들어오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건물주 능력의 정수였다. 이미 상대는 정력 감퇴로 저항 의지를 상실했다. ‘이 정도면 업보 게이지는 충분히 쌓았고.’ 충분히 복수를 마친 주민성은 본격적인 정보 회수에 나섰다. “자꾸 최면을 걸어대는 놈이 누군지는 알지?” “협회 소속의 남자였다…….” 확실히 둘의 태도는 협조적으로 변했다. 이젠 용서를 빙자한 이용의 시간이다. “정력을 되찾고 싶나?” “제, 제발! 뭐든지 할게!” 주민성은 조용히 종이를 둘에게 내밀었다. “정보는 여기에 적어. 외국에 놀러 갔을 때 리뷰쓰는 것처럼. 알지?” “좋다!” 이 작전엔 최선호의 제안이 있었다. 최선호가 제안한 것은 오로지 한국인들만 알아볼 수 있는 글씨체. 인터넷을 거의 안 하는 주민성은 몰랐지만, 대부분의 청년층에게 상당히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라면 계약으로 인한 페널티도 회피할 수 있으리라. -놂의 이륾은 읾짅섞. 혒회 갅부로 추정됝다. -처에음는 상하당게 방하심는 느이낌다. ‘와. 진짜 읽어지네.’ 작전은 적중했다. 생소한 글임에도 모든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일진석으로 외우면 되겠군. 이제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어.’ 글은 계속 늘어갔다. ‘일진석은 내가 최면을 풀어내서 엄청나게 분노했고, 10억을 투자해 나와 관련된 조사를 시작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0억의 투자였다. 과도한 투자에 주민성은 억울할 따름이었다. ‘나쁜 놈. 이렇게 불쌍한 나한테 기부는 못 해 줄 망정.’ 놈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뒷공작을 끊임없이 꾸며내고 있었다. 글을 더욱 읽어 갈수록 내용은 가관이었다. “미쳤네.” 눈앞의 두 남자는 버림패로 전락했고, 혹여나 이들이 죽게 되더라도 협회엔 사건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읽어내는 능력자도 존재한다고 적혀있었다. 즉, 정보를 얻어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뜻. “이게 전부야! 그러니 우리 좀 제발 살려 주라! 응?” “버림패가 되셨구나. 불쌍해라.” “처음부터 우린 자의로 협회에 협력하지 않았어!” 이들의 미래는 참담했다. 혹여나 이용료 납부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특히, 사건 현장을 읽어내는 능력자의 존재가 위협적이다. 지금도 이들의 동선은 확실하게 읽히고 있을 테니까. ‘세상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이렇게까지 악용하는 협회도 참 대단하네.’ 주민성은 이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대가를 받아내는 건 당연한 일. “이용료 받는 대신, 노동을 대가로 지불할 의향은?” “지금보다 위험하지 않은 일이라면 뭐든지!” “좋아.” 마침 주민성이 해야 할 일 중, 많은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역할이 있었다. “노가다 좀 뛰어 줘. 물론 계약서도 쓸 거야.” “노가다는 둘째치고 계약이라니!” “아, 강제력이 심한 건 아니야. 기업용 계약서니까.” 주민성은 지금의 상황까지 예상해 운전기사를 통해 계약서를 몇 장 받아 둔 상태였다. “자.” 계약서를 받아든 둘은 크게 경악했다. 상단에 붙어 있는 로고 때문이었다. “시, 신성!” 이것은 을의 입장에서도 쉽게 악용할 수 있는 개인사업자용 계약서가 아닌, 대기업 신성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노동 계약서였다. “이거라면 서로 문제는 없겠지?” “휴식 시간만 제대로 보장해 준다면 동의한다…….” “당연하지.” 계약서는 깔끔하게 작성됐다. 물론 주민성 입장에서만. 갑이 받을 불이익은 휴식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았을 경우뿐. 을의 입장에선 지켜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보다, 급여가 상당히 좋은 편인데 괜찮은건가?” “이 정도라면 게이트를 돌지 않아도 괜찮은데.” 제대로 된 급여가 보장되어서일까. 둘의 표정은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그렇지? 얼른 서명해.” 주민성의 미소는 여느 때보다 상쾌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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