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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결과. (1) (37/250)

학습의 결과. (1)2022.01.07.

주민성이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남겨 준 학교 안에선 열띤 논쟁이 한창이었다. 첫째 날 교육 과정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건 기회입니다! 야외 교육을 진행해야 합니다!” “외출은 허가받지 않았어! 또 예전처럼 될 수도 있다!” 봉춘향은 교실 한쪽에서 머리를 쥐어 싸며 이들의 논쟁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확실히 대장의 능력은 범상치 않아.’ 처음엔 반신반의였지만, 이젠 대장이라는 호칭도 확고해졌다. 여기에 모인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눈앞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교육 1일차가 진행됩니다.] [교육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교육 주제인 생존의 경험을 공유받습니다.] [위기를 감지하는 본능을 공유받습니다.] [과목이 없는 교실입니다.] [본능의 수준이 저하됩니다.] 교육자 선정은 봉춘향의 판단이었다. 첫 교육자는 유 중위. 그는 협회와 군의 수많은 암투 속에서도 몇 번이고 살아남은 엘리트였다. ‘단순히 파란만장한 경험을 딛고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육이 끝남과 동시에, 유 중위의 기억은 모든 이들에게 공유되었다. “…….” 단순히 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유 중위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타고난 재능이라니…….’ 실제로 유 중위는 주민성이 판자촌에 쳐들어온 날에도 판자촌 이전을 주장했다. 심지어 짐까지 전부 챙기고. 상당히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납득할 수 있었다. 신우빈을 비롯한 능력자들이 판자촌을 찾아 왔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 중위의 판단은 옳았어.’ 신우빈이 물러가기 전까지 유 중위는 존재감까지 감추고 일행에 녹아들어 있었다. 실제로 그가 본능적으로 경계했던 대상은 주민성이 아닌 신우빈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이 기분은 대체 뭘까.’ 이 위기감은 판자촌 능력자들 모두에게 공유되었다. 심지어 이 위기감은 과목이 정해지지 않은 교실에서 공유받아 효과가 저하된 수준. 그럼에도 이곳의 모든 능력자는 공통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네는 이 위기감이 안 느껴지나!”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욱 실전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회의가 진행되는 이유도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보게! 유 중위! 대장은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고 했어! 그 전까진 어떻게든 우리끼리 살아남아야 해!” 놀랍게도 지금 김 대위와 대립하는 인물은 유 중위였다. 이젠 주변 사람들이 전부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 확신이 생긴 것이다. “대위님! 저는 지금 그 계획이 불안한 겁니다!” “유 중위, 우리는 절대 약하지 않네.” 이곳의 능력자들은 고등급 게이트도 무난하게 탐험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F급 게이트. 유 중위가 느끼는 불안감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대위님! 정확히는 현상 유지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유 중위!” “…….” 계급은 사라졌지만 호칭은 유지되어 있다. 하지만 유 중위의 발언은 무게감이 다르다. 다른 이들이 공유받은 위기감은 유 중위가 느끼는 것만 못할 테니까. ‘대위님한텐 미안하지만, 현상 유지는 나도 반대야.’ 주민성이 사용한 능력 교육 과정은 좀 더 많은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봉춘향은 새로운 중재안을 꺼냈다. “김 대위님.” “으, 응?” “현장 학습은 어떻습니까?” “현장 학습?” “말 그대로 밖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겁니다.” 의문 어린 시선이 봉춘향에게 쏟아졌다. 언제나 최선의 답안만을 내놓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유 중위님이 교육을 끝낼 때였습니다.” “그렇지.” “교육 시작만 교실 안에서 진행하고, 마무리는 밖에서 하는 방법입니다.” 양쪽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는, 새로운 방안이자 실험이었다. “만약 교실을 나가는 순간 교육이 끝난다면?” “그러면 김 대위님 말대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유 중위는 말할 것도 없고, 교실에 있는 모두에게 해당됐다. “어?” 옅어진 위기감. 이것으로 주장이 뒷받침된다. “반대 의견 있습니까?” “…….” 봉춘향의 의견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만장일치인 걸로 알겠습니다. 이제 다음 교육자를 선정하겠습니다.” “좋네.” 봉춘향은 주민성의 능력에 의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벅. 저벅. 판자촌 능력자들의 앞을 지나며 위기감에 변화를 느끼려 한 것이다. “크음……!” 능력자들 앞을 지날 때마다 옅어진 위기감이 다시 선명해지기도, 아주 미세하게 옅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쪽 방면의 전문가는 유 중위였다. “지휘관, 우리만으론 해결이 안 될 것 같네.” 이어서 유 중위는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이보게 유 중위! 저것들은!” “저들 또한 교육에도 참여했죠.” 가리킨 것은 놀랍게도 고블린이었다. 그것도 판자촌의 능력자들과 상당한 인연이 있는. “케륵?” 고블린들은 교육을 받은 직후, 이상할 정도로 잠자코 대기하고 있었다. “보통 고블린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고블린일세!” “하지만 교육에도 참여한 고블린입니다.” 말을 마친 유 중위는 봉춘향을 바라보며 고블린 앞에 설 것을 재촉했다. 무려 능력을 쓰는 고블린들이었다. 이런 몬스터는 어딜 가도 보기 힘든 개체. 때문에 봉춘향은 고블린들의 이름까지 똑똑히 외워 둔 상태였다. ‘확실히 네임드 몬스터라면……. 유 중위의 의견도 나쁘지 않아.’ 생각을 마친 봉춘향은 가장 뛰어난 전투력을 보였던 고블린에게 말을 건넸다. “브, 블링 대원.” “케륵?” “교육을 해 볼 텐가?” “케엑?” 놀랍게도 블링이는 봉춘향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리고 창가로 이동해 운동장에서 느긋하게 누워있는 크룩스에게 뭔가 소리쳤다. “케륵! 케르륵!” “크룩?” “케엑! 키기기긱! 케켁!” “크룩!”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새로운 교육이 진행됩니다.] [교육 내용은 포섭 활동입니다.] [교실의 과목이 포섭 활동으로 정해졌습니다.] “이게 무슨!” “케르륵!” 블링이를 비롯한 고블린들이 동시에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갑자기?” 동요도 잠시, 위기감이 순식간에 사라졌음을 확인한 봉춘향이 재빨리 소리쳤다. “다들 블링 대원을 쫓아갑니다! 실시!” “시, 실시!” 운동장에는 어느새 수많은 고블린 라이더들이 도열해있었다. 그리고 정중앙에는 크룩스가 있었다. “크룩!” “응?” 크룩스는 나름대로 덩치 큰 데빌도그를 선별해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보냈다. “올라타라는 것 같습니다! 바로 움직입시다!” “좋아! 훈련 개시다! 전원 탑승!” “탑승!” 크룩스는 학교에 남았다. 반면 판자촌 능력자들을 태운 데빌도그들은 어딘가로 하염없이 내달렸다. 두두두두두! “교육 한번 거칠구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장소는 판자촌 능력자들도 가 본 적 없는 생소한 폐허 도시였다. 그리고 저마다의 건물 안에선 또 다른 고블린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몬스터 집단이다! 전투 준비!” 전투 대응은 김 대위의 몫이었다. 동시에 블링이의 손바닥이 김 대위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빠악! “크악! 이게 무슨 짓이야!” “케르륵!” 김 대위의 예상과는 달리 전투는 발생하지 않았다. “김 대위님. 아군 몬스터 같습니다.” “……이것들이 전부 대장의 부하라고?” 봉춘향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고블린들에게선 인간적인 느낌이 있었으니까. 특히 판자촌 능력자들의 시선을 강탈한 고블린들에게선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졌다. “……꽃을 든 고블린? 무기가 아니고?” 놀랍게도 고블린 사이엔 세부적인 서열도 존재했다. “케륵!” “크륵크!”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습니다.” 봉춘향은 신중하게 고블린들의 의사소통 과정을 지켜보며 분석했다. ‘크룩스 요원 다음이 네임드 다섯을 비롯한 학교의 고블린들, 그 아래로 돌무더기 건물, 다음이 꽃집……. 거주하는 건물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건가? 나머지는 비슷하네.’ 봉춘향의 분석은 상당히 그럴듯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점이 있었다. 게이트에서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상태가 좋은 학교나, 마찬가지로 화사한 꽃이 피어있는 꽃집은 당연히 서열이 높은 고블린들이 지낼 만했다. ‘대체 저 돌무더기는 뭐지?’ 겉보기에도 흉측한 돌무더기는 다른 폐허 건물보다 상태가 나빠 보였다. 특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있었다. “케르륵! 케륵!” 그럼에도 다른 건물들의 고블린들은 돌무더기를 향해 건물 잔해들을 운반하고 있었다. “케엑!” “키에엑!” 어느덧 고블린들의 소통이 끝나고, 블링이를 비롯한 네임드 몬스터들은 선두로 이동했다. “다시 이동하려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느꼈던 위기감과는 다른, 미묘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김 대위는 그대로 블링이의 눈치를 보곤 조심스럽게 외쳤다. “다, 다들 긴장해라!” “예!” 다시금 이동해 도착한 장소는 어느 비석 앞. “이건…….” 이것은 능력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는 비석이었다. “케륵!” 또다시 블링이의 지시가 이어졌다. ‘다른 네임드 몬스터도 있는데 오로지 블링 대원만 지시를 내리고 있어. 확실히 이것은 교육 과정이야……. 대체 어떤 경험이 공유되는 걸까.’ 봉춘향은 눈치껏 데빌도그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블링이의 끄덕임. “다들 내립시다.” “음. 그러지.” 다른 게이트였다면 최대한 피해야 했을 웨이브 비석이었지만, 이곳은 F급 게이트. 기껏해야 평범한 고블린 무리와 데빌도그 무리가 튀어나온다. 다소 능력자들의 긴장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면, 능력자들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은 블링이는 그대로 비석에 손을 올렸다. “지휘관은 뒤에서 대기하는 게 좋겠어.” “네. 나머지는 맡기겠습니다.” “음.”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봉춘향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전투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역할은 상황 판단과 지시까지. 지이이이잉! 비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곧 몬스터가 나온다! 방심만 하지 마라!” “예!” 지지지지지지직! 잠시 후, 비석 뒤편에 빛나는 원형의 문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진 이병! 준비!” “맡겨 주십시오!” 선제공격은 한때 최선아를 공격했던 주황 머리의 담당이었다. ‘회전력 강화 총탄이라면 몬스터 선발대는 한방에 무너지겠지. 우리의 진짜 능력을 보여 주려는 의도겠네.’ 곧이어 진 이병의 총에서 능력을 잔뜩 머금은 총알이 발사됐다. 쾅! 콰지지지지지직! “키에에에에엑!” 몬스터 선발대는 순식간에 전멸. 상당히 깔끔한 결과였지만, 블링이는 가속 능력까지 사용해가며 김 대위와 진 이병의 뒤통수를 휘갈겼다. 빠아아악! “악!” “키에에엑!” “뭐라는 거야! 지금도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데!” 한편, 블랑이를 비롯한 나머지 네임드 고블린들은 몬스터 웨이브 한복판에서 괴성을 질렀다. “키에에에엑!” “키에에!”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몬스터 웨이브로 나타난 몬스터끼리의 전투가 발생한 것이다. 콰직! “키엑!” “케륵!” “크르르!” 아군 고블린들이 외침을 지속할수록 전향하는 몬스터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봉춘향은 그제야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포섭 활동! 이것은 포섭 활동입니다!” “키에엑!” 안타깝게도 몬스터들의 난전 소음에 봉춘향의 외침은 순식간에 파묻혔다. 김 대위 또한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나름대로 지시를 내렸다. “제기랄! 수비 태세!” “수비 태세!” 철판을 두른 능력자를 비롯해 방어계 능력을 보유한 인원들이 앞장섰다. 그리고 이번에도 블링이의 손바닥이 작렬했다. 터엉! 안타깝지만 블링이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방어계 능력자가 나선 이상, 고블린은 태생적인 공격력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은 소용없다. 이 방벽은 총알도 막아내니까.” “키익!” 쾅! 블링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방벽을 걷어찼다. “키엑!”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블링이는 능력까지 사용해 근처에 있던 고블린의 무기까지 빼앗아 휘둘렀다. 콰광! 쩌저저적! 진심어린 단 한 방. 그것만으로 방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어?” 도저히 F급이라고 볼 수 없는 압도적인 공격력이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위기감이 다시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다들 미쳤냐고! 이것도 교육이야! 협조하란 말이야!” 지금의 위기감은 언제나 차분하던 유 중위까지 직접 뛰어들어 고함을 칠 정도로 심각했다. 그리고 이런 내부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봉춘향의 담당이었다. “이제부터 본 지휘관이 명령한다!” “위, 위험해!” 후방에 있던 봉춘향이 어느새 몬스터 웨이브 최전방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있는 힘껏 소리쳤다. “복명복창 합니다! 키에에에엑!” 고블린과 인간, 모두가 감탄할 만한 명장면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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