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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3) (36/250)

기행 (3)2022.01.06.

기분 좋게 새로운 장비를 얻고 병원에 도착한 주민성은 눈앞의 건물을 난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는데……. 병원 맞죠?” 상당히 낡은 병원이었다. 일반인 구역의 건물들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네. 예전엔 상당히 좋은 병원이었다는데 지금은 회복 능력자가 있으니까요.” “아……. 그럴 수밖에 없네요.” 사 자만 붙으면 장땡이란 것도 옛말. 의사라는 직업은 회복계 능력자에 의해 쇠퇴했다. 주민성은 새삼 자신의 건강한 몸에 감사함을 느꼈다. “동생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고 했죠?” “네……. 이젠 입원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에요.” “이젠 괜찮아요. 머지않아 동생도 완치되겠죠.” F급 능력자가 벌 수 있는 돈은 상당히 한계적이었지만, 이는 주민성에 의해 극복되었다. 때문에 최선아의 표정엔 희망이 가득했다. “회복계 능력자한테 맡기려고요?” “네. 희귀병이라 각성비보다 비싸긴 하지만…….” 최선아는 주민성의 능력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텐트가 단순 외상과 컨디션에 도움이 된다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확신하고 있었다. 건물 부가효과는 순간적인 치유만 안 될 뿐, 회복계 능력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그렇군요. 기사님은 어떻게 하실래요?” “저는 밖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선아 씨, 들어가시죠.” “네!” 최선아의 동생은 2층에서 입원 중이었다. “……누나? 벌써 왔어? 게이트는?” “응. 시간이 생겨서 잠깐 들렀어.” “그랬구나.” 최선아의 동생의 시선이 주민성을 향했다. “안녕? 선아 씨 동료인 주민성이라고 해.” “주민성이요……?” 아무리 낙후된 병원이라 해도 TV까지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건물만 낡았을 뿐, 약값과 치료 시설의 가격은 더욱 상승했고 의사의 형편은 D급 능력자보단 나은 수준이었으니까. 때문에 최선아의 동생은 주민성을 알고 있었다. “누나한테 많이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응?” “제가 병원에 더 있을 수 있게 도와주셨잖아요.” “아…….” 최선호는 주민성에게 인사하기 위해 노트북을 덮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냐. 괜찮아.” 주민성의 관심은 노트북에 있었다. “그보다 게임하는 것 좀 같이 봐도 될까?” “네? 아, 네…….” 주민성은 그대로 화면에 집중했다. 화면에 보이는 건 투박한 그래픽의 게임이었다. “고전 게임인데, 아세요?” “아니. 처음 봤어.” 주민성이 접한 건 게임방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최신형 게임들뿐. 돈 벌기 바빴던 주민성에겐 그마저도 사치였다. “제가 만든 마을이에요. 보실래요?” “응.” 허공을 바라보던 최선호의 게임 캐릭터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엔 수많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지어져 있었다. “이거 전부 너가 직접 지은거야?” “네. 재료들까지 전부 직접 캐서 만든 거예요.”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음료수를 꺼내 최선아와 최선호에게 건넸다. “대단하네. 마시면서 해.” “아, 감사합니다.” 주민성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건물들이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역삼각형 모양의 건물도 있었다. “저 건물은 왜 역삼각형이야?” “아, 제가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네요. 저거 처음엔 1층짜리 단칸방이었어요.” “그래?” 게임 캐릭터는 곧장 역삼각형 모양의 건물로 들어갔다. “지금의 1층은 엘리베이터 용도예요.” “오호.” 최선아는 이 정도로 게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주민성의 반응을 상당히 반가워했다. “올라가면 각 층의 풍경이 보여요.” “대박…….” 최선호의 의외로 외형보단 효율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다. “제가 아끼는 77층에선 치킨이 무제한으로 나와요.” “치킨!” 77층 바닥은 전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물은 전부 중앙으로 향했는데, 중앙엔 놀랍게도 펄펄 끓는 기름 솥이 있었다. “이렇게 버튼을 누르면.” -꽥! 닭 한 마리가 우리에서 튀어나와 물에 빠졌다. “이러면 닭이 자동으로 씻겨서 캐릭터가 병에 걸리지 않아요.” “오오.” 한참을 헤엄치던 닭은 그대로 기름 솥에 빠졌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건 흐르는 물은 기름 솥 주변으로 흐를 뿐, 부피가 큰 닭만 기름 솥에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전부 너가 설계한 거야?” “네. 시행착오를 좀 거치긴 했지만요.” -맛있는 치킨. “맛있는 치킨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기름 온도부터 닭의 신선도까지 전부 반영되거든요. 거기다 기름 자체에도 간이 되어 있어요.” “대박.” 게임 속 화면이었지만 주민성은 실제로 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내장 같은 건 빼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추가적인 공정이 필요해 보이는데.” “게임이니까요. 추가 공정도 넣을까 했는데 너무 잔인해서 안했어요.” “그, 그렇지.” 최선호의 상상력은 실로 엄청났다. 어마어마한 건 77층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1층에선 좀비를 사육해요.” “어? 어떻게?” “좀비 리젠 장소가 근처에 있거든요. 저쪽을 보세요.” 황당하게도 창가엔 물이 역류해서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역류한 물속엔 좀비가 들어있다. -구어어어. “좀비 리젠 장소 주변을 전부 벽으로 막고 한 칸 옆에 물길을 만들었어요.” “좀비가 알아서 물에 들어오는 거야?” “아뇨. 한 공간에 좀비가 두 마리 리젠되면 한 마리는 튕겨 나오거든요.” “물이 역류하는 건?” “좀비 동력이죠. 튕겨질 때의 추진력을 이용해서 역류하는 방식이에요.” “…….” 최선호의 건축 실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전력도 소비되지 않는 자연 친화적인 건축 구조였다. “그러고 보니 이 캐릭터…….” 최선호의 캐릭터는 상당히 화려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울리지 않게 달랑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고인물?” “아뇨. 제 마을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저보고 한참 고여서 썩은물이래요.” “그 정도구나…….” 상당히 아기자기한 게임이었음에도 내용물은 엄청나게 복잡한 게임이었다. 보통 이런 게임은 매니아층이 주류일 텐데 같은 유저들 사이에서도 최선호는 썩은물로 불리고 있었다. ‘이 정도 상상력이면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대단한 건물을 만들어낼지도…….’ 200층짜리 건물 한 개를 둘러봤을 뿐인데도 주민성은 최선호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건물주 능력 자체가 안전 설계를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크워어어어! “응? 무슨 소리야?” “아, 몬스터 웨이브 시간이네요.” “몬스터 웨이브?” “네. 게임 시간으로 밤 12시마다 마을 가치에 맞게 적들이 쳐들어와요.” 상당히 긴박해 보이는 bgm이 들리고 있음에도 최선호는 상당히 느긋했다. “위험하지 않아?” “괜찮아요. 이 마을은 방어에도 특화되어 있거든요.” 최선호의 캐릭터는 200층에 있는 버튼 한 개를 눌렀다. -쿠구구구구! “몬스터는 아주 좋은 재료 공급원이죠.” 주민성은 말을 잃었다. 마을 전체가 함정으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이다. -크워어! 선두에서 돌진하던 몬스터는 마을 입구 부근의 파란 집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몬스터를 얼려 두면 필요할 때마다 바로 사용할 수 있어요.” -쿠구구구구! 마을 전체에 컨베이어벨트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류에 맞게 몬스터가 알아서 분류된다. “몬스터마다 어는점이 다르거든요. 냉기 면역 몬스터는 여길 통과해서 마비 하우스에 들어가요.” 주민성은 말없이 최선아를 쳐다봤다. “가족은 가족이구나.” “뭐, 뭐가요?” 최선아와 최선호의 방식은 은근히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아이템을 활용하는 능력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푸슝! “대공 몬스터는 그물 집이 포획해요. 그물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죠. 만드는 데 고생했지만 두고두고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렇구나…….” 미세먼지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몬스터가 썩지도 않을뿐더러, 최선호의 설계라면 분명 마석까지 알아서 분류하는 공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Perfect clear! 주민성은 이 과정을 한참 동안 몰입해서 지켜봤다. “참 쉽죠?” “그, 그래…….” 최선호가 보여 준 건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돈이 굴러들어오는, 그야말로 주민성이 꿈꾸던 장면이었다. “콜록! 콜록!” “선호야!” 장시간의 설명 탓이었을까. 최선호가 기침을 토하기 시작했다. “가, 간호사님은 어디 계시지?” “선아 씨. 잠시만요.” 주민성은 병실을 떠나려는 최선아를 말렸다. “잠시만 있어 보세요.” 그리고 최선호의 침대에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콜록! 형! 갑자기 무슨 텐트예요?” “이거? 만병통치약.” 최선아의 걱정스런 표정과 달리 주민성의 움직임엔 확신만이 가득했다. “선호……. D급 회복계 능력자도 손을 못 썼어요…….” “그래도 시도는 해 보죠.” 텐트가 완성되자 최선호의 기침도 멎기 시작했다. “어라? 기침이…….” 텐트의 효과는 확실했다. 침대 옆에 표시되는 바이탈 사인이 급격한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작용은 없을 거예요. 자연 치유력을 크게 끌어올려주는 능력이라.” “민성 씨…….” 최선호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본인 몸 상태는 자신이 더 잘 알 테니. “이게 진짜 능력이구나……. 정말 FFF급이 아니었어…….” 주민성은 더 부끄러운 극찬이 이어지기 전에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선호야.” “네?” “게이트에서 리얼 타임으로 건물 하나 올려 볼래?” “……네?” 혹시나 최선아가 만류할까 눈치를 봤지만, 그녀는 주민성보다 건물주 능력을 고평가하는 사람이었다. “제가 할 줄 아는 건 게임밖에 없는데요…….” “게임에서 하는 것처럼 만들어도 돼.” “플래티넘 곡괭이면 모를까, 저 몸이 약해서 건축 재료도 못 캐는데…….” “건축 재료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면 돼. 입자 절단기가 있거든.” 그제야 최선아도 주민성의 의도를 눈치챈 모양. “선호야. 몸은 괜찮아? 움직일 수 있겠어?” “어……. 응…….” 텐트의 효과는 확실했다. 하다못해 텐트의 효과가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최선호를 통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고등급의 회복계 능력자의 치료를 받고도 남는다. “선호야. 어때? 형이랑 게이트 가 볼래?” “모, 몬스터는요?” “나도 있고, 너희 누나도 있고. 내 부하도 엄청 많아.” “부하요?” “그래.” 주민성은 차마 수천의 고블린과 데빌도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최선호라면 분명 적응할거라 확신했다. 특히 주민성과 최선호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선호야. 현실 속 77층을 만들어 보자.” “치, 치킨!” “공정은 좀 더 추가되겠지만, 건물주는 건물 안에서 뭐든지 할 수 있거든.” 주민성은 이미 임시 권한을 통해 건물주 최종 진화형 샘플을 체험해 봤다. 당시 체험했던 압도적인 부가효과는 건물주 능력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모든 메시지가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미처 읽지 못한 메시지는 읽은 것의 수십 배 이상.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러면 몬스터 농장도 만들 수 있어요?” “그래. 언젠간 고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로 이뤄진 농장도 만들 수 있겠지.” 고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는 단순히 마석벌이뿐인 고블린이나 데빌도그와 다르다. 고위 몬스터의 부산물은 무기부터 시작해 방어구나 특수 제작 의상으로도 쓰인다. 때문에 고등급 능력자는 전문적인 도축 능력을 갖춘 이들을 대동할 정도.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최선아 역시 긍정적이었다. 주민성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선호야. 정말 효과 있는 거 맞지?” “응……. 근데 일반인이 게이트에 가도 괜찮은 거야?” “응. 신성 쪽에서 민성 씨를 도와주고 있어.” “헐.” 신성은 사치품만 제작하는 기업이 아니었다. 최선호가 쓰고 있는 저가형 노트북 또한 신성의 제품이었다. 신성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대중적인 브랜드였다. “후우!” 심호흡을 마친 최선호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 있겠어?” “네. 이 텐트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바로 가자.” 최선호의 퇴원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입원비를 환불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의료진의 의문 또한 간단하게 일축할 수 있었다. 골드 카드를 잠깐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한편, 퇴역 군인들과 고블린 라이더 군단이 머물고 있는 게이트에선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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