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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1) (34/250)

기행. (1)2022.01.04.

능력자들이 뛰쳐나가고, 이수길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응? 이건 무슨 텐트야?” “아, 제 능력과 관련이 있어서요.” “아이구야.” 이수길은 주민성이 설치한 텐트를 요리조리 살폈다. “어? 이게 어떻게 고정된 거지?” “하하. 능력빨이에요.” “허.” 주민성에겐 좋은 캠핑 스승이 있었다. 쉬는 날마다 매번 주민성을 데리고 캠핑을 나간 장본인이 이수길이었으니까. “거참 신기하네. 이렇게 허술한데…….” 건물주 능력의 밑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의 부가효과. 이 부가효과는 불안정한 건물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상식 자체를 무시하는 능력이었다. 즉, 주민성 소유의 건물은 아무리 허술해 보여도 다른 건물보다 무조건 튼튼하다는 말이었다. “근데, 네 능력은 건물주 아니었어?” 이수길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텐트를 튼튼하게 설치하는 능력이라면 서바이벌이나 캠핑 능력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 테니까. “맞아요. 건물주. 우습지만 제 능력은 텐트도 건물로 취급하거든요.” “허허.” 주민성은 싸구려 텐트를 소중한 눈빛으로 쓰다듬었다. 만약 이 텐트가 고급스러운 텐트라서 건물 등급이 높았더라면 주민성은 이곳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 텐트라도 챙겨가거라.” “예? 저 괜찮아요. 아저씨.” “이 텐트 천을 봐라. 많이 상했잖냐. 여기서 자면 무조건 얼어 죽는다.” 포쁠 한우에 대한 고마움 이었을까. 이수길은 끝까지 주민성을 걱정하고 챙겨줬다. “정말 괜찮아요. 아저씨. 안 죽어요.” “이럴 땐 참 고집이 세단 말이야.” “아뇨. 진짜 안 죽어서 그래요.” “응?” 건물 부가효과 중엔 온도 유지 효과도 있었다. 주민성 입장에선 정말 새로운 텐트가 필요 없었다. 오히려 설치와 분해가 편리한 싸구려 텐트를 대량 구매하고 싶을 정도. “한번 들어가 보세요. 온도도 유지되고 아픈 것도 싹 낫습니다.” “얘가 약을 파네? 텐트가 무슨 만병통치약이야?” “네.” “…….” “진짜로요.” “…….” 주민성의 눈빛엔 확신이 가득했다. 오히려 타박하던 이수길이 당황할 정도. “정말이에요. 조금만 들어가서 쉬세요.” “맞아요! 이 텐트는 근본 그 자체예요!” “…….” 최선아까지 진지하게 거드니 이수길에겐 거절할 이유도 마땅치 않았다. “어휴. 들어는 가 보마. 그래도 새로운 텐트는 받…….” 이수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텐트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 “어때요?” 이수길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앓았던 만성적인 질환의 회복은 물론, 정서적 안정 효과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외 잡다한 공기 청정이나 온도 유지까지 더해지니 중년 남성이 느끼는 텐트 안의 체감은 다른 이들이 느끼는 것과 차원이 다를 정도. “으허어어…….” 결국, 이수길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살다 살다 이런 능력을 볼 줄이야…….” 능력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깊게 침투했다. 정교한 절개 능력으로 게이트 대신 외과에서 일하는 능력자도 있었고, 의료용 혼합 고체를 증발시켜 환자에게 주입시키는 새로운 치료 능력자도 탄생했다. 이제는 상당히 익숙할 법도 했지만, 주민성의 능력은 궤를 달리했다. “대체 협회는 이런 능력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수길은 주민성의 능력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떠올렸다. 그리고 차분하게 한숨 쉬었다. 냉철하게 생각해도 주민성이 정신적으로 입은 피해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생각을 마친 이수길이 주민성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민성아.” “네. 아저씨.” “이 능력은 반드시 돈이 된다. 수많은 사람이 너에게 접촉해 올 게 확실해.” 이수길의 조언은 건물주 능력을 돈벌이에 활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나마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판단이다. “물론이죠. 제가 인부를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인걸요.” “……!” 처음부터 이수길은 끝까지 안고 갈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저씨. 건축가와 인부. 정말 어떻게 안 될까요?” “휴…….” 이수길은 여전히 건물 부가효과를 만끽 중이었다. 정서적 안정감이 유지된 지금이라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염두에 둘 수 있었다. “국내는 무리고……. 해외 건축가라면……. 으음.” 주민성은 묵묵히 이수길의 고민을 지켜봤다. “민성아. 게이트는 어디냐.” “안산 방면입니다.” “……수도권인가. 그러면 힘든데.”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는지 이수길의 표정은 도무지 풀어지지 않았다. ‘수도권은 보는 눈이 많은 건가. 지방의 게이트도 염두에 두는 게 좋겠군.’ 최선아와 주민성이 믹스커피 두 잔을 비우는 사이에도 이수길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아저씨.” “미안하구나. 인부는 어떻게든 내가 해볼 수 있다만 건축가만큼은 내 위치에선 무리다.” “감사합니다. 인부가 어디예요. 그 정도면 대박이죠.” “게이트. 정말 안전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이수길의 신뢰는 어느덧 정점을 찍고 있었다. 몸 상태가 완벽에 가깝게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파견 오실 분들은 제가 아는 분들이에요?” “당연하지.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는 것이 뒤탈 없을 테니까.” “오, 그렇다면 두 분은 확실히 오시겠네요.” “김 씨와 박 씨말이냐?” “네.” 이수길이 주민성의 뒤를 든든히 봐줬다면, 김세창과 박봉걸은 주민성이 현장에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베테랑 인부들이었다. “그 아저씨들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겠네요.” “그래. 그놈들은 진짜배기니까.” 김 씨와 박 씨는 이수길이 진짜라고 인정할 정도의 베테랑 인부들이었다. 이 평가의 기준은 실력만이 아니었다. 사람의 됨됨이까지 전부 반영된 평가였다. 그들은 이수길처럼 따로 주민성에게 메시지를 보내진 않았지만, 세상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묵묵히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들이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들이라면 믿을 수 있다. 잊고 있었네.’ 주민성 또한 게이트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 싸움을 이어 왔다. 김 씨와 박 씨는 그런 싸움을 일반인 신분으로 오랜 시간 이어 온 사람들. 절대 원망해선 안 될 사람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녀석. 인부들 전원 구해지거든 돈은 네가 직접 전해주거라.” “어?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 네 능력 덕분에 게이트가 안전하다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목숨이 걸린 문제야. 이번 기회에 좋은 사람들도 만나 보거라. 이 텐트도 체험시켜 주고.” 이수길은 텐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안에서 빠져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텐트는…….” 이수길의 눈치도 보통은 아니었다. 주민성이 텐트를 회수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한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민성아.” “네…….” “소개비는 이 텐트로……. 아니지. 돈은 내가 줘야지. 그거 받고, 그동안 수집한 캠핑 장비까지 받거라.” “……예?” 이수길은 묻고 더블로 가려는 심산이었다. 이 정도면 포쁠 한우가 문제가 아니었다. 캠핑 매니아인 이수길의 캠핑 장비 역시 돈으로 가치를 정할 수 없는 귀한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확실히 계산은 되겠지.’ 하지만 주민성은 다른 선택을 했다. “아저씨. 텐트 좀 보고 올게요. 저 방에 있죠?” “응? 그래. 위치는 그대로다.” “예.” 주민성은 차라리 이수길의 텐트의 소유권만 챙기고 물건은 그대로 놔두기로 정한 것이다. ‘답례를 받으면 호의가 아니지.’ 주민성은 그대로 이수길의 캠핑 물품 창고에 진입했다. “아저씨. 저도 구경해도 돼요?” “음?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민성의 계획은 황당하게 막혀 버리고 말았다. 이전과 다른 메시지 때문이었다. [소유자가 있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건물주 등급이 부족합니다.] [소유권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민성 씨?” “…….” 지금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이 텐트는 이수길이 가장 아끼는 텐트였으니까. ‘10대 시절부터 평생 관리하셨던 텐트였지…….’ 건물 소유권에는 규칙이 존재하는 모양. 덕분에 주민성의 행동 범위는 더욱 확고해질 수 있었다. ‘게이트에 뼈를 묻어야겠네.’ 이대로라면 신축 건물이 아닌 이상 도시에서 날뛰는 작전은 무리였다. “어째 아저씨한테는 제가 계속 받는 느낌이네요.” “음? 왜요? 민성 씨도 많이 줬잖아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거든요.”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최선아를 뒤로하고 주민성은 다시 이수길에게 돌아왔다. “어떠냐. 상태 좋지? 네 능력과 합쳐지면 그야말로 최고의 텐트가 될 거다.” “아저씨.” “음?” “장비는 괜찮습니다. 이 텐트도 그냥 쓰세요.” 당황은 잠시, 이수길은 주민성의 표정을 이해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뭘요. 이제 연락하느라 바쁘실 텐데 슬슬 가 볼게요.” “오냐. 최대한 알아보고 연락하마.” “예.” 주민성과 최선아는 공손하게 인사를 마치고 인력 사무소를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 가실 거예요?” “음…….” 저녁이라고 하기엔 아직 해가 떠 있고, 낮이라고 하기엔 해가 중천을 넘어간 애매한 시간이었다. “선아 씨는요?” “저야 당연히 민성 씨 호위죠.” “그렇군요. 혹시 선아 씨가 알만한 건축학과 친구는 없어요?” “네……. 제가 본 건축가는 게임 속 캐릭터가 전부인걸요.” “게임 속 캐릭터요?” 주민성은 다급하게 최선아의 어깨를 붙잡고 질문을 이어갔다. “게임에서도 집을 지어요? 몬스터만 잡는 거 아니었어요? 그 캐릭터는 뭐예요? 선아 씨 캐릭터예요?” “민성 씨! 잠깐만요! 진정 진정!” “……아, 네.” 최선아는 잠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안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대답했다. “제 동생이 몸이 아프거든요. 애가 어디 나가진 못하고 병원에서 게임하는 게 전부인데, 볼 때마다 게임 속에서 집을 짓고 있었어요.” “아파요? 어디 병원이에요? 저한테 말하셔야죠!” “아, 아뇨! 이번 정산금 덕분에 다음 달까지 괜찮아요!” 최선아 입장에선 미안해서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주민성에게는 건물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있었다. “가요! 병원! 기사님도 호출할게요!” “네? 아, 아니!”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그래요! 건축한다면서요!” “게임 속에서 짓는 건데요? 건축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창의력입니다.” 주민성은 건축에 대해 조금의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고, 부수고 미로를 만드는 수준의 개조만이 가능했다. 그것마저도 건물주 능력 덕분에 무너지지 않을 뿐. 만약 최선아의 동생이 개입한다면 건축가 문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컸다. “알겠어요. 그러면 병원으로 가요.” “네. 가는 길에 텐트도 같이 사 가죠.” “민성 씨 편한 대로 하세요.” 텐트 사재기와 병문안이라는 오늘의 마무리 일정까지 정해졌다. 부우웅-. 그리고 무표정한 운전기사까지 다시 합류했다. “죄송합니다. 귀찮게 해 드려서.” “아닙니다. 업무일 뿐입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대림 병원이요. 아, 그리고 가는 길에…….” 주민성은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텐트를 구매했던 능력자 용품점이 병원 가는 길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트 원정 물품점에도 들러 주세요.” “예.” * * * 한편, 임진석은 일반인 구역 외곽에서 어떤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주우미인서어어엉!” “끄르르륵!” 털썩! 건물이 밀집된 일반인 구역. 신우빈의 인선으로 추측되는 방어계 능력자의 부재. 남은 능력자는 F급과 FFF급. “이번에도 함정이었나! 제기랄.” 나름 신중을 기한 정찰이었음에도 임진석의 의도는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최면이 풀렸기 때문이다. “주민성은 저의 변화를 알아차렸지만, 원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쓰러진 남자를 제외하고 다른 한 남자는 벽면에 서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기계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주민성은 저의 변화…….” “닥쳐!” “…….” 세뇌한 능력자들에게서 얻어낸 정보는 임진석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정보였다. ‘세뇌를 풀어냈다고?’ 임진석의 최면이 통하지 않는 고위 정신계 능력자는 세계에도 몇 존재하며, 신우빈 같은 귀찮은 물건을 착용하는 인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걸렸던 세뇌를 풀어낸 사람은 정 회장뿐이었다. ‘말도 안 돼……. 만능형 SSS급 능력자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주민성의 특이함은 여태 이룩한 규칙과 질서까지 파괴하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감시. 주민성의 위치는?” 망을 보던 다른 능력자 한 명이 말했다. “117번 능력자 물품점에 들어갔습니다.” “채널 돌려.” “예.” 능력자 물품점은 협회가 은밀하게 운영에 개입하는 매장이었다. 덕분에 임진석 정도의 간부라면 특정 매장의 감시는 물론, 감청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송신합니다.” “음.” -아니. 코라에가 어디냐고요. 파니까 알 거 아닙니까.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네에? -죄송합니다아! “코라에?” 주민성은 이번에도 기행을 펼치고 있었다. “제기랄. 이번엔 또 무슨 속셈이냐…….” 그래도 다행인 건, 능력자 물품점이 협회 산하라는 것을 주민성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새로운 정보도 얻었다. 나머지는 협회 분석팀에 의뢰하면 될 뿐. 띠리링! “나다. 코라에가 뭔지 알아봐.” -코라에가 맞습니까? 언제부터 진행할까요? “지금 당장. 긴급 사항이다. 활동비는 선지급 10억. 정보 파악 시 10억을 추가로 입금하지.”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임진석은 그동안 모아둔 비자금의 20%에 해당하는 큰 자금까지 투입하며 주민성을 향해 전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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