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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사무소 (2) (33/250)

인력 사무소 (2)2022.01.03.

사무소에 들어온 사람은 두 명의 낯선 남자였다. “음? 누구십니까?” “일하러 왔수다.” “……예?” 남자들을 맞이하던 이수길의 표정이 황당하게 변했다. “일자리 없는 거요?” “그럼 새벽에 오셔야지요. 이쪽일 처음입니까?” “음? 올해로 10년 차요.” “그래요? 그럼 일단 따라와 보시오.” 이수길은 남자들을 데리고 간단한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타지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수다. 그래서 일자리는 있소?” 최선아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지만, 주민성과 이수길의 표정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비록 10년까진 아니더라도 현장 일 경험이 제법 쌓인 주민성은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수길도 마찬가지이리라. ‘10년 차라고 볼 수 없는 엉뚱한 질문, 인위적으로 그을린 피부, 평범한 운동화.’ 두 남자는 나름 최대한 편안해 보이는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1년 차 미만이라면 저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일 10년 차는 얘기가 다르다. ‘자기 안전화도 없는 10년 차라니.’ 어떤 현장을 나가던 안전화의 착용은 필수였다. 기본적으로 중노동이 이뤄지는 환경이니까. 물론 사무소에서 안전화를 대여해주기도 하지만, 대여용 안전화는 급전이 필요해 잠시 일하는 사람들 말고는 신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결정적으로 땀이 많이 밸 수밖에 없는 안전화를 여러 사람이 돌려 신는 것 자체가 찝찝할 수밖에 없다. ‘다른 장비도 없군.’ 주민성은 남자들의 체격도 살폈다. 근육량도 평범해 보였고 회사원이 더 어울릴 법한 느낌의 남자들이었다. ‘저런 몸으로 현장 일을 10년 하면 몸이 망가지지.’ 남자들에게선 밴드, 각반 등 그 어떤 장비도 보이지 않았다. 저런 몸으로 10년의 경력을 쌓으려면 유전적으로 힘과 요령을 타고났거나 현장 일에 특화된 F급 능력자 정도는 되어야 했다. ‘수상하네. 일부러 찾아온 느낌이야.’ 주민성이 결론을 내리고 개입하려던 순간, 이수길의 호통이 시작되었다. “어디서 장난질이야! 당신들 여기는 뭐 하러 왔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일하러 왔다지 않소!” 이수길의 호통은 주민성도 의외였다. 이수길은 다소 거칠긴 하지만 절대 남에게 큰소리치며 구박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들 어디 기자야! 이번에도 잠복 취재야? 어?” “……아.” 주민성은 이수길이 호통 친 이유를 깨달았다. 언론에 박제되고 사라진 주민성의 행방을 찾는 기자들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의 견해는 달랐다. 남자들의 표정이 정말 억울해 보였기 때문이다. “기자는 무슨! 일하러 왔다고 했수다!” “그래! 인력 사무소가 인부들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인부도 아니다. 기자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다른 목적이 있는 능력자.’ 주민성은 짚이는 곳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은밀하게 접근하는 협회 간부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럴 줄 알았지.’ 협회 간부로 추정되는 상대는 지독하리만큼 신중한 사람이었다. 신우빈의 언급이 있었음에도 정확한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얼굴이 제대로 인식되는 걸 보면, 이번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겠다는 건가.’ 지금은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 주민성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볼일 없으니까 나가 주시오!” “거 참! 일하러 온 것 맞대도 이러네!” 상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세뇌한 사람을 투입해 정보 수집을 우선적으로 하려는 모양새였다. ‘저 사람들도 결국은 나 같은 피해자인가.’ 세뇌를 풀어 볼 수 있을 법한 희망도 있었다. ‘세뇌를 푸는 방법은 있을 거야. 건물주 등급도 많이 올랐고.’ 건물주 능력은 크룩스의 세뇌를 해제하는 데 관여했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힘을 키운 주민성은 추가적인 세뇌를 당한 적이 없었다. 최선아 또한, 처음 만났을 당시 세뇌를 당했을 확률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지금까지도 멀쩡하다. ‘힌트는 내 능력에 있겠지.’ 주민성은 결국 중재에 나섰다. “아저씨. 잠시만요.” “응? 괜찮다. 내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 “에이, 소고기도 드셨는데 저 좀 도와주세요.” 주민성은 이수길에게 눈을 마주치며 끄덕였다. 낯선 남자들이 인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래. 나는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러 간다.” “예.” 이수길이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어색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크흠.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별거 아닙니다.” 남자들은 주민성을 향해 선뜻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높아 보이는 분 같은데……. 누구신지요?” 이들에게선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이 표정으로 전해졌다. ‘자세한 명령 없이 행동만 유도한 걸까.’ 주민성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놈은 분명 내가 이곳에 있는걸 알고 있어. 트러블을 일으켜서라도 나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는 작전일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협회 간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으니까. 어떻게든 협회 간부를 역으로 쫓으려면 어느 정도 빈틈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주민성입니다. 아시죠? FFF급.” “……예? 주민성은 그 얼굴이 아닌 것 같은데.” 놀랍도록 바뀐 외모는 빈틈을 만들어내지 못할 수준. 지금의 외모는 완벽에 가까웠다.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옷 역시 명품이었다. “아, 대출 좀 했습니다. 관리 받으니 좋긴 좋더라구요.” 주민성은 결국 인생 밑바닥, 그것도 밑바닥 끝자락에 떨어질 뻔한 과거를 다시 소환했다. 거기에 대중들의 인식까지 반영했다. “출연료를 다 썼거든요. 인생은 즐겨야죠.” “……하. 정말.” “주민성이 맞는 건가?” 남자들은 떡밥을 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하대를 시작했다. “이야. 너가 주민성이었구나?” “확실히 사진 속 외모가 조금 남아 있긴 하네?” “하하. 그렇죠?” 그리고 동시에, 주민성의 자비심도 사라졌다. 하대에 이은 폭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게? 일단 눈부터 깔자. 어딜 FFF급이.” “그쪽 능력자라도 되세요? 눈을 왜 깔지?” 그리고 주민성은 놀라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D급이다 새끼야. 어?” “……어라? 내가 왜 여기에…….” “…….” D급 능력자가 노가다를 뛰러 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즉, 남자들은 세뇌의 모순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세뇌를 한 번에 풀어낼 가능성이 있었다. 주민성은 급하게 작전을 변경했다. “선아 씨. 마비.” “아, 네!” 푸슉! 남자들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 덕분에 빈틈을 노리기는 너무나도 쉬웠다. 장비빨을 받는 데다 존재감이 흐릿해진 최선아의 가속 능력은 D급이 막아낼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큭! 뭐 하는 짓이야!” “당신 뭐야!” 마비 효과는 확실했다. 털썩! 몬스터를 겨냥해 제작된 마비 화살은 D급 능력자가 버텨낼 수준이 아니었다. “고마워요. 선아 씨.” “아니에요! 이 사람들 너무해요! 이름 한 번 들었다고 이렇게 태도가 바뀌는 게 말이 돼요?” 최선아는 최선아대로 화가 잔뜩 난 모양. 적당한 감사를 표한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텐트를 꺼내들었다. “FFF급이 아주 니들 밥이지?” “으읍! 읍!” 남자들의 혀는 순식간에 마비되어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상태. 주민성은 터무니없이 상대하기 쉬운 능력자들을 보며 한숨지었다. “어휴. D급은 개뿔.” “맞아요. 이런 놈들은 저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어요.” “아저씨들 자랑거리 생겼네요. 유명인한테 털렸잖아요.” 다행히 청각은 마비되지 않는 모양. 남자들의 얼굴은 분노에 새빨개졌다. 펄럭! 사무소 안에선 뜬금없는 텐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민성은 최대한 정성스러운 텐트를 완성시켜 세뇌를 풀어낼 계획이었다. “복을 아주 걷어찬다. 걷어차.” 콩! 콩! 의미 모를 텐트가 사무소 안에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능력자들의 표정 또한 가관이었다. 이질적인 공포를 느낀 것이다. “쫄지 마세요. 나 FFF급이잖아.” “크흐읍!” 펄럭! 텐트가 완성되고, 다음 단계가 진행되었다. “이용료 청구.” “으읍!”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이용료는 14만 원입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이용료 청구. 건물주 등급이 상승하여서일까. 10만 원이던 텐트의 이용료는 무려 14만 원으로 상승해있었다. 40%라는 이용료 상승폭은 주민성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만들었다. “보기 좋네요.” 보스급인 크룩스조차 이용료 청구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용료를 받지 않는 이상, 인간을 상대로도 갑을 관계는 간접적으로나마 유지될 것이다. 임시 권한을 통해 건물주의 위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후후.” 주도권은 완벽하게 주민성에게 있었다. 이들은 협회 간부를 끌어내기 위한 미끼로 가공될 것이고. “건물주 능력은 처음 봤죠?” “으읍? 허억! 이건 대체!” 건물은 이용자에게 자비롭다. 회복 능력은 남자들의 마비상태까지 빠른 속도로 회복시켰다. “움직이지 마. 이번엔 독화살이야.” 남자들의 변화를 눈치챈 최선아가 가속 능력까지 활용해 다시금 화살을 조준했다. 상당히 듬직한 움직임이었다. 최선아의 등급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헛된 반격은 없을게 분명했다. “자. 이런 능력이에요. 돈 버는 능력. 별거 없죠?” “…….” 최선아의 드러난 존재감에 D급 능력자들은 체념했다. “내가 여기 왜 온 거지……. 뭔가 이상해! 나 좀 도와줘!” 예상대로 능력자들에게 걸린 최면이 해제되었다. 물론 주민성에겐 지금의 변화를 설명해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들이 들은 정보는 다시금 협회 간부에게 들어가 또 한 번의 세뇌가 시작될 테니까. 이것은 최면을 풀 수 있다는 경고였으며, 직접 오지 않는 이상 잡혀 줄 생각이 없다는 선전포고였다. “아깐 눈 깔라면서 이젠 도와줘?” “미, 미안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그리고 메시지를 눈치챈 능력자 한 명이 필사적으로 말했다. “14만 원? 얼마든지 줄 수 있다! 그보다 내가 어떻게 된 건지 알려줘!” “싫어요. 안 돼요. 내 지갑은 소중한 거예요.” “그러지 말고 제발!” “자꾸 그러면 협회에 신고할 거예요?” “크윽!” 능력자들을 농락한 주민성은 순순히 기쁨을 만끽했다. ‘대박이다.’ 주민성의 신경은 14만 원에 꽂혀 있지 않았다. 텐트의 효력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텐트 성능이 생각보다 너무 좋은데? 신우빈한테 1400만 원에 팔아도 되겠어.’ 신우빈이야말로 주민성의 소중한 지갑이었다. “이봐!” 건물의 부가 효과 덕분에 머리가 나름대로 돌아간 능력자들은 자신에게 생겼던 변화를 눈치챘다. “주민성!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거지?” “알면 어쩔 건데. 통수라도 치시게?” “크윽! 미안하다!” 힘들 때 돕는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 나머지는 전부 적이었다. 이것이 주민성에게 굳어진 생각이었다. FFF급이 된 이후, 친구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주민성에게 칼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됐고. 돈 필요 없으니까 나가.” “자, 잠깐! 얘기 좀 들어봐!” 능력자들은 주민성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나름 쓸 만하다고?” “그래! 우리 파티에도 끼워 줄게! 2주간 수입 몰빵!” 너무나 우스운 제안이었다. “2주간 얼마 버는데?” “최소 300이다! 탐색으로 발생하는 기타 비용은 우리가 전부 부담할 수 있어!” “아, 300.” 300은 주민성에게 기분 나쁜 숫자였다. 이는 방송 출연료로 입금된 금액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주민성은 300만 원쯤은 쉽게 벌 수 있는 계획도 수립했다. “어때? 괜찮은 금액이지?” “그래! 대출했다고 했잖아! 돈은 갚아야지 않겠어?” 주민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들은 최선아만 없다면 언제든 뒤통수를 갈길 수 있는 인간들이었다. “됐고. 나가.” “보, 보내 주는 건가?” “응. 나가.” 이용료의 납부 기한은 24시간. 이들에게선 300만 원보다 더 큰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두, 두고 보자! 개자식아!” 사무소를 뛰쳐나간 능력자들이 조금이나마 본색을 드러냈지만, 주민성은 웃을 수 있었다. 이용료 납부 기한은 24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응.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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