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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사무소 (1) (32/250)

인력 사무소 (1)2022.01.02.

리무진은 일반인 구역의 좁은 길을 돌고 돌아 이수길의 사무소 근처에 도착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 그보다 차를 세울 장소가 마땅치 않군요.” 일반인 구역은 좁은 찻길과 통행로를 제외하면 주변 모두가 건물로 가득한 장소였다. 그나마 있는 주차 공간마저 리무진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이다. “괜찮습니다. 그대로 퇴근하시면 돼요.” “예?” “집이 이 근처라서요.” 퇴근이 문제인지, 일반인 구역이 문제인지 운전기사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반인 구역은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번 업무는 일주일간 진행되기 때문에 퇴근도 없습니다.” “아…….” 결론은 둘 다였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편하신 데서 쉬세요.” 주민성에겐 자신감이 있었다. 주변 건물 상태를 보고 견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저 건물주 능력자입니다. 아시잖아요?” 최선아 역시 주민성의 말뜻을 이해한 모양. “확실히 여기는 건물이 잔뜩 있네요! 이 정도면 민성 씨 무적 아니에요?” 누구보다 주민성의 활약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최선아였다. “정 그러시다면 근처 호텔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네. 내일 뵐게요.” “예.” 리무진을 떠나보낸 주민성은 느긋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켰다. “후우! 선아 씨도 좀 쉴래요?” “아뇨. 저는 밥값 해야죠. 전속 호위잖아요?” “음. 그렇다면 뭐.” 운전기사와는 위치부터가 달랐다. 최선아는 주민성이 직접 큰돈을 들여 투자한 능력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속 능력자라는 메리트 덕분에 잡다한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보다……. 관리까지 받았는데도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뭘까요.” “뭐긴요. 우리 대장님 얼굴빨이지.” 어느새 주민성 주위엔 인파가 모여 있었다. 차이라면 강남에서와 달리 사람들이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정도. “나 고위 능력자는 처음 봐…….” “여기서 무슨 사건이라도 벌어진 걸까?” 주변 반응은 호기심 반, 긴장 반이었다. 주민성은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정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군.’ 이런 반응은 허무하기도 했다.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자기들 목소리가 주민성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나같이 입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데뷔 촬영차 온 신인 능력자 아닐까?” “아, 그렇네? 영상 이력서 만들 때 자기 출신지에서 촬영하는 사람도 있잖아.” “근데 저런 이 동네에 저런 남자가 있었어? 한 번도 못 봤는데?” 최선아는 안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변의 모든 시선은 주민성에게만 쏟아지고 있었다. ‘아, 갑자기 시비가 그립다.’ 주민성은 과거를 잊지 않았다. SNS에 올린다며 억지로 사진 촬영을 요구한 남자부터, 보면 옮는다는 뉘앙스로 주민성을 혐오하듯 기피하던 아줌마까지. 그 외에도 잔잔하게 성질을 긁어댄 사람들부터 칼같이 손절해온 과거의 지인들이 이 구역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현실을 자각한 주민성은 곧장 인력 사무소로 향했다. “이쪽으로 온다!” “비, 비켜요!” 단 한 걸음. 정말 평범한 한걸음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아니었다. 모여든 인파는 양쪽으로 갈라지는 거로 모자라 밀고 넘어지는 추태를 보였다. “이봐요! 내년이면 나도 능력자야! 왜 밀고 그래!” “허! 알게 뭐야! 그래 봤자 같은 일반인끼리!” 일반인 구역은 한탕주의와 열등감이 만연한, 세계 최강국 대한민국과 거리가 먼 별개의 세상이었다. 남에게 피해만 안 줬지, 과거의 주민성 또한 이런 부류에 속했었다. 지금 주민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뼈있는 경험담이었다. “여러분들은 다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 같죠?” “예? 그게 무슨……?” “인생도 막 바뀔 것 같죠?” “…….” “안 바뀝니다. 적어도 지금 같은 생각으론 절대.” “…….” 그 말에 최선아의 분위기까지 심각해졌다. 그리고 한 마디가 거들어졌다. “A급, B급. 아무나 되는 거 아니에요.” “…….” “기존의 능력자들은 여러분을 배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곳에 모이신 분들 중 90%. 아니 99% 이상은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게 될 거예요.” 그나마 전속 호위로서 만만해 보이는 게 최선아였는지, 용기 있는 한 남자가 자신의 소신을 주장했다. “적어도 주민성처럼 될 확률보단 A급 능력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참나. 그걸 말이라고.” 남자의 말에 최선아는 잔잔한 분노를 일으켰다. “당연히 당신이, 여러분들이 주민성 씨처럼 될 확률은 0%죠! 그쪽이 뭘 알아……!” “그만.” “흐익!” 최선아의 분노는 주민성이 대신했다. “이것만 기억하세요. 나쁜 의미로 0%입니다.” “……윽.” “그리고 바쁘니까 제 눈앞에서 전부 사라져 주세요. 배려 같아요? 아닙니다. 경고입니다.” 타다다다닥! 고블린 라이더 못지않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주변이 정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0초. “미안해요. 선아 씨.” “아니에요……. 제가 괜히 나섰나 봐요.” “에이, 잘하셨어요. 그보다 저희가 갈 곳은 저기예요.” 주민성이 가리킨 곳은 허름한 작은 건물이었다. -수 인력사무소. “음? 저기는 신성 계열사 아닌 것 같은데요.” “네. 제가 일했던 사무소예요.” “아…….” “일단 가서 식사나 하죠.” 주민성은 주변을 확인한 후, 인벤토리에서 한우 선물세트를 꺼내들었다. “이, 이건!” “네.” 영롱한 포쁠 한우의 자태는 최선아를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저 따라온 것. 후회 안 할 겁니다.” “포……. 포쁘을!” “가시죠.” 그때, 사무소 안에서 후줄근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담배를 물며 나타났다. “아저씨! 저 왔어요!” 툭! 이수길은 담배를 떨어트렸다는 사실도 잊은채 크게 당황했다. “누, 누구십니까?” 이수길 역시 주민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저에요. 주민성.” “어, 어라?” “담배 아직 못 끊으셨네요. 건강 챙기셔야죠.” 주민성은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건넸다. 이수길의 표정은 여전히 어색했다. “……정말 민성이 목소리네?” “예. 저 맞아요.” “아이고. 오기 전에 연락이나 하지! 그보다 오늘은 왜 이렇게 주변이 조용하지?” “그러게요. 유명세도 다 소용없네요.” “어휴. 그런 유명세는 얼른 사라졌으면 좋겠다. 얼른 들어오거라!” “예.” 사무실에 진입한 주민성은 이수길에게 최선아를 소개했다. “제 파티원 최선아 씨예요.” “안녕하세요! 민성 씨 전속 호위를 담당하는 최선아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이고! 이수길이라고 합니다! 저희 민성이를 살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 저는 도움만 받았는데요. 하하…….” 서로를 어리둥절하게 보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주민성에겐 절대적인 타개책이 있었다. “그보다, 아저씨 식사 안 하셨죠?” “응? 그렇지. 짜장면이나 시켜 먹을까?” “에이.” 주민성은 소중히 안고 있던 선물 세트를 높이 치켜들었다. “포장은 아저씨가 풀어 주세요.” “헛 참. 이런 포장지는 잘도 구했구나.” 이수길은 한우에 대해 상당히 잘 아는 편이었다. 1년에 한 번씩은 사무소 인부들에게 한우를 대접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녀석아. 이 정도 급은 아무나 먹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수길은 눈을 빛내며 포장지를 풀었다. 사르륵. “보이십니까. 이 영롱한 자태가?” “으, 음메! 이건 설마!” -품질 보증. ++++급 한우. 포쁠은 등급 자체가 브랜드였다. 품질 보증 마크에만 보존 능력과 고급 마석이 여러차례 중첩되어 사용될 정도라 위조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맛있겠쥬?” 주민성은 유명한 요리 연구 능력자의 명대사를 흉내 내며 한우를 들고 익살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꿀꺽. 이수길은 군침을 삼키며 한우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이걸 대체 어떻게…….” 주민성은 빙긋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최고급 버너와 각종 식재료를 꺼냈다. “선아 씨. 세팅 좀 도와주세요.” “당연하죠! 전부 맡겨 주세요!” 치이이이! 세팅부터 한우가 구워지는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이건 최고급 버너의 작품이었으니까. -조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열을 정지, 온도 유지 모드로 전환됩니다. “드시죠.”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민성의 젓가락도 이미 입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우는 빛의 속도로 각자의 입에 들어갔다. “오오…….” “후아…….” “으아아.” 입에서 고기가 녹는다는 투쁠. 입에서 고기가 춤을 춘다는 쓰리쁠. 포쁠은 입안에서 고기가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경지였다. 마법 같은 식감과 고급스러운 풍미가 사무소를 강타했다. “이게 정녕 소고기가 맞는가…….” “대박…….” 아무것도 곁들일 필요가 없었다. 포 플러스급 한우는 태어날때부터 완벽한 관리를 받으며 사육된다. 맛을 해치는 모든 것이 배제된 궁극의 소고기였다. “음메!” 한우의 우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갈 정도의 마법 같은 시간이 끝나고, 불판엔 기름기만 번들거렸다. “크……. 제대로 포식했네요.” “포 플러스.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행복한 포만감은 잠시. 셋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마다 챙겨 주고 싶었던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크흠……. 조만간 한우 회식이라도 해야겠군.” “그렇죠. 포쁠이야 또 사 먹으면 되죠.” “저,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거냐?” 여태껏 챙겨 주는 걸 받기만 했을 뿐. 역으로 챙겨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민성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충족감에 미소 지었다. “그보다, 그냥 한우만 먹기 위해서 온 건 아니겠지?” “하하. 들켰나요?” 이수길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주민성이 누구보다 빨리 자립해서 능력자가 된 이유엔 평소 습관이 뒤따랐다는 걸. “누구보다 만 원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겠어. 허허.” “에이. 이번에도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 주세요.” “살살해라 녀석아. 포쁠은 나도 무섭다.” 포쁠 한우는 주민성에게 큰 동기 부여를 선사했다. 반드시 성공해서 당당히 포쁠 한우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욕을 심어 준 것이다. “건축가, 그리고 인부가 필요합니다.” “음? 그건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건축 허가는 제대로 받은 거냐?” 주민성은 대답 없이 방긋 미소지었다. “아뇨.” “그럼 힘든데……. 허어. 그래도 한우 값은 해야겠지.” 이수길은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아저씨.” “기다려봐. 그래도 이 바닥에서 구른 시간이 있는데. 조금은 무리해도 괜찮다.” “정말 괜찮아요. 허가받지 않아도.” “기다……. 응?” 주민성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 부탁은 건축 허가보다 더 어려운 거에요.” “응? 인부나 건축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데?” “그게…….” “어허. 왜 이리 뜸을 들일꼬. 뭐든 말하라니까!” 이것이 주민성이 이수길을 따르는 이유였다. 어떤 부탁을 하던 최선을 다하는 지금의 모습은 누구라도 호의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말할게요?” “그래. 어서 말해 봐.” “사실……. 건물 올릴 장소가 게이트거든요.” “콜록! 콜록!” “…….” 주민성의 부탁은 일 얘기가 나와 입을 다물고 있던 최선아마저 충격받을 정도였다. “……민성아. 도시라면 어디든 괜찮다. 하지만 게이트는 무리야.” “출입을 허가해 줄 경비원이 있습니다.” “뭐? 그건 경비원으로서도 자살행위야! 뭔가 다른 계략이 있을 거다!” 무리한 부탁을 하는 와중에도 이수길은 주민성의 계획에 문제는 없는지부터 걱정했다. “신성 후계자와 선이 닿았어요. 포쁠 한우를 괜히 사 왔겠어요?” 골드카드까지 꺼내 보였지만 이수길의 표정은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녀석아. 우리나라 재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협회 능력자들보다 더 무서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네. 그래서 손을 잡았습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협회 놈들, 지독한 짓을 했지.” “아저씨도 능력자 출신이니 알 거예요. 제가 세운 자세한 계획을 들어보세요.” 게이트에 진입하게 될 건축가, 그리고 인부들까지. 주민성은 그들을 얻음으로써 일으킬 수 있는 변화는 게이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일단 게이트에선…….” 끼릭. 주민성이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하려는 도중, 누군가 사무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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