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lex (3) (31/250)

Flex (3)2022.01.01.

“정말 몰라보게 달라지셨어요! 고객님!” 놀랍게도 관리 직원의 극찬은 진심이었다. 멀리서 다른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증거였다. “저 사람 진짜 주민성 맞아?” “배우 해도 되겠는데?” “저런 얼굴로 대체 왜 거지꼴을 하는 거야?” 몰라보게 달라진 건 최선아도 마찬가지. 지금의 최선아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의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고객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원래도 아름다우셨지만, 지금은 훨씬 더요!” “어머, 정말요? 감사해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 지금이라면 행동 범위를 크게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옷 한 벌씩만 살게요? 설마 한 벌도 감정이 필요한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고객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명품관에 도착한 주민성은 최대한 실용적인 느낌의 명품 트레이닝복을 선택했다. 그리고 집으려는 순간. 최선아가 개입해 왔다. “민성 씨…….” “네? 왜요?” “아무리 그래도 보라색은 좀 아니지 않아요?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주민성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제지였지만, 최선아의 조언을 순순히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유행만 따라가도 남들 눈에는 덜 띌 테니까. “그럼 선아 씨가 골라 줘요.” “맡겨만 주세요!” 가속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최선아의 몸놀림은 민첩하기 짝이 없었다. “용도별로 한 벌씩은 있는 게 낫겠어요. 저기 직원분? 이거, 저거, 저거까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최선아가 선택한 건 세련된 디자인의 트레이닝복, 캐쥬얼한 평상복, 그리고 수트였다. “고객님! 안목이 너무 좋으세요! 고르신 의상들은 전부 저희 매장의 대표 상품들이에요!” “특수 가공 처리까지 확실히 된 것들 맞죠?” “그럼요! 전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까지 거쳐서 삼중 가공된 의상들이랍니다?” “…….” 옷에 대한 욕심이 없는 주민성은 전혀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이건 오직 장비 성능을 유별나게 고집하는 최선아만이 가능한 대화였다. “세팅된 신호 장치는 AS 확실한 거고요?” “네! 부속 장비는 저희 매장에 전부 구비가 되어 있습니다! VVVIP께는 평생 무상 AS를 지원해 드려요!” “어머! 좋네요!” 평범해 보이는 옷이었음에도 온갖 장치가 설치된 모양이다. 게다가 유럽제. 물품 생산과 제작에 특화된 능력자들이 가장 많이 분포된 곳이 바로 유럽이었다. 특히 의류나 액세서리형 명품 같은 경우, 하나같이 전부 S급 장인의 수작업으로 제작된다고 하니 부르는 게 곧 가격과 마찬가지였다. ‘대충 의상은 선아 씨가 알아서 잘 골랐겠지. 나는 식품이나 좀 털어서 가야겠다.’ 주민성의 목적지는 일반인 구역이었다. 정확히는 이수길이 운영하는 인력 사무소. 이수길은 유일하게 주민성을 손절하지 않은, 마지막 남은 지인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비록 나이 차이는 상당하지만 힘들 때 돕는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는 만큼, 주민성은 이수길에게 최선의 보답을 할 예정이었다. “계산 좀 미리 부탁드립니다.” “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결제를 마친 주민성은 최선아에게 식품코너에 간다고 귀띔한 후 곧장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이거, 수복도 확실하겠죠?” “그럼요! 마감 처리에 사용된 가죽이 무려 알프스 산맥 쪽 게이트에 서식하는 S급 마수 가죽이거든요!” “어머! 정말요? 그러면 확실하네요!” 최선아의 장비 품평은 한참 더 걸릴 모양이었다. 지금 상황에선 역할 분담이 최선이었다. “후우.” 식품코너에 도착한 주민성은 심호흡부터 시작했다. 이곳엔 아주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최고급 식품들이 주민성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이걸 먹어 볼 날이 오다니.” 식품코너는 쉽게 볼 것이 아니었다. 이 백화점이 세계 최고 기업인 신성 백화점이라면 더더욱. 이번 식품 구매의 피날레를 장식할 주인공은 바로 한우였다. “진정하자…….” 애초에 백화점에서 식품코너를 별도로 마련했다는 사실 자체가 보통의 한우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것은 능력자와 관계되지 않은 물건임에도 주민성의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는 한우였다. ‘포쁠……!’ 신성 백화점이 취급하는 한우의 등급엔 더하기 표시가 무려 4개나 붙어있었다. 즉, 포 플러스 등급. 이 한우는 국내에서도 오직 강남에서만 취급하고, 신성 백화점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그런 한우였다. 평생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한우가 눈앞에 있으니 주민성의 호흡은 자연스레 가빠질 수밖에 없었다. “후우! 후우!”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한우는 구매에도 제한이 있었다. S급 농가에서 S급 관리인에게 S급 사료를 먹으며 자란 한우이니만큼, 가족 중 S급 능력자가 있거나 백화점 고객 등급 VVIP 이상에게만 판매되는 특급 한우였던 것. “고, 고객님?” “포쁠! 포쁠 주세요! 전부!” “네! 바로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주민성은 인생 최고의 한우를 이수길과 함께 구워 먹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미 모든 준비는 갖춰졌다. 최고급 버너부터 시작해 여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품들은 모두 구비해 뒀으니까. 삐빅!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고객님.” “오오…….” 대망의 결제가 끝이 나고, 주민성은 포 플러스급 한우의 진공 포장까지 마치고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에 특상품 소고기가 수납되었습니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나중의 기쁨은 이수길과 나누기로 마음먹은 상황. 주민성은 애써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나머지 식품도 전부 구매하겠습니다.” “네! 고객님!” 나머지 식품들에 역시 최상이었다. 국가 공인 S급 심마니가 채취한 최고급 버섯부터, S급 농부가 수확한 최고급 채소까지. 한우와 곁들일 음식과 판자촌 능력자들과 함께 먹을 식량까지 전부 수납했다. “감사……. 또 감사합니다.” “아, 예!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의 감사는 신우빈에 대한 감사이기도 했다. ‘보답은 수길 아저씨한테만 할 게 아니었군.’ 식품 구매까지 마치고, 최선아와 합류해 옷을 갈아입은 주민성의 이미지는 180도 바뀌었다. 그야말로 꿈과 희망이 가득한 젊은 청년 모델의 이상적인 표본 그 자체였다. “역시 옷이 날개네요!” “그런가요? 아, 이걸 깜빡했네.” 주민성은 마지막으로 배에 텐트를 두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민성 씨. 텐트는 적어도 옷 안에 감으면 안 될까요?” “아, 텐트 감촉 별론데…….” “제발요…….” “네…….” 수확의 기쁨은 최선아와도 나누는 게 옳았다. 그녀 또한 지금의 주민성을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한 사람이었으니까. “휴. 훨씬 보기 좋네요.” “네…….” 이질적인 텐트의 감촉을 견디는 것으로 최선아가 기뻐한다면 그걸로 만족하는 주민성이었다. “다음은 목적지는 어디예요? 역시 능력자 전용 매장이겠죠?” “아, 확실히 그곳도 갈 예정이긴 한데요.” “한데요?” “네. 일반인 구역 먼저 갈 겁니다.” 장비빨은 최선아에게나 중요했지, 주민성의 우선순위는 건물과 관련된 물품이었다. 이미 1차 목적은 달성한 거나 마찬가지. 여기서 더 무리하면 신우빈측에서 다른 조치를 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람, 머리 꽤나 굴리는 재벌이니까.’ 신우빈이 이렇게 통 크게 나오는 이유는 주민성도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최소한의 경계는 필요한 것이다. “가시죠.” “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눈에 보이는 직원들의 밝은 인사와는 다르게 백화점 사각지대에선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 어쩔 거야! 오늘 VVVIP 주민성이었다며! 니들 다 미쳤어? 백화점 한 달 분 매출이 전부 털렸다고!” “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실장님!” “눈치껏 비싼 물건은 빼뒀어야지! 상대는 FFF급 거지야! 거지! 거지 근성 몰라? 어! 전담팀 호출해서 붙여놔! 용도 불분명한 물건은 전부 회수하고!” 잘나간다는 고연봉자들이 쩔쩔매는 모습은 그저 주민성을 흐뭇하게 만들 뿐이었다. 불편한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성취감이 생기는 것이다. ‘전담팀이라……. 좋은 느낌은 아니군. 얼른 빠져나가자.’ 신성 백화점을 나온 주민성과 최선아는 다른 의미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저 사람이 VVVIP인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지? 부티 나는 것 좀 봐.” “재벌가 3세 같은데? 옷 검소하게 입은 거로 봐선 숨겨진 자식일 가능성이 커.” “또 시나리오 쓴다. 또.” “옆에 여자도 봐. 딱 봐도 사이즈 나온다니까? 검소한데 예쁘잖아. 저러면 절대 정략혼은 아니거든.” 주민성의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백화점 밖에서 VVVIP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몰려있던 행인들 단 한 명조차 주민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근데 주민성도 안에 있지 않았나?” “그러게. 그게 좀 이상하단 말이지. 숨겨진 재벌 3세의 짐꾼이라기엔 너무 알려진 얼굴이고.” “잘못 봤겠지. FFF급이 강남에 왔으면 구걸밖에 할 거 없을걸?” 행인들의 모욕에 기분이 나쁠 만도 했지만 주민성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머릿속엔 온통 한우 생각뿐이었다. ‘포쁠! 포쁠! 포쁠!’ 건물 부가효과 중 하나인 정서적 안정조차 효과가 없을 정도였다. “민성 씨. 기사님 호출해야죠.” “아, 네. 어디 보자……. 단축번호가…….” * * * 주민성과 최선아가 리무진을 기다리는 사이, 멀찍이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한 남자가 둘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타겟 A. 타겟 B. 다시 포착되었습니다.” “흐음.” 남자의 보고를 받는 사람은 임진석이었다. “다음 경로는?” “추측하기 어렵습니다. 외모와 복장만 바뀌었고, 아무런 짐도 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놈은 표면상 FFF급. 아무리 골드 카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신성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니까.” 임진석은 여전히 생각이 많았다. ‘변장을 시킨 것은 분명 신우빈일 터. 둘은 이미 접촉을 마쳤다고 봐야 해.’ 임진석으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계획이었다. 신우빈의 심계는 이미 임진석보다 한 수 위였으니까. ‘제기랄. 실패는 어떻게든 만회해야하는데!’ 너무나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주민성의 모습은 임진석을 더욱 망설이게 만들었다. ‘저것도 분명 함정이다. 신우빈의 계책이 아니더라도 주민성 저놈도 보통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임진석은 어떻게든 주민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띠리리리! 임진석은 이미 신성 백화점 간부를 상대로 최면을 걸어 투입한 상태였다. -예. 도련님! “그래. 박 실장. 전담팀은 붙였겠지?” -물론입니다! 다른 직원들에게도 단단히 일러 뒀습니다! “좋아. 핫라인은 이쪽으로 돌려.” -예! 눈앞의 감시 능력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정 회장 외엔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기밀 임무였기에 최면은 필수였다. “타겟 A, B. 운전기사와 합류.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좋아. 우리도 차량으로 이동하지.” “예.” 임진석의 추적은 이전보다 훨씬 은밀했고, 감시는 더더욱 촘촘했다. ‘두 번의 실패는 절대 있어선 안 된다.’ 임진석은 게이트에서의 실패를 아직 보고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정 회장의 신뢰를 잃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기필코!’ 과정 따윈 필요 없었다. 정 회장은 임진석에게 언제나 결과만을 요구했으니까. 이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실험체를 잃은 것 또한 과정일 테니. 누구보다 회장을 잘 알고, 누구보다 회장의 명령을 많이 수행한 임진석만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타겟. 일반인 구역으로 진입합니다.” “뭐? 게이트가 아니고?” “예. 경로상 확실합니다.” 임진석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 구역은 임진석이 자유롭게 날뛸 수 있는 장소였다. 수년 전, 멕시코의 SSS급 능력자조차 일반인 구역에서의 임진석을 감당하지 못해 사망했을 정도. ‘대체 무슨 속셈이냐! 주민성! 신우빈!’ 주민성은 언제나 노골적으로 허점을 드러내 왔다. 결과는 전부 반전이었다. 그리고 신우빈은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허술함을 가장했다. ‘신우빈은 나의 주력 전장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주민성이 향하는 일반인 구역은 건물 밀집 구역……. 게다가 놈은 건물주 능력자…….’ 임진석이 끼워 맞춘 퍼즐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이것은 너무도 노골적인 함정이었다. “……차 세워.” “예.” “정보가 더 필요하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FFF급 능력자와 F급 재벌이 내는 시너지는 황당하게도 SS급 능력자인 임진석을 압박하고 있었다.

16548848740763.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