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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 (2) (30/250)

Flex (2)2021.12.31.

리무진은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수많은 일반인 구역을 지나 강남에 도착했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강남만큼은 정 회장의 적극적인 투자로 과거의 위용을 유지하고 있었다. “15분 후에 도착합니다.” “네.” 운전기사의 안내와 함께 주민성은 자신의 계획을 차분히 정리하고 있었다. ‘최대한 사서 쑤셔 넣어야지.’ 주민성의 계획은 상당히 간단했다. 살 수 있는 것은 전부 구매하기였다. 자산 가치엔 소유물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유물이 건물에 적절히 배치되면 추후 청구하는 이용료에도 영향이 있었다. 때문에, 돈을 버는 목적인 건물엔 반드시 수많은 명품 가구를 배치할 예정이었다. “곧 신성백화점 앞에 도착합니다.” “네.” 강남은 지나가는 행인의 복장마저도 범상치 않았다. 하나같이 비싸 보이는 복장이었다. “와. 저게 다 얼마야.” 최선아는 감탄하며 사람들의 복장에 견적을 내고 있었다. “저 세팅에 증폭 커스텀이면 최소 5000인데 우와…….” “좋네요.” 주민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장단을 맞춰 주며 도착을 기다렸다. ‘5000이면 삼 일쯤 걸리려나.’ F급 게이트는 이제 주민성의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키기만 한다면 5000만 원은 순식간에 벌 수 있는데다가, 이젠 230억 원 상당의 유물 수령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 부러우면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착했습니다.”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주민성이 빠르게 차량에서 내리려는 찰나. 그 행동은 최선아에 의해 저지당했다. “에이. 컨셉이 취약하시네.” “예?” “문은 제가 열어 드려야죠.” “아…….” 졸부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최선아의 에스코트로 리무진에서 내린 주민성.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어? 누군가 했더니 저 사람 주민성 아냐?” “뭐야? 주민성이 여기서 왜 나와?” “출연료 엄청 땡기긴 했나 보다.” “…….” 이전과 달리 주민성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최선아와 운전기사의 존재감 덕분이었다. “저 여자, 입은 것 봐. 엄청 비싸 보인다.” “S급 이상인가? 누구지?” “S급이 주민성 호위를 왜 해?” “운전기사도 최소 A급은 될 것 같아. 저 브랜드 A급 미만한테는 안 팔잖아.” “주민성 흙수저 아니었어? 뭐지?” “저 패션은 또 뭔데? 누더기 룩이야?” 이번에도 몸에 두른 텐트가 활약했다. 텐트로 덕분에 적용된 건물 부가효과로 주변의 모든 대화가 선명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어그로 분산은 되는군.’ 다행히 사람들의 이목은 최선아와 운전기사의 패션에 쏠려 있었고, 주민성의 취급은 의문이 대부분이었다. 이전과 달리 주민성의 기분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지금은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쇼핑이나 조금 해 볼까?” 주민성은 가볍게 몸을 푸는 척하며 품속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어? 저거 VVVIP카드잖아!” “왜 귀한 물건이 누추한 사람한테서?” 예상대로 사람들은 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전부 주민성의 계획이었다. ‘이목이 쏠릴수록 협회에선 접근하기 까다롭겠지.’ 상대가 일반인이면 모를까. 대한민국 상위층이 모여 협회에서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곳은 강남이었다. 뒤가 구린 협회 입장에서 주민성을 대놓고 노릴 수 없음을 역이용한 작전이었다. ‘어그로는 내가 한 수 위라 이거지.’ 한참 동안 카드 자랑을 끝낸 주민성은 신성 백화점 정문으로 당당히 입장했다. 백화점 직원 역시 건물 안에서 주민성의 기행을 지켜본 상황, 백화점엔 비상이 걸렸다. “VVVIP가! 아니! VVVIP 카드가 방문하셨습니다!” “10분 안에 다른 고객님들 전부 돌려보내! 방송 켜!” “안내원! 안내원!” 주민성의 건물 입장 후, 단 열 걸음 만에 백화점 내부에선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신성 백화점을 이용해주시는 고객님들께 알려드립니다. 본 매장은 30분 뒤 임시 휴점에 돌입합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본 매장은……. “임시 휴점이면 내일 와야겠네. 어휴.” “근데 오늘 SSS급 능력자 방문 일정이 있었던가?” “보면 알겠지! 구경이나 가자!” 백화점의 손님들은 이런 방송이 익숙한지 곧장 보던 물건을 내려놓고 1층으로 몰려들었다. “주민성 님. 저는 주차장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호출은 8번으로 해 주시면 됩니다.” “아, 네.” 운전기사가 물러가고, 주민성 주변엔 다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사람 주민성 맞지?” “FFF급이 여기 왜 있어? 그보다 SSS급은?” 사람들에겐 주민성의 존재보다 어딘가에 있을 SSS급 능력자가 중요했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VVVIP는 주민성이었지만. “선아 씨. 조용히 들어가죠.” “네!” 이미 백화점 직원은 주민성이 VVVIP라는 사실을 알고 빠르게 접근한 상태. “아, 안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아닙니다.” “예?” 주민성의 손가락은 매장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가구 코너죠?” “그렇습니다만…….” 직원의 어색해하는 답변에 주민성의 입가엔 상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전부 삽니다.” “……정말이십니까?” “네.” 명색이 신성 후계자의 카드인데 돈이 없을 리가 없다. 오히려 신우빈 입장에선 주민성의 출신을 생각해 씀씀이가 적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는 일. 안타깝게도 지금의 주민성은 능력 맛을 깨달아 탐욕의 화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구매하신 가구는 어디로 보낼까요?” “결제만 해 주세요. 알아서 챙길 테니.” “아, 알겠습니다!” 삐빅! 삑! 삐비비빅! 직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미친 듯이 가구의 바코드를 찍어 대기 시작했다. 주민성을 에스코트하는 직원은 어느새 수십 명으로 늘어난 상황. 잔잔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신성 백화점에선 시장통과 다름없는 결제의 향연이 벌어졌다. “결제 끝난 물건부터 얼른 말해주세요.” “아! 이쪽부터 결제가 끝났습니다!” “네.” 이곳이 게이트가 아닌 이상, 능력의 사용은 상당히 정교할 필요가 있었다. 주민성은 가구에 손을 올린 채 사람들과 CCTV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에 은밀히 인벤토리를 꺼냈다. ‘최대한 깔끔하게…….’ 잠시간의 집중이 끝나고.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인벤토리에 최고급 침대(피로 회복)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최고급 옷장(진공 압축)이 수납됩니다.] …… 진열된 가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가, 가구가!” “결제됐다면서요?” 주민성은 카드를 허투루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낭비는 신우빈의 카드 잔고면 충분했으니까. ‘정 회장이 상대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주민성은 신우빈의 제안을 확실히 수락했고, 성실하게 협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백화점 레이드 역시 전부 미래를 위한 그림이었다. “저건 대체 무슨 능력이야! 윗선에 보고 드려……. 어서!” “알겠습니다!” 건물 부가효과 덕분에 멀리서 직원들이 속삭이는 소리도 들렸다. ‘속도를 높여야겠군.’ 백화점 직원들이 신용하는 것은 VVVIP카드였지, 절대 주민성은 아니었다. “VVVIP 고객님들 중 카드 분실 신고는 없었는지 확실히 확인하고!” “예!” “젠장! 주민성 저놈! 바퀴벌레가 아니라 메뚜기였군!” 겉으로만 고객이었지, 이들에게 주민성의 위상은 강남에 발도 들여선 안 될 FFF급 능력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주민성은 더욱 기쁘게 카드를 질러댔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결제요.” “아, 알겠습니다!” 주민성은 백화점을 휩쓰는 메뚜기 떼와 다름없었다. 그의 카드가 스쳐간 곳은 전부 흔적도 없이 쓸려나갔고, 텅 빈 진열대만 남을 뿐. “민성 씨. 괜찮아요?” “네. 이럴 땐 무리 좀 해야죠.” 주민성의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잔뜩 집중해 물건들을 인벤토리에 쑤셔 넣다 보니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백화점 고객이라곤 주민성뿐. 모든 직원이 주민성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객님……. 능력을 이렇게 사용하시면…….” “결제했잖아요.” “그건 맞습니다만…….” 직원들 입장에선 내세울 논리가 부족했다. 물건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전부 결제가 끝난 제품들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정지해 주십시오.” 심지어 가까이 접근하는 직원들은 전부 최선아에 의해 저지되고 있었다. 그렇게 가구 코너, 생활용품 코너는 주민성에 의해 전부 쓸려 버렸다. ‘전자제품 욕심도 나긴 하는데……. 전력 소모가 너무 심한 게 문제네.’ 주민성이 구매한 물건들은 전부 게이트에서 사용할 물건들이었다. 때문에 전자제품은 발전 시설부터 확보한 이후, 형편껏 세팅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어쩔 수 없지. 구형 발전기라면 일반인 구역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까. 이젠 사치품으로 자산 가치를 올려 봐야겠어.’ 다음 이동할 장소는 명품 코너였다. 가장 귀중한 물건들이 진열된 장소이니만큼 삼엄한 경비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명품 코너로 갑니다.” 그때, 나이 들어 보이는 직원 한 명이 다급하게 주민성을 향해 달려왔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왜요?” “고, 고객님이 사용하시는 카드는 특수 목적용이라 사용되기 때문에 매출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신우빈은 특수작전팀 소속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다. “네. 그렇군요. 명품 코너로 갈게요.” “이제부턴 사용처가 분명해야 결제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네. 사용처 있어요.” 주민성의 발걸음엔 확신이 가득했다. 자산가치 불리기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으니까. “명품 코너 제품은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고객님의 사용처가 확실해야만 판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원 옆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감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바빠요. 용건만 확실히 말해주세요.” 직원들의 경계심이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이는 주민성에게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다른 층에선 지금도 물건을 정리하고 있다. 슬슬 한계인가.’ 귀가 밝아진 주민성은 지금도 다른 직원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객님이 구매하는 물건이 특수 목적에 사용되는지 확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 걸 확인하는 능력자라도 되십니까?” “예! 저는 A급 감정 능력 보유자입니다! 결제 직전엔 저와 눈을 마주쳐 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주민성은 조금 난처했다. 이번에 구매하려는 물건은 생활용품이나 가구처럼 확실한 사용처가 있는 물건이 아닌, 단순히 자산 가치를 불리기 위한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명품은 포기하는 게 낫겠어. 능력에 노출되기도 찝찝하고.’ 이미 한 차례 최면에 당해 본 주민성은 정신계 능력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주민성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아, 갑자기 목이 마르네요. 식품 코너로 가시죠.” “예?” “설마 음료 조금 사는데도 감정이 필요하신가요?” “아, 그건 아닙니다만…….” 가격대는 떨어지지만, 식품이라면 주민성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감정관이 나설 필요도 없을 수준으로 뻔한 결과가 나올 테니까. 그리고 이때, 다른 직원이 접촉해 왔다. “혹시 이것은 어떠십니까? 저희 백화점에선 VVVIP분들께 휴식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저 목마른데…….” “당연히 음료도 드리고요! 피부 관리부터 온갖 케어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주민성은 자신의 외모에 나름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치고 빠지기에 적절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그리고 최선아의 은은한 귓속말까지. “무료래요. 받아 보죠.” “크흠…….” 건물 부가효과로 신체적 피로는 쌓이지 않았지만, 게이트에서의 생활로 정신적인 피로가 누적된 상태. 여기에 작은 호기심도 있었다. 강남의 케어 센터에서 관리를 받는 고위 능력자들은 하나같이 미남 미녀였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성의 선택은 휴식이었다. “예. 받아 봅시다. 그 관리.” “탁월한 선택입니다. 고객님!” 직원의 안내로 케어 센터에 방문한 주민성은 두 시간 뒤, 자신의 선택에 크게 감탄했다. “어떠신가요? 고객님?” 거울 앞에 선 주민성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최선아도 마찬가지. “이거, 저 맞죠?” “네! 고객님!” 거울 속 남자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 TV에 나왔던 과거의 모습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후줄근한 텐트 패션만이 거울 속 남자가 주민성임을 주장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 덕분에 주민성의 머릿속에선 새로운 계획들이 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이건 기회다! 강남부터 빠져나와야겠어!’ 주민성의 시선은 일반인 구역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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