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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 (1) (29/250)

Flex (1)2021.12.30.

시야에서 신우빈 일행이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주민성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한 차례의 폭풍이 끝난 것이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주민성은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괜찮으십니까!” 대위를 비롯한 판자촌 능력자들부터 시작해 어딘가에 숨어있던 여중생까지 전부 주민성에게 달려왔다. “괜찮습니다.” “이 능력은 대체…….” 지금의 학교는 더 이상 폐허라고 부를 수 없었다. 모든 시설이 고스란히 작동하는, 진정한 건물이었다. “저 좀 일으켜 주세요. 조금만 쉬러 가죠.” “아, 예!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주민성의 활약은 경악 그 자체였다. 대기업 소속의 정예 능력자들을 전부 혼자서 막아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더욱 놀라운 건 아무런 피해 없이 막아냈다는 사실. 흡사 정 회장이 연상될 정도였다. “아……. 좋다.” 양호실에 도착해 침대에 몸을 누인 주민성은 감동에 젖었다. 이렇게 푹신한 침대는 너무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중생이 생수를 건네 왔다. “여기 물입니다…….” “어? 이건 처음 보는 물인데?” “창고에 있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각종 식료품이 가득합니다.” “아!” 지금의 학교는 임시 권한만 해제되었을 뿐, 전성기의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즉, 식료품도 전성기 당시의 식료품인 것이다. “유통기한은 20년 전으로 되어 있는데, 상태가 놀랄 만큼 좋습니다. 먹어도 이상 없을 정도로.” “네. 먹어도 괜찮아요. 지금의 학교는 20년 전으로 돌아온 모양이네요.” 담담한 주민성의 감상은 다른 능력자들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겨 줬다. “시, 시간을 되돌린 겁니까?” “이런 능력까지 존재한다니……. 대체 지금의 세상은…….” 민망할 정도로 존경 어린 시선이 주민성에게 쏟아졌다. “흠흠. 그보다 이 건물 탐색을 좀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식료품이 확보되고 전선이 연결되어 있는 상황.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유지될지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이곳은 게이트니까. “일단은 전기. 언제 끊길지 모릅니다. 최대한 절약해 주시고요.” “예!” “다음은 냉장 시설의 확보인데.” 이때, 여중생이 손을 들며 말했다. “급식실에 냉장실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오. 좋습니다. 모든 전력은 냉장 시설에 사용되는 게 좋겠죠.” 처음엔 아파트 단지 주변에 능력자들을 머물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임시 권한 당시에 사용해 둔 교육과정과 지금의 풍족한 건물 상태는 다른 선택지를 전부 지워 버렸으니까. “건물 관리는 저희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아, 괜찮으신가요?” “물론입니다. 20년 전의 건물이라면 대장님과 제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대위가 말하는 대장은 텐트에서 쉬고 있는 노인을 뜻했다. 그때, 주민성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교육 과정!’ [교육 과정은 건물 이용자가 진행합니다.] [교육은 30일 동안 강제로 진행됩니다.] [교육에 참여한 대상은 경험을 공유받습니다.] [교육은 교실당 한 과목씩 지정할 수 있습니다.] 주민성이 주목한 것은 경험의 공유에 있었다. ‘만약 교육의 진행자가 노인이라면!’ 교육만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20년 전은 물론 게이트가 없었던 30년 전 이전의 경험까지도 공유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이용료 청구도 문제없었다. 임시 권한 적용 당시에도 이용료 변화는 없었으니까. ‘바로 시작하자. 도시에도 얼른 복귀해야 하니.’ 휴식을 마친 주민성은 곧장 행동을 시작했다. 건물 정비부터 교육 일정에 대한 설명까지. 세부적인 방침은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위임했다. 학교 주변에 숨어 있던 최선아와 크룩스, 고블린 라이더를 불러들인 것은 덤이었다. “저, 정말 그게 효과가 있습니까? 경험의 공유라니!” “메시지 보셨잖아요? 결과는 확실할 겁니다.” 판자촌의 능력자들 역시 교육 과정과 관련된 메시지는 확인한 상황. 믿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주민성의 활약을 지켜본 이들은 납득 외의 선택지가 없었다. “무조건 됩니다. 교육은 이곳에 계신 모든 분이 진행해 주셔야 하고요. 교실 빈자리는 최대한 고블린들로 채워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판자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시설을 제공했고, 신우빈을 비롯한 협회의 간섭을 막아냈다. 판자촌의 능력자들이 해야 할 건 그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것뿐. “민성 씨. 정말 괜찮겠어요? 여론이 상당히 나쁘던데.” 도시에 다녀온 최선아는 언론에서 주민성이 어떤 수준으로 조롱받고 있는지 알고 있는 모양. “어쩔 수 없죠. 230억이 걸린 문젠데. 그리고 이제 두렵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주민성에겐 자신감이 넘쳤다. 신우빈의 존재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금도 F급으로 보이지 않았어.’ 대기업 후계자라는 직함 앞에선 능력도 소용없었다. 주민성이 능력자가 된 이유도 돈이 목적이었고, 그 목적을 위해 미친 듯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신우빈은 돈을 지배하는 남자였다. “이젠 이게 있으니까요.” 주민성은 최선아에게 금빛 카드를 꺼내 보이며 미소 지었다. “돈은 힘입니다. 제 전투력이 느껴지십니까?” “풉. 뭐예요 그게.” “앞으로 일주일. 그동안 저는 무적입니다.” “예예. 모실게요.” 최선아의 역할은 주민성의 전속 호위였다. 추적자 세트라는 고가의 장비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절대 F급으론 보이지 않아. A급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적어도 이전처럼 시비를 걸어올 일반인은 절대 없을게 분명 했다. “자, 그럼 준비는 마쳤고…….” 판자촌의 능력자들은 경의 가득한 표정으로 주민성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주민성을 대신해 학교를 관리해 줄 사람을 정할 시간이었다. ‘서열은 알아서 잘 유지되는 모양이지만…….’ 주민성에겐 한 가지 호기심이 있었다. 군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군대에서 지휘관은 3인칭 화법을 사용한다면서요? 중대장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같은?”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만…….” “그럼 지휘는 그쪽이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직책은 없으니까 이름을 써 주세요.” 주민성이 지목한 사람은 여중생이었다. “예? 아, 아닙니다?” “앞날이 기대되는 지휘관이신데요. 뭘.” 여중생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능력자들은 주민성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음! 좋은 안목이십니다!” “맞습니다!” 전직 군인답게 확실한 지원사격이었다. 그렇게 학교의 지휘관은 여중생이 되었다. “자. 이제 소감 한 번 듣고 출발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얼굴이 새빨개진 여중생은 분위기에 떠밀려 소감을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보, 본 지휘관은 최선을 다해…….” “이름으로 갑시다.” “옳소! 옳소!” 이제 여중생에게 퇴로는 없었다. 드디어 여중생의 이름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봉춘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아아아!” “크하하하하!” “잘했다! 이름에 자신감을 가져야지!” “다들 너무하십니다아!” 봉춘향. 여중생과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이름을 숨긴 이유는 단순히 부끄러워서였네.’ 교실로 도망간 봉춘향을 뒤로하고, 주민성과 최선아는 학교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신제품 라면이 먹고 싶습니다!” “일주일 후에 뵐게요!” 게이트 입구로 향하는 길은 쾌적했다. 조금의 긴장감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키에에엑!” 최선아의 전속 호위인 고블린 오형제가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민성을 노리는 몬스터는 귀신같이 사전에 제압되는데다 마석은 최선아가 알아서 배낭에 챙겨 넣었다. “민성 씨. 저 분당 마석 수입이 10만 원을 넘겼어요!” “네네.” 이제 주민성은 만 원짜리 마석 한 개에 울고 웃는 경지를 졸업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230억이 주는 힘이었다. “그래. 콩아. 배고프지?” “컹!” 후두두두둑! 주민성은 통 크게 마석 10개를 한 번에 쏟아냈다. 콩이에게 무려 10만원 어치의 간식이 쏟아진 것이다. 콰드득! “그래. 팍팍 먹어. 흘려도 되니까.” “컹!” 그렇게 주민성과 최선아는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게이트 입구 근처 사각지대에 도착했다. “이제 전부 돌아가도록.” “키에엑!” 콩이를 비롯한 고블린 라이더의 귀환까지 확인한 주민성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신감 넘치게 걸어가 경비실 문을 활짝 열었다. “갑니다.” “…….” 예상대로 경비원들은 주민성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뭐요.” “……아닙니다. 지나가십시오.” 이전에 주민성을 공격하려던 경비원도 있었다. 눈가에 시퍼런 멍을 한 채로. 아마도 신우빈의 소행인 모양이다. 여기선 주민성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한 것은 돌려줘야 인지상정. “선아 씨. 요즘 경비 애들 너무 기어오르는 거 아니에요? 기강 좀 잡을 때도 된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본보기 하나 만듭시다.” 주민성은 당시 경비가 하던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공포는 마음 깊숙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카드가 되는지 테스트 좀 해 봐야겠어요.” 주머니 속에서 금빛의 카드가 재강림하는 순간이었다. 주민성은 그대로 카드를 경비원의 머리에 긁었다. “삐빅.” “…….” 모욕적인 행동에 경비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라? 카드 긁었잖아요. 왜 가만히 있으세요?” “……무슨 짓입니까.” “이 카드. 신우빈 씨가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줬거든요.” “…….” “그래서 자유롭게 쓰고 있습니다. 삐빅. 삐빅.” 실제론 신성 관련 매장에서만 사용하는 카드였지만, 신우빈이 직접 머무는 경비실인 만큼 이곳도 신성과 다름없었다. “너도 약한 주제에 누가 누굴 괴롭히냐?” “…….” 주민성에겐 자신이 있었다. 경비원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이 사실은 다른 경비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주민성의 활약을 지켜본 증인이 수십 명이었으니까. “얼굴 기억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한 번 더 긁은 주민성은 경비실을 빠져나와 도시에 도착했다. “휴. 이게 얼마 만이냐.” “민성 씨는 게이트에 너무 익숙해진 거 아니에요?” “그런 것 같아요. 공기부터가 다르네.” 건물 부가 효과로 깨끗한 공기만 마시던 주민성은 도시의 공기마저 불쾌하게 느꼈다. 최대한 빠르게 볼일만 보고 게이트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휴. 이제 선아 씨도 허세 좀 부리셔야 해요. 알죠?” “네!” 철컥! 추적자 세트엔 온갖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이번 기능은 얼굴 전체를 가려주고 야간 시야를 확보시켜주는 특수 안면 마스크였다. “어울려요?” 최선아는 기본적으로 미인이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비율도 뛰어났기에 지금 착용한 고가의 장비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낼 정도. “최고네요. 보폭은 이 정도로 해 주시고요.” 주민성은 신우빈의 전속 호위를 떠올리며 그녀의 행동을 최선아와 매칭시켰다. “거리는 이 정도. 자세는 이렇게.” “됐어요?” “네. 완벽해졌네요.”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 찰나, 한 리무진이 주민성 옆에서 멈췄다. 차량에선 깔끔한 복장의 남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일주일간 호위 겸 운전을 전담할 김 대리입니다.” “……아 네.” 신우빈의 배려인지 전속 호위의 배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판단은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협회의 추적을 의식한 건가. 택시보단 훨씬 낫겠어.’ 지금도 도시 어딘가엔 주민성을 노리는 협회인이 존재한다. 한 사람의 호위라도 더 필요한 상황. 호의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방어계 A급입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몸에 텐트를 감고 있는 주민성의 행색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최선아만큼은 정말 완벽했다. 여기에 리무진과 말끔한 호위 한 명까지 추가되니 더할 나위 없는 졸부가 되었다. 차량에 탑승한 주민성은 푹신한 차량 의자에 몸을 뉘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신성 백화점이요.” “예. 바로 모시겠습니다.” 신성 백화점. 주민성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장소였다. “와, 신성 백화점……. 처음 가 봐요.” 이는 최선아도 마찬가지. 그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들어가더라도 서민이 살 수 있는 물건이 한 개도 없을 정도로 비싼 물건이 즐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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