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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빨 (3) (28/250)

건물빨 (3)2021.12.29.

학교는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안 쳐요? 다시 없던 일로 할까요?” 세계 최고의 재벌가 후계자와 비밀이 가득한 능력자 주민성이 손을 잡는 조건은 너무나 황당했다. “쳐 보라는 게 때려 달라는 뜻 맞나?” “맞습니다.” “어이가 없군.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건 별도입니다. 고객님.” 둘이 대항하려는 대상은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한국 능력자 협회, 그리고 능력자 협회장이었다. 이 조합의 시너지와 힘은 둘째 치더라도, 목적만큼은 엄청나게 위험했다. 성공만 한다면 국가 전복은 물론이고 세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터무니 없는 조건이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신우빈에겐 주민성의 제안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직속 호위를 제외하면 전부 계열사 직원들인 데다, 언제든지 갈아 끼울 수 있는 대체가 가능한 A급 이하의 능력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주민성에겐 임시 권한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챙기는 마지막 계산이었다. “쎄게 치면 되나?” “그러면 더 좋고요. 죽을지도 모르니 적당히 하세요.” “그렇군. 다들 들었지?” “……예!” 신우빈의 강압적인 명령과 주민성의 느긋함은 계열사 직원들에겐 지독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제압되어 있는 능력자에게서 새어 나오는 비명은 더욱 공포를 자아냈다. “읍! 으읍!” 능력자들이 머뭇거림은 주민성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3분] ‘곤란한데. 한 번에 끝내는게 낫겠군.’ 주민성은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자자. 이제 바쁠 텐데 얼른 움직입시다. 그냥 다 같이 한 번에 최선을 다해서 때려 주십시오. 합공도 좋고.” 계열사 능력자들은 이미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주민성의 태도는 절대 FFF급이 아니었으니까. “뉴스가 가짜인 건 알겠다만, 합공은 얘기가 다를 텐데. 죽어도 후회하지 마쇼.” “아, 예.” 능력자들의 허세는 뻔히 보였다. 그들은 지금도 쉴 새 없이 제압당한 능력자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우빈의 마지막 재촉. “야. 빨리해. 뭐 대충 능력 테스트하려는 모양이니까. 이럴 때 밥값 해야 할 거 아냐.” “마, 맞습니다!” “몸져누워도 월급 따박따박 줘. 보너스 자잘한 거 전부 챙겨 줘. 병원비도 무료야. 얼마나 좋냐?” “그렇습니다!” 신우빈의 발언에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다. 능력자들이 신성에 발을 담근 이상, 평생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신우빈이었다. “자. 출발.” “대, 대규모 가속!” 한 번 봤던 능력이었다. 상대와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주민성은 곧장 두르고 있는 텐트의 내구도를 강화시켰다. “내구도 강화.” 그리고 동시에 거대한 충돌이 일어났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파가가각! 퍼걱! 콰지지지직! 화염이 넘실거리는 번개 폭풍이 몰아쳤고, 눈부신 주먹이 주민성의 명치를 가격했다. 거기에 미증유의 중력까지 미친 듯 짓눌러 왔다. “큭!” 이는 텐트로 버틸 수준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능력자는 버티지 못할 즉사급 능력이었다. 콰지지지지지직! 잠시 후. 폭풍이 멎어 들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 침입자가 건물주를 공격했습니다.] [임시 권한에 의한 절대력이 발동됩니다.] [건물주가 받은 피해를 100배로 강제로 청구합니다.] …… 능력자들의 비명과 함께. “끄아아아아악!” “크아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번 임시 권한은 상당히 간단한 방식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100배로 돌려주는 정도. 그리고 잠시 후, 임시 권한이 끝이 났다. [임시 권한이 종료되었습니다.] 주민성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주변의 변화를 살폈다. ‘대박.’ 놀랍게도 건물은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기도 들어오고 물도 나오는, 전성기의 상태가 유지되어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임시 권한 적용 중 사용했던 능력들 역시 해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자, 여기서 간단한 실험.” 이제 거칠게 없었다. 남은 것은 수확뿐이니까. 주민성은 바닥에서 나뒹구는 능력자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자신을 FFF급 쓰레기라고 부르던 남자였다. “실험 조금만……. 아니다. 많이 할게요.” “히익! 크아아악!” 상대의 동의 따위는 필요 없었다. 주민성 역시 상대의 쓰레기 취급에 동의한 적 없었으니까. 스륵. 주민성은 능력자의 배 위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올렸다. 그리고 당당히 말했다. “돈 내놔.” “크으윽! 그게 대체 무슨 소리……!” 당황은 잠시. 회사 생활로 단련된 능력자의 눈치는 상당히 빨랐다. “여, 여기 있다! 그러니 그만! 그마안!” 휙. 돈을 낚아챈 주민성은 그대로 메시지의 변화를 확인했다. [건물 침입자가 1만 원을 납부합니다.] [납부된 금액에 따라 청구중인 피해량이 감소합니다.] [피해량이 0.001배 감소합니다.] “풉!” “하라는 대로 했잖아! 크악! 그만하라고!” 주민성의 예상대로였다. 건물 안이라면 뭐든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건물주였다. “네. 계산 해 드렸고요. 만 원 어치 덜 아플 거예요. 축하드립니다.” “크아아악! 개자식!” 건물주는 사람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데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이 사실은 학교의 주인이 주민성으로 고정되어 있는 이상 변함없었다. “아, 물주는 다른 분이셨지.” 주민성은 그대로 신우빈을 바라봤다. 지금의 행동은 처음부터 신우빈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계획된 행동이었다. “하. 결국 돈이었냐?” “네. 고객님. 피해 보상금은 1인당 10억인데 어떠세요?” 자해 공갈단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만큼 주민성의 행동은 괴팍하기 짝이 없었다. “음……. 얘들 목숨 값치곤 괜찮네.” B급 이상의 능력자 한명이 게이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연평균 20억 이상. 주민성 입장에선 나름 합리적인 제의였다. 게다가 상대는 세계 최고의 대기업 신성. 능력자를 게이트에 돌리지 않고도 거액의 연봉을 챙겨주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게 확실했다. 즉, 신성의 후계자인 신우빈은 그 정도의 금액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었다. “대충 230억이네. 너도 회장처럼 현금이 필요하지?” “……음.” 주민성은 애써 놀란 표정을 지웠다. 신우빈은 능력자 회장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었고, 그가 주민성과 공통점이 있음을 짐작했다. ‘현금을 사용하는 능력…….’ 장담컨대 현금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능력은 자신이 사용하는 건물주 외엔 없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의문이 따라야 정상이었다. ‘만약 회장이 나와 같은 능력이라면?’ 정회장의 등급은 검증된 SSS급. 그의 능력은 나라의 구조를 뒤집고 세계의 질서를 재정립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리고 현금을 모은다. ‘미치겠군.’ 정 회장이 건물주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국가 통제권을 얻은 정 회장이 가장 먼저 만들어낸 법. 건물 소유 금지법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선 능력자 협회의 허가 없이 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법은 협회에 반감을 가진 주민성조차 괜찮다고 판단한 법이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생겨나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80%는 난민이 되었으니까. ‘적어도 불만이 있는 일반인은 없었지.’ 기존 건물주들은 협회에서 우대하는 VIP가 되었고, 마석 정산부터 세금 감면까지 각종 혜택을 받으며 건물 소유를 포기했다. 그리고 비어 있던 건물들은 협회에 의해 개축된 이후 국민들에게 재분배되었다. 그 이후엔 개인 사정에 맞춰서 알아서 세를 내고 형편에 맞는 집으로 옮겨 사는 방식이 정착했다. ‘만약 정 회장이 건물주 능력자였다면?’ 상상만으로도 소름 돋는 가정이었다. 정 회장과 주민성은 시작점부터 달랐고, 경험이 다르다. 그리고 SSS급과 FFF급이라는 절대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럴싸해…….’ 가장 대표적으로 크룩스가 있다. 크룩스를 신우빈이 말하는 협회 간부와 연관짓는다면 최종적으론 정 회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SSS급 건물주…….’ 건물주는 편법으로나마 몬스터를 다룰 수 있다. 그리고 협회는 은밀하게 몬스터를 다룬다. ‘정 회장은 현금을 필요로 한다…….’ 도시에서나 쓰일 현금이, 게이트에서도 쓰인다. 그리고 주민성은 현금을 모으고 있다. 정 회장도 현금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공통점이 존재했다. “야. 얘기하다 말고 뭐 해?” “……아.” 주민성의 생각은 신우빈에 의해 끊겼다. “아, 현금 좋죠. 현금이어야 합니다. 반드시…….” “……좋아. 문제는 지급 방법인데…….” “문제 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다음 제안은 상당히 상식적이면서도 파격적이었다. “능력자 시대가 되면서 판돈 굴러가는 게 커졌다지만, 투자 절차는 밟아야지. 괜히 협회 눈에 띄어도 곤란하고.” “그렇다는 말은…….” “유령회사 하나 맡아라. 구색이라도 갖춰야 정 회장이 대놓고 견제 못 하거든.” “아.” 주민성이 대표인 유령회사를 등록시킨 후, 그 사업체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전달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 방법. 안전한 겁니까?” “당연하지. 우리 쪽 계열사로 등록할 거니까.” “아하. 거절합니다.” “인감은……. 뭐?” “거절이요.” 신우빈의 방법은 확실히 안전할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소속에 있었다. “계열사면 결국 그쪽 소속이 되는 거잖아요?” “당연하지. 230억이 무슨 개 이름도 아니고.” “개 이름이 230억일 수도 있습니다.” “미친놈…….” 실제로 주민성은 최선아의 행동 패턴을 연구할 계획이었다. 몬스터에게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특별한 유대관계가 생기는지 등의. 그래서 주민성은 데빌도그의 이름을 숫자로 정해 줄 생각이었다. 즉, 주민성의 주장은 언젠간 230억 마리째의 데빌도그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억지였다. “저 무소속 할 거예요. 그러니까 알아서 잘 주십시오.” “……흐음. 그러면 현물로 줄 수밖에 없다.” “현금이 아니고요?” “그래. 나한테 돈세탁까지 시키려고?” “그거나 그거나. 현물이라고 깨끗한 것도 아니겠죠.” “응. 아니야. 깨끗해.” “…….” 주민성은 얼굴을 찡그리며 신우빈에게 답을 요구했다. “유물이라면.” “……!” 신우빈의 답은 상당히 명쾌했다. 주민성조차 납득할 정도로. “230억짜리 유물이면 괜찮지 않아?” “…….” 제안을 거절했던 덕분일까. 이번엔 더욱 좋은 제의였다. 유물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니까. 특히 230억의 시세가 형성되어 있는 검증된 유물이라면, 가격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기 힘든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유물이라면 좋습니다. 크흠!” “풋. 좋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뭡니까. 조건은 저만 거는 건데.” “간단한 거다. 유물의 처분은 신성 백화점에서 할 것. 그쪽이 처리가 편해.” 일리 있는 말이었다. 신성의 후계자라면 사내에서 회장 다음으로 행동 반경이 넓은 사람일 테니까. “아, 그런 거라면 좋습니다.” “깔끔하네?” “당연하죠. 가격으로 장난치면 저도 똑같이 장난칠 거니까요.” “……흠. 제법이군. 좋다.” 임시 권한은 진작 끝난 데다, 더 이상 욕심내서 일이라도 틀어지면 주민성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지금이 협상을 마무리할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네. 이걸로 얘기는 마무리된 겁니다?” “그래.” 양측의 동의가 끝나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피해 금액 납부가 예정되었습니다.] [금액은 총 230억 원입니다.] [청구 중인 피해가 연기됩니다.] [청구한 피해량이 99.999배 감소합니다.] [납부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칼 같은 계산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런 방식으로도 사용되는군.’ 메시지는 계약서와 비슷한 느낌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모양. 주민성은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기로 마음먹었다. “납부 기한. 아니지. 유물, 언제 줄 겁니까?” “……음? 아, 확실히. 일주일. 일주일로 하자.” 어울리지 않게 신우빈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먼저 기한까지 정할 정도로. “일주일이면 괜찮네요.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그래……. 230억보다 좀 더 비쌀 거다.” “더 좋네요.” “음.” [납부 기한이 일주일로 정해졌습니다.] [납부 기한 초과 시 피해 청구를 재개합니다.] [기한 초과 페널티 시 피해량은 200배로 변동됩니다.] 주민성은 신우빈의 태도 변화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으니까. ‘메시지가 뜬 모양이군.’ 그리고 신성측 능력자들의 비명도 순식간에 멎었다. “허억! 헉! 도, 도련님!” “……시끄럽다.” “죄송합니다!” 신우빈의 동공은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심지어 주민성과 눈도 마주쳐 오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돌아가도 되겠지?” “그러십시오.” “……그래.” 신우빈은 전속 호위에게 고개를 까딱여 뭔가를 명령하곤 곧장 학교를 벗어났다. 남은 것은 전속 호위뿐. “실례 많았습니다. 이것 받으십시오.” 주민성이 받은 것은 새까만 지갑과 휴대폰이었다. “현재 도련님 입장상 명함을 건네 드릴 수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만 이것을 사용해 주십시오.” “아, 그래요? 지갑은요?” “저희 회사의 몇 안 되는 골드카드입니다. 신성 계열 매장이라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래는 도시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사죄의 의미가 담긴 카드였다. “신우빈 씨 카드인가요?” “네. 맞습니다. 일주일간 자유롭게 사용해 주십시오.” 신우빈의 카드. 그리고 자유로운 사용. 이 카드는 즉, 조건부 무료 쇼핑권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주민성이 물어볼 건 한 가지뿐이었다. “하, 한도는요?” “없습니다.” 주민성의 입가가 미친 듯 씰룩였다. “더 질문이 없으시다면 그럼 이만…….” “예! 살펴 가세요! 곧 뵙겠습니다! 흐흐흐.” 주민성에게 예상치도 못한 일정이 잡혀 버렸다. 그것도 백화점 레이드 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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