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빨 (2)2021.12.28.
“끄아아아아! 살려 줘! 살려 주십시오!” 처절한 비명 속에서 느긋하게 건네진 주민성의 말에는 지독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무감정해 보이는 눈빛엔 살기마저도 감돌았다. “……주민성.” 학교를 벗어나려던 신우빈의 발걸음이 다시 주민성을 향했다. 그의 악귀 같은 표정에 휘하 능력자들까지 기겁할 정도였다. “허억!” “기어코 나를 돌려세우는구나.” 신우빈의 시선이 주민성을 공격하려다 역으로 당해 버린 능력자에게 꽂혔다. “크아아악! 끄흑! 제, 제발!” “……이상한 능력을 쓰는군.” 이에 주민성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제 조금 후회가 되었는지요.” “……그래. 조금.” “조금이라.” 주민성은 피식 웃고는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말했다. “저 사람. 입 좀 막아 주세요.” “끄흐으윽! 으흑!” “아, 예!” 판자촌 능력자들은 이미 주민성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의 어마어마한 변화를 보고도 마음이 들뜨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요. 들어오십쇼. 빨리 끝내게.” 주민성의 목적은 도발. 그것도 전원을 향한 도발이었다. 이번에 받은 임시 권한은 상대가 몬스터라면 모를까 능력자를 상대론 사용이 까다로운 능력이었다. 상대가 피해를 반사하는 특징을 알아차리는 순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뭐 해요? 안 들어오고. FFF급 상대로. 풉.” “거, 건방진 놈!” 신성의 능력자들에겐 도발이 어느 정도 통했다. 섣부르게 공격을 걸어 오지 않을 뿐. 이들의 공격 의지는 신우빈에게 통제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주민성을 탐색하던 신우빈이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희들 뭐 하냐.” “도, 도련님?” “플랜 B다. 전부 뒤로 빠져.” “예!” 신우빈의 재빠른 대처에 주민성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건물 밖으로 나간다고?’ 이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주민성에게 가장 유리한 포지션은 건물 내부. ‘퇴로부터 차단해야겠군.’ 판단을 마친 주민성은 곧장 손을 뻗어 인벤토리를 학교 밖으로 보냈다. 신우빈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거 막아! 무조건 막아!” “예!” 왜인지 신우빈은 주민성의 인벤토리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건물을 빠져나가려던 능력자 한 명이 인벤토리를 향해 점프했다. 그리고 주먹에서 빛을 뿜어냈다. “흐아앗!” “미친놈들아! 다 같이 막아!” “예!” 신우빈의 일갈에 당황한 다른 능력자들까지 인벤토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건물 잔해가 튀어나왔다. 쾅! 능력자와 주먹과 건물 잔해의 충돌. 콰르르르! “이깟 바위!” “집중해! 하나 더 온다!” “응?” 쾅! 쾅! 쾅! 튀어나오는 건물 잔해는 한 개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젠장!” 쾅! 콰광! 주먹에서 광선을 뿜어대는 능력자를 필두로 저마다의 능력이 선보여졌다. 콰지지직! 그동안 몬스터를 평정해 오던 건물 잔해가 처음으로 막히는 순간이었다. ‘이걸 막네. 잔해는 건물 판정을 안 받는군. 그렇다면.’ 플랜 B는 신우빈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플랜 B는 주민성에게도 있었다. ‘미세먼지 방출.’ 건물 잔해만 쏟아내던 인벤토리에서 그동안 모아온 미세먼지가 섞여 나왔다. “크윽! 뭔가 나온다!” “장 과장! 출력 좀 올려 봐!” “흐아압!” 이 모습을 바라보는 판자촌 능력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20명에 가까운 능력자들, 그것도 대기업의 정예들이 고작 주민성의 인벤토리 하나를 상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 혼자서 저런 능력자들을 상대로!” “이건 우리가 서포트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주민성은 판자촌 능력자들이 끼어들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기업이 다르긴 다르구나.’ 신성 능력자들의 상황 대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건물 잔해는 철저하게 부수고, 그 사이에서 은밀하게 뿜어져 나오던 미세먼지는 누군가의 능력에 의해 차단됐다. ‘신기한 능력이네. 미세먼지도 막히는구나.’ 주민성은 여전히 느긋했다. 본격적인 공격수단은 사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벤토리엔 남아 있는 여분 텐트가 있었다. ‘건물 폭발은 어떨까.’ 주민성의 자세가 바뀌었다. 건물 잔해를 오른손으로 컨트롤 한다면, 왼손은 미세먼지였다. 건물주 능력 발동 체계가 연상시켜서 떠올리는 능력인 만큼 지금의 공격은 나름의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후우. 집중하자.” 주민성의 오른발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신우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전부 빠져어어어!” “대규모 가속!”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능력자들이 순식간에 신우빈 주변으로 후퇴한 것이다. 인벤토리가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건물 잔해로 메꿔졌다. 쿠구구구궁! 쿠쿵! 잔뜩 중첩된 건물 잔해가 지상과 충돌하는 것보다 능력자들의 움직임이 더 빠른 것은 주민성에게도 충격이었다. ‘저게 고등급 가속계 능력인가. 장난 아니네.’ 주민성은 입맛을 다시며 오른발의 움직임을 포기했다. 건물 폭발은 주민성에게도 나름의 회심 카드, 텐트 수량도 한계가 있는 이상 아껴 두는 게 맞았다. 저벅. 저벅. 주민성이 건물 잔해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며 이죽거렸다. “왜 도망쳐요?” “……주민성. 너는 표정 관리부터 하는 게 좋을 거다.” “예?” “한참 가지고 놀다가 이제 전부 죽여 버리겠다는 표정을 짓는데 그것도 눈치 못 챌 줄 알았나?” “…….” 확실히 주민성은 건물 폭발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신성의 능력자들은 고작 건물 잔해를 필사적으로 막아내기 바빴으니까. “임진석이 당할 만했네.” “…….” 다시 언급된 잊혀지는 이름에 주민성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뭔가 알고 있는 건 확실한데 이상해.’ 주민성이 제압한 건 크룩스뿐, 동행했을 거라 추정되는 능력자와는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신우빈은 당했다라는 평을 내렸다. “하, 등급도 협회의 장난이었나. 스케일 한번 크군.” “…….” 주민성은 차마 대꾸하지 못했다. 지금이야 물론 성장을 통해 강해졌다지만, 시작은 분명 FFF급이 맞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주민성은 힘깨나 쓴다는 일반인조차 제압할 수 있는 데빌도그에게도 패배한 유일한 능력자였다. 심지어 F급인 최선아도 데빌도그에게 지지 않기 때문에 FFF급이라는 등급은 주민성 자신조차 인정할 수 있는 등급이었다. “주민성. 나에게 붙어라.” “갑자기 이제 와서?” “너의 비밀을 지켜 주겠다.” “갑자기 무슨 비밀입니까?” “……정말 모르는 건가?” “……?” 황당한 발언이었다. 주민성에겐 신성을 위협할 비밀도 없었을 뿐더러 과거 또한 상당히 깔끔한 편이었다. 즉, 신성이라는 대기업이 주민성의 과거를 조사해 봐야 보육원에서 성장해 인력 사무소에 다녔다는 기록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떳떳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작은 가능성이라면 한 가지. ‘몬스터를 다루는 걸 들킨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주민성은 고블린 라이더를 신우빈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 그나마 발각될 가능성이라면 상대측에 뛰어난 탐지 능력자가 있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주민성은 신우빈의 눈썰미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었다. ‘들켰다면 방금의 전술은 쓰지 않았을 거야.’ 만약, 그가 주변에 잠복해 있는 몬스터를 알아차렸다면 측면이나 후방에서의 기습에도 대비했었어야 했다. 때문에 주민성은 신우빈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모르는 표정이군. 알다가도 모를 표정관리야.” “모르니까 물어보죠.” “주민성. 정 회장과 무슨 관계냐.” “능력자 협회장 말입니까?” “그래.” “TV에서나 봤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흐음.” 주민성의 천진난만함에 신우빈은 점점 흥미가 생기는 모양. “네 능력이 정 회장과 같은 능력이라면?” “……!” 신우빈은 가정을 했다. 건물주가 되면서 얻은 능력들이 사실은 능력자 협회장과 같은 능력이라는 가정을.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신우빈의 눈빛엔 상당한 확신이 있었다. “그 새까만 구체. 정 회장도 사용하는 구체다.” “…….” 이번엔 확신이 가득한 정보였다. 그리고 주민성 또한 건물주라는 능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무조건 강해질 수 있는 능력. 내가 만약 협회장 수준으로 성장한다면?’ 주민성은 입장을 바꿔서 고민했다. ‘나에게 가장 위협적일 경쟁자가 탄생했다면, 내가 협회장처럼 압도적인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답은 간단했다. 힘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라나는 싹을 밟았을 것이다. ‘회유도 필요 없지. 뒤통수 맞을 일을 사전에 차단하는 거니.’ 작은 가정과 유력한 정보를 얻고 나니 앞뒤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협회의 간부를 이용해 계약서를 쓰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매장시켰다. 벼랑 끝에 몰아세워진 경쟁자는 어떻게든 발악할 거고……. 세뇌한 몬스터를 이용해 암살까지.’ 새로 얻은 정보와 자신의 경험들을 끼워 맞추니 놀랍게도 말이 되는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잔혹한 인생을 누리는, 그야말로 주인공 같은 사람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소름 돋는 이야기가. 아직도 이해 안 되는 정보가 몇 있었지만, 상당히 앞뒤가 맞는 이야기였다. “정보를 준 이유가 뭡니까. 그쪽은 협회에도 소속된 모양인데.” “베풀 건 충분히 베풀었다고 생각하는데? 대답을 해야 하나?” “…….” “내가 너에게 또 한 번의 빚을 지워 준 이유는 너에게 그만한 담보가 있어서일 뿐이야. 착각하지 마라. 비장의 수는 나에게 도 있으니까.” “…….” 신우빈은 신우빈대로, 주민성은 주민성 나름대로 비장의 수단이 존재했다. 그렇게 국면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표면상 F급 경비원. 그리고 신성의 후계자. 자신의 정체를 간단하게 드러낼 정도의 압도적인 자신감. 확실히 뭔가 있다. 몬스터를 전부 동원해도 뒷감당이 힘든 상대야.’ 심지어 상대는 능력자 한 명만 잃었을 뿐. 전력은 그대로였다. 임시 권한을 받아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젠장. 너무 까다로운 상대다.’ 주민성은 최선아를 통해 템빨의 무서움도 깨달았다. 더욱 큰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신성의 후계자라면 그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진 않은 인물이다. 심지어 계약서에 대해서도 상당히 박식했다. ‘내가 싸움에서 압도한들 상대는 아까의 가속 능력자를 통해 위기를 쉽게 빠져나갈 수도 있어. 여론은 대기업의 편이겠지. 그때 저 남자를 다시 만난다면 끝이라고도 봐야 하는군.’ 그리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15분] “아. 언제까지 생각만 할 건데? 어쩔래? 맞짱 뜰래?” “……진짜입니까? 지금이라면 환영인데.” “진짜 뭔 자신감인지 모르겠네. 설마 최선아인가 그 여자 믿고 뻐기는 거야? 자폭이라도 시키려고?” “……예?” “너도 그 여자가 말해 줘서 알고 있을 거 아냐. 경비실에서 임진석이랑 나랑 싸운 거.” “……예?” 갑작스런 정보에 주민성의 숨통이 턱 막혀 왔다. ‘선아 씨가 알고 있었다고? 와. 미치겠네. 그런데도 판자촌에서 깽판부터 친다고?’ 주변의 모두가 전부 콩이처럼 되어 간다는 사실은 주민성조차 마음이 꺾일 정도로 절망스러웠다. “뭐냐. 그 표정은? 진짜 몰라서 그래?” “……아아.” “환장하겠군.” 결국, 최종 국면은 신우빈이 주민성을 달래는 수준에 도달했다. “야. 삼호전자.” “예!” “반경 100미터. 소리 차단해.” “예!” 이렇게 신성 측 능력자에 의해 소음이 차단되고, 대화의 자리까지 형성되었다. “……잘 들어라. 주민성.” “…….” “이왕 이렇게 된 거, 전직 군인도 끼워 주지.” “크흠!” 이미 대화의 스케일은 커질 대로 커져 발언권은 주민성과 신우빈으로 한정되었다. “능력자 협회장 정혁수. 그의 행보는 다들 잘 알고 있겠지.” 이는 보육원에서부터 배워 온 우리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에 주민성도 잘 아는 내용이었다. 정혁수의 등장 이후,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기까진 단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는 앞으로도 역사에 쭉 기록될 인물이었다. “……한 달.” “그래. 한 달. 군대가 엎어지고, 수많은 기업이 공식적인 후원을 약속하기도 했지.” “뭐, 그곳에 신성도 포함되어 있겠네요. 대기업이니.” “……그래. 누구보다 지독하게 살아남았지. 끝까지 살아남아서 대기업의 자리를 지킨 거고.” 인간의 욕심과 관련된 뻔하디 뻔한 얘기였다. 전직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사연이 있으리라. “뭐, 그래서 더 큰 이익을 위해 정혁수를 치자 이런 건가?” “알면 됐다. 설명 필요 없고 좋네.” 주민성도 이쯤 되면 상황 파악은 할 수 있었다. 가정된 끔찍한 이야기에 자신이 희생양으로 정해진 이상, 해야 할 건 신성과 마찬가지로 발악이었으니까. “좋습니다. 나도 이득 좀 보게 조건 하나만 겁시다.” “그래. 말해 봐.” 주민성은 허공을 바라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5분] “신성 분들. 5분 줄 테니까 한 대씩만 쳐 보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