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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빨 (1) (26/250)

건물빨 (1)2021.12.27.

4시간 전. 판자촌이 있었던 장소엔 신우빈을 비롯한 신성 계열사 직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오호라.” 빠직! 신우빈의 신경적인 발길질에 널브러져 있던 판자가 박살 났다. “야. 어떻게 된 걸까?” “죄, 죄송합니다! 바로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빨리해.” “예!” 흩어진 건 추적에 특화된 능력자뿐만이 아니었다. 신우빈의 전담 호위를 제외한 전원이었다. 신성에 몸담은 이상, 신우빈에게 찍히고 싶은 능력자는 아무도 없었다. “확실히 뭔가 벌어지고 있단 말이지…….” 이곳은 몇 주째 신규 출입 인원이 5명도 넘지 않는 게이트였다. 주요 관리 대상은 판자촌 능력자들이 대부분. ‘군 세력이 움직인다라……. 게다가 놈들이 다른 게이트 원정을 가지 않을 정도면 페널티를 각오했다는 건데.’ 대한민국 군대는 절대 약하지 않았다. 정부의 지원 아래 대부분의 군인들이 능력자로 각성했으니까. ‘그래도 이상해. 군 세력의 구심점은 전부 정 회장에게 죽었을 터.’ 대한민국 군인은 정말 강했다. 단지, 능력자 협회장 정혁수의 힘이 말이 안 될 뿐. 그 힘은 대한민국의 모든 군인들조차 정 회장 한명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군대가 무너지고,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그의 압도적인 능력은 재계까지 압박했고, 이는 신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의 지분, 그리고 후계자인 신우빈까지 협회에 소속되는 조건까지 수락하고 나서야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지켜내는 게 고작이었다. ‘임진석. 그 정 회장의 오른팔이 이곳에 닿았다. 어떻게든 놈의 약점을 잡아야 해.’ 빠지직! 신우빈은 애꿎은 판자를 박살 내며 능력자들을 계속해서 닦달했다. “보고 언제할거야! 새끼들아!” “도, 도련님! 경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빨리 말해. 짜증나니까.” “누군가 이곳을 습격했습니다!” “습격? 한판 뜬 게 아니고?” “예!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한 모양입니다!” “……절단 흔적은 있었나?” 신우빈에겐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임진석은 정 회장을 제외하곤 누구도 막지 못한다는 절단 능력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없었습니다! 데, 데빌도그의 흔적이 대부분입니다!” “나랑 장난하는 거 아니지?” “정말입니다! 도련님!” “하……. 아니, 판자촌 놈들이 팔다리 다 잘리고 혀까지 묶였다지만 얘들도 중급 이상은 가는 애들이야.” “죄송하지만 사실입니다…….” 신우빈에게 160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는 계열사 직원 중에서도 상당히 유능한 축에 속하는 A급 정찰계 능력자였다. 흔적의 윤곽을 탐지해 내는 개성적인 특징 때문에 잘못된 보고를 해 올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돌겠네. 그래. 데빌도그가 이겼다고 치자. 그럼 왜 시체가 없는데? 최소한 혈흔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그, 그것이…….” “끌지 마.” “……전부 북동쪽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능력자? 아니면 데빌도그?” “둘 다입니다…….” “환장하겠군.” 신우빈 입장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절단 흔적도 없었고, 판자촌의 능력자들은 데빌도그에게 제압당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북동쪽으로 끌려갔다는 보고까지 듣게 되었다. 이렇게 까지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면 신우빈은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주민성이 관련된 건가?’ 신우빈은 황당한 표정으로 게이트 출입 기록을 다시 살폈다. 최근 두 달 동안 판자촌 능력자를 제외하고 게이트에 출입한 인물은 공식적으로 3명. 비공식적으로 입장한 임진석까지 포함하면 4명이었다. ‘저번 달에 방문했던 A급 능력자는 알리바이가 확실한데.’ 실제로 그랬다. 주민성보다 먼저 입장했던 능력자는 신체 강화계. 훈련을 통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능력자였다. 때문에 출입 목적 또한 훈련. 심지어 그는 주민성이 게이트에 방문하기 전에 일지까지 제대로 작성하고 게이트를 떠났다. ‘다음으로 게이트를 나간 사람은 최선아, 그리고 임진석이었지.’ 주민성은 여전히 게이트 내부에서 체류 중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상식적으로 주민성이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신우빈이 자신의 추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FFF급 능력자가 무슨 수로?’ F급인 최선아는 그렇다 쳐도 임진석이 변수였다. ‘상대가 임진석인데?’ 공식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임진석 또한 재계의 정보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신우빈이 알게 된 임진석은 괴물이었다. 겉으로만 SS급이지 SSS급 능력자를 죽일 수 있는 준 SSS급 능력자가 바로 임진석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는 세계의 SSS급 능력자를 다섯 명이나 암살하는 데 성공했다. ‘상대를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신 간섭과 확실한 물리 공격 수단. 놈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신우빈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임진석의 실패를. ‘이번에도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군.’ 희박하지만, 이 모든 사건과 관련된 인물은 주민성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추적한다.” “예!” * * * 박살난 학교 벽면을 사이에 두고, 주민성과 신우빈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지 말씀을 먼저 해 주세요.” “…….” “다짜고짜 건물을 부수면 어떻게 합니까?” “…….” 주민성은 최대한 침착하게 상대를 탐색했다. ‘젠장. 임시 권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데. 이렇게 메시지가 많이 뜬 건 예상 밖이었어.’ 주민성은 건물 부가효과로 상승한 시력을 통해 상대의 얼굴과 착용한 명찰을 자신의 기억과 대조했다. ‘내가 아는 유명 능력자는 없네. 저 경비원 도련님 이름은 신우빈이고.’ 다소 긴장했던 주민성의 표정이 한층 풀어졌다. 적어도 상대가 협회의 능력자들이 아닌 이상 대화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능력자는 신우빈을 제외하곤 전부 회사원으로 보이는 멀끔한 인물들뿐. ‘대략 20명 정도인가. 다른 경비는 왜 없지? 도발하면서 좀 떠볼까?’ 상대측엔 학교 벽면을 폭파시킨 능력자도 존재했지만, 판자촌 능력자들의 활약을 생각하면 굳이 기죽을 이유도 없었다. “무례를 한 번 더 용서해 줄까 했는데.” “누구를요. 저를요?” 지금의 주민성은 쭈뼛거리며 눈치 보기 바빴던 FFF급 능력자가 아니었다. 건물 안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는 건물주였다. “전에 받은 도움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격만 눈감아 드리는 거예요.” “……하.” “도련님. 죽일까요?” 주민성의 태도에 신우빈측 능력자들은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아, 나 유명인이었지.’ 회사원이라면 세간의 정보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주민성이 방송에 나간 이후 후속 방송도 신나게 노를 저었을 것도 분명했다. “FFF급 주제에 감히!” “도련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저벅. 저벅. 주민성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여중생을 제외한 모든 능력자들이 주민성 뒤에 도열했다. 그리고 김 대위가 대표로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협회를 따르지 않겠다. 비열한 착취자 놈들.” “이익!” 그때, 신우빈이 손을 들어올렸다. “흡!” 신우빈에게선 주변의 모든 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따르지 말든가. 어쩌라고. 다 꺼져. 얘기 좀 하게.” “예!” 파밧! ‘움직임이 예상 밖인데?’ 괜히 도련님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는지, 신우빈을 호위하던 능력자들의 움직임은 전직 군인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난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어.’ 신우빈과 다르게 주민성은 판자촌 능력자들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상대의 수준을 상향 조정한 이상, 더 이상의 허세는 위험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상대의 간을 보는 사이, 신우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주민성. 전부 설명해라. 그러면 봐준다.” “……뭐를 말입니까?” 이전과 다르게 신우빈의 눈빛은 주민성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주민성을 벌레 취급하며 무시하던 눈빛이 아닌, 지배자의 눈빛이었다. “전부. 최선아와 임진석부터 시작해서 저기 뒤에 패배자들까지.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 겉으론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신우빈의 발언은 주민성을 내심 당황케 만들었다. ‘선아 씨는 그렇다 쳐도 임진석은 누구지?’ 게이트 안에서 발생했던 일을 물어보는 건, 임진석이라는 인물 또한 게이트 안에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설마……!’ 주민성의 머릿속에서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름이 뭐였지? 어? 이건?’ 신우빈이 언급한 누군가의 이름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놈이다!’ 여기서 더욱 소름 돋는 사실은. “그놈은……!” 계약서의 독소조항이 발동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협회를 상대로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다. 관계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상당히 안정된 정신 상태를 유지하던 주민성조차 분노할 정도였다. “야. 벙어리야? 왜 말을 하다가 말어?” “……계약.” “……흠.” 신우빈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는, 경비복을 벗어 던졌다. “야. 그 정장 벗어서 나한테 넘겨.” “예? ……알겠습니다!” 신우빈은 폭군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머리가 좋은. “나 이제 협회 소속 아니다. 나는 신성 그룹 특수전략부 팀장이다. 다시 말해 봐.” 계약이라는 두 글자밖에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신우빈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계약에 관해서도 상당히 박식한 모양. “……계약이 걸려있어서, 이름을 잊었네요.” “멍청한 놈. 임진석한테 걸린 거 맞네.” 자신에게 터무니없는 계약을 한 상대의 이름이 언급되었지만, 이름은 곧장 잊혀졌다. “그놈. 지금 어디 있습니까?” 지금의 주민성에겐 상대의 이름을 알 필요가 없어졌다. 놈을 아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주목할 점은, 자신에게 계약을 강요했던 인물이 크룩스의 동행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 질문 내가 했잖아. 짜증나네.” “협회 소속 아니라고 하셨죠? 그리고 신성 그룹이라고요? 그렇다면 협력할 생각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정할 일이고. 아……. 주제 파악 안 할래?” “…….” 주민성은 냉정했다. 상대에게 전적으로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놈의 이름은 신우빈뿐만 아니라 판자촌 능력자들 귀에도 똑똑히 들어갔으니까. 다소 길을 돌아가야 할 뿐, 놈이 복수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 눈은 좀 마음에 안 드네. 오래 못 사는 눈알이야.” “그래서 뭐, 다시 공격이라도 할 겁니까? 전 그쪽한테 얻어 갈 게 협력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요?” “어쭈?” 다시금 신우빈의 기세가 주민성을 압박했다. ‘뭐지? 능력인가?’ 신우빈에게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지긴 하는데, 지금의 주민성을 상대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임시 권한이 발동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주민성이 신우빈의 능력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었다. “협력 의사는 밝혔습니다. 대화로 잘 풀어 주시죠.” 둘 간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상대가 세계 최고의 기업인 신성 그룹의 중요 인물이라면, 신우빈은 주민성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분명 너에게 기회를 줬어.” “게이트 출입이라면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래. 그럼 빚 갚아.” “휴…….” 주민성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찔거렸다. 건물주 능력은 상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저도 봐 드렸습니다.” “그래. 뭔 개소린지 모르겠지만 협상 결렬이네?” “…….” “너는 내가 호구로 보이는구나? 신성 그룹이 어중이떠중이 장사치로 보이던?” “…….” 신우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민성에게서 등을 돌렸다. “진짜 계약이 뭔지 알려 줄게. 나중에 보자. 주민성.” “…….” “생포해.” “예! 도련님!” 신우빈의 한 마디에 모든 능력자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주민성 또한 상대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전부 뒤로 빠져요.” “예! 전력으로 엄호하겠습니다!” 판자촌 능력자들 역시 상대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빠르게 대응했다. 단지 주민성의 눈에 차지 않았을 뿐. “더 뒤로요. 방해됩니다.” “괘,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주민성의 노림수는 상대의 접근. 정확히 상대 능력자들이 학교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주도권은 주민성에게 넘어오게 되어 있었다. 특히 임시 권한이 발동 중인 지금이라면 더더욱. “신우빈 씨. 정말 후회 안 하세요?” “FFF급 주제에 도련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콰직! 쿵! 콰지직! 돌격형 탱커로 보이는 신우빈측 능력자 한 명이 벽과 건물 난간을 마구 부수며 주민성에게 달려들었다. “내구도 강화.” 쾅! 급소 부위는 전부 텐트로 가려 둔 상태. 임시 권한이 적용된 내구도 강화는 이전과 차원이 다른 출력을 자랑했다. 동시에, 다른 능력자들까지 주민성에게 쇄도했다. “이용료…….” “끄아아아아아악!” “뭐, 뭐야?” 상대에게 이용료 청구를 하기도 전에, 주민성을 공격했던 능력자가 멋대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하며. “크아아아아악! 이게 뭐야! 끄아아아아!” 그리고 새로 갱신된 메시지가 떠올랐다. [건물 침입자가 난간을 손상시켰습니다.] [임시 권한에 의한 절대력이 발동됩니다.] [부속품 손실에 따른 피해를 강제로 청구합니다.] [건물 침입자가 건물주를 공격했습니다.] [임시 권한에 의한 절대력이 발동됩니다.] [건물주가 받은 피해를 100배로 강제로 청구합니다.] “기, 김 부장?”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사, 살려 줘!” “…….” 끔찍한 괴성에 모든 이들의 행동이 멈췄다. 앞만 보고 걷던 신우빈의 발걸음도 멈췄다. “신우빈 씨. 정말 후회 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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