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번째 건물 (2) (25/250)

100번째 건물 (2)2021.12.26.

두 번째로 보고받았던 학교의 위치는 아파트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했었다. 광역 공격이라도 받았다간 텐트까지 위험해질 테니까. 하지만, 판자촌 능력자들의 보고만으론 알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었다. “이 학교로 정했습니다!” “아, 예…….” 부족한 정보가 지도에 의해 메꿔졌다. ‘이곳엔 크룩스를 배치시키면 되겠어.’ 주민성이 지목한 학교 주변은 병원부터 미용실까지 유동인구가 상당히 많았을 법한 자리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학교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빌딩이 생각보다 많이 가깝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고블린 라이더가 뛰어넘을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주변의 건물들은 하나의 빌딩에 병원, 미용실 등이 골고루 입주해 있던 복합 건물이었다. ‘잠재력도 엄청나겠군.’ 대충 봐도 비싸 보이는 가격대의 건물은 하나같이 높은 등급을 자랑할 게 분명했다. 이는 곧 주민성의 보험이 될 수도 있었다. ‘고등급 건물이라도 상태가 나빠지면 소유가 가능해지겠지. 학원처럼.’ 이 장소는 학교에서의 농성이 실패하더라도 미세먼지로 시간을 지연시키고 여분의 고등급 건물을 점령해 건물을 폭파시키는, 그야말로 주민성이 가진 모든 수단을 활용해 승률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명당인 것이다. “어……. 그럼 이 학교로 이동하면 되겠습니까?” 같이 지도를 살피던 여중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예. 이곳이 최적의 장소입니다.” “시가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장소는 아군의 기동력을 크게 제한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괜찮아요. 여기보다 나은 장소는 없어요.” “……저는 아직도 공부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여중생은 눈썹을 찌푸리며 주민성이 지목한 장소를 뚫어질 듯 바라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민성의 생각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장소는 건물주 능력자인 주민성에게만 극도로 유리한 장소였으니까. “민성 씨!” 옥상에 있던 최선아가 급하게 주민성의 곁으로 달려왔다. “판자촌 방향에서 처음 보는 능력자들이 접근하고 있어요! 복장으로 봐선 경비들이에요!” 최선아의 보고에 주변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젠장! 이렇게 빨리 온다고?” “감독관 방문은 다음 주일 텐데?” “저분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지금 상황도 예측했겠죠.” 이번에도 여중생의 중재 덕분에 모든 시선은 주민성에게 쏟아졌다. “……거리는요?” “어림잡아 2km 정도?” “알겠습니다. 서두를게요. 계속 감시해 주세요.” “네!” “기절하신 분은 저기 텐트에 눕혀 두시고, 나머지는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예!”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 않은 노인과 간병을 맡은 능력자가 텐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주민성은 남은 능력자들을 인솔해 학교로 이동했다. 쉬쉭! “키엑!” 가는 길을 가로막고 적대해오는 몬스터들은 주민성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평범한 F급 게이트의 몬스터는 판자촌 능력자들의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사주경계 잊지 않습니다! 잠복해 오는 능력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 중사님과 오 상병님은 타이밍 겹치지 않게 교대로 능력을 활성화합니다!” “예!” 판자촌 능력자 집단의 진정한 실세는 여중생이었다. 임시 대장이라고 생각했던 김 대위조차 지금의 상황에선 여중생을 전적으로 의지할 정도. 그만큼 많은 위기를 극복한 전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주민성과 능력자들은 순탄하게 학교 앞에 도착했다. “저기……. 대, 대장님. 도착했습니다.” “……주민성입니다.” “아, 예. 주민성 대장님.” 주민성은 학교 앞에서 멈춘 채 주변 지형을 눈에 익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온전한 건물이 없네.’ 지도상으론 폐허 도시보다 더욱 밀집된 건물 숲이 펼쳐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게이트. 극도로 낙후된 비정상인 장소였다. “크룩스. 저 건물 옥상에서 숨어있어. 징검문은 내가 신호할 때 텐트 방향으로.” “크룩!” 파밧! 일사불란한 크룩스의 움직임엔 다른 능력자들까지 동화될 정도. 하나같이 주민성의 명령을 기다리는 군인의 표정이 되었다. ‘이 정도 견적이면 학원보다 더 상태가 나빠져야겠는데.’ 학교 건물의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다. 규모 또한 학원의 다섯 배 이상. 그동안의 건물 소유 경험으로 볼 때, 저 학교 건물의 등급은 최소 최상급 이상이었다. “다른 분들은…….”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주민성의 손이 학교를 가리켰다. “저 학교 좀 부숩시다. 토대만 남기고 싹.” “……예?” “말 그대롭니다.” “아, 알겠습니다!” 오랜 기간 단련된 군인조차 주민성의 변칙적인 명령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이분이 대장이잖아요! 까라면 까요!” “크흠! 알겠습니다!” 당황한건 여중생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바뀐 말투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하압!” 쿠르르르르! 학교 철거 1등 공신은 김 대위가 차지했다. 손을 갖다 대기만 해도 건물이 알아서 무너지는 장관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김 대위님은 초진동 능력자입니다. B급 게이트의 몬스터도 제압 가능합니다.” 모든 설명은 여중생 담당이었다. 쾅! 쾅! “전에 보셨다시피 박 일병은 회전력 강화 능력을 사용합니다. 총알 값 때문에 가성비는 나빠도, 전투 수행 능력은 확실합니다.” 이전에 최선아를 공격했던 능력자의 소개까지. “그래서……. 음. 그쪽은 왜 가만히 있는 걸까요.” “아. 저는 능력자가 아닙니다.” “……예?” 황당하게도 여중생은 일반인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유가 있습니다…….” “아, 네…….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려 주세요.”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름은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 “불편하면 됐고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굳이 능력이 아니어도 도움 많이 되는데요. 능력자분들 관리는 계속 알아서 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결국, 학교 건물의 철거는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이 정도면 되겠네요.” “……건물을 이렇게까지 무너뜨린 이유가 있습니까?” “네. 나름의 이유는 있는데 설명할 시간은 없어요.” 주민성은 느긋하게 학교 운동장으로 이동했다. “고블린 라이더 집합!” “키에에엑!” 모든 준비가 끝난 상황. 지금은 판자촌 능력자들을 추적하고 있는 경비를 불러들일 시간이었다. “전방에 힘찬 함성! 5초간 발사!” “키에에에에에에에엑!”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쩌렁쩌렁한 괴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만.” 척! 나름의 서열로 규율이 잡힌 고블린 라이더와 전직 군인들의 행동엔 아무런 군더더기가 없었다. 괴성에 깜짝 놀란 최선아가 복귀한 것은 덤이었다. “이게 무슨! 전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네. 이제 선아 씨는 근처 건물에 숨어 계시고요.” “알았어요!”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한 최선아가 물러나고, 주민성은 능력자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능력자분들은 데빌도그에서 내려 주세요.” “예!” 순식간에 능력자와 몬스터가 분리되고, 주민성은 빠르게 다음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은 주변 건물에 숨어 있다가 부르면 나와.” “키에엑!” “컹!” 파바밧! “이제 건물에 진입하겠습니다.” “……예!” 최선의 계획은 세워졌다. 이제 마무리는 임시 권한에 달려있었다. 저벅. 저벅. 주민성의 긴장한 표정에 다른 능력자들은 숨을 죽이며 따라 걸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아주 조금의 형체만 남은 단상을 지나, 건물 입구였던 장소에 도달했다. “이곳은 잠시간 몸을 숨기기엔 유용하나 호흡에 큰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음.” 주민성은 조용히 인벤토리를 꺼낼 뿐이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 “이, 이게 무슨!” “먼저 들어갑니다.” “전부 따라갑니다! 사주경계!” “사주경계!” 미세먼지를 수납한 주민성은 곧장 건물에 진입했다. ‘와라! 임시 권한!’ 쿠구구! 이상한 소음과 함께 요란한 메시지가 쏟아졌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학교(완파)가 추가됩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여기까진 예상대로.’ 주민성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아직도 읽을 메시지가 잔뜩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가 핵심이었다. 쿠구구구구! “음?” 동시에 건물이 괴상한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격하게 흔들리는 것은 덤이었다. 쿠르르르르르! “다들 중심 잡아요!” “예!” 주민성은 근처에 보이는 난간에 매달린 채 메시지를 다시 읽어 나갔다. [100회의 건물 소유 시도로 임시 권한이 부여됩니다.] [해당 건물 내에선 건물주의 모든 권한이 해방됩니다.] [권한은 60분 동안 유지됩니다.] [임시 권한 종료까지 남은 시간 60분] “이, 이게 뭐야?” 메시지는 아직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해당 건물이 전성기의 상태로 복구됩니다.] [해당 건물 내에선 절대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임시 권한에 의해 제한이 발생합니다.] [건물 이용료가 변동되지 않습니다.] [건물 내구도가 변동되지 않습니다.] 주민성은 그제야 건물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어?” 원래라면 건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야했다. 하지만 주민성은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휑하게 뚫려 있던 벽면과 천장은 어느 샌가 기존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경악하는 이는 주민성뿐만이 아니었다. “거, 건물이!” “SSS급 능력자였어?” “이럴 수가!” 판자촌의 능력자들도 건물의 변화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피해! 벽이 솟아오른다!” “으악!” “계, 계단이!” 분간조차 할 수 없었던 교실들이 생겨났고, 복도가 펼쳐졌다. 놀랍게도 변화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퉁! 퉁! 퉁! 없던 전선들까지 생겨나 건물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조명들이 나타났다. 불이 들어온 것은 동시였다. “………….” 이젠 목소리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수준! 주민성은 떨리는 눈으로 메시지를 읽어 나갔다. [해당 건물의 인프라가 활성화됩니다.] [해당 건물의 고유 능력이 개방됩니다.] [건물의 부가 효과가 발동됩니다.] [건물 내부에서 특수 교육 과정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교육 과정은 건물 이용자가 진행합니다.] [교육은 30일 동안 강제로 진행됩니다.] [교육에 참여한 대상은 경험을 공유 받습니다.] [교육은 교실당 한 과목씩 지정할 수 있습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메시지에도 주민성은 극한의 이득을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용료는 그대로였지? 이건 기회다!’ 생각이 실행으로 옮겨지기까지는 단 1초가 걸렸다. “일단 이용료 청구! 이용료 청구!” “잘 못 들었습니다!” “이용료 청구!” “으악! 이건 또 뭐야!” 이는 임시 권한이 끝나더라도 이용료를 납부했다는 기록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저 블랙홀에 돈 넣어요!” “예? 이건 대체!” 메시지가 잔뜩 밀려 있는 주민성과 다르게 판자촌의 능력자들은 이용료 청구 메시지를 바로 볼 수 있었다. ‘젠장! 한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겠군!’ 주민성은 급하게 인벤토리에서 최선아의 배낭을 능력자들에게 집어 던졌다. “시간이 없습니다! 돈 꺼내서! 이용료 내요!” “이게 대체 뭡니까!” “빨리요!” 주민성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모든 변화가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장기 이용은 무리인가?’ 돈으로 되새김질을 하기엔 곧 들이닥칠 경비들이 신경 쓰였다. 특히, 크룩스와 동행했을 협회 능력자는 임시 권한이 유지되는 와중에도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건, 전처럼 타격 면역 권한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최대한 꿀만 빨고 도망가야겠군.’ 그러는 사이, 여중생은 능력자들에게 마구 소리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이대로 짐이 될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대장이 SSS급 능력자입니다! 믿지 못합니까!” “아, 아닙니다!” “빨리 돈 넣습니다! 실시!” “실시!” 여중생의 노력 덕분에 그제야 이용료가 납부되기 시작했다. “신속! 정확!” “신속! 정확!” 주민성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관리를 맡기길 잘했군.” 역할 분담이 확실하게 이뤄진 이상, 주민성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확인할 메시지는 잔뜩 있었으니까. “어디 보자…….” 그러던 그때. 쿠콰콰콰쾅! “큭!” 건물 중심부가 박살나면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건물은 뭐야? 여기 맞아?” “괴성의 진원지는 여기가 맞습니다. 도련님.” “…….” 한 남자가 주민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라?” “…….” 남자는 경비실에서 봤던 F급 경비원이었다.

16548848354806.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