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건물. (1)2021.12.25.
주민성은 살면서 이런 적이 있었을까 싶은 정도의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해방감이었다. ‘나에게도 드디어!’ 지금도 게이트 내에선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고블린 군단을 갖추고 있었지만, 단순 몬스터의 노동력이라면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이젠 달라!’ 지금의 상황은 주민성에게 수많은 가능성을 선사했다. 판자촌 능력자들의 사연은 둘째 치고, 그들의 능력을 공유하는 몬스터가 생긴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의 주민성은 노동자 신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자본가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건 무조건 이득 보는 구조야!’ 인력소에서 막일을 해 오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노동자끼린 아무리 경쟁해도 자본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심지어 더욱 열심히 일할수록 더욱 큰 부를 쌓는 입장은 자본가라는 사실을. ‘몬스터도 충분해. 어쩌면 다른 게이트에 진출할 기회가 될지도!’ 고등급 능력자 한 명만 잘 꿰어도 같은 능력을 가진 몬스터를 양산할 수 있는 상황을 떠올렸다. 상상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덧 먼 미래를 향했다. ‘그때라면. 협회 상대로도 해 볼 만해.’ 주민성은 가슴 벅찬 기분을 만끽하며 입을 열었다. “다들 식사 마치셨습니까? 슬슬 가…….”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판자촌의 능력자들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너무 맛있어…….” 능력자들은 김밥 한 줄에도 감동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년은 더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주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콩이에게 올라탔다. 그들의 사연은 굳이 상세히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협회가 협회해서 협회당한, 그런 이야기일 테니까. ‘계약서에 의식주를 통제하는 독소 조항이 있었다 같은 거겠지.’ 주민성에게도 협회를 상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까다로운 계약이 되어 있는 상황. 말해봐야 나쁜 기억만 떠오를 뿐이었다. “슬슬 움직일까요?” “크흑……. 예…….” 능력자들은 주민성의 제안을 깔끔히 승낙했다. 음식을 선뜻 내줬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한 모양. “다들 데빌도그에 올라타세요.” “크르르!” “정말 괜찮은 건가?” “네.” 머뭇거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아무리 주민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능력자들이라도, 데빌도그에게 위협받을 수준은 아니니까. “콩아. 건물 순회 좀 하자.” “컹!” 주민성은 무리를 빠져나와 선두로 달렸다. 그리고 지나쳤던 폐건물들을 전부 파밍하기 시작했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오락실(반파)이 추가됩니다.] ‘최하급이군.’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편의점(반파)이 추가됩니다.] ‘전부.’ 주민성은 무려 스무 곳이 넘는 건물들을 순회했다. 다른 능력자들은 주민성의 기행을 지켜보며 의견을 나눴다. “뭐지? 뭔가 숨어 있나?” “그렇겠지. 이 게이트, F급이 아닐지도 몰라.” “확실히 이 몬스터 조합은 범상치 않군.” 이때 판자촌의 여중생이 자신을 태운 데빌도그를 두드리며 주민성을 가리켰다. “가까이 붙어서 따라가고 싶은데, 도와주지 않겠나?” “크르르!” “고맙다.” 왜인지 말투가 딱딱한 여중생이 만든 작은 파문은 판자촌의 능력자들을 독려했다. “저래도 괜찮아?” “따르는 게 맞아. 우리가 저 아이 덕분에 몇 번의 위기를 벗어났는지 잊었어?” “하긴, 구 육군총장의 손녀는 확실히 다르지.” “그래. 우리와는 출신부터 달라. 같이 살펴보자고!” 그렇게 기묘한 행진은 덩치를 불려 가기 시작했다. 주민성이 앞장서서 건물에 첫발을 내딛고 빠져나오면 다른 능력자들이 뒤따르는 형국이었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김밥천당(반파)이 추가됩니다.] 이번에 새로 소유하게 된 건물들은 전부 자산 가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저가의 건물들이었다. ‘이것으로 준비는 다 됐어.’ 주민성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수첩에 글씨를 적었다. -99. 김밥천당(반파, 최하급) ‘분명 다음 건물에선 임시 권한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임시 권한. 이것은 무려 타격 면역 60분이라는, SSS급 능력과도 같은 괴랄한 효과를 선사했다. ‘50회차가 있으면 100회도 있겠지.’ 메시지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주민성을 성장시켜줬다. 특히, 무언가를 최초로 해내거나 특정 행동이 누적될 때는 확실한 보상이 따랐다. 이 보상은 주민성에게 여분의 목숨과도 같았다. “좀 더 서두르겠습니다.” “예!” 주민성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판자촌 능력자들은 저마다 비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민성 씨. 거기는 학원 방향이 아닌데요?” “알아요.” “혹시 아직도 화났어요?” “화 안 났어요.” “그럼요? 네?” 최선아는 주민성의 주변을 정신없이 맴돌았다. 그것도 가속 능력을 사용하는 고블린들과 함께. “케륵!” “키엑!” “아오. 정신없으니까 옆에서 따라와요.” “네…….” 최선아를 구해낸 것은 다행이었다. 단지 주민성이 골치 아픈 건, 이렇게 대군을 일으키지 않았어도 그녀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분명 이목이 끌릴 게 확실해.’ 판자촌의 능력자라는 인적 자원을 획득했지만, 이들은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었다. 판자촌은 게이트 경비원들의 감시 대상이었으니까. ‘경비는 판자촌 사람들을 상당히 싫어했었지.’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었지만, 할 일은 분명했다. ‘더 확실하게 대비해야 해.’ 임시 권한에 대한 준비만으론 부족했다. 임시는 결국 임시에 불과하니까. 때문에 주민성은 더욱 승산을 높일 장소를 택했다. “여기는 아파트 단지인데요?” “그렇네요.” 주민성이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아파트 단지. 최선아를 추적하면서 발견한 장소이기도 했다. “언제 무너질지 몰라요! 위험해요!” 최선아의 말은 타당했다. 아파트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뽐내고 있었으니까. ‘여기는 다른 능력자들 거주 구역으로 쓰는 게 좋겠군.’ 본거지인 폐허 도시는 능력자들을 거주시키기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주민성 휘하의 몬스터들이 가득한 데다, 다른 사람도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킬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민성 씨!” “자, 다들 주목해 주세요.” 주민성은 최선아를 옆으로 밀어내고 말했다. “여러분께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예!” 판자촌 능력자들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여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전투를 준비하는 비장한 눈빛이었다. “이곳은 아파트 단지. 주변에 분명 학교들이 있을 겁니다.” “예? 학교……. 말입니까?” “네.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상관없어요. 발견하는 즉시 저에게 위치만 알려 주세요.” 주민성의 뜬금없는 부탁에 사람들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판자촌 대표가 조심히 손을 들었다. “네. 말씀하세요.” “갑자기 학교를 찾으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최, 최악의 상황!” 주민성이 말하는 최악의 상황은 전멸이었다. “네. 최악의 상황.” 이곳에 있는 능력자들은 최선아를 제외하곤 협회와 사이가 나쁜 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고블린 라이더에 탑승한 상황. 몬스터와 연계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딱 좋은 집단이기도 했다. 경비들은 주민성과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해코지해 올 가능성이 높았다. ‘임시 권한에 하자가 있더라도 건물 안에서 상대를 노릴 수 있는 운동장이 있다면 고블린 라이더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어떻게든 된다.’ 주민성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판자촌 능력자들은 저마다 다른 최악을 상상하고 있었다. “최악이라면…….” “위, 위험해.” 이때, 여중생이 판자촌 대표를 만류했다. “김 대위님. 그만 생각하고 학교부터 찾읍시다.” “하, 하지만!” “이제 군인 아니라 이겁니까? 저분도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큭!” 이들의 대화에 주민성의 흥미도 깊어졌다. 모르는 척하긴 했지만, 판자촌 사람들의 대화를 전부 들어 둔 덕분이었다. ‘육군총장의 손녀에 전직 군인들인가. 협회에 적대적인 이유가 있었군.’ 대한민국엔 군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역할은 능력자가 대신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군대를 해산시킨 것은 SSS급 능력자인 협회장의 소행이었다. “좋습니다. 바로 학교를 찾겠습니다. 탐색 범위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반경 3km 이내면 좋겠습니다.” “즉시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황은 수월하게 정리됐다. 전부 여중생이 중간에 개입한 덕분이었다. “음…….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군기가 빠질 만도 했습니다.” “아……. 네…….” 군기가 바짝 든 여중생까지 탐색에 나서자 최선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군필 여중생은 처음 봤어요.” “진짜 군필 여중생은 저렇지 않아요.” “네?” “아닙니다.” 주민성은 대화를 멈추고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또 뭐 하시게요? 제가 도울 건 없을까요?” “주변 경계 좀 부탁드려요.” “그건 다른 애들이 하는데요. 저기 블링이 봐요.” “자꾸 그러시면 고블린 압수합니다.” “바로 경계할게요!” 고가의 장비를 갖춘 탓인지, 최선아에게선 여태 본적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F급이 되면서 떨어져 있던 자존감이 회복된 모양. ‘저게 본래의 선아 씨 성격인가.’ 지금의 최선아는 상당히 명랑하고 자신감 넘쳤다. 평소라면 상당히 좋은 성격에 속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곳은 게이트니까. 그녀에겐 경각심이 필요했다. “선아 씨. 방심하지 마요. 곧 경비들이 찾아올 거에요.” “……겨, 경비요?” 경비라는 단어만으로도 최선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파트 옥상에 다녀올게요!” 말을 마친 최선아는 곧장 벽을 밟고 아파트 옥상으로 달렸다. ‘효과가 있군. 더 말할 필요는 없겠어.’ 주민성은 곧장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크룩스.” “크룩!” “위치, 기억해 둬.” “크룩!” C급에서 D급에 불과한 경비가 상대임에도 주민성은 만반의 준비를 갖출 생각이었다. 특히, 크룩스와 동행했을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이마저도 부족할 가능성이 있었다. “조금 기울었나?” 새로 설치한 텐트는 수많은 용도로 쓰일 예정이었다. 비상 대피소와 응급실 역할은 물론, 판자촌 능력자들에게 이용료를 청구하고 능력자 몬스터를 양산할 텐트였다. 때문에 설치는 최대한 꼼꼼하게 진행되었다. “후우! 이 정도면 되겠지.” 텐트 설치를 마칠 즈음, 판자촌 능력자들이 하나둘 복귀하기 시작했다. “한 분씩 찾은 학교 위치에 대해 알려 주세요.” “예! 동북동 방향 700미터에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능력자들의 보고를 전부 받아 적은 주민성은 선택지를 좁혀 나가기 시작했다. ‘규모는 이 고등학교가 좋긴 한데 위치가 별로란 말이지. 여긴 나중이 좋겠군.’ 임시 권한의 내용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했다. ‘여차하면 도망쳐야 할 수도 있어. 주변 지형이 복잡하면 상대로선 추적이 까다롭겠지.’ 수첩에 적힌 100번째 건물 후보들은 저마다 조건이 맞지 않아 소거되었다. 주민성으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마지막 판자촌 능력자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여중생이었다. “탐색 결과를 보고 드립니다. 근방의 학교는 전부 보고되었기에 별도의 조사를 수행했습니다.”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군기 잡힌 여중생의 태도는 주민성조차 상대하기 까다로운 수준이었다. “여기.” “음? 이건…….” “학교는 이미 보고된 바, 저는 부동산과 동사무소를 수색해 각종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주민성은 여중생에게 낡은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이걸 아무도 안 가져갔다고?” “게이트에선 필요 없는 지도이나, 이번 특수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에…….” “미쳤다!” “잘 못 들었습니다?” 이것은 지적임야도와 지번도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던 지도였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에겐 쓸모없는 종이였다. 이곳은 게이트니까. “미쳤다리!” “미치셨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어느 위치에 어떤 용도의 건물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했다. 건물주에겐 이전의 꽃집처럼 건물 고유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골라 먹는 재미……!” “이건 드시면 안 됩니다!” 주민성은 정신없이 지도를 살폈다. 그리고 결과가 정해졌다. “100번째는 바로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