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식구들 (2)2021.12.23.
고블린들이 집합하는 사이, 주민성은 부상 입은 고블린 라이더에게 텐트를 덮어씌웠다. “가만히 있어. 회복될 거니까.” “키이……!” 당장이라도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고블린 라이더의 회복이 우선이었다. 이곳으로 찾아 왔다는 건, 사고를 당한 장소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왜 선아 씨였을까.’ 협회와 관련되어 온갖 사건에 휘말린 사람은 주민성 자신. 최선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협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게 확실했다. 의뢰 또한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잠시 후, 고블린의 집합을 마친 크룩스가 돌아왔다. “크룩!” 크룩스와 마주칠 당시 느꼈던 엄청난 위압감이었다. 그 뒤로는 수천의 고블린 라이더가 각자의 투기를 뽐내고 있었다. “옳지. 옳지.” “크르르!” 텐트의 효과는 확실했다. 부상당했던 고블린은 물론, 데빌도그의 상처까지 빠르게 아물어 가고 있었다. 주민성은 상처를 지켜보며 원인을 분석하고 있었다. ‘화상, 관통상. 둘 이상의 능력인가.’ 상처는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의 공통점이 존재했다. 전부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는 능력이었다. 공격한 능력자가 일부러 고블린 라이더의 목숨만 살려뒀을 가능성까지 존재하는 상황. 주민성은 그래서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사람이 동행했잖아…….” 고블린 라이더는 지금도 최선아의 배낭을 소중하게 메고 있었다. 여기서 더 안타까운 건, 배낭의 상태. 배낭은 피로 얼룩졌을 뿐,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이는 고블린이 최선아의 배낭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잠깐 내용물만 조금 볼게.” “키이…….” 주민성은 배낭을 조심스레 열어 최선아가 겪은 사고에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폈다. 사륵. “하…….” 배낭에 든 것은 전부 지폐. 이것으로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최선아 역시 고블린과 마찬가지로 신용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음을. “……크룩스.” “크룩?” “정보료 정산은 나중에 하자.” “크룩!” “이자까지 붙여 줄게.” “크룩!” 주민성은 콩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컹?” 그리고 처음으로 부탁했다. “이번 한 번만 올라타자.” “컹…….” 기분을 알아차렸는지는 몰라도, 콩이는 조심스레 자세를 낮췄다. “땡큐.” 주민성은 곧장 콩이에게 감긴 텐트와 자신의 텐트를 연결해 결속을 마쳤다. 안장과 고삐도 없어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형태였지만, 건물의 부가효과는 이런 위험들을 전부 상쇄할 정도의 안정성이 있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군.” 주민성은 그대로 배낭을 멘 고블린에게 말했다. “앞장설 수 있지?” 회복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는지 고블린의 목소리엔 의지가 가득했다. “키에에엑!” “크룩!” “키에엑!” “크르르! 컹컹!” 배낭을 멘 고블린의 외침을 시작으로 온갖 몬스터들의 괴성이 폐허 도시를 진동시켰다. “가자!” “크루욱!” 징검문을 이용해서 이동하는 크룩스를 제외하곤, 전원이 데빌도그에 탑승한 상태. 수천의 고블린 라이더가 동시에 움직이자 중세시대 전쟁에서나 나올법한 광경이 펼쳐졌다. 두두두두두! 땅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콰직! “키에엑!” 중간에 휘말리는 적대적인 몬스터들은 아무런 대항조차 못 하고 잇달아 짓밟혀 죽었다. 그렇게 10분여 만에 진군을 막아서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키이익!” 몬스터가 몬스터를 상대로 겁을 집어먹을 수준의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키익! 키이익!” 시간이 지날수록 앞장선 고블린의 눈빛에 분노가 깃들었다. ‘거의 온 건가?’ 증거는 주변에서 차츰 발견되기 시작했다. “전원 정지.”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주민성의 한 마디에 수천의 고블린 라이더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척! “크룩스. 저것 좀 가져와 줘.” “크룩.” 크룩스가 가져온 것은 찢어진 갈색 상의였다. “남자 옷인데? 그것도 능력자용이고.” 이 옷은 몬스터 가죽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재봉 또한 상당히 정교했다. “제복은 아니네.” 용의자가 상당히 좁혀졌다. 상대가 협회일 가능성은 사복을 입은 협회의 능력자뿐.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남은 용의자는 판자촌에 거주하는 능력자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확실히 이쪽은 처음이네.” 주민성과 고블린 군대가 향하는 곳은 게이트 입구 방향이 아니었다. “키에엑!” 배낭을 멘 고블린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최선아와 고블린들은 이곳에서도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흔적은…….” 널브러진 옷을 제외하곤 전부 전투 흔적뿐. 그것도 상당히 일방적이었다. 기껏해야 F급 가속 능력으론 회피가 전부였을 터였다. 빠드득! 여기서 주민성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건, 최선아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반드시 잡는다.” 이번 탐색으로 주민성은 상대의 공격력을 파악했다. 무려 주변의 폐건물들이 전부 뚫려 나갈 정도였다. 절대 방심해선 안 될 수준이었다. “……이제부턴 최대한 소리를 줄인다.” “크룩!” “자세도 낮추고.” “키엑!” “그리고 넓게 퍼져서 이동해. 포위할 거니까.” “컹!” 상대가 능력자임이 확실해진 상황. 주민성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우선은 선아 씨를 구하는 것.’ 츳! 츳! 수천의 고블린 라이더의 진군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소음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범인을 잡는 것.’ 주민성은 싸늘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한참을 이동했다. “정지.” 척! 도착한 장소는 예상대로였다. “여기가 판자촌이군.” 이들은 도시에서 벗어난 능력자 집단이었다. 하나의 군 주둔지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 개개인의 전투력도 상당히 높게 봐야 했다. 게이트 내부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준이니까. “다들 퍼져. 포위를 시작한다.” 주민성의 명령에 고블린 라이더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그러는 사이, 철판을 두른 누군가가 주민성에게 접근했다. “뭐지?” 호기심이 생긴 주민성은 고블린에게 경계를 명령하고 상대의 접근을 기다렸다. “어이! 뭐 하고 있어! 이쪽으로 피해!” “……네?” 순간 당황한 주민성이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켰다. “저요?” “당신 말고 누가 있어! 빨리!” 주민성의 명령이 없었기 때문에 고블린들은 위협만 하고 있을 뿐, 아무 공격도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당황한 건 상대 쪽이었다. “공격을 안 한다고……?” “……아. 저게 상식이구나.” 서로 다른 방식의 납득이었다. 상대는 주민성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접근했고, 주민성은 고블린을 이끌고 판자촌에 쳐들어온 능력자였다.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순간. “다, 당신 뭐야!” “난처하네…….” 눈앞의 철판을 두른 남자는 대놓고 방어계 능력자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가 최선아를 공격한 인물이 아닐 확률도 높았으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점은 주민성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일단 포위 재개.” “키에에엑!” “이건 대체!” 순식간에 고블린들이 펼쳐지고, 주민성과 철판남의 기묘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얻을게 뭐가 있다고 이러는 거야!” “……고블린과 다니는 여자를 못 봤습니까?” “서, 설마?” 남자는 최선아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 주민성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죽였습니까?” 많은 의미를 담은 질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최선아의 복수만큼은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이긴 무슨! 지금 그 여자 때문에 이 꼴인데! 당신, 그 여자 동료 맞죠!” “……네?” 주민성은 최선아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동료냐구요!” 도리어 화를 내는 건 상대 쪽이었다. “아, 네. 동료 맞아요.” “그 여자 좀 제발 말려 주세요!” “…….”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정보가 부족해. 저 남자 말대로라면 선아 씨가 가해자 같은데? 거짓말 같지도 않고…….’ 실제로 남자의 표정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때, 판자촌 안에서 변화가 생겼다. 쿠르르르르! “저거 봐요! 판자촌 다 부서진다구요!” “아, 네. 부서지네요.” 게이트에서 건물 하나 부서지는 건 당연지사. 주민성에겐 익숙한 장면이었다. “아니! 당신 동료가 부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일입니까?” “이유가 있으니까 부수겠죠. 그것보다……. 살아서 다행이네요.” 이 역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최선아를 공격한 원흉은 따로 있을 것이고, 상대가 살아 있다는 건 주민성에게도 응징의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엄연히 고블린의 소유권은 주민성에게 있었으니까. “이보……!” “쉿. 미안하지만 그쪽은 잠시 인질입니다.” 주민성은 상대의 말을 끊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와 준 건 정말 용기 있고 고마운 일이지만, 감사의 표현은 시시비비를 가린 이후에 결정할 일이다. “나머지는 포위망 좁히고. 이제 조용할 필요 없어.” “크룩!” “키에에에엑!” 고블린 군단의 포효가 주변을 순식간에 잠식했다. 그러자 커다란 종소리가 판자촌 안에서 울려 퍼졌다. 종소리는 비상 신호로 추정된다. 댕! 댕! 댕! 곧이어 판자촌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저, 저, 저게 다 뭐야! 전부 고블린?” “데빌도그에 타고 있어?” “진화종이다! 몬스터부터 대비해!” 판자촌에서 뛰쳐나온 이들은 전부 능력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크룩스. 저 안에 선아 씨가 있을 거다. 찾는 대로 구출해.” “크룩!” 지잉! 주민성의 뒤에서 징검문이 열리자 철판남이 경악했다. “보, 보스급? 당신은 대체!” “내 동료가 당신들에게 공격당했습니다.” “나는 아니야! 처음 보는 여자라고!” “그건 나중에 확인해 보죠.” 주민성은 철판남을 뒤로하고 천천히 앞장섰다. “사, 사람?” “인간형이다! 전원 경계!” “아저씨! 사람이잖아요!” “잠깐! F급 게이트에서 인간형 몬스터라니! 말이 돼?” “닥쳐! 이곳도 결국은 게이트다!” “…….” 언쟁을 펼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개중엔 여중생도 있었다. ‘곤란하네.’ 결국 주민성은 양손을 들어올렸다. “대화를 원합니다.” “말을 했어?” 평범하게 건넨 말임에도 판자촌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특히 한 노인은 발작까지 일으켰다. “대장!” “크걱! 말하는 괴물! 어째서 이곳에! 끄르륵!” “대장! 정신 차려요!” “우린 전부 죽은 목숨이야……!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든!” 털썩! “대, 대장을 이렇게 만든 게 저놈이었습니까?” “…….” 기절한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노인 곁을 지키던 한 청년이 대표로 소리쳤다. “전부 모여! 대장이 말했던 SS급 게이트의 보스다!” “마, 말도 안 돼!” “비상 상황이다! 이제 목숨은 장담 못 해! 힘들겠지만……. 살아서 다시 만나자!” 건물의 부가효과 덕분에 주민성은 판자촌 사람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 그리고 대화 내용을 철판남에게 설명했다.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 악마!” “…….” 주민성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남겼다. “얘들아. 일단 생포해.” “키에에엑!” 고블린 라이더들이 순식간에 판자촌으로 쇄도했다. 그러자 판자촌의 대장이 외쳤다. “저건 겉모습만 고블린이다! 맞서지 말고 피해!” “제기랄! 말로만 듣던 괴물이 실제로 찾아올 줄이야!” 황당하게도 판자촌의 능력자들은 고블린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덕분에 생포 과정은 훨씬 수월했다. “키에엑!” “크악!” 판자촌의 능력자들은 더욱 패닉에 빠졌다. 착각에 더욱 불을 붙이는 네 마리의 고블린 라이더 때문이었다. “저기 있다! 블롱아! 잡아!” “키에에에엑!” “으아악! 그만해!” 최선아가 포착됐다. 그녀는 미친 것처럼 판자촌을 휘젓고 있었다. “그만해! 그깟 몬스터가지고 너무하잖아!” “뭐? 몬스터? 너 이리 안 와?” 심지어 누군가와 추격전까지 벌이고 있었다. 한편, 판자촌 밖으로 나온 능력자들의 생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도망칠 곳이 없어!” “젠장할! 어째서 이런 게이트에!” “키에에에엑!” 나름의 베테랑 능력자들이 고블린에게 제압당하는, 차마 봐 주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 오해가 심각한데.” 주민성은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열린 징검문에서 최선아가 튀어나왔다. “꺅!” “크룩!” 순식간에 주변 풍경이 바뀌어서 당황하는 것도 잠시. 최선아가 주민성에게 외쳤다. “어? 민성 씨! 블랑이는 괜찮아요? 다친 거 보셨어요?” “아, 네…….” “돈가방도 확인하셨죠? 금방 혼내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블랑이한테 총 쏜 놈이 자꾸 도망을 쳐서…….” “아…….” 이쯤이면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주민성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최선아의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