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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식구들 (1) (21/250)

또 다른 식구들 (1)2021.12.22.

주민성은 학원 건물 2층 미로 속 막다른 길에 텐트를 설치해 그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에고. 허리야.” 안전이 보장되어 마음이 편해진 탓인지, 유독 딱딱한 바닥이 거슬렸다. “도시에 돌아가면 침대라도 사야겠군.” 원래 같았으면 진작 도시로 귀환했을 시기였지만, 주민성에겐 아직 할 일이 산더미였다. “소유물 복제.” 아침 일과는 텐트 복제로 시작되었다. 식량을 복제할 만도 했지만, 게이트에서 텐트의 존재는 주민성에게 여분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텐트 복제는 언제나 옳다.” 텐트야말로 소유물 중 쓰임새가 가장 많은 물건이었다. 단순 취침용이라는 용도에서 주거용 수준의 성능이 된 것은 기본이었고, 비상용 무기도 겸하는 데다 방어력까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건물 판정 덕분이었다. “이번 텐트는 그냥 여분 방어구로 쓸까?” 평소에도 배에 두르는 텐트가 한 개 있긴 했지만, 오늘은 유독 허리가 아팠다. 건물 잔해가 미묘하게 평평하지 않았던 모양. “좋아. 커스텀을 해 보자.” 주민성은 곧장 배에 두르던 텐트를 풀어 한쪽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새로 복제한 텐트는 반대쪽 어깨에 걸쳐졌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묶으면……. 완성!” X자 모양의 커스텀이 완성되었다. 이는 주민성이 어린 시절 꿈꿔 오던 미국의 유명 능력자의 복장과도 흡사했다. “여기서 총알까지 나가면 딱 좋긴 하겠지만…….” 마음 같아선 총기까지 커스텀하고 싶었지만, 능력자가 많아지면서 총기는 자연스레 쇠퇴했다. 지금은 극소수의 총기 장인만 남은 데다, 이마저도 S급 이상의 능력자 전용 총기밖에 제작되지 않는다. “에휴. FFF급이 무슨.” 한때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능력자는 어느 S급 게이트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상당히 초라했다. 상대가 보스도 아니었으니까. 평범하게 총기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에게 죽은 것이다. “내 현실은 이곳인데.” 주민성은 대충 물티슈로 세수를 끝마치고 1층으로 향했다. “키에엑!” “그래. 좋은 아침.” 고블린과 부대끼는 삶. 이것이 현실이었다. “키엑! 키엑!” “와. 이게 다 뭐람?” 살벌한 폐허였던 학원 1층은 어느새 마석이 잔뜩 수놓인 별천지가 되어 있었다. “마석 양 좀 보소…….” 주민성이 고블린들에게 맡겼던 마석보다 훨씬 많은 마석들이 벽면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갓블린…….”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고블린들은 콩이처럼 마석을 먹지 않고 건물에 양보했다. 그것은 곧 고블린에 대한 신뢰가 되었다. “건물 보수.” 파스슷! [학원이 마석으로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 주민성은 1층 구석구석 꼼꼼하게 건물을 보수했다. “이 정도면 다른 메시지가 뜰 만도 한데.” 결과는 자주 보던 메시지뿐.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생각보다 건물주 등급이 많이 오른 것은 덤이었다. “어디보자……. 새로 생긴 부가효과는…….” 새로운 부가효과로는 수면 효율이 대폭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나머지는 기존 부가효과가 강해진 정도. “아, 보수 끝내고 잘걸. 근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생겼다. 작업량에 비해 주둔 중인 고블린 수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왜 너희들밖에 없어?” “키엑?” 1층에 있는 고블린은 하루 전, 마석 끼우기 임무를 수행 중인 고블린들뿐이었다. “어제만 해도 엄청 많았는데?” “키엑!” 주민성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건물을 나섰다. “설마…….” “크룩!” “아니……. 미쳤냐고…….” 놀라운 광경이 주민성 앞에 펼쳐졌다. “미친 거 아니냐고…….” “크루욱!” “키엑! 키에엑!” “컹!” 수많은 시선이 주민성에게 쏟아졌다. “크룩스. 설명을 요구한다.” “크룩!”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만 원입니다.] [주변의 고블린과 데빌도그는 전부 아군입니다.] “아니……. 정보료가 싼 건 좋은데 이걸 모르겠냐고…….” “크룩?” 수십? 어림도 없었다. 수백도 마찬가지. “이거 어쩔 거냐고…….” 주변에 늘어선 고블린과 데빌도그는 수천에 육박했다. “너무 많잖아…….” 몬스터로 가득해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하……. 잠깐 비켜 봐…….” “크룩!” 발 디딜 틈은 있었다. 아니, 발 디딜 틈이 생겼다는 표현이 맞았다. 주민성이 가는 곳엔 몬스터의 파도가 펼쳐졌으니까. “맙소사…….” 전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작 하루 만에 증식한 몬스터가 수천. 이것은 절대 쉽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이거 무조건 난리 나는데…….” 이 소식이 알려지면 방송사에서 중계차 방문하는 것은 당연지사. 차라리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유해 능력자 취급도 거의 확실해진다. 그 이상의 대우조차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몬스터 군단을 끌고 다니는 인간이 세계 최초로 등장하는 사례가 될 테니까. “아, 안 돼…….” 잠시 잊고 있었던, FFF급 능력자가 되면서 생긴 트라우마가 다시 깨어날 지경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데 건물에는 왜 안 들어가는 거야?” 이곳은 폐허 도시였다. 비록 폐허지만 건물 숲이나 다름없는 곳. 몸을 숨길 장소는 차고 넘쳤다. “크룩스. 대답 좀 해 보라니까?” “크룩!”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30만 원입니다.] [건물은 선택받은 몬스터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주민성은 그제야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전 고블린이 다른 고블린을 죽인 이유도 어렴풋이 알아낼 수 있었다. ‘허가 없이 건물에 들어가면 사형 같은 거네.’ 고블린들의 파벌 문제일 가능성도 충분하겠지만, 주민성이 지정했던 고블린들을 제외하고 전부 밖에 있는 거로 봐선 상당히 유력한 가설이었다. ‘명령에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겠어.’ 고블린들은 크룩스를 보스로 대하고, 크룩스는 주민성을 보스로 대우하고 있었다. 즉, 고블린들이 일반 사원이고 크룩스가 부장급. 주민성은 사장. 혹은 그 이상의 존재로 보일 게 분명했다. ‘이건 잘만 다뤄도 대박이다.’ 고블린의 가능성은 1층의 사례만으로도 충분했다. 야간 근무 수당에 작업 속도까지 고려해도 인건비만 수백만 원이 나왔을 테니까. “이게 다 무료……! 앞으로도 무료!” “크룩?” 지금의 고블린들은 절하고 모셔도 되는 수준이었다. 고블린의 가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절대 만 원짜리가 아니야!” “크룩!” 주민성의 욕심이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또 다른 모험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지킨다.” “크루욱?” “키에에에엑!” 말을 이해하기라도 했는지, 주민성의 선언과 함께 몬스터들이 포효했다. “아, 그래도 소리 지르는 건 금지.” “키엑…….” 몬스터들이 잠잠해지는 걸 확인한 주민성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너희들은 지금 너무나 눈에 띈다.” “크룩!” “자랑할 일이 아니야. 걸리면 매장당할 일이지.” “크룩…….” “그러니까 평소엔 몸을 숨겨야 해.” “크룩?” 주민성은 꽃집을 가리켰다. “저기 다 빈집이잖아. 평소엔 들어가 있으라고.” “크룩!” 왜인지 고블린들이 감격 어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저런 의미부여는 주민성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크룩?” 고블린들이 호구라고 해서 자신까지 호구가 될 이유는 없었다. 크룩스의 이해력이 뛰어난 이상, 더욱 효율적인 부가가치의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건물에서 지내려면 마석이 필요하다.” “크룩!”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마석 한 개를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이게 마석이다.” “키에엑!” “이걸 크룩스에게 주고 들어가야 한다.” “키엑!” 직접 받기엔 수고스럽고 콩이에게 맡기면 위험했다. 때문에, 답은 크룩스로 정해져 있었다. 건물 입장료가 정해지자 몬스터들에게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하나같이 열정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눈빛이 아니야.’ 주민성은 고블린들이 더욱 탐욕스럽길 바랐다. 더욱 좋은 보상을 갈망하도록. ‘마석의 중요성을 강조해야겠군.’ 잠시간의 정적. 열정이 가라앉고, 의문스러운 눈빛이 떠올랐다. 그러자 주민성의 손이 학원 건물을 가리켰다. “여기선 마석 50개가 있어야 지낼 수 있다.” “키엑?” “키엑!” 부하 몬스터에겐 이용료 청구를 할 수 없었다. 이전의 경험으로 이용료를 청구당한 몬스터가 미치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용료를 받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능력을 통한 청구가 아닌, 직접적인 청구는 가능했다. 이 모든 건, 몬스터들이 학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거 인원에도 제한을 두겠다.” “키엑!” “한 층에 50마리씩. 선착순이다.” “키엑?” 주민성은 크룩스에게 알아서 설명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크룩! 크룩!” “키엑! 키엑!” 고블린의 신기한 소통 방식 덕분에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번 기회가 끝나면 기회는 두 번으로 줄어든다. 이 건물에서 살 수 있는 고블린은 총 150마리. 마석을 미리 잘 모아 뒀으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크룩! 크룩!” “크르르!” 주민성은 고블린들에게 마석을 저축하는 습관도 가르쳤다. ‘그리고 얘들이 문제네.’ 마지막 남은 문제는 데빌도그. 사족 보행하는 몬스터는 고블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가졌다. “데빌도그는 알아서 원하는 고블린과 행동을 같이해라. 입주도 같이하고. 너희는 운명 공동체다.” “크르르!” 나름대로 풀어서 한 설명 덕분인지, 이번엔 크룩스의 통역이 필요 없었다. ‘데빌도그는 식비가 감당 안 돼. 이런 건 나눠야지.’ 이것으로 데빌도그 사이에서 나름의 경쟁이 생겼다. 고블린보다 데빌도그가 많아 선착순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물에 들어가는 기한은 오늘까지. 마석은 알아서 벌어 오도록.” “키에엑!” “단, 아군을 공격해서 마석을 얻는 건 금지다.” “키엑! 키엑!” 규칙을 정함으로써 나름의 질서가 생겼다. 다음은 서열을 정할 차례. 이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콩이랑 크룩스는 이리 오도록.” “컹!” “크룩!” 주민성은 몸에 두르던 텐트를 풀어 콩이와 크룩스에게 감아 줬다. 몬스터에게 부가효과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몰라도, 방어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이다. ‘얘들은 절대 잃으면 안 돼.’ 당장은 아니라도 자신을 적대하는 능력자는 반드시 이곳을 찾아올 게 분명했다. 지금 감아 준 텐트는 그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컹! 컹!” “크룩! 크룩!” 콩이는 몰라도 크룩스는 확실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고블린들이 부러워하는 것도 마찬가지. 나름의 동기 부여가 된 모양이다. “자. 이제 고블린들은 데빌도그에 탑승하도록.” “키에에엑!” 동시다발적으로 데빌도그에 탑승하는 고블린들의 모습은 쓸데없이 멋졌다. 그리고 군대의 지휘관이 된 것 같은 고양감까지 선사했다. “음.” 어제와 달리 수백으로 불어난 고블린 라이더들의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얘들, 제대로 무장까지 시키면 장난 아니겠는데?’ 이는 한 가지 조건만 충족해도 실현할 수 있는 상상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나타나는 게 적일지 아군일지가 문제네.’ 만약 웨이브로 출현하는 몬스터가 적이라면, 그땐 마석 공급이 무한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아군이 나타난다면, 머릿수만 불어나고 마석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기는 단점이 있다. ‘테스트 한 번은 불가피하네. 아군이 나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주민성은 아군을 처형해 마석을 수급하는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이는 끔찍한 기억을 선사해 준 손절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적어도 나는 끝까지 책임진다.’ 주민성은 게이트에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몬스터와 한 배를 탔다. 남은 것은 이곳에 제대로 정착할 일뿐이었다. “이것으로 설명을 마친다. 해산! 마석 벌어 와!” “키엑! 키엑! 키엑!” 명령 한 번에 고블린 라이더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로지 마석을 벌어 오기 위해서. 장관이었다. “멋지네.” 이제 주민성 곁에 남은 건 콩이와 크룩스, 그리고 짝을 찾지 못한 데빌도그들 뿐이었다. “콩이랑 크룩스는 이 건물 안에서 교대로 지내. 물론 콩이는 학원 안에서 마석 먹는 것 금지.” “컹…….” 콩이가 억울한 느낌으로 낑낑댔지만 소용없었다. “너 어차피 쟤들 시켜서 마석 먹을 거잖아.” “컹!” 이곳에 가장 많은 몬스터가 데빌도그였고, 가장 강력한 데빌도그가 콩이였다. 서열도 생긴 마당에 다른 데빌도그를 부려먹지 않을 콩이가 아니었다. “컹! 컹!” “응. 말 안 바꿔.” 주민성은 콩이와 한참을 투덕거리며 고블린들의 경제 활동(?)을 지켜봤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수시로 확인했다.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선아 씨가 좀 늦네. 늦어도 새벽 중엔 온다더니.” 주민성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투자한 금액이 상당히 컸던 만큼 불안함도 증폭됐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말과는 다르게 주민성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빈도는 점점 늘어만 갔다. ‘휴대폰은 위급할 때 켜라고 해 뒀는데. 전화를 한번 해 볼까?’ 협회의 위치 추적이 염려되어 휴대폰도 꺼 둔 상황. 이는 최선아도 마찬가지였다. “…….” 고민 끝에, 주민성은 전화를 택했다. 띠리링!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젠장.” 그와 동시에, 멀리서 화상을 입은 고블린 라이더가 주민성을 향해 달려왔다. “키에엑! 키엑……!” 최선아의 배낭을 메고 있는 고블린이었다. “화상?” 이는 누가 봐도 능력자의 소행이었다. “판자촌? 경비? 아니면…….” 주민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그만뒀다. “……크룩스. 고블린 전원 집합시켜.” “크룩!”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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