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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3) (18/250)

갑과 을 (3)2021.12.19.

“저 몬스터들, 우리 편 맞는 거죠?” “……아마도요.” 크룩스는 절대 을. 주민성과 절대적인 상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하극상이 불가능한 관계다. 그리고 크룩스 휘하의 몬스터들은 크룩스와 상하 관계가 형성되었다. “크룩!” “키엑!” 크룩스 휘하의 고블린들이 주민성을 바라보며 외쳤다. “키에에엑!” 고블린들이 저마다 철근을 들고 양손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키엑! 키에엑!” 빈틈이 많아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특유의 절도가 느껴졌다. ‘굴러 들어온 부하라면 환영이지.’ 유지비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게이트에서의 생존율이 높아지는 건 환영할 일이었다. “크룩스, 너의 부하들은 곧 내 부하이기도 하다.” “크룩!” 명령을 통해 다시 한번 상하 관계를 각인시킨 주민성은 작은 의문이 들었다. ‘근데 콩이는 왜 가만히 있었을까.’ 콩이에게는 크룩스와 마찬가지로 경계 명령을 내린 상태. “컹!” “크룩!” 몬스터 무리엔 고블린만 있는 게 아니었다. 데빌도그도 섞여 있었다. ‘데빌도그는…….’ 주민성은 콩이 덕분에 데빌도그의 식성을 알고 있었다. ‘절대 안 돼!’ 여태 콩이가 먹은 마석만 해도 수백만 원은 훌쩍 뛰어넘을 수준. 콩이 같은 데빌도그가 배로 늘어나는 상황만큼은 절대 피해야만 했다. “크룩스. 명령이다. 부하는 고블린만 받는다.” “크룩?” “너희들 밥값이 감당 안 되거든.”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50만 원입니다.] [고블린은 돈을 먹지 않습니다.] “…….” 잡다한 정보에도 생돈 50만 원이 날아가는 수준! 가성비가 나쁜 건 콩이뿐만이 아니었다. ‘현금부터 빠르게 조달해야겠어.’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최선아를 출발시키기로 했다. “휴. 선아 씨. 바로 다녀와 주셔야겠어요.” “아, 네! 그런데 저 고블린이랑 가면 안 될까요?” “고블린이요? 콩이가 아니고?” “네…….” 최선아의 취향을 의심해 보던 주민성은 고블린을 살폈다. 그리고 답을 찾아냈다. ‘아. 얘들은 이족보행에 짐도 나를 수 있구나.’ 이는 큰 발견이었다. 개과인 콩이와 다르게 고블린은 실질적인 노동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니까. “크룩스. 선아 씨는 내 동료다.” “크룩!”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300만 원입니다.] [절대 갑의 동료는 절대 을보다 서열이 높습니다.] 이번 정보는 비싸긴 해도 상당히 괜찮은 정보였다. ‘이 정도면 괜찮겠군.’ 최선아의 안전을 확인한 주민성은 흔쾌히 요청을 수락했다. “네. 다섯 마리 붙여 드릴게요. 될 수 있으면 사람하고 마주치지 마시고, 도주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세요.” “네! 다녀올게요!” “고블린은 음……. 너부터 너까지.” 고블린 다섯 마리를 지정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키엑! 키엑!” “크르르!” “어어?” 지목받은 고블린들이 근처에 있는 데빌도그에 올라탄 것이다. “기, 기동형 몬스터?” “와! 얘들 데빌도그에 올라탔어요! 귀여워!” “…….” 이는 쉽게 볼 일이 아니었다. 기동력을 확보한 몬스터는 다른 차원의 전투 능력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주민성이 이렇게 심각해지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1년 전, 인천의 C급 게이트가 A급으로 상향 조정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 게이트의 주요 몬스터는 C급 이하의 게이트에서 흔히 출몰하는 오크와 다크울프. 이 흔한 몬스터들의 조합은, 오크가 다크울프에 올라탐으로써 능력자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뉴스에선 놈들이 게릴라전을 구사한다고 했었지.’ 게릴라전은 말 그대로 괴롭히기 위한 전술이었다. 그 기반엔 오크의 높은 방어력과 다크울프의 뛰어난 회피력이 있었다. 놈들은 자신의 신체 능력을 활용해 자연스레 장기전을 유도, 능력자들을 탈진 상태로 만들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본격적인 공격은 오로지 도망치는 파티에게만 적용됐다. 그렇게 전멸한 파티가 수백에 이르고 나서야 협회 측에서 뒤늦게 C급이던 게이트 등급을 A급으로 격상시킨 사건이었다. 심지어 몬스터명 자체도 오크라이더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 이후, 인천의 A급 게이트는 이곳과 마찬가지로 가성비 문제로 유령 게이트가 되었다. ‘이건 고블린 라이더인가…….’ 주민성이 충격에 굳어 있는 사이, 최선아는 능력까지 써 가면서 고블린 라이더들과 폐허 도시를 빠져나갔다. “금방 다녀올게요!” “……크룩스. 고블린만 받으라는 명령은 취소한다.” “크룩!” 복잡한 마음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마친 주민성은 몬스터들을 학원 안으로 불러들였다. “일단 크룩스, 너부터.” “크룩?” “정보료. 인간적으로, 아니지. 상식적으로 너무 비싼 거 아니냐? 갑한테는 정보료 면제를 명령한다.” 안타깝게도 크룩스에겐 인간의 상식도 통하지 않았다.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500만 원입니다.] [정보료의 면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 “크룩!”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600만 원입니다.] [정보료 면제엔 고액의 추가 정보가 필요합니다.] “…….” “크룩!”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주민성이 내야 할 정보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납부 기한이 24시간이었지. 편법 수단부터 정비해야겠군.’ 주민성은 고심 끝에 정돈된 질문을 건넸다. “정보료의 분할 납부. 가능하다면 오른팔을 들어라.” “크룩!” 놀랍게도 크룩스는 주민성의 질문에 답했다. 무려 오른팔을 들어 올린 것이다. ‘오. 이번엔 메시지가 안 뜨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발견이었다. 정보료를 내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 아니오 식의 선택형 질문을 주로 해야겠어.’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정보료는 메시지와 관련 있으니 그렇다 쳐도 분할 납부 등의 용어는 어떻게 아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너 한국말 알아? 알면 오른손, 모르면 왼손.” “크룩!” 크룩스가 내민 손은 왼손이었다. ‘한국말은 모르는데 내 질문은 알아듣는다라. 생각해 보니 콩이도 말을 알아듣기는 했구나. 인벤토리도 말보단 의지로 발동하는 느낌이었지. 의사 전달은 문제없겠어.’ 주민성은 자신이 얻은 소득에 만족하며 고블린들의 활용 방안을 고민했다. ‘이 게이트의 몬스터를 내 편으로 만들 방법이 생긴 이상, 다른 수익 루트를 마련해야 해.’ 건물주라는 능력은 알면 알수록 방향성이 기괴했다. 건물 폭파나 잔해 떨구기 같은 사냥 수단은 대부분 큰 소란을 일으켜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었고, 이용료 청구 같은 능력은 오히려 인간에게 사용하는 것이 안전했다. ‘특히 이용료 청구는 몬스터가 대상이면 변수가 너무 많아.’ 그렇다고 아예 도시로 돌아가 자리를 잡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유할 수 있는 건물은 폐허에 가까운 건물뿐이니까. 결국, 주민성은 다시 한번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지금의 현실에 적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능력자면 게이트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지.” 안타깝다면 안타까울 수도 있는 합리화였다. “건물 보수나 재개하자. 분명 꽃집 이상의 변화가 생기겠지.” 짝! 양 볼을 치며 마음을 굳게 먹은 주민성은 고블린들에게 말했다. “자, 고블린들 모여.” “크렉!” “크룩!” “크룩스는 나가. 넌 방해된다.” “크룩…….” 크룩스의 뛰어난 지능은 분명 주민성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덩치가 문제였다. 1층만 겨우 보수한 지금 시점에선 경계를 맡기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세워 놓기만 해도 알아서 고블린 부하들이 모여드니까. 주민성은 일반 고블린들을 세워 두고 연설을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왜 안 싸우고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크륵?” 인간과 몬스터의 기묘한 대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묘한 광경이었다. 심지어 고블린들은 무릎까지 꿇고 주민성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일단 너희는 인간이 아니다.” “크륵!” “그래서 인권도 없다.” “크렉!” “너희들의 권리는 직접 쟁취해라. 노동으로.” “크라! 크라! 크라!” 상대가 같은 사람이었다면 철창 신세는 기본에 ‘게이트 갑질남’으로 신상까지 털리고 처벌받을 만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고블린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여태까지의 고블린들의 위치는, 주민성과 눈만 마주쳐도 죽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크루! 크루! 크루!” “좋아.” 주민성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마석들을 쏟아냈다. “마석 줍기 실시.” “크렉!” 고블린들은 저마다 들고 있던 무기들을 내려놓고 바닥에 쏟아진 마석을 광적으로 주워대기 시작했다. “그만.” “키엑!” 고블린들은 주민성의 짧은 명령만으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제군들은 벽에 있는 균열이 보일 것이다.” “키에엑!” “다음 임무는 균열에 마석 넣기다. 실수하는 고블린은 바로 추방할 테니까 조심히 넣도록.” “키에에엑!” 주민성은 고블린들과 골고루 눈을 마주치고 위엄 있게 말했다. “실시.” “키에에에에에!” 척! 척! 척! 현자 타임이 올 만도 했지만, 고블린들과의 소통은 주민성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 줬다. 크룩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고블린들의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얘들, 생각보다 훨씬 쓸 만한데?’ 주민성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표정을 유지한 채 메꿔진 균열에 손을 뻗었다. “건물 보수.” [학원이 마석으로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 보수 수준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육안으로 본 보수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긴 해도 균열은 빈틈없이 매끄럽게 메꿔졌기 때문이다. “캬오! 캬오!” “흠흠.” 건물 보수에 열광하는 고블린들은 덤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벽 한쪽의 보수가 끝났다. ‘이 속도라면 건물 복구도 훨씬 빠르겠어. 아예 리모델링까지 해 볼까?’ 기존 학원 건물 내부는 총 5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대로 복구한다면 크룩스의 실내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 ‘3층 정도로 바꿔 볼까?’ 주민성에겐 건축 관련 지식이 없었다. 대신, 건물 부가 효과가 있었다. 잘못된 설계를 하더라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기적인 부가 효과였다. ‘좋아. 해 보자.’ 리모델링할 생각에 마음이 부푼 주민성은 곧장 추가분의 마석을 쏟아냈다. 촤르르르! “알아서 메꿔.” “케르르르!” 재주는 고블린이 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민성은 메꿔진 벽에 건물 보수 능력만 사용하면 되니까. ‘이러면 건물 보수도 반자동이네. 역시 머릿수가 깡패구나.’ 주민성은 고블린들에게 일을 맡기고 위층으로 향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됩니다.] ……. 사방을 가로막던 잔해들은 전부 인벤토리에 수납됐다. 쿵! 쿵! 쿠르르! 천장도 전부 철거했고, 건물 잔해들을 복잡하게 쌓아 새로운 계단을 만들었다. “크룩스를 생각하면 3층 정도가 적당하겠군. 읏차!” 주민성은 계속해서 복잡하게 움직였다. 한참을 올라갔다가도 다시 내려가는 계단을 만들어 중간 중간 고블린들이 메꾼 균열도 보수했다. 보수가 끝난 벽면에는 다시금 잔해로 벽을 쌓았다. 그렇게 한참의 수납과 재배치 끝에, 주민성은 노을 진 하늘을 목격할 수 있었다. “휴, 시간도 꽤 지났는데 습격이 안 오네.” 주민성은 자신감이 조금 붙은 상태였다. 일부러 잔해들을 복잡하게 재배치해 미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물 부가 효과로 내구도가 크게 상승한 미로는 부수기도 쉽지 않아 잔해 수납이 가능한 주민성만이 편리하게 탈출할 수 있는 미로였다. “경치나 감상하면서 밥이나 먹을까…….” 주민성은 곧장 옥상으로 향해 적당한 자리를 만들고 바깥을 감상했다. “크. 경치 좋네.” 노을빛에 물든 폐허 도시는 은근한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탄은 오래 가지 않았다. 툭! 몇 개 남지 않은 삼각김밥을 떨어트렸는데도 주울 엄두가 생기지 않았다. “미, 미쳤어……. 이건 대체…….” 주민성이 이렇게 놀란 이유는, 콩이와 크룩스가 있는 곳을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크루욱!” “키레엑!” “…….” 건물 주위엔, 수백에 가까운 고블린 라이더가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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