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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2) (17/250)

갑과 을 (2)2021.12.18.

[학원 건물에 한 달 분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대상을 장기 이용자로 정의합니다.] [최초로 장기 이용자가 생겼습니다.] [30일분의 이용료 청구가 가능해집니다.] [30일분 청구는 장기 이용자에게만 가능합니다.] [이용료 청구 능력이 성장합니다.] [절대 을의 보유 개체 한도가 상승합니다.] [절대 을은 두 개의 개체만 보유 가능합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 쏟아지는 메시지의 향연. “됐다!” “네? 그만 돈 드려도 돼요? 저 다른 메시지가…….” “아, 잠시만요.” 최선아에게도 뭔가 변화가 생긴 듯했지만, 주민성은 이미 새로운 절대 을에 꽂혀 있었다. ‘최대한 넓은 공간부터!’ 주민성은 서둘러 넓은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되었습니다.] [건물 잔해가 수납되었습니다.] ……. 주민성은 싱글벙글한 채 잔해를 수납했고, 최선아는 뒤에서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저 장기 이용자 됐는데 새로운…….”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잠시만요.” “……네.” 그렇게 한참 동안 잔해를 치우자 제법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보스 꺼내야 하니 잠시 뒤로!” “보, 보스요? 아, 네!” 최선아가 황급히 물러서자 인벤토리가 크게 요동쳤다. “크라아아아아!” 크룩스의 재등장. 가까이서 보니 더욱 위엄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쿵! “크락!” 낮은 천장 덕분에 그 위엄이 크게 반감되었다. 쿠구국! 분노한 크룩스는 본능적으로 천장에 머리를 쑤셔 넣고 포효하려 했다. 이때 주민성이 빠르게 말했다. “야, 고개 숙여.” “크라아?” “아, 들리시는구나.” “크라?” “이용료 청구.”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은 0%] [대상을 절대 을로 정의합니다.] [주민성 님이 절대 갑이 되었습니다.] [절대 갑은 절대 을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절대적인 관계는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상당히 지능이 높아 보이는 상대였음에도 납부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 을이 목적인 청구였고, 이용료를 내겠다고 거래를 요청하더라도 받지 않았을 거니까.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판이었다. “이게 다 보호를 위해서야.” 크룩스는 콩이 때와 다르게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크룩.” “그래.”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절대적인 관계가 형성되면서 어느 정도의 교감은 가능해진다. 그리고 주민성은 크룩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크룩스.” “크룩.” 평온하면서도 위엄 있는, 크룩스의 눈길이 주민성을 향했다. “정보료 좀 깎아 주라.” “…….” “우리 사이에 거래는 의미 없는 거 알잖아?” 주종 관계가 아니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 그러니까 너도 보태.” 갑을 관계였다. 그것도 절대적인. “……크룩.” 주민성은 몬스터가 한숨을 쉬는 진귀한 광경을 감상했다. 한편, 최선아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미, 민성 씨……. 이것도 이용료 청구죠?” “네? 왜요?” “저 몬스터 원래 사람이었다든가 그런 건 없어요?” “몬스터 맞는데요. 아마도.” 최선아는 엉뚱한 상상을 펼치고 있었다. 이용료로 약점을 잡혀 몬스터가 되고 조련당하는 상상이었다. “아, 아마도요? 그럼 저도 몬스터로?” “네? 아…….” 뒤늦게 질문 의도를 파악한 주민성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저도 잘 모르거든요. 크룩스는 오늘 처음 봤어요.” “……아. 그러셨구나.” 오해는 어느 정도 풀렸지만, 이곳에서 말을 알아듣는 존재는 주민성과 최선아만 있는 게 아니었다. “크루욱!” “히익!” 크룩스의 분노 어린 눈빛이 최선아를 향했다. “위협 금지.” “……크룩.” 절대적인 관계는 분노 조절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편리한 관계였다. “피아구분 확실히 해. 선아 씨는 아군이다.” “……크룩.” 주민성은 크룩스와 한참 동안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자기소개 할 시간을 주겠다.” “크룩?” 메시지가 떠올랐다. [크룩스가 자신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1780억 3000만 원입니다.] [고액의 정보료는 상대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미친.” “크룩?” 1780억. 일개 고블린의 정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그만큼 파급력이 크고, 중요한 정보이리라. ‘어렵네.’ 이렇게 액수가 크면 최선아와 하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편법도 불가능한 상황. 주민성은 다른 편법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한글이라도 가르쳐야겠군.’ 메시지를 통한 정보 전달이 안 된다면, 글이나 말 같은 다른 소통 방식으로 우회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주민성만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다. “후후후…….” 메시지의 추가적인 활용법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주민성은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성장하는 능력이라는 특별함을 가진 이상, 시간은 언제나 주민성의 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스펙부터가 다르다. 크룩스는 보스 몬스터에 능력까지 쓰는 특이한 개체. 적어도 이 게이트에서 크룩스를 제압할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수천, 수만 마리일지라도. “크룩스, 일단은 자세 낮추고 건물 안에서 경계해.” “크룩.” 주민성은 크룩스의 강함에 매료되어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세뇌당한 몬스터가 혼자서 자유롭게 다닐 리 없어.’ 세뇌는 주민성이 징검문을 넘은 순간 풀렸다. 즉, 그전까진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행동했다는 뜻. 즉각적인 공격을 해 오진 않지만, 상대 역시 크룩스의 변화를 눈치 챘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으로선 수비를 굳히는 게 최선이었다. “SSS급은 혼자서 다 해먹는다더니 그 말이 맞네요…….” “저 FFF급 맞는데요.” 내색하진 않았지만 주민성 역시 최선아의 착각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FFF급이 되면서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특효였다. “어휴. 그리고 장기 이용자 말인데요…….” “네. 그게 왜요?” 한 달분의 이용료를 청구하면 정해지는 장기 이용자. 메시지 내용에서 특별한 점은 없었다. “버프를 너무 많이 받아서 계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네? 버프요?” “네. 이 버프, 30일간 계속 적용된다는데요…….” “맙소사.” 심지어 버프는 반영구적인 버프였다. 주민성은 최선아가 장기 이용자가 되는 순간의 메시지를 떠올렸다. ‘절대 을 한도 상승만 있던 게 아니었나?’ 떠올려 봐도 버프 능력을 얻었다는 메시지는 분명 없었다. “메시지로 나온 거죠?” “아, 네.” “한번 적어 주실래요?” 주민성은 최선아에게 수첩을 건넸다. “…….” “선아 씨?” 최선아는 울상을 지으며 주민성을 째려보고 있었다. “메시지는 아까 지워졌는데요…….” “…….” “제가 그래서 계속 불렀잖아요…….” “……아.” 절대 을에 흥분했을 당시에도 최선아는 주민성을 계속해서 불렀었다. “……알고 계시다면서요.” “…….” “……다른 메시지 떴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건물의 부가 효과를 받는 와중에도 흥분한 마당에 최선아의 외침이 들릴 리 없었다. 주민성은 자신의 성급함을 반성하며 최선아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전반적인 신체 능력 상승에, 건물 부가 효과가 두 배로 적용된다는 거죠?” “네. 비슷해요…….” “적용 거리 제한도 없고요?” “네…….” 최선아의 말대로라면, 장기 이용자는 확실히 버프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정작 건물주인 본인이 누리지 못하는 버프이긴 했지만. ‘이거 점점 장난 아닌데…….’ 버프 능력자는 탱커와 힐러처럼 비싼 몸값의 포지션과 궤를 달리한다. 이들은 아예 고위 능력자 집단에게 앞 다투어 스카우트되는 부류였다. 힐러가 능력자를 전력으로 싸울 수 있게 지원하는 포지션이라면, 버퍼는 능력의 출력 자체를 강화시켜 주는 포지션이었다. 특히, S급 이상의 버프는 능력자 등급을 한 단계 올린다 해도 무방할 정도. 버프 능력자를 많이 보유한 집단이 곧 힘의 상징이자 명문이 된다. ‘맙소사…….’ 주민성의 머리는 행복회로에 불타기 시작했다. 타인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돈이 굴러들어 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쩐지 빚만 계속 늘어나는 것 같아요…….” 주민성과 다르게 최선아는 반강제로 받은 버프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부담 갖지 마세요. 선아 씨는 어차피 전속이잖아요.” “그, 그래도…….” “정 그러면 나중에 이용료 벌어다 주셔도 되고요.” “정말이에요? 후회하기 없기?” “에이, 후회는 무슨.” 주민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아에게 한 투자를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돈이 가장 중요해.’ 크룩스에 관한 장기적 플랜은 세웠지만 당장 사소한 정보라도 얻기 위해선 정보료가 필요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물 보수를 위한 건축 자재 구입에도 돈이 필요했고, 버프를 받아 더욱 쓰임새가 많아진 최선아의 장비 세팅부터 게이트 장기 체류를 위한 생활용품 구입에도 돈이 쓰인다. ‘마석 정산을 해야겠어. 최소한 현금 천만 원은 들고 있어야 잡다한 정보라도 얻겠지.’ 주민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최선아를 바라봤다. “힘 세졌다고 하셨죠?” “아, 네…….” “잠시만요.” 주민성은 곧장 짐을 풀어 바닥에 쏟아냈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배낭에 조준했다. 촤르르르! 인벤토리에서 배낭으로 옮겨진 것은 최하급 마석더미. “와……. 이거 다 정산해 오면 되는 거예요?” “네. 선아 씨 배낭도 주세요.” “네? 아, 네…….” 촤르르르르! “그 허리에 두르고 계신 것도요.” “……네.” 촤르륵! “음……. 이것밖에 안 들어가나.” “…….” 이미 배낭들엔 수백 개의 마석이 담겨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안 들어가네.” 최하급 마석을 능력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부피에 있었다. 순도가 떨어져 가격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중급 마석과 비슷한 크기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건물 잔해로 바구니를 만들어 볼까요?” “……휴.” 최선아가 한숨을 푹 쉬며 체념하듯 말했다. “차라리 여러 번 왕복할게요……. 여기서 짐이 더 늘어나면 버프도 소용없이 무조건 약탈당해요.” “아……. 그렇죠.” 주변은 잠잠했지만, 이 게이트는 엄연히 판자촌 능력자들이 거주하는 구역이기도 했다. 그들의 주력 돈벌이 장소는 이곳이 아니었지만, 마석더미가 제 발로 찾아온다면 거절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차라리 내 쪽에서 접근해 보는 건 어떨까?’ 판자촌은 주민성만큼은 아니었지만, 만만찮게 평판이 안 좋은 집단이었다. ‘오히려 나처럼 억울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들은 협회와 길드 모두에게 버림받은 능력자 집단이었다. 또한, 주민성의 생각이 틀렸다 하더라도 접근은 여전히 좋은 선택 중 하나였다. ‘경비들 쪽에서도 판자촌은 눈엣가시니까…….’ 이이제이식으로 양쪽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도 존재한다. 제대로 된 건물이 아닌 판잣집이라면 건물 등급이 최하급일 가능성도 높다. ‘소란 일으키기라면 자신 있고 말이지.’ 건물을 폭발시키고 판자촌 집단에 잘못을 뒤집어씌우면 그만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최선아는 배낭을 복잡하게 메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이제 다녀올게요.” “네. 혹시 모르니까 경비실 도착 전까지는 콩이랑 다녀오세요. 속도 맞춰 주시고.” “혼자서도 괜찮은데. 아, 뭔가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 봐요!” “안전 차원이에요. 우릴 노리는 능력자가 있는데 안 보이는 상황이거든요.” “헉.” “마음 같아선 크룩스를 붙여 드리고 싶긴 한데, 얘는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아요.” “알았어요.” 주민성의 진지한 설명에 최선아의 표정 또한 덩달아 심각해졌다. “입구까지 배웅해 드릴게요. 가시죠.” “네!” 둘의 긴장된 걸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원 건물 입구에서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컹!” “크룩!” “크르르!” “케륵!” “…….” 건물 입구엔 몬스터 수십여 마리가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크룩스, 설명.” “크룩!” [절대 을 크룩스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100만 원입니다.] [크룩스는 자신의 부하를 발견했습니다.] “…….” [크룩스가 추가 정보료를 제공합니다.] [정보료는 1500만 원입니다.] [크룩스는 잃어버렸던 지휘권을 되찾습니다.] 콩이가 마석을 본능적으로 마석을 찾듯, 크룩스는 본능적으로 부하를 찾는 돌발행동을 벌였다. 제멋대로 정보료를 청구하는 것은 덤. “크룩! 크룩!” “휴. 진짜 돈 많이 벌어야겠다.” 갑은 푼돈을 가지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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