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1)2021.12.17.
“선아 씨! 묻지 말고 빨리 저쪽 텐트로 들어가요!” “어라?” 엉뚱한 장소에서 소리치는 주민성에 당황한 것도 잠시. 최선아는 오더에 맞춰 움직였다. “알았어요!” 가속계 능력자는 대단하긴 대단했다. 콩이처럼 꼬리를 달고 오지도 않았고 상당히 안전하게 설치되었던 텐트까지 도착한 것이다. “들어가요! 빨리!” “네!” 학원 건물 옥상에 있던 주민성은 곁에 열려 있는 블랙홀을 응시했다. “……쩝. 추가 지출이라니. 어쩔 수 없지.” 거대 고블린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놈을 살리는 방향이 더욱 큰 이득이 될 수 있는 상황. “일단 웨이브부터 해결하자.” 보이지 않는 협회의 능력자가 신경 쓰였지만, 당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게 급선무였다. [잊혀진 징검문을 이용합니다.] [이용료는 150만 원입니다.] [24시간 이내에 이용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주민성은 꽃집 근처에 도착함과 동시에 잔해 속에 파묻힌 거대 고블린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러면 살려 준다.” “크륵?” [고블린 리더 크룩스가 거래를 요청합니다.] [이용료 150만 원 대신 추가 정보를 요구합니다.] “음?” 놈이 말을 알아들은 건지는 주민성도 알 수 없었다. 알아서 메시지로 전달되길 빌며 말할 뿐. “대충 인벤토리에 넣어 줄 테니까 아무 짓도 하지 마.” [추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크르스!” “…….” 역시 메시지가 알아서 해 준 모양. 주민성은 거대 고블린을 잠시 쳐다보곤 건물 잔해를 통째로 수납했다. 그리고 최선아와 콩이가 대피한 텐트로 향했다. “휴. 수고했어요.” “미, 민성 씨! 얼굴이 왜 그래요?” “컹!” “고생 좀 했어요. 이제 마석 좀 쓸어 담읍시다.” 텐트에서 주민성의 손이 빼꼼 튀어나왔다. 뒤이어 인벤토리가 튀어나오고. 쏴아아! 다시금 전력의 미세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건물주 등급이 상당히 오른 덕분인지 미세먼지 방출량은 이전과 달랐다. 실로 압도적인 수준! 쏴아아아! 이번엔 콩이로 입구를 막을 필요도 없었으며, 건물 잔해로 울타리를 칠 필요도 없었다. 그뿐이랴. 각종 부가 효과가 적용된 텐트는 KF94급 마스크도 울고 갈 수준의 미세먼지를 걸러낸다. 즉,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으며 절대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 수단이 마련된 것. “케륵!” “크라아!” 텐트가 위치한 고도 또한 낮다. 퍼지는 데 걸리는 시간도 상당 부분 절약된 상황. 미세먼지는 빠르게 주변을 잠식해 나갔다. 드르륵. ‘이쯤이면 되겠지.’ 내밀던 손까지 집어넣고 텐트 문을 닫은 주민성은 물티슈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15분 정도면 끝날 거예요.” “맙소사…….” 최선아는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주민성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게 고위 능력……! 저 이런 건 처음 봤어요!” “…….” 최선아의 견식이 좁은 건지 주민성이 정말 고위급 능력을 펼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게이트에서 주민성의 능력이 절대적인 효과를 가졌다는 것뿐.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 이윽고, 등급 상승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몬스터가 마석으로 변해 간다는 알림이기도 했다. “돈 꽤나 벌겠네요. 정말 수고했어요.” “어……. 제가 뭘 했다고……. 그저 도망만 쳤는걸요.” “저는 도망을 못 치거든요.” “와……. 역시…….” 최선아가 주민성의 대답을 멋대로 해석하는 사이, 주민성 역시 최선아의 포텐을 상당히 크게 보고 있었다. 육탄전에 특화된 콩이와 달리 최선아는 정말로 뛰어난 기동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F급 가속계가 이 정도면 위 등급은 대체…….’ 지금으로선 최선아가 존재함으로써 안정적인 돈벌이 수단이 확보된다는 것, 이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야.’ FFF급 능력자로 유명해진 이상, 정식 루트로 가속계 파티원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능력자에겐 등급이 곧 명예이고 자부심이었으니까. 이는 돈으로 때울 수 없는 간극이었다. 그럼에도 최선아는 주민성을 전력으로 도왔다. 비록 그 이유가 착각에서 나왔을지라도. “분배 비율은 그대로 갈게요.” “저, 정말 반반으로요?” 최선아가 끌고 온 몬스터는 수백 마리를 넘어 수천 마리에 육박했다. 이는 F급 능력자로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규모. 만약 정상적으로 분배를 받을 시, 최선아는 하루 만에 천만 원에 가까운 거금을 버는 셈이었다. “네. 대신 이번만입니다.” “아……. 그렇겠죠…….” 여기서 주민성의 노림수가 적중했다. 이미 거대한 벌이 수단은 공개했고, 둘만의 비밀을 만들어 꿀통을 더욱 탐스럽게 만들었다. ‘장비는 확실히 맞춰 줘야겠지.’ 최저가 장비 세트는 F급 게이트에서조차 쓸모없었다. 데빌도그에게 박살나는 방어구와 국적이 불분명한 무기가 될 뿐. 때문에, 이번 분배는 최선아를 무장시킬 투자금이 되어야 했다. “다음에도 함께하실 거라면…….” 주민성이 운을 띄웠고. “할게요! 무조건 할게요!” 최선아가 미끼를 물었다. “비율도 말 안했는데요?” “9 대 1도 괜찮아요! 기간도 상관없고요!” “…….” 주민성마저도 9 대 1은 예상치 못한 수준이었다. “어……. 그럼 보너스 별도로 9 대 1 하시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너스는 주민성의 양심이었다. “대신 이번 분배비로 장비부터 맞추고 오세요. 기동력이 크게 저하되지 않는 선에서.” “당연하죠! 이 정도면 A급 장인이 만든 정찰자 풀세트도 살 수 있어요!” “잘됐네요.” 최선아는 전부터 사고 싶던 장비들이 있던 모양. 화기애애한 대화가 마무리되고 어느새 주변의 소음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밖이 조용해졌네요.” 최선아는 곁눈질하며 바깥의 낌새에 집중했다. 주민성은 곧장 텐트에서 손을 내밀어 인벤토리를 꺼냈다. “미세먼지, 마석 회수.” “크르르…….” 콩이 역시 마석 냄새를 맡았지만, 주민성이 콩이에게 내린 명령은 텐트에서 대기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거대 고블린이 잠잠하네. 이름이 크룩스였나.’ 몬스터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도, 메시지를 쓸 줄 안다는 사실도 황당했다. 주민성은 크룩스의 배경엔 큰 관심이 없었다. 게이트는 고위 능력자들이 잘 막아냈고, 크룩스는 지구를 침공한 집단 중 하나였을 테니까. ‘그보다 내 능력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지부터 고민해야겠지.’ 당장 먹고살기 급급한 마당에 오지랖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왕이면 더욱 윤택하게 살아가야겠지.’ 주민성의 관심은 능력의 다양한 활용법에 있었다. “후우.” 어느새 미세먼지와 마석 수납 메시지가 사그라졌다. “슬슬 나가죠.” “네!” 미세먼지가 사라졌을 뿐, 이곳은 여전히 폐허도시였다. 전보다 더욱 상태가 나빠진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어, 그러고 보니…….’ 주민성은 자신이 건물을 소유하는 조건을 떠올렸다. ‘저러면 건물 등급도 떨어지는 거 아닌가?’ 여태 소유하는 데 성공한 건물 대부분은 반파나 완파에 가까운 건물들뿐이었다. “대박!” “네?” “아, 아니에요. 잠시만 주변 경계 좀 해 주세요!” “네!” 최선아에겐 근처에 있을지도 모를 협회 간부에 대한 경계를 맡겼고, 주민성은 한 건물을 응시했다. “콩아, 따라와!” “컹!” 주민성은 콩이와 함께 무너진 건물을 향해 달렸다. “헉! 헉!” 도착한 건물은 거대 고블린에 의해 무너진 학원이었다. “이 정도라면……!” 주민성은 크룩스를 곱게 꺼낼 생각이 없었다. 놈 역시 주민성에게 정보료를 청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터무니없는 금액이 청구되어 24시간이 지나 버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엔 몬스터의 명령을 따라야 할지도.’ 하지만 주민성에겐 희망이 있었다. 눈앞의 학원 건물은 최소 중급 이상이었다. ‘지금은 다르지.’ 학원 건물은 최하급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주민성은 이 건물의 정체를 알고 있다. ‘보수만 성공한다면 중급이다!’ 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었다. 등급이 높은 건물이라면 크룩스에 대항할 무언가의 수단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제발!’ 주민성은 군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학원(완파)이 추가됩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됐다! 콩아, 경계 좀 부탁해!” “컹!” 주민성은 기쁜 마음으로 콩이에게 마석 한 개를 던져 주고 학원 건물에 진입했다. “오오…….” “컹!”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이었지만, 소유권이 생김으로써 건물의 운명이 바뀌었다. 부가 효과와 부가 능력은 엄연히 달랐으니까. 건물주 등급에 따라 소유 중인 건물에 적용되는 게 부가 효과라면, 부가 능력은 건물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었다. 즉, 이 건물은 소유와 동시에 내구도 강화부터 시작해 온갖 부가 효과가 적용된다. “좋고.” 천장에서 너덜거리던 철근도 움직임을 멈췄다. “좋고, 좋고.” 콘크리트 가루가 흘러내리며 크기를 키우던 벽의 균열도 멈췄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겠군.” 꽃집 역시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지금의 학원 건물은 무려 5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복구에 성공만 한다면 이용료 또한 차원이 달라질 터. 미래 사업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중요한 게 또 있었지.” 주민성은 수첩을 펼쳐 콩이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을 당시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절대적인 관계는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절대 을은 한 개의 개체만 보유 가능합니다.] [능력의 성장을 통해 보유 가능 개체를 늘릴 수 있습니다.] “능력만 성장하면 절대 을도 늘릴 수 있어.” 콩이의 뒤를 이을 절대 을 후보는 이미 크룩스로 정해졌다. “후후후…….” 크룩스는 순간이동 능력에 메시지까지 쓸 줄 아는 보스급 몬스터. 정보료가 들어가긴 하지만 소통 또한 가능하니 크룩스야말로 최선, 최고의 선택이었다. ‘정보료는 주자마자 다시 뺏으면 되니까.’ 심지어 최선아를 통해 청구한 이용료를 주고받는 테스트도 거친 상황. 주민성에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좋아. 통 크게 가자.” 주민성은 최선아에게 줄 마석을 제외하고, 자기 몫의 마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결심했다. “중급 건물에 마석 인테리어면 효과도 좋겠지.” 건물 균열에 최하급 마석이 쏙쏙 박혀 들어갔다. “건물 보수.” [학원이 마석으로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 건물 균열 사이에 들어간 마석이 평평해지며 균열을 메꿔 가기 시작했다. “오호라.” 신기하게도 마석 인테리어는 메시지마저 제대로 된 보수 결과를 내지 못했다. 주민성은 이를 상상을 뛰어넘는 보수 수준으로 해석했다. “후후후후……. 건물 보수! 건물 보수!” 앞을 가로막는 잔해는 인벤토리로 회수하고, 균열은 마석으로 메꿨다. 주민성은 그렇게 한참을 1층 보수에 집중했다. “미, 민성 씨?” “아, 오셨어요?” “네. 주변에 몬스터는 없어요.” “좋네요.” 하지만 주민성의 표정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거대 고블린의 동행이 있었을 텐데.’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또다른 위협은 주민성을 더욱 긴장시켰다. 거대 고블린은 노골적으로 주민성만을 노려 왔었다. 누군가에게 세뇌당한 채. ‘공격하는 타이밍이 이상하게 맞아떨어져.’ 몬스터 웨이브 속에서 섞여 들어오는 움직임, 그리고 양동. 묘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도 있었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 왔어. 날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야.’ 단순히 능력자 한 명을 죽이는 것이라면 거대 고블린을 세뇌시킨 능력자 집단에서 직접 움직여도 될 일이었다. 심증뿐이지만 상대가 협회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했으니까. F급은 말할 것도 없고, A급 능력자조차 순식간에 지워낼 힘을 가진 집단이 바로 능력자 협회였다.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자.’ 주민성은 대충 보수를 끝낸 1층을 한차례 둘러보곤 막혀 있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봤다. 계단은 온갖 건물 잔해들로 빼곡히 막혀 있었다. ‘당장 지내기엔 1층만으로도 충분해. 능력부터 성장시켜 보자.’ 마음을 다잡은 주민성이 최선아를 불렀다. “선아 씨, 이리 와 보세요.” “네?” “이용료 청구.”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이용료는 만 원입니다.] “미, 민성 씨?” 주민성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오히려 보수를 조금만 하는 게 정답이었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일단 돈부터…….” “아, 돈은 됐어요.” 최선아가 배낭을 주섬거리는 사이. “이용료 청구. 이용료 청구.” 연속적으로 이용료 청구를 사용했다. 최선아의 당혹스런 눈빛이 주민성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이상하게 보시지 마시고요. 만 원만 꺼내 주세요.” “아, 네…….” “여기요…….” 주민성이 돈을 받음과 동시에 납부 메시지가 떠올랐다. [학원 이용료가 납부되었습니다.] [이용료는 인벤토리에 수납됩니다.] “여기까지가 기본 납부.”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만 원 지폐를 꺼내 최선아에게 건넸다. “받고 다시 건네주세요.” “네!” 최선아에게도 메시지가 떠올랐는지, 당혹스러워하던 눈빛은 점점 호기심으로 변해 갔다. 그렇게 반복하길 삼십여 차례. “민성 씨! 저 새로운 메시지가 떴어요!” 새로운 메시지는 주민성에게도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