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몬스터 (2)2021.12.16.
거대 고블린의 공격력은 상상을 진작 벗어났다. ‘무슨 고블린이 순간이동을 하냐고!’ 그래도 다행인 점은, 놈이 자신을 놓쳤다는 사실이었다. 목표물이 보이지 않아 화가 난 보스가 괴성을 내질렀다. “캬오오오오오오!” “윽!” 고막을 때리는 괴성. 불가항력으로 고통 어린 신음을 뱉은 주민성에게 거대 고블린의 시선이 닿았다. ‘이런!’ 먹잇감을 놓치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놈은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서도 똑똑히 주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쿠르르르! “크카카칵!” 주민성은 필사적으로 거대 고블린의 공격 수단을 파악했다. ‘저 무기는…….’ 놈의 무기는 큼직한 콘크리트가 박혀 있는 굵은 철근. 이것은 흉기의 수준을 넘어 섰다. 스치기만 해도 신체 부위가 떨어져 나가리라. “흡!” 은신은 실패. 주민성에겐 필사적으로 꽃집을 향해 달리는 수단밖에 남지 않았다. “캬오오오오오오!” “시끄러워!” 쿠르르릉! 주민성이 달리기 시작하자 학원 건물도 본격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쿠궁! 놀랍게도 거대 고블린은 학원 건물 옥상에서 주민성이 있는 지상까지 한 번에 점프했다. 그와 동시에. “큭!” 쾅! 콰쾅! 놈을 향해 주민성의 건물 잔해가 쏟아졌다. “크아아아아아!” 잔해가 적중한 것을 확인한 주민성은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잔해 회수 역시 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놈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야 했으니까. “헉! 헉! 잔해로 죽지 않는 놈이었어!” 다행히 주민성은 꽃집에 아슬아슬하게 도착, 인벤토리를 입구에 띄워 둔 채 놈이 오길 기다렸다. ‘지금 미세먼지를 풀었다간 콩이와 선아 씨가 휘말린다. 제기랄.’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 적어도 미세먼지는 일행이 근처까진 도착하고 나서 살포해야 했다. 쿵! “크아아아아아!” 놈이 건물 잔해를 집어 던지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엄청난 근력이었다. “내구도 강화.” 주민성은 꽃집과 텐트들을 동시에 강화해 방어력을 높였다. 꽃집은 중첩된 내구도 강화로 인해 노골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캬아아악!” 거대 고블린이 꽃집을 향해 달려왔다. 쾅! 콰광! [꽃집이 손상됩니다.] [꽃집이 손상됩니다.] 내구도를 강화한 덕분에 꽃집은 건물 파편만 튀긴 채 놈의 공격을 버텨냈다. “젠장. 이게 버텨지네.” 하지만 상황은 주민성에게 절대 유리하지 않았다. 이대로 공격을 계속해서 받는다면 이 건물도 학원 건물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테니까. ‘사냥을 미뤘어야 했어! 운수가 좋을 땐 무조건 사리라고 배웠는데!’ 주민성은 망설이고 있었다. 폐허 상태인 꽃집에 피어 있는 몇 송이 꽃 때문인지, 부가효과의 정서적 안정 효과 때문인지 이 건물을 폭파하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주민성은 침착하게 반격 수단을 세웠다. ‘꽃집이 무너지지 않을수록 놈의 동작은 커진다. 빈틈이 생길 거야.’ 처음으로 건물 잔해를 떨궜을 때, 놈은 잽싸게 방어 자세를 취했었다. 만약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은 채 건물 잔해를 맞는다면 분명 타격이 있다는 뜻이었다. “인벤토리 회수.” 주민성은 건물 내부에 피어 있던 꽃들을 조심스레 뽑았다. ‘내가 죽으면 꽃도 시들겠지.’ [미숙한 ??꽃이 수납됩니다.] [덜 자란 ???꽃이 수납됩니다.] ……. 꽃의 이름은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확실히 주민성이 처음 보는 꽃이었다. ‘이름 없는 꽃인가.’ 쾅! 쾅! 주민성은 조심스레 꽃집 뒷문으로 나가 거대 고블린을 몰래 지켜봤다. “크아아아아!” 거대 고블린은 꽃집이 부서지지 않아 분노하고 있었다. ‘어?’ 마침 바람이 주민성의 뒤편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이것은 기회. ‘미세먼지 아주 조금.’ 거대 고블린의 사각에서 은밀하게 미세먼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허! 쿠헉! 쿠허헉!” 미세먼지는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단지 동작을 제지할 수 없을 뿐. 거대 고블린은 원흉인 주민성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기침했다. ‘그래도 놈이 멍청해서 다행이다. 저럴 땐 입부터 닫아야 하는데.’ “쿠호오오!” 후웅! 쾅! [꽃집이 크게 손상됩니다.] 놈의 몽둥이질이 급격하게 거세졌다. 심지어 풍압으로 미세먼지가 주민성에게도 닿을 정도. “콜록!” 여태 겪어 보지 못한 농도의 미세먼지! 주민성은 급하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며 거대 고블린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들키지 않았다.’ 미세먼지에 정신이 없는지 거대 고블린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무기가 다시 한번 꽃집을 강타했다. 쾅! [꽃집이 크게 손상됩니다.] ‘조금만 더 동작이 커지면……!’ 아직 놈은 무기를 한 손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저 무기를 양손으로 쥘 때가 주민성이 공격할 찬스! 주민성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텐트 천을 입과 코에 덮었다. “후욱. 후욱.” 그간 겪은 터무니없는 시련들 덕분인지 주민성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때. “크라아아아아!” ‘왔다.’ 데빌도그 무리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곧 최선아와 콩이가 도착한다는 뜻! 다행히 이성을 잃은 거대 고블린은 눈치 채지 못한 채 꽃집을 두들기고 있었다. 쿠광! [꽃집이 매우 크게 손상됩니다.] ‘곧!’ 주민성은 빠르게 최선아와 콩이를 대피시킬 텐트를 사각지대에 설치했다. 대충 몸만 들어갈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은 ‘꽃집 손상’ 메시지가 두 번 떠오를 시간 만에 완성된다. 그리고 주민성이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왔다. 거대 고블린이 무기를 양손으로 쥔 것이다. “크륵! 크칵! 크카칵!” “콜록! 완성이다! 이 자식아!” “크륵?” 미세먼지를 잔뜩 마셨는지 거대 고블린은 이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괴성을 지르지 않았다. 거대 고블린의 시선이 주민성에게 닿음과 동시에. 쾅! 콰쾅! 쿠쾅! 건물 잔해가 거대 고블린을 연속해서 강타했다. 충돌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쾅! 쾅! “선아 씨이! 콜록! 콩아아!” 주민성은 호흡기를 텐트 천으로 보호한 채 목이 터져라 일행을 불렀다. 넘치는 건물 잔해는 이제 꽃집까지 강타하고 있었다. [꽃집이 크게 손상됩니다.] [꽃집이 크게 손상됩니다.] [꽃집이 반파 직전입니다.] “헉.” 반파 메시지를 본 주민성이 재빠르게 공격을 멈췄다. 확실히 소란은 크게 일으켰다. 이젠 최선아와 콩이가 눈치 채길 바랄 뿐! 주민성은 다시 거대 고블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크럭! 크륵!” 거대 고블린은 확실한 타격을 입은 모양. ‘됐다!’ 주민성은 마무리를 위해 거대 고블린에게 접근했다. 잔해 틈바구니에서 당황한 거대 고블린의 눈이 보였다. ‘순간이동은 연속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잔해에 깔린 거대 고블린은 오로지 주민성만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있었다. “이제 공격권은 나한테 있는 거네?” 씨익. 이제 거대 고블린에겐 저항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방에 흩날리던 미세먼지마저도 순식간에 인벤토리에 수납됐다. 비록 눈물과 흙 범벅이 된 얼굴이었지만 주민성의 표정은 상쾌하기 짝이 없었다. “고생이나 시키고 말이야.” 주민성은 거대 고블린에게 호기롭게 손을 내밀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라도 내려간 듯한 상쾌한 표정으로. “미세먼지 방출.” 쏴아아아! 농축된 미세먼지가 거대 고블린 코앞에서 쏟아졌다. “크레윽!” 기관지는 고블린에게도 있다. 심지어 이것은 주민성의 의사가 반영된, 농축된 미세먼지. 거대 고블린을 확실하게 제압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캬오오옥! 캬히!” 놈은 생전 듣지 못한 괴성을 지르며 미세먼지를 만끽했다. 미세먼지는 고함을 지르는 놈의 기관지까지 파고들었다. “끄륵! 끄르륵!” 미세먼지에 놈의 기관지가 완전히 잠식되면서 괴성이 멎었다. 하지만 주민성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엔 또 다른 블랙홀이 떠 있었다. “저기 들어가야 순간이동을 하는구나?” 섬뜩한 상황이었다. 조금이라도 공격 타이밍이 어긋났다면 죽는 것은 주민성이 되었을 것이다. 우우웅! ‘그런데 저 블랙홀은 대체 뭘까…….’ 주민성은 블랙홀에 대해 궁금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었으니까. ‘이놈은 왜 자기 블랙홀에 들어갈 수 있는 거지?’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리고 눈앞의 블랙홀은 거대 고블린이 죽으면 사라질 확률이 높다. “에휴.” 주민성의 손길이 멈추고, 인벤토리는 거대 고블린에게 쏟아졌던 미세먼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르그?” 주민성의 기행에 거대 고블린 또한 놀란 눈치. 실컷 싸우다가 확실한 승기를 잡았음에도, 자기 멋대로 살려 주는 인간은 처음일 것이다. “움직임은 확실히 봉쇄했으니 문제없겠지.” 이 거대 고블린은 어디서 왔고, 왜 자신을 노렸는지. 이것이 알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른 채 노려질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주민성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거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 쫓아오지도 못하겠지만.” “크르그!” 주민성은 건물 잔해를 발판 삼아 잔해 더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거대 고블린의 블랙홀에 뛰어들었다. “흐읍!” 뛰어듦과 동시에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잊혀진 징검문에 접촉합니다.] [건물주 권한이 발동됩니다.] [잊혀진 징검문을 이용합니다.] [이용료는 150만 원입니다.] [24시간 이내에 이용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어?” 황당한 메시지와 함께 거대 고블린의 블랙홀이 사용된 것. “몬스터가 무슨 원화를 청구해?”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주민성이 이동한 장소는 멀리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너져 내렸던 학원 건물이었다. “여기가 도망치려던 곳?” 이 장소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주민성은 알 수 없었다. “고작 이 거리에 150만 원이라고?” 터무니없는 청구액에 황당해하려던 찰나,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블린 리더 크룩스가 거래를 요청합니다.] [이용료 150만 원 대신 자신의 생존을 요구합니다.] “……참나.” 몬스터와의 소통 수단까지 생겼다. “가뜩이나 황당한데, 목숨값을 150만원으로 퉁치겠다고?” 주민성은 바보가 아니었다. 적어도 거대 고블린에게서 나오는 마석은 상급 이상일 것이 확실했으니까. 심지어 순간이동까지 해 대는 보스급이다. 제압에 성공한다면 유물까지 노려 볼 수 있었다. “거절.” [크룩스의 요구 사항이 거절되었습니다.] [징검문 이용료는 그대로 150만 원입니다.] 여태 싸웠던 몬스터가 소통을 해 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징검문보다 지금의 상황이 더욱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시금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블린 리더 크룩스가 거래를 요청합니다.] [이용료 150만 원 대신 자신의 보호를 요구합니다.] “음?” 내용이 조금 바뀌었다. 생존이 아닌 보호를 요구해 왔다. [크룩스가 자신의 추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추가 정보료는 200만 원입니다.] [24시간 이내에 정보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미친?” 메시지는 언제나 일방적이었다. 일단 당하면 돈을 내야 하는 규칙만큼은 주민성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걸 계속 당해 줘야 하는 건가?’ 정보료를 강제로 청구하는 거대 고블린이 괘씸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더욱 샘솟았다. 거대 고블린은 주민성처럼 메시지 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더욱 자세히. ‘일단 정보료까진 봐주지.’ 주민성은 묵묵히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고블린 리더 크룩스는 인간에게 세뇌당했습니다.] [크룩스는 강제로 인간의 명령을 듣고 있었습니다.] [크룩스는 건물주 덕분에 세뇌가 풀려 기뻐합니다.] [크룩스는 자신을 세뇌한 인간에게 복수를 원합니다.] “허.” 200만 원의 정보료치곤 꽤나 단편적인 정보였다. 하지만 이 정보만으로도 주민성은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 ‘세뇌 능력자?’ 이는 주민성도 체험해 본 적 있었다. 계약서를 반강제로 쓰게 만든 능력자가 있었으니까. ‘설마…….’ 심증뿐이었지만 거대 고블린을 세뇌한 능력자와 협회 간부가 동일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정신 조작계 능력자는 절대 흔하지 않다. 오히려 국가 기밀 수준으로 대우받을 터. ‘그 능력자가 이곳에?’ 주민성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시야에 보이는 인간은 단 한 명뿐. 최선아였다. “이런. 하필 지금.” 멀리서 최선아가 소리쳐 왔다. “민성 씨! 어디세요!” “컹!” 콩이와 최선아가 몬스터 웨이브를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