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능력자 (1)2021.12.13.
콩이 위로 조심스레 올라탄 주민성은 건물 보수를 재개했다. “읏차!” “크르르…….” 다행히 손이 천장에 닿는다. ‘좋아.’ 마석 가루와 마석을 적당히 모아 건물 보수를 발동했다. 결과는 성공. [꽃집이 큰 폭으로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상] [보수의 진행도: 96%] “와. 역시 현질은 다르구만.” “컹?” 대충 어림잡아도 10만 원어치의 마석이 소모됐다. 효과는 좋을 수밖에 없었다. 미세먼지와 물을 사용한 흙수저식 보수와 달리 마석을 사용한 보수는 상당히 빠르고 간결한데 완성도까지 높았다. ‘이제 거의 끝났다.’ 주민성은 이제 마지막 남은 틈을 메꾸기 위해 다음 명령을 내렸다. “콩아. 저쪽으로 가자. 이번이 마지막이야.” “컹!” 마지막이라는 말 때문인지 이번에는 콩이가 아무런 불만 없이 걸음을 옮겼다. “영차.” 콩이의 넓은 등에 올라선 주민성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편리하게 보수를 마무리했다. [꽃집이 큰 폭으로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상] [보수의 진행도: 100%] [건물의 내부 보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건물의 부가 효과가 발동됩니다.] [건물 내부에서 식물이 자랍니다.] [건물 내부에서 식물이 자라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만세!” “컹!” 놀랍게도 메시지는 주민성의 기대에 부응했다. “식물이 자란다! 만능 넝쿨! 자동 수비 건물!” “컹! 컹!” 설레는 마음으로 주민성은 천천히 건물의 변화를 지켜봤다. 그리고 10분이 경과했다. “오오…….” “크르르…….” 주민성이 메꿔 넣었던 미세먼지들 사이에서 식물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대박.” “컹.” 그리고 잠시 후. 꽃이 피어났다. “오오오…….” “크르르르…….” 문제는 그게 끝이었다. [꽃집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건물에서 향기가 납니다.] [건물의 이용료가 매우 크게 상승합니다.] “이게 끝?” “컹?” 이용료가 크게 상승한 건 분명 좋은 소식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게이트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게다가 일반인들을 이 건물에서 살게 한다면 주민성은 곧장 유해 능력자로 지정되고 범죄자 취급을 받을 게 분명했다. 꽃집엔 바라던 초대형 넝쿨은커녕 건물 내부엔 아기자기하게 피어난 꽃들로 가득했다. “괴물 꽃이 아니라니. 꽃아, 움직여 봐.” 아쉬운 마음에 꽃들을 향해 명령을 내려 봤지만, 꽃은 그저 꽃이었다. “이용료 청구.” [대상이 없습니다.] 주민성은 그제야 헛된 바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아…….” “컹?” “네가 최고다, 콩아.” “컹!” 결국 주민성의 파트너는 콩이뿐이었다. 아마 혼자서 지금의 적막한 게이트를 탐험했다면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감이 커졌을 게 분명했다.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주민성은 결국 인벤토리에서 마석 두 개를 꺼내 콩이에게 넘겼다. 와그작! 기분 좋게 콩이가 마석을 씹어 먹는 사이,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텐트를 꺼내 설치했다. 이것이야말로 보스전을 대비한 핵심 전략이었다. ‘여차하면 텐트에 내구력 강화를 걸고 꽃집을 폭발시키면 되니까.’ 건물 폭파는 확실한 파괴력이 보장된 능력이었다. 거기다 미세먼지까지 같이 살포한다면 금상첨화. ‘부가 효과 중엔 공기 순환까지 있었으니 미세먼지 효과도 훨씬 좋겠지.’ 털썩. 텐트에 몸을 누인 주민성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후. 향기는 좋네.” 은은한 꽃향기가 텐트 안까지 스며든다. “콩아. 그거 다 먹으면 알아서 놀아. 괜히 괴물들은 끌고 오지 말고.” “컹!” 마석을 다 먹은 콩이는 꽃집을 나와 어딘가로 향했고 주민성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하급 건물에 너무 큰 기대였나 보다. 그래도 쉼터에 이런 향기는 있어야 사람 살 맛 나지.’ 꽃향기는 주민성에게 기분 좋은 안정감을 선사했다. 실제로 집에서 키워보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었다. ‘돌아갈 때 꽃이나 좀 챙겨서 가야겠다.’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생각보다 크게 피로해진 상태였는지 금방 잠에 빠졌다. “쿨…….” 툭.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보스라기엔 상당히 미약한 인기척이었다. ‘음. 언제 잠들었지. 옆에는 콩이인가.’ 인기척에 작게 눈을 뜬 주민성은 벌써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밤이라니.’ “으음…….” “히익!” 주민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콩이는 절대 ‘으음’하면서 울지 않는다. 그리고 방금 들었던 목소리는 사람에 가까웠으며, 주민성은 ‘히익’이라고 외친 사람이었다. “콩아! 이리 와!” “컹!” 다행히 콩이가 빠르게 주민성 곁으로 달려왔다. 인벤토리에서 다급하게 손전등을 꺼낸 주민성은 옆에서 난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사람?” 놀랍게도 전등에 비친 것은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여자. 반사적으로 인벤토리를 근처에 띄운 주민성은 위험해지면 언제든 잔해를 떨어뜨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툭, 툭.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여자를 깨웠다. “으윽…….” 신음성과 함께 여자가 눈을 떴다. “누구…… 윽!” 부상을 입었는지 고통 어린 목소리를 낸 여자는 눈부신 전등 빛에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할 말인데요, 누구십니까. 여긴 제 집인데요.” 게이트에 집이 있다는 황당한 발언이었지만 지금의 꽃집 소유권은 엄연히 주민성에게 있었다. “기절해 있었어요. 저기…… 눈부신데 그거 좀 치워 주세요…….” 전등이 여자의 얼굴을 정통으로 비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주민성은 급히 전등을 틀어 방을 넓게 비췄다. “어……. 음. 죄송합니다. 그보다 그쪽은 누구세요.” 며칠째 본 사람이라곤 적대적인 사람들뿐, 제법 공손한 태도에 주민성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경계는 절대 놓지 않았다. 이곳은 게이트였고 게이트에 있는 사람은 전원이 능력자였다. 이 여자도 마찬가지. “으윽!” 몸을 일으키려던 여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다시 내뱉었다. “그냥 누워서 말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적대 의사는 없으니 경계하진 마세요.” “얘기부터 들어 보고요.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민성은 협회를 의심하고 있었다. “여기 정찰 의뢰가 있어서 왔는데요……. 폭발이 났다고 해서요.” “폭발이요? ……네.” 분명 폭발은 주민성이 일으킨 건물 폭발이리라. ‘경비대가 의뢰했나? 직접 움직이기 귀찮아서? 아니면 협회?’ 주민성은 의심을 놓지 않고 여자의 말을 경청했다. “현장 근처에 사람 흔적을 발견해서 쫓아왔어요. 아마 그쪽이겠죠.” “무슨 흔적이요?” “땅이 짓이겨진 흔적이요…….” “아…….” 발자국 같은 은밀한 흔적이 아니었다. 신나게 건물 잔해를 떨궈 댄 흔적이었다. ‘다음엔 뒤처리 방안도 생각해야겠군.’ 블랙홀은 여전히 여자의 머리를 조준하며 둥실 떠올라 있었고, 콩이는 으르렁대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여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저 F급이에요! 저 구해 주신 거 정말 맞죠?” 주민성은 건물 안이 어두워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했지만, 경계는 그대로 유지했다. ‘구해 줬다니? 나는 잠만 잤을 뿐인데.’ 주민성은 고개를 돌려 콩이를 바라봤다. ‘또 콩이인가.’ 돌발행동 하면 떠오르는 게 콩이 말곤 없었으니까. 한숨을 내뱉은 주민성은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그쪽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짐작 가는 바는 있지만 제가 구한 것도 아니고요.” “예?” “거짓말 안 합니다.” 당황한 표정의 여자. 그리고 이내 납득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요. 부상만 회복하고 조용히 돌아갈게요.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이라서요.” “흐음.”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상대를 믿을 수 없을 뿐.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린 주민성은 나직하게 말했다. “이용료 청구.” “네?” [대상에게 이용료를 청구했습니다.] [대상이 이용료를 납부할 확률이 존재합니다.] [이용료는 10만 원입니다.] ‘오. 한 번 이용에 10만 원인가?’ “저기……. 이거 무슨 능력이에요? 무슨 메시지가 떴는데? 납부 기한? 으잉?” 당황한 여자가 주민성에게 되물었다. ‘사람한테 능력을 쓰면 메시지가 보이는 건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쳐둔 보험이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냈다. 당황하긴 주민성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공격 의사를 없애려는 의도였으나 이용료 청구는 자신이 생각한 방향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젠장. 믿을 수 없는 건 여전한데.’ 각오를 마친 주민성이 말했다. “……비밀로 해 주시지 않으면 공격할 수밖에…….” “비밀요? 당연한 거잖아요! 알았다고요! 지켜요!” 여자가 당황하며 소리쳤고, 뻘쭘해진 주민성은 인벤토리를 회수했다. 다소 불편한 신뢰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능력은 발동됐는데…… 이거 뒤처리가 문제네.’ 얘기를 끊었던 건 주민성 자신. 정보는 아직 부족한 상황. ‘못해도 저 여자의 정체는 알아야겠지. 평범하게 의뢰를 받아서 올 수도 있고.’ 털썩. 결국 주민성은 텐트에 다시 앉아 정보를 얻기로 했다. ‘사람 상대로 이용료 청구를 쓴 건 처음이다. 좋은 참고 자료가 되겠지.’ 자연스럽게 대화 분위기가 형성됐다. “다시 말하지만, 제 능력에 대해선 비밀입니다. 이건 중요해요.” “알았어요. 저 F급 맞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확실히 F급 능력자 특유의 주눅 든 목소리가 느껴졌다. 성질 나쁜 S급 능력자는 있어도 성질 나쁜 F급 능력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여기 어떻게 오셨는지 말씀하세요. 다치신 거 같은데 누워서 말해도 됩니다.” “네. 어디까지 말했었죠?” “……폭발 현장 근처에 있던 흔적을 찾아서 쫓아왔다고요.” 이 업계는 능력을 반절 이상 숨기는 거야말로 장수의 비결이다. 그런 기본조차 간과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 주민성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네! 그랬었죠! 흔적을 쫓다가 폐허 도시에 도착했어요. 좌표상으론 안산이네요.” “안산이요?” 종일 걸으면서 사냥만 했으니 거리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을 뿐. 실제론 꽤 멀리까지 온 것이다. 여자가 회상하듯 말을 이었다. “네. 안산요. 저도 이렇게 멀리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의뢰 안 받는 건데…….” 여자는 정말 의뢰만 받은 F급 능력자인 모양. “하여튼 도시에 진입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모래폭풍이 크게 일어났어요. 전 당연히 진입을 포기하고 도망쳤죠.” 여자는 주민성이 일으킨 미세먼지 폭풍에 휘말린 모양이었다. “계속 말하세요.” “당황해서 모래폭풍에서 도망치다가 능력을 과하게 써서 넘어졌어요. 근데 하필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기절했죠.” “……네?” “여기까지예요.” “…….” 여자의 설명은 더욱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며칠 전까지 일반인이었던 주민성은 상식 역시 일반인이었다. ‘대체 뭔 능력자길래 능력을 과하게 쓰면 넘어져?’ 주민성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걸 눈치 챈 여자는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저 가속계 능력자거든요. 정찰 의뢰는 가속계 능력자가 받기 유리해요.” “아하.” 그제야 납득한 주민성은 생각을 정리했다. ‘폭발 시점과 추적 시점을 따지면 확실히……. 하지만.’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여자에게 질문했다. “저기요. 의뢰는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냥 파티 맺고 사냥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요.” 잠시간의 정적. 여자가 체념하며 말했다. “저 F급이라고 했잖아요……. 파티는커녕 이런 의뢰밖에 못 받아요. 그래도 가속계라 F급 중에선 나름…….” “아.” 여자가 쭈뼛거리며 말을 걸었다. “고등급 능력자시죠?” “예?” 여자는 주민성의 얼굴을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모양이다. “저 모르세요?” “얼굴이 안 보여서요. 유명하신가 봐요? 경비 쪽에서 딱히 주의사항은 안 말해 주던데. 시체 위치만 찾으라고 하고…….” “하.” 주민성은 그제야 의뢰의 내용을 확신했다. ‘경비 개자식들. 나를 아예 죽은 사람 취급했네.’ 게이트 입장 당시 F급 경비원의 도움 같지 않은 도움을 받긴 했지만, 퇴장 때는 다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심지어 한 경비원은 주민성을 때리려고까지 했다. ‘싸우는 건 안 되는데.’ 상대가 D급인 이상,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를 함부로 실천에 옮기는 건 별개의 일. 능력자가 협회와 척을 지고도 평범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밤중에 조용히 빠져나가는 건 어떨까.’ 게이트에서 능력자가 죽고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는 사례는 꽤 흔하다. 거기다 죽은 능력자가 F급 이하라면 서류에 줄만 갈 뿐, 큰 관심조차 받지 않는다. ‘기회는 제대로 누려야겠군. 정보도 이 정도면…….’ 여자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아픈 머리를 조심스레 문지르고 있었다. “……일단 쉬세요.” “아, 네…….” “여기 있다 보면 회복될 겁니다.” “어……. 그러고 보니.” 여자의 시선이 콩이에게 향했다. “크르르…….” “히익!” 콩이는 여전히 침묵 상태. ‘얘는 왜 사람을 물어 온 걸까? 사람 상대론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아서 그런가?’ 여자가 콩이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이거 데빌도그…….” “얘는 콩인데요.” 콩이는 왠지 심통이 난 채로 침을 흘렸다. “얘 설마…….” “네?” 주민성은 조심스레 추측을 마친 후 여자에게 마석 한 개를 내밀었다. “마석은 왜요?” “이거, 쟤한테 줘 보세요.” “……네.” 여자가 머뭇거리며 콩이에게 마석을 내밀었다. “꺅!” 와그작! “너 설마 마석 먹으려고…….” “컹!” 이번 돌발행동의 원인이 밝혀졌다. 콩이에게 사람은 마석을 먹여 주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