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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4) (11/250)

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4)2021.12.12.

건물 잔해를 보수할 자리에 채워 넣기만 해도 보수가 성립된다. 그 말은 즉, 미세먼지를 넣어도 보수가 된다는 소리. “미세먼지라면 미세한 타격을 입지 않겠지.” 실없는 소리를 뱉은 주민성은 곧장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부서진 건물 틈 사이로 인벤토리를 조준한 후 미세먼지를 천천히 방출하면 끝이었다. [꽃집이 미세하게 보수됩니다.] “콜록! 콜록!” 아쉽게도 반절의 성공이었다. 미세먼지는 건물 틈새로 들어가긴 했지만, 반절은 주변에 흩날리는 바람에 주민성의 호흡기가 미세한 타격을 입었다. “아오! 쉽게 가고 싶다.” 주민성은 지금의 상황을 다시 한번 분석했다. ‘미세먼지가 너무 가벼워. 시멘트가 있었다면 깔끔한데 말이지.’ 금이 간 벽면을 노려보던 주민성은 잇몸으로라도 보수를 끝낼 생각이었다. ‘이것도 능력이다. 어떻게든 나의 전력으로 써먹어야 해.’ 목숨이 걸린 문젠데 미세먼지가 대수랴. 보수만 끝난다면 하급 건물의 부가 효과를 받을 수 있다. [꽃집이 미세하게 보수됩니다.] [꽃집이 미세하게 보수됩니다.] [꽃집이 보수됩니다.] [꽃집이 미세하게 보수됩니다.] [꽃집이 보수됩니다.] ……. 건물 보수를 반복하자 메시지는 긍정적으로 변해 갔다. “콜록! 이대로만 계속 가자!” 한참을 건물 보수에 열중하는 사이, 콩이는 꽃집을 용케 찾아와 경비를 보고 있었다. “크르…….” “오, 제법인데? 경비도 설 줄 알고.” 문득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주민성의 의심을 뒷받침했다. ‘건물이 폭발했을 때, 경비대는 반응하지 않았다.’ 게이트 내부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은 기본적으로 경비대가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게 원칙이었다. ‘확실히 뭔가 있군. 대비를 더 빨리 해야겠어.’ 이를 악문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1.5리터 물통을 꺼냈다. ‘두 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껴 마시면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 인간의 생존에 있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이었다. 식사하지 않으면 일주일 내외로 사망,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사망한다는 분석 결과도 있었다. ‘부가 효과만 확인하자.’ 쪼르륵. 미세먼지가 파고든 벽면의 틈새로 물을 조금씩 흘려 넣자 다행히 메시지가 떠올랐다. [꽃집이 대폭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중하] “오케이.” 작전은 성공이었다. ‘수리에 집중하자. 천장은 무리지만 벽면과 바닥이라면 어떻게든 고칠 수 있어.’ 쪼륵. [꽃집이 대폭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중] 반복되는 보수 덕에 점점 노하우가 쌓였다. 기어이 물과 미세먼지를 동시에 넣는 묘기까지 구사했다. [꽃집이 상당 수준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상] “오.” 보수 효율이 점점 높아지면서 물의 사용량도 줄었다. 덕분에 물은 아직 반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아이고, 허리야.” 메시지에 기분이 좋아진 주민성은 잠시 굽혔던 허리를 펴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근데 콩이는 뭐 하지. 아직도 잠잠하네.’ 주민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얘가 또 어딜 간 거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있었지만 콩이는 예외였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온갖 사고를 치는 녀석이라 주민성은 콩이를 찾으러 잠시 밖으로 나왔다. “콩아~.” 콩아~. 콩아~. 적막한 폐허 도시에서 주민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컹!” 저 멀리서 빠르게 콩이가 달려왔다. ‘달리기가 더 빨라진 것 같네.’ 콩이의 달리는 속도는 다른 데빌도그와 비교해도 너무나 압도적인 속력이었다. “컹! 컹!” “뭐 하고 있었냐.” “컹!” 콩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콩이는 항상 흔적을 남긴다.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수많은 마석 조각이 보였다. 입가 주변에 빳빳하게 솟아난 털에도 잔뜩 붙어 있는 마석 조각들은 콩이가 한 행동들을 알려 줬다. 용케 회수하지 못한 마석을 찾아 먹은 것이다. “하……. 저게 다 얼마야…….” “컹!” 그렇다고 마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애매하다. 콩이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까. 마석을 먹음으로써 강해진다는 가설이 꽤 유력한 상황. ‘이건 투자다. 어쩔 수 없는 투자야…….’ 주민성은 결국 콩이의 식탐을 통제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 보스가 등장할지 모르는 마당에 콩이의 성장을 억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그래……. 먹어라. 맘껏 먹어.” “컹!” 새로 얻게 될 하급 건물의 부가 효과는 주민성을 계속해서 고양시켰다. 빠르게 멀어지는 콩이를 확인한 주민성은 다시 보수를 재개했다. “좋아. 방해꾼은 없다.” 혹여나 시체를 노리는 고블린들이 난입하더라도 건물 잔해를 통해 얼마든지 사냥할 수 있다. 보수 작업을 반복한 결과, 잔해의 실내 컨트롤까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진짜 미세먼지가 대단하긴 하네. 몬스터가 기다려질 줄이야.” 일부러 큰 목소리로 콩이를 불렀는데도 몬스터가 난입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주변에 몬스터가 없다는 뜻이었다. “부수입은 기대할 수 없겠군. 일이나 하자.” 주민성은 다시 집중하며 보수에 몰두했다. [꽃집이 상당 수준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상] [보수 진행도: 50%] 새로운 메시지. 그것은 반절의 보수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물 잔량이 좀 애매한데…….’ 물통의 물은 이제 3분의 1 정도 남은 상태. 마지막 물통까지 사용해야 건물의 보수가 끝나는 견적이었다. “어쩌지.” 지금 닥친 문제는 제법 고민이 필요했다. 물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항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보수가 끝나면 물 반 통 정도 남으려나.’ 물 반 통이면 아끼고 아껴야 2, 3일 정도 버틸 수 있다. 평소처럼 사용한다면 하루 안에 전부 없어지는 양. 물을 전부 마시면 그대로 끝이기 때문에 더욱 난감해졌다. ‘부가 효과는 진행도 100%가 되어야 나올 것 같은데, 견적이 너무 빠듯하네. 그렇다고 지금 멈추긴 아깝고.’ 하급 건물의 부가 효과를 확인하고 내일 곧장 도시로 복귀하느냐. 건물의 보수를 멈추고 2, 3일간 몬스터를 사냥하며 보스의 존재를 확인하느냐. 선택지는 이 정도였다. 다행히 선택지는 둘 다 나쁠 게 전혀 없는 내용뿐. 주민성은 잠시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부가 효과만 알고 복귀해도 성공이다. 오히려 다음 게이트 원정에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어. 이대로 강행하자.’ 결국, 주민성의 선택은 전자였다. ‘꽃집이니까 괴물 넝쿨이 나올지도 몰라. 그렇다면 완벽한 수비 건물이 된다.’ 희망 사항일 뿐이었지만 주민성은 이미 콩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자신이 괴물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희박하겠지만 생각대로 괴물 넝쿨이 나올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최곤데.’ 이미 반쯤은 자신의 희망이 이뤄질 거라 소망했다. 괴물 넝쿨에 대한 상상은 주민성을 계속해서 설레게 했다. ‘알아서 싸우는 넝쿨 건물. 정말 그런 게 나온다면 정말 건물주답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침입하는 몬스터를 알아서 퇴치하는 건물. 그리고 가끔씩 와서 마석을 수거하는 건물주. 이것은 주민성의 꿈이 되었다. “후후후후…….” 주민성은 어느새 노래까지 부르면서 보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꽃집에는 식물이~.” 쪼르륵! 푹! [꽃집이 상당 수준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상] [보수 진행도: 52%] 쪼르륵! 푹! [꽃집이 대폭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중] [보수 진행도: 55%] “식물에선 돈다발이~.” 쪼륵. 푹. [꽃집이 제법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하] [보수 진행도: 61%] “돈다발은 너무 좋아요~.” 높아 가는 보수 진행도는 주민성의 흥을 계속해서 돋우었다. 파티로서의 원정이었다면 질겁했을 광경이었지만 단체 원정 경험이 없는 주민성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쪼르륵. [꽃집이 제법 보수됩니다.] [보수 수준: 하] [보수의 진행도: 88%] 노동요를 부르며 보수에 몰입한 주민성은 어느새 보수 진행도가 88%에 도달한 것을 확인했다. “후. 즐거웠다. 남은 건 천장인가.” 금이 간 천장을 바라본 주민성은 상당히 난감했다. 지구에는 중력이 있었기에 물을 뿌리기도, 미세먼지를 심기도 난감한 상황. ‘사다리가 있어도 어렵겠는데.’ 게다가 천장에는 틈이 제법 벌어져 있어 제법 많은 미세먼지와 물을 사용해야 했다. “어쩌지.” 콩이를 타고 올라간다면 천장에 손은 닿겠지만 문제는 물이었다. 보수에 성공하더라도 흙탕물이 바닥을 향해 뚝뚝 떨어져 잔해를 박아 넣을 때와 마찬가지로 건물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심지어 보수가 무효화 될지도 몰랐다. “마석이 들어가기 괜찮은 치수긴 한데…….” 주민성은 결국 마음속에 담아 뒀던 최후의 방법을 떠올렸다. ‘이것도 다 투자다.’ 결국, 천장은 마석으로 메꾸기로 정해졌다. “불안정한 잔해보단 콩이를 타고 올라가는 게 낫겠지.” 결심을 끝낸 주민성은 한차례 기지개를 켜곤 건물을 나섰다. “컹!” “아! 깜짝이야!” 콩이는 건물 입구에서 주민성이 하는 행동을 구경하고 있었다. “왔으면 말을 해야지!” “컹!” “어쨌든 잘 왔다. 콩아. 이 건물 안에선 마석 먹는 거 금지야. 이건 명령이다.” “크르르…….” 주민성이 콩이에게 하는 명령은 갑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지켜진다. 때문에 마석으로 보수를 완료해도 콩이가 일으키는 변수는 없다. “이 건물 안에서 난동 부리는 것도 금지. 몬스터가 오면 밖에서 싸우든가 저기 학원 건물로 유인해.” “컹…….” 혹시 일어날 사고에 대한 대비까지 전부 마쳤다.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군.’ 워낙 콩이에게 당한 게 많았던 주민성은 이렇게 여러 가지 명령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그보다 대체 마석을 얼마나 먹은 거야…….” 콩이의 입가엔 더욱 많은 마석 조각이 붙어 있었다. “컹!” ‘저것도 보수 재료로 쓰자.’ 인벤토리가 콩이 입가에 붙어 있는 마석을 전부 빨아들였다. 이 만능 블랙홀은 물질을 지정해서 회수하는 기능도 있었다.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 조각이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 조각이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 조각이 수납됩니다.] ……. ‘이것도 팔리려나?’ 주민성은 마석 조각의 정산을 상상했다. 그리고 정산원이 경멸의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떠올렸다. ‘중급도 아니고 최하급 마석 조각은 좀…….’ 이는 10원짜리 동전 수백 개를 100원짜리로 바꿔 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게이트의 포식자겠지만 도시로 돌아가면 FFF급 능력자에 불과해진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자각한 주민성은 마석 조각들을 전부 보수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좋게 생각하자. 침이 잔뜩 묻어서 오히려 점성도 있어서 좋네. 물도 아낄 수 있고.’ “콩아, 저기로 가서 가만히 있어 봐. 올라타자.” “크르르…….” 불만이 있어 보이는 울음이었지만 어차피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미안. 보수 끝나면 마석 한 개 줄게.” “크르르르…….” 수백만 원어치의 마석을 먹어 댄 콩이에게 한 개의 마석 제안은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주민성은 콩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크르…….” 잠시 고민하던 콩이가 나직하게 짖어대곤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바닥에 쪼그려 누웠다. 마석 한 개의 협상이 성공한 것이다. “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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