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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3) (10/250)

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3)2021.12.11.

주민성은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창밖에선 미세먼지와 마석이 수납되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깨알 같은 건물주 등급 상승은 덤. “얼씨구야.” 인벤토리가 마석 청소기로 진화할 가능성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모처럼 신기한 능력에 감탄한 주민성은 창문을 살짝 열어 손가락을 내밀었다. 손끝에는 빨려간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미세먼지랑 마석만 골라서 당기는 건가.’ 메시지는 마석과 미세먼지의 수납만을 표기하고 있었다. “아름답군.” 실로 장관이었다. 이제 지키기만 하면 수납한 마석은 고스란히 현금이 된다. “크르르…….” 마찬가지로 창밖을 바라보던 콩이가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석을 의식한 모양. “음. 저건 모래들이다. 보랏빛 모래는 처음이지?” “컹!” 주민성은 마석을 모래로 교육하며 콩이를 세뇌했다. 이 데빌도그가 마석 대신 모래를 먹는다면 지갑 사정은 훨씬 좋아지리라. 이윽고 주변의 마석들이 전부 수납됐다. ‘멀리 있는 건 근처로 가서 챙겨야겠군.’ 아직 인벤토리의 사거리는 7미터. 주민성은 언젠가 손가락만 까딱이며 돈을 벌 나날을 꿈꾸며 건물 밖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어휴. 이걸 언제 다 챙긴담.” 죽은 몬스터들은 멀리 보이는 빌딩 사이에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미세먼지가 닿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문제는 콩이인가.’ 저 수많은 마석들이 콩이한테 포착된다면 반절은 빼앗길 게 분명한 상황. 주민성은 포상과 탐욕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그래도 조금만 줄까? 같이 목숨 걸고 싸웠는데?’ 골똘히 생각하던 주민성은 결국 자신의 의사를 입 밖으로 꺼냈다. “어림도 없지!” “컹?” 주민성의 물욕은 결국 양심을 철저히 짓밟았다. ‘콩이가 나 없다고 굶을 리가 있나. 게이트에 풀어 두면 알아서 챙겨 먹을 텐데.’ 실제로 콩이는 강하다. 지나쳤던 1층에만 수백에 가까운 데빌도그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 심장 부근이 뜯겨 있는 시체들이었다. 알아서 마석을 챙겨 먹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미 콩이는 일당백이니까.’ 혹여나 더 강한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똑똑한 콩이라면 알아서 도망칠 가능성이 크다. “콩아. 건물 주변 정리 좀 하자.” “컹?” “빨리.” 콩이에게 급조된 명령을 내린 주민성은 잽싸게 다른 건물들로 달려가 조심스레 마석을 회수했다. “좋구나. 좋아.” 마석이 수납된다는 기분 좋은 메시지가 주민성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헤실헤실 풀린 표정은 돈다발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자기보다 더 높은 등급의 F급 능력자도 지금처럼 출세하진 못했을 게 분명했다. “여기도 대충 끝났고. 이번엔 저쪽으로 가 볼까.” 짝! 주민성은 양 볼을 치며 다시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주변에 몬스터는 없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가 살아 있단 말이지.’ 압도적인 위력의 미세먼지 속에서도 멀쩡히 빠져나간 보스다. 놈의 전투력은 최소 콩이급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여태 주민성의 잡다한 능력들을 견뎌내는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던 보스랑 너무 다른데.’ 주민성이 TV를 통해 알고 있는 상식대로라면 게이트의 보스급과 만날 경우엔 레이드가 벌어지는 게 정상이었다. 즉, 보스는 후퇴를 모른다는 뜻이다. ‘겁만 주면서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고 불리해지니 후퇴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보스가 어느 정도 중상을 입게 되면 백이면 백, 가장 강한 타격을 입힌 능력자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번 같은 경우엔 주민성이 타겟이 되는 게 정상이었다. 혹여나 타겟의 대상이 달랐더라도 콩이나 인벤토리를 향해 미친 듯 뛰어 들어와야 했다. ‘지능이 남다르다.’ 미세먼지 한복판으로 보스를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면 주민성은 ‘건물 보호’를 통해 텐트를 보호하고 장기전으로 이끌어갈 계획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판단력,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물량 동원력.’ 물량은 또 어땠는가.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지휘하는데도 F급 게이트의 보스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F급은 아니었다. ‘하지만 뉴스에 이런 케이스는 보도된 적이 없었단 말이지.’ 뉴스는 사실만을 보도한다. 주민성이 세계 최약 능력자라고 알린 것도 사실이었고 FFF급으로 각성한 것 역시 사실이다. 아프지만 팩트인 것이다. ‘진실을 숨기고 겉으로만 드러난 사실을 보도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네.’ 모종의 능력이 개입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경험이 이를 뒷받침했다. 주민성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대체 왜 그때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은 거지?’ 지금도 의문이었다. 당시 고등급 능력자가 될 거라는 생각에 고양감에 빠진 건 사실이나, 계약서가 눈앞에 있으면 읽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설마.” 누군가의 능력이 개입했다면 말이 된다. 협회인은 전원 능력자로 구성되어 있고 계약 관련 실무자라면 분명 그 방면에서 유능한 인재가 배치되어 있을 터. ‘암시라도 걸렸나? 대체 언제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혼란한 심리가 그대로 반영되었는지 인벤토리 역시 불안정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주민성은 쿵쿵거리며 크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일단 진정하자. 아직 깊이 생각할 때가 아니야. 적어도 귀환하고 나서 생각해 보자.’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은 상태. 괜히 흥분해 인벤토리까지 다루지 못하게 된다면 맨몸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남들과 다른 이상한 능력이 생겼고, 남들과 다른 사건을 겪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주변 어딘가에 있을 보스 몬스터도 뭔가 다르다. 이 사실 하나로 주민성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반드시 사냥해 낸다. 만약 보스가 협회와 연관이 있다면…….’ “크르르…….” 주변 정리를 끝낸 모양인지 콩이가 나타났다. “그래. 수고했다.” “컹.” 이제 미세먼지 대부분이 가라앉고 주변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다루는 인간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다.’ 처음엔 유쾌하게 넘어갔던 문제였다. 시작부터 절망적이라 그저 위기를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기뻤었다. ‘뭔가 묘한 일들에 계속해서 휘말리고 있다. 유해 능력자 취급까지 나올지도.’ 유해 능력자. 처음부터 몬스터보다 인간을 상대로 위협적인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를 부르는 말이었다. 만약 그런 능력을 각성하게 되면 유해 능력자로 취급되며 협회의 감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해 능력자는. ‘사살된다.’ 최근 뉴스에 보도되었던 유해 능력자는 동남아에서 출현했었다. 등급은 SS급. 눈만 마주쳐도 사람이 녹아 버리는 능력이었다. 능력명은 비공개였지만 누가 봐도 압도적인 능력이었다. 등급만으로도 수많은 혜택이 보장되는 등급이었지만 그 능력은 조절조차 되지 않는 압도적인 능력이었다. SSS급 능력자들이 파견되기 전까지 협회 안에서만 수많은 인명 사고가 발생했고 결국 그녀는 현장에서 사살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만약 유해 능력자가 사살되지 않았다면? ‘협회에 회유당한 유해 능력자가 있다면?’ 주민성이 오늘 선보인 능력은 유해 능력자로 취급되기에 딱 좋은 능력이었다. 인류의 적인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부터, 불특정 다수를 동시에 죽일 수도 있는 미세먼지 살포 능력은 유해 능력 그 자체. ‘숨겨야 한다.’ 대한민국은 동남아처럼 능력자가 부족한 국가가 아니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엔 최상위 등급의 협회 소속 능력자들이 로테이션으로 대기 중이며 능력자 길드들도 즐비하다. 심지어 강력한 외국인 길드들도 구석구석 넓게 퍼져 있다. “젠장. 얼마나 복잡하게 얽힌 거지?” 보스에 대해 생각했을 뿐인데 사고의 방향은 끝없이 뻗어갔다. 의심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던 그때. “컹!” “콩아?” 갑자기 콩이가 저 멀리 뛰쳐나갔다. “컹!” “콩아! 어디가!” 또 돌발행동이었다. 콩이가 향한 곳은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빌딩 방향. 인벤토리가 흡입하지 못한 마석들이 즐비한 지역이었다. ‘설마 보스 몬스터?’ 주민성은 다급하게 콩이를 쫓아 한참을 달렸다. “헉! 헉!” 도착한 현장. 콩이는 어딘가를 향해 신나게 짖고 있었다. “컹! 컹!” “뭐지?” 콩이의 경계도 잠시. 주민성과 눈이 마주친 콩이는 다시 고개를 파묻고 마석을 먹어 대기 시작했다. “젠장.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주민성은 주변을 둘러보며 콩이 대신 경계를 한층 끌어올렸다. 주변 시체로 보아 100개 이상의 마석은 넘게 있었을 장소였다. “참나.” 주민성은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인기척을 감지하는 역할은 콩이 담당이다. 털썩. 어차피 적이 있었다면 콩이가 알아차렸을 터. 주민성은 허탈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가에선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이젠 알아서 정산까지 하네.” 콩이에게 꽤 많은 수입이 깎여 나갔지만 썩 밉지만은 않았다. 협회가 어쨌건 유해 능력자가 어쨌건, 이 게이트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아군은 콩이였으니까. “에휴. 맘껏 먹어라. 앞으로 목숨 걸 일도 많을 텐데.” “컹!” 아무리 생각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콩이를 통해 깨달았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세운다. 처맞기 전까지.” 상당히 잔인한 말이었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했다. 이 세상은 등급이 깡패니까. 결국, 더 센 놈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소리였다. “처맞기 전에 더 강해져야지.” 콩이가 신나게 마석을 먹는 동안 주민성은 능력이나 성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저 건물이라면 하급은 되겠지?” 기준은 최하급 건물보단 좋고 학원 건물보단 허름해야 할 것. 이 조건을 충족하는 건물은 건너편의 작은 꽃집이었다. “이 지역 파밍은 빠르게 끝내고 보스전이나 대비하자.” 이미 인벤토리 안에는 700개 이상의 마석이 수납되어 있는 상황. 오늘의 원정은 빠르게 마무리 짓는 게 옳은 판단이다. 주민성이 꽃집에 입장했다. [소유자가 없는 건물에 입장하였습니다.] [소유권을 주민성 님으로 변경합니다.] [보유 건물 목록에 꽃집(반파)이 추가됩니다.] [건물의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부가 능력이 발현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하급 건물 소유에 성공합니다.] [건물 보수 능력이 부여됩니다.] [건물이나 시설을 수리합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의 부가 능력 발동 제한이 낮아집니다.] [반파 상태가 보수 가능 상태로 변합니다.] “와.” 꽃집은 예상대로 하급 건물이 맞았다. 게다가 새로운 능력도 추가되었다. “저 보수가 시설을 고칠 때 쓰는 보수라는 용어가 맞겠지?” 반파 상태의 변화. 보수 가능으로 바뀐 저 항목은 곧 부가 능력 발현과도 연결이 되었다. 주민성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 “이 건물을 고쳐서 수비 거점으로 삼을까?” 소유권이 없는 학원 건물은 양날의 검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꽃집은 소유권이 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었다. “콩이 올 때까지 건물이나 고쳐 봐야지.” 건물 내부를 쓱 둘러보던 주민성은 자신 있게 외쳤다. “건물 보수!” [보수에 사용할 재료가 필요합니다.] “흠.” 괜히 부끄러움이 몰려온 주민성은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라고 해 봐야 미세먼지, 건물 잔해, 마석들이 대부분인데.’ 이미 건물에 진입하면서 인벤토리는 제한 거리 초과로 회수된 상태. 주민성은 가장 먼저 손으로 쥘 만한 잔해 조각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건물 보수!” 콱! 조그마한 건물 잔해가 금이 간 벽면 구석에 처박혔다. [꽃집이 미세하게 보수됩니다.] [꽃집이 미세한 타격을 입습니다.] “뭐 하자고 나랑.” 한숨을 내쉰 주민성은 지금의 능력을 활용하는 데 있어 건축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편법으로만 난관을 헤쳐 나온 주민성에게 건축 지식에 투자할 시간은 사치였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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