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2)2021.12.10.
“크라아아아아!” “후우우…….” 눈앞 열 걸음 남짓한 거리부터, 저 멀리 보이는 빌딩들 사이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데빌도그들이 더욱 주민성을 긴장시켰다. “이제 곧.” “컹! 컹!” 주인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콩이는 신나게 짖으며 주민성이 있는 건물로 달려오고 있었다. “콩아! 입구에서 버텨!” “컹!” 콩이가 건물에 들어감과 동시에 건물 잔해가 몬스터들을 향해 쏟아졌다. 콰광! 쾅! 쾅! “크라아아아!” 첫 번째 잔해 폭격은 성공적이었다. 예상대로 건물 잔해의 파괴력은 건물 높이와 중력의 콜라보레이션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강력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을 구성하는 재료들의 강도가 상승합니다.] “나이스!” 콰광! 쾅! 잔해의 2차 폭격이 이어졌다. “크라아아아!” 콩이를 바짝 쫓던 데빌도그들은 미처 요격하지 못해 건물 1층에선 콩이와 데빌도그들이 난전이 펼쳐졌다. 이 부분은 콩이에게 모든 걸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 이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주민성은 거대한 잔해들 사이로 파고드는 데빌도그들을 최대한 막아냈다. ‘잔해를 한 겹씩 번갈아 가며 회수해야겠군. 적어도 더 진입하진 못하겠지.’ 쿠궁! 쾅! “크라아!” 콰지직! 콰직! 소리의 종류는 매우 달랐지만, 흡사 오페라의 지휘자처럼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 가운데! 전체!’ 쾅쾅! 쾅! 양손을 동시에 뻗으며 허공을 젓던 주민성은 자신의 손짓 한 번에 잔뜩 뭉개지는 데빌도그들을 보며 크게 흥분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인벤토리의 제한 거리가 7미터로 늘어납니다.] 이번 등급 상승은 상당히 유용한 효과를 선사했다. “나이스!” 쾅! “크라악!” 사거리가 더욱 늘어난 덕분에 잔해를 향해 박치기를 해 대던 몬스터 무리까지 건물 잔해에 뭉개졌다. 생각만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벤토리는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너무나 좋은 능력이었다. ‘사냥에만 집중하자.’ 콰광! 쾅! 가장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잔해들이 회수되고 잠시 후 허공에서 다시 한번 잔해들이 쏟아져 내렸다. 콰과광! 쾅! “크라아악!” 압도적인 몰이사냥이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소유한 건물 내부에서 공기가 천천히 정화됩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데빌도그들을 상대로 어느새 10분여가 흘렀다. 그사이, 다섯 번의 등급 상승이 있었다. ‘그런데 저 머릿수는 줄지도 않네.’ 데빌도그는 겁이 없었다. 앞에 있던 놈이 뭉개지면 뒤에 있던 데빌도그들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전투는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다. 콰광! 잔해들의 충돌음 때문에 귀가 먹먹해졌다. 흡사 무아지경의 상태가 된 것이다. “컹!” 초반에 진입한 데빌도그들은 지금도 콩이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쿵! 어느새 건물 주변은 잔해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틈이 거의 없어졌다. 잠시 쉴 시간이 확보된 것이다. ‘팔만 뻗을 뿐인데 엄청 힘드네.’ 허공에 팔을 휘저을 뿐인데도 숨이 차오르는 황당한 상황에 주민성은 어이가 없었다. ‘내 몸뚱이가 이렇게 허접해졌을 줄이야.’ 체력은 당연했고 근력도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제법 상위권에 있을 게 분명했는데 지금의 몸은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물리 법칙까지 무시하는 몸뚱이라니.’ 쿠구구구……! 몬스터들의 연속된 몸통박치기에 잔해 한 덩이가 밀려 쓰러졌다. “어휴. 뭘 나눠 먹겠다고 이렇게 몰려온 건지.” “크라아아아아!” 아직도 데빌도그들은 저 멀리까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주민성은 다시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대체 콩이가 무슨 어그로를 끌었길래. 헉. 헉. 흐읍!” 쾅!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소유 중인 건물의 이용료가 소량 상승합니다.] 전투는 1시간이나 지속되었다. 잔해 사이로 뛰어드는 몬스터들 때문에 콩이 역시 쉬지도 못한 채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민성은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 “제발 그만! 헉! 헉! 등급 천천히 올려도! 허억! 괜찮으니까! 그만 와!” “크라악!” 몬스터는 중간이 없었다. 이제 등급이 몇 번 올라갔는지 세지도 못할 지경! 주민성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음에도 몬스터들이 줄지 않아 절망했다. 오히려 줄어드는 건 건물 잔해의 크기였다. 잔해들이 몬스터들과 충돌하며 마모가 일어난 탓이다. 잔해들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조준에 더욱 큰 집중력이 요구됐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리고 다시 이어진 잔해 폭격! 쾅! 쾅! “캥!” “응?” 처음으로 잔해에 맞고도 데빌도그가 죽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잔해가 마모되면서 관통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지 않은데.’ 쾅!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하급 건물까지 소유가 가능합니다.] “어! 진짜?” 익숙한 등급 상승 메시지였지만 내용만큼은 주민성이 너무도 바라던 것이었다. “하급 건물!” 너무나 반가운 메시지였다. 건물 소유 제한 등급 상승! 하지만 뒤이어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있는 학원 건물이 하급 건물이었다면 소유 메시지가 떠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건물은 가지지 못하네.” 주민성의 몸에는 텐트 천이 돌돌 말려 있었다. 체력 소모가 너무 커 어떻게든 부가 효과를 받으며 전투를 지속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혜택은 제대로 받았지만, 꼬락서니가 워낙 우스웠기 때문에 주민성은 내심 지금 있는 학원 건물이 가지고 싶었다. ‘근처의 건물이라도 소유했었으면 건물 폭발이라도 써먹었을 텐데. 그놈의 미세먼지가 문제…….’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어?” 결국, 의식의 흐름은 미세먼지에 도달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 “대박! 이거라면……!” 미세먼지는 지금도 계속해서 끝없이 수납 중이었다. 하늘도 돕는 모양인지 바람은 주민성의 뒤에서 불었다. “콩아! 잠깐 버텨 봐!” “컹!” 콩이에게 1층을 사수하도록 명령한 주민성은 빠르게 옥상에서 아래층을 향해 달렸다. 텐트 천을 몸에 둘둘 감은 채. 3층에 도착한 주민성은 대충 옥상에서의 위치와 비슷했던 교실에 들어갔다. 끼긱! 먼지가 잔뜩 쌓인 창문을 열어젖힌 주민성은 잔해 사이로 난입하는 데빌도그를 포착했다. ‘위치는 정확하다.’ 주민성이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블랙홀은 빠르게 1층 높이까지 내려가 언제든지 물건을 방출할 준비를 하며 일렁였다. 끼기긱. 다시 창문을 닫고 인벤토리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 주민성은 적막한 교실에서 장엄하게 외쳤다. “미세먼지 방출!” 인벤토리에 잔뜩 수납됐던 미세먼지가 쏟아졌다. 지금 부는 바람이 동남풍인지는 모르는 주민성이었지만, 지금 그의 활약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이나 주유에 맞먹는 업적임이 분명했다. 푸스스스스……. “캐갱! 캥!” 이 지역의 데빌도그들은 제법 미세먼지에 적응되었겠지만, 인벤토리에서 직접 뿜어지는 미세먼지는 농도부터가 달랐다. 데빌도그들은 거칠게 울었다. 기침까지 섞어 가며. “캐개갱! 케극!” ‘좋아. 천천히……. 천천히…….’ 푸스스스……. “캐캥! 캐캥! 커컹! 캐갱! 컹!” 콩이를 포함해 기침하는 데빌도그들이 점점 늘었다. ‘콩이는 버틸 수 있겠지. 이것은 전부 대업을 위한 포석!’ 상대의 옷을 벗기려면 세찬 바람이 아닌 뜨거운 태양으로 공략하라는 동화의 교훈까지 떠올랐다. ‘정말 좋은 동화야. 이렇게 공략하면 그만이었어.’ 미세먼지는 어느새 반경 50미터 부근까지 전부 집어삼켰고 거칠게 기침을 하던 데빌도그들은 이윽고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캐캑!” ‘더 멀리……! 더!’ 잔해에서 마모된 미세먼지의 양이 워낙 많은 데다 미세먼지의 방출은 최대한 넓게 퍼지게 했다. 결국, 주민성이 방출한 미세먼지는 눈에 보이는 모든 지역을 집어삼켰다. 드디어 데빌도그가 쓰러지기 시작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소유 중인 건물이 있는 지대의 가치가 상승합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을 구성하는 재료가 더욱 단단해집니다.]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 폭발의 파괴력이 상승합니다.] ……. 계속해서 나오는 등급 상승 메시지! 한 시간의 잔해 폭격이 허무할 정도로 미세먼지의 공격력은 위대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드디어 끝나 간다.’ 이제 안전이 확보됐다. 마석을 뜯어 돈을 벌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콩이가 다시 미친 어그로를 끌어도 대응이 되겠어. 마석만 전부 챙기면 떼부자 확정인가.’ 죽은 데빌도그들은 대충 봐도 수천이 넘었다. 그 말은 즉, 수천만 원을 벌었다는 뜻이었다. “컹!” “깜짝이야!” 1층이 정리되었는지 콩이가 어느새 주민성이 있는 교실에 들어와 짖었다. 똑똑하게도 알아서 살아남은 모양이다. 역시 콩이는 다른 데빌도그보다 강하다. “고생했다. 콩아. 힘들었지?” “컹!” 전투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건 콩이였다. 입가와 발톱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상처도 제법 많이 입은 상태였다. “일단 이거라도 뒤집어쓰고 있어.” 주민성은 돌돌 감겨 있던 텐트를 풀어 콩이에게 씌웠다. “크르르…….” “잘 버텼다.” 마석을 먹여 준다는 말은 생략하고 콩이의 공적을 치하한 주민성은 시야 구석으로 치워 놨던 등급 상승 메시지들을 읽었다. ‘등급 제한은 안 올라갔네.’ 100회가 넘는 건물주 등급 상승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소유 제한은 여전히 하급에 머물러 있었다. 그 순간. “캬오오오오오오오!” 다시 이전의 소름돋는 괴성이 들려왔다. “컹! 컹!” “이 소리는 대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했을 당시 들렸던 소리였다. 다른 데빌도그들과 달리 이질적이고 섬뜩한 괴성은 주민성의 긴장감을 다시 한번 부추겼다. ‘게이트 보스……겠지? 여기엔 없는 모양인데.’ 대응을 위해 창가로 향한 주민성은 지금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느꼈다. 창밖은 미세먼지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기에 주민성이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소리뿐이었다. ‘도망가는 건가? 다행이다.’ 털썩! “하……. 힘들었다…….”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린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미세먼지 회수를 명령하고 교실 바닥에 누웠다. “컹!” “좀 쉬었다가 나가자. 미세먼지가 없어져야 마석……. 아니, 맑은 바깥 공기도 마시지.” “크르르…….” 주민성이 회수할 마석의 개수는 1000개가 넘을 것이 분명하다. 뉴스에서나 볼 법한 압도적인 물량! 1000개의 마석은 곧 1000만 원! 그동안 했던 모든 고생이 깨끗하게 씻겨 나갈 만큼 커다란 보상이었다. ‘이번에는 전부 챙긴다! 이번엔 기필코 돈벌이에 성공한다!’ 굳게 마음을 다잡은 주민성은 미세먼지 수납 메시지가 끝나기까지 허공을 응시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인벤토리는 마석 회수가 안 되나? 잔해도 회수되는데.’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후후. 후후후후후…….” 인벤토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오히려 주민성의 상상력이 부족해 빛을 발하지 못하는 능력으로 보일 지경. ‘하. 내 두뇌가 페널티인 능력이라니.’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미세먼지가 수납됩니다.] [인벤토리에 최하급 마석이 수납됩니다.] ……. 주민성의 입가가 계속해서 씰룩였다. “크흐흐…….” “컹!” 주민성은 다시 음흉한 생각을 떠올렸다. 콩이를 속이며 노는 것은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콩아. 바깥 공기가 깨끗해지면 마석도 먹자?” “컹!” 콩이가 기분 좋게 짖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더욱 좋아지는 주민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