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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1) (8/250)

폐허 도시에서 생긴 일 (1)2021.12.09.

“최하급 마석 소환. 마석. 마석 소환.” 인벤토리는 대답이 없었다. “컹! 컹!” “키에엑!” 거점엔 고블린과 콩이의 목청 대결만이 존재했다. “하하……. 꿈은 아니겠지…….” 주민성이 잠들기 전, 인벤토리엔 100만 원에 가까운 마석이 들어 있었다. 정산만 끝내고 나면 삼시세끼 치킨만 먹을 계획이었고, 정신적 안정을 얻기 위한 여행도 계획했었다. 애석하게도 게이트는 주민성을 놓아주지 않았다. “투자비는 뽑아야 하는데…….” 이미 주민성은 무기와 방어구를 구매하느라 큰 투자를 한 상태. 이젠 손해가 되었다. 이걸 메꾸기엔 벌써 일주일의 반이나 흘렀다. 비록 돈을 잃고 능력을 얻었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돈이었다. ‘이대론 안 돼.’ 마음을 굳게 먹은 주민성이 인벤토리를 잔해 위로 띄웠다. “건물 잔해 회수.” 어느새 주민성 주변에 블랙홀이 떠올라 텐트 주변을 감싼 건물 잔해를 빠르게 삼켰다. 잔해 울타리에 가로막혀 짖기만 하던 콩이의 봉인이 풀렸다. “크라아!” 콰직! 꾸드드득! “킥!” 짧은 단말마와 함께 고블린들이 콩이에게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주민성이 나설 틈조차 없었다. 이미 감정이 격해진 그에겐 콩이가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사실보다 빠르게 돈을 벌 생각만이 가득했다. “콘크리트 덩어리 사 주는 업체는 없는 건가. 이거 말고 팔 수 있는 게 뭐 있지. 텐트 복제로 100만 원은 메꿀 수 있을 거고…….” 짝! 양 볼을 치며 멘탈을 바로잡은 주민성은 빠르게 마음속 계산기를 두들겼다. ‘다음 원정 땐 방어구만 사자. 무기는 필요 없어. 식량은 완제품보단 식재료를 사 가는 게 더 절약되겠군.’ 고민을 하든 말든 콩이는 신나게 고블린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크르르르!” 시선이 콩이에게 향했다. ‘콩이는 분명 도움이 된다. 마석을 어느 정도 투자할 가치는 있어. 하지만 어느 정도가 아니다. 먹는 양이 너무 많아. 어제까진 분명 잘해 왔다. 마석 빼돌리는 걸 더욱 철저히 한다면 괜찮을 거야.’ 자신의 마석 빼돌림을 뉘우치긴 커녕 더욱 철저하게 콩이를 속여먹기로 마음먹은 주민성. ‘그래. 애완견의 식탐 조절은 주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지. 체중 관리도 해 줘야…….’ 오히려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어제 그토록 애틋하게 바라봤던 콩이였지만 돈 앞에서는 중요도가 달라진다. 어느새 고블린들은 전멸했다. “컹!” “알았어. 마석 뜯자.” 푹! 주민성은 무기를 이용해 고블린의 심장에 박힌 마석을 끄집어냈다. “하. 이런 용도로 쓸 거면 그냥 굴러다니는 쇠파이프로 대체해도 그만인데…….” 뿌득! 무려 100만 원이나 투자한 무기는 마석 채취용으로 전락했다. “크르르…….” 마석을 조심스레 닦고 있는 도중 콩이의 눈빛이 느껴졌다. “컹!” “뭐. 왜. 너 많이 먹었잖아.” “크르르르…….” “안 줘. 이건 내꺼야.” “컹! 컹!” “너는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렸어.” “크릉…….” 콩이의 눈빛이 시무룩하게 변한 건 분명 느낌 탓이리라. 주민성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제군. 오늘의 일정을 알려 주겠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하게 탐험을 할 거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갈 예정이다. 제군의 임무는 나의 호위다. 앞으로 사냥은 내가 한다.” 주민성의 사냥 선언. 콩이는 놀란 눈빛이다. “컹?” 지금의 주민성은 눈앞에 고블린 수십 마리가 있어도 한 번에 몰살시킬 수 있는 화려한 능력을 갖춘 남자였다. 콩이에게 전부 의지하고 막타만 치던 이는 과거가 된 것이다. “그냥 나만 지키라고.” “크르르…….”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하는 주민성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역시 기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은 그저 건물 잔해로 내려치면 그만이었지만 초근접 몬스터를 상대로 대응하기엔 주민성 역시 압사 신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저 시체는 멀리 치우고 오도록. 이후 출발한다.” “컹!” 순식간에 썩는 시체들을 거점에 고스란히 모셔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 출발하지.” “컹!”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인가? 좀 으슬으슬하네. 다음에는 솜이불도 챙겨 올까.’ 앞으로도 주민성의 각성 등급은 바뀌지 않는다. 승급은 A급 능력자들이나 고민 할 소재였으니까. 그 말은 즉, 지금 있는 F급 게이트가 제2의 집이나 다름없다는 소리. ‘다음번엔 가장 비싼 텐트를 사야겠어. 돈은 모름지기 굴려야 제 맛이지.’ “컹! 컹!” “음?” “크라아아아아!” 콩이가 짖는 방향에서 데빌도그 다섯 마리가 주민성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운이 좋네. 5만 원인가.” 사냥 선언을 검증 할 기회였다. 데빌도그가 사정거리에 진입함과 동시에. 쿠쿵! 쿵! 쿵! 건물 잔해들이 쏟아졌다. 단 한 방, 데빌도그들은 전부 즉사했다. “크를…….” 왠지 콩이가 주눅이 든 소리를 내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리라. “그래. 마석 하나 먹어.” “컹!” 콩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마석을 받아먹었다. 3:1의 비율은 어느새 5:1로 둔갑해 있었다. “6마리면 2개 줬을 텐데, 아쉽게 됐다. 콩아.” 터무니없는 내림 계산법을 강요하는 주민성이었다. ‘초장부터 데빌도그 다섯 마리라니. 역시 밀집 구역은 다르군.’ 주민성이 가는 지역은 건물 숲이었다. 게이트가 도시로서 기능하던 시절에는 지금의 지역이 도시의 중심부였으리라. 사람이 많이 살았던 지역이니만큼 몬스터 역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밀집해 있을 게 분명했다. “오늘 목표는 자산 가치 2000만 원이다.” “컹!” 1000만 원을 달성해 받은 능력들이 워낙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주민성은 자산 가치 불리기에 큰 매력을 느낀 상태였다. 비록 현금화가 가능한 건 텐트와 마석뿐이지만 눈앞의 폐건물들은 능력을 얻기 위한 소재들이다. 폐건물들의 중요성은 떨어지지 않는다. “콜록!” “컹!” 방치된 폐건물들이 많아서인지 중심가엔 상당히 많은 흙먼지가 날렸다. “젠장. 마스크도 좀 챙길걸.” “컹!” 능력자의 세계가 된 지금은 미세먼지에 대한 정책이 모두 통과되어 과거보다 더욱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엔 미세먼지 때문에 상당히 고통 받았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이 게이트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젠장. 콜록! 이게 말로만 듣던 미세먼지인가.” “컹!” 건물 잔해를 떨어뜨리며 가라앉아있던 미세먼지들이 더욱 심하게 날뛰었기 때문에 주민성이 받는 고통은 더욱 컸다. “콜록! 일단 높은 건물로 가자.” “컹!” 너덜너덜한 표지판을 지나 주민성과 콩이가 도착한 건물은 평범한 4층짜리 빌딩이었다. 학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인지 근처엔 낡은 학습지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건물의 등급이 높습니다.] [최하급 건물만 소유 가능합니다.] ‘이건 예상대로네. 얼마나 건물주 등급이 올라가야 이런 건물도 소유할 수 있는 걸까. 소유만 된다면 자산 가치 폭등은 확정인데. 아쉽군.’ “컹!” “그래도 여기 있는 게 훨씬 낫네.” 먼지가 크게 일어난 탓에 시야는 상당히 차단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몬스터들이 주민성 일행을 알아차리지 못해 건물 진입은 상당히 수월했다. “옥상으로 가자.” “크르…….” 목소리가 상당히 울려 급히 톤을 낮춘 주민성은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옥상은 지상과 달리 미세먼지가 올라오지 않으리라. 뚜벅. 뚜벅. ‘무너지진 않겠지?’ “크르르.” ‘학원이라 딱히 챙길 만한 것도 없고.’ 이런 F급 게이트에는 가끔씩 D급이나 E급 근처의 능력자들이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유는 마석이 아니다. 이런 폐허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챙기는 게 목적이다. ‘뭐. 비싼 게 있었으면 진작 털렸겠지.’ 끼기긱……. “후아.” 옥상 문이 열리고 상쾌한 공기가 둘을 감쌌다. “컹!” “이제 좀 살겠다. 후. 숨쉬기도 힘드네. 사냥이 편하지만은 않겠어.” 주민성은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만끽했다. ‘그냥 여기로 몬스터를 유인하는 게 나을지도?’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옥상에 텐트를 설치했다.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고정할 만한 돌들은 인벤토리에 넘치도록 많아 설치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여기가 아지트 2호다.” “컹!” 부가 효과를 받을 수 있는 텐트는 주민성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가장 매력적인 건 역시 심리적 안정이랄까. 텐트가 집보다 편할 줄이야.’ 텐트 설치를 마치고 몸을 누인 주민성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컹.” 콩이가 텐트 입구에서 주민성을 바라보며 짖었다. “그래. 우리 사냥하러 왔지. 좋은 생각이 생겼다. 콩아.” “컹?” “따라와.” 텐트에서 나온 주민성은 콩이와 함께 옥상 난간으로 향했다. “컹!” “자살하는 거 아니야. 너까지 그러기냐?” “크릉!” 옥상 난간에 도착한 주민성은 천천히 가라앉는 미세먼지 너머를 가리켰다. “저 밑에 보이지? 저 입구 근처로 몬스터들 최대한 많이 유인해 와. 최대한 많이.” “컹!” “이해한 거 맞지?” “컹!” 다행히 콩이는 주민성의 명령을 제대로 알아들었고 빠르게 아래층을 향해 달려갔다. “난 역시 머리가 좋다니까.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흔히 말하는 엄마들의 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주민성은 느긋하게 옥상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했다. ‘이 높이라면 건물 잔해의 파괴력도 올라갈 뿐더러 미세먼지가 올라오지 않을 거다. 주변의 몬스터를 전부 쓸어 버리면 건물 소유도 편해지겠지.’ 폐허 같은 도시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그다지 좋은 풍경이 아니었지만, 건물들이 전부 돈과 능력으로 보이는 주민성에게 지금의 도시는 절경 그 자체였다. ‘아예 건물주 등급도 팍팍 올라서 건물 소유 제한도 풀리면 좋겠단 말이지.’ 등급은 계속해서 상승만을 반복할 뿐 수치화되지 않는다. 때문에, 건물주 등급에 대해 파악하는 일은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등급 상승은 대부분 정신없는 전투 속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생각을 마치고 다시 텐트에 들어간 주민성은 콩이가 몰고 올 몬스터를 누워서 기다렸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 “왜 이렇게 콩이가 안 오지? 근처에 몬스터 많을 텐데.”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콩이. 주민성에겐 걱정보단 지루함이 앞섰다. ‘건물 잔해로 몬스터를 깔아뭉갤 때 은근히 기분이 좋단 말이지.’ 도시에서 받던 충격들과 게이트에서의 격렬한 경험의 연속으로 주민성의 감각은 보통과 어긋나 있었다. 데굴데굴. “흠……. 아직인가?” 시간이 제법 많이 지났음에도 콩이는 소식이 없었다. 전투라도 있었다면 분명 소란이 일어났을 게 분명하므로 콩이가 몬스터에게 당하는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캬오오오오오오…….” “응?” 상당히 멀리서 몬스터의 괴성이 들렸다. “처음 듣는 소린데. 설마 보스급?” 주민성은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텐트 밖으로 뛰쳐나왔다. 게이트 보스는 위험하다. ‘잔해로 괜찮을까? 너무 자신만만하게 진입했나.’ 주먹을 움켜쥐며 난간 너머를 지켜보던 주민성은 잠시 후 콩이가 달려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콩이는 무사하고. 명령도 제대로 수행했군.’ 콩이 뒤편엔 수십 마리의 데빌도그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고블린이 안 보이네. 저 정도면 쉽지.’ 그리고 잠시 뒤. “크라아아아!” 주민성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헐.” 수십 마리로 그만이겠거니 하고 안심한 주민성의 바람과 달리 콩이를 향해 쫓아오는 데빌도그의 머릿수가 몇 배로 불어났다. ‘미친. 수백 마리는 되겠는데? 저거 다 잡으면 돈이 얼마야?’ “컹! 컹! 컹!” 콩이가 신나게 짖으며 학원 건물 근처까지 달려 왔다. 미세먼지 너머 몬스터들이 더욱 선명해졌다. “망했다.” 눈에 보이는 데빌도그의 수는 수천까지 늘어났다. 더 세긴 힘들 정도! 콩이는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주민성에게 상상 그 이상을 선사했다. “콩이가 콩이했네.” 후회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주민성은 지금의 상황에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다. 돈다발이 굴러오는 건 분명 환영할 일이었지만 지금의 광경은 돈다발에 질식하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젠장!” 탄식은 잠시. 어떻게든 지금의 몬스터 웨이브를 이겨내야 하는 주민성은 빠르게 인벤토리를 꺼내 공격을 준비했다. “콩아! 빨리 뛰어!” “컹!” 어느새 주민성의 시야엔 데빌도그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게이트가 생겨나며 인간들이 몬스터들에게 왜 밀려났는지, 이로서 주민성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런 미친 물량을 봤나.’ “크라아아아!” “콩아! 더 빨리!” “컹!” 콩이의 역할은 건물에 진입하는 것으로 끝. 이제 주민성이 활약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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