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건물 수집 보상 (3)2021.12.08.
처음 건물에 들어올 당시, 처절하게 달렸던 주민성은 마음가짐 변화에 웃음을 피식 흘렸다. ‘목숨을 건 도박의 연속이었지.’ “키에엑!”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던 주민성의 근처에 또 다른 고블린들이 출현했다. 건물이 폭발하며 일어난 소음 때문이리라. ‘꽤 많네.’ 몬스터들이 계속 늘어남에도 주민성은 동요하지 않았다. “키에에에!” 이제 무섭지 않았다. 달려오는 고블린 부대를 향해 주민성은 그저 손만 뻗을 뿐이었다. “그래. 잔뜩 와라. 마음 같아선 내가 달려가고 싶지만, 형이 걷기도 좀 힘들거든.” “키에엑!” 콰광! 쾅쾅쾅! 콰쾅! 쾅! 잔해더미가 고블린들을 향해 연속해서 쏟아졌다. “케륵……!” [건물주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건물을 구성하는 금속 재료들이 더욱 단단해집니다.] 부웅-. 손짓 몇 번으로 건물 잔해를 떨구곤 순식간에 회수. 주민성이 고블린 부대를 사냥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초였다. “어디 보자. 만 원. 이만 원…….” 주민성이 추출한 마석 개수는 총 17개. 3초 만에 17만 원을 번 셈이다. “이야.” 주민성이 바라던 능력자 생활은 이런 것이었다. ‘이렇게 멀쩡히 능력자 구실을 할 수 있는데…….’ 잠시 가라앉혀 뒀던 협회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집단이 바로 협회였기 때문이다. 이 게이트에 오기까지 수많은 멸시를 당한 주민성은 그저 참고 참았다. 힘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주민성은 협회와의 전투를 상상했다. ‘건물을 폭발시킨다면 놈들을 한 번에 해치울 가능성은 있다. 잔해를 공중에서 묶을 수도 있을 거고.’ 그리고 상대 능력자와의 전투를 시뮬레이션했다. 주민성이 직접 능력을 목격한 능력자 중 최강자는 성호. “……무리네.” 건물 폭발이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순식간에 뻗어 나가는 전격에 대응할 방법 또한 전무하다. 심지어 협회엔 S급 이상의 능력자들도 즐비하다. 이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면 결과는 한 가지로 정해진다. “확실한 자살 방법이군.” 협회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좀 더 확실한 힘이 필요하다. ‘설령 능력자들을 제압하는 데 성공해도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다. 그때부터는 끝없는 전투의 연속이겠지.’ 상상을 마친 주민성은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은 안 된다. 자산 가치를 더욱 늘려서 다른 능력도 얻고 콩이 역시 확실한 전력으로 삼아야 한다. SSS급 능력자를 상대로 이길 수준은 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네…….’ 피식. 터무니없는 생각에 주민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겸손함이 절로 생길 정도의 차이였다. ‘나는 아직 약하구나. FFF급 맞네.’ FFF급이 SSS급을 상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것도 협회가 갑인 나라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부보다 협회가 갑인 나라였다. 해외 능력자 협회들과도 끈끈하게 연결되었기에 협회에 대한 반발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협회가 존중하는 상대는 SSS급 능력자뿐. 이들에겐 협회 역시 한 수 접어 주며 대량 학살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대부분 범죄가 용서된다. 그만큼 SSS급 능력자는 희귀하고 매우 강했다. ‘이전에 혼자서 3개 사단을 혼자서 전부 쓸어 버렸던 미국인 능력자도 있었지.’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자랑하던 미군. 그 미군 사단조차 SSS급 능력자 단 한 명에게 전멸당한 역사가 있다. 물론 그 능력자는 세계 협회 연합에서 파견된 능력자들에게 사살당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그가 보여 줬던 전투력은 주민성에게 있어 매우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엄청난 뉴스였지. 그 사람도 나처럼 원한이 있었을까.’ 자신과 SSS급 능력자를 비교하며 탄식하던 사이 주민성은 어느새 콩이가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크르르…….” “고생 많았다. 잘 버텨 줬어.” 힘겹게 숨을 쉬던 콩이를 쓰다듬어 준 주민성은 인벤토리에서 자신을 지켜줬던 텐트를 꺼내 콩이에게 덮어 줬다. “크르…….” “그래. 이게 뭔 개짓거리인가 싶을 거야. 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가만히 있어.” “크르르…….” 누가 본다면 주민성과 말도 섞기 꺼려질 정도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우습게도 텐트의 건물 속성은 천막만 대충 씌워도 발동이 되었다. 콩이의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하는 게 그 증거. “힘이라도 좀 있었으면 아예 거점까지 들어서 옮길 텐데 좀 아쉽네.” “크르르……. 크르르…….” 날카롭게 으르렁거리던 콩이는 그제야 신체가 회복됨을 느꼈는지 눈을 감고 얌전해졌다. “너도 잠은 자는구나.”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주민성은 콩이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콩이 곁에 널브러져 있던 구급상자에서 붕대를 꺼내 머리에 둘둘 감았다. 이 붕대 역시 극히 소량의 회복 능력이 첨가되어 신체의 회복을 돕는다. “3만 원짜리라 그런가? 효과가 좀 별론데?” 기분 탓인지 회복력은 건물 안에 있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자산 가치 조회에선 붕대가 고작 만 원으로 취급된다. 3만 원도 바가지일 터. 작게 탄식하던 주민성은 어느새 게이트에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걸 확인했다. “슬슬 돌아가 볼까. 콩이가 수납되는지 확인도 해 봐야겠고.” 부웅-.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순간 다시 블랙홀이 생겨나며 콩이와 텐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인벤토리에 ‘텐트 2’가 수납됩니다.] “이게 되네.” 황당해하던 것도 잠시. 이전에 근처 건물 잔해를 모조리 쓸어 담던 블랙홀을 떠올린 주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생각만으로 인벤토리가 멋대로 움직이네. 지금은 편해서 좋은데 나중에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어.’ 그 와중에 블랙홀은 주민성의 눈앞에서 의식을 따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인벤토리에 공기는 통하려나?” [인벤토리에 공기가 주입됩니다.] “맙소사. 위험했던 건가.” 다행히 인벤토리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똑똑하다. 생명체도 아니고 그저 생각만 하면 알아서 움직이는 인벤토리. 먼 미래에나 가능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점으로 가는 방향이 저쪽 폐허 지나서였던가.’ 자신이 지나온 길을 천천히 되새긴 주민성은 텐트촌이 있던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걸었다. 중간에 몬스터들이 꽤나 덤볐지만 지금 이 게이트의 절대적인 포식자는 주민성이었다. 뿌득! “읏차! 돈이 굴러들어오는구나.” 이 과정을 반복하며 주민성은 텐트촌으로 무사히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능력 사용 일과의 반복. “소유물 복제.” [소유물이 복제됩니다.] [재사용까지 남은 시간 24시간] [보유 건물 목록에 ‘텐트 3’이 추가됩니다.] [‘소유물 복제’의 레벨이 3으로 상승합니다.] [기본 재사용 대기 시간이 23시간으로 감소합니다.] [건물주 등급이 상승합니다.] [유해한 병균의 건물 침입을 차단합니다.] ‘소유물 복제’의 레벨이 상승하면서 건물주 등급도 같이 상승했다. 특이한 부가 효과는 덤이다. “별 이상한 기능이 다 생기는구만. 나중엔 도시보다 게이트에서 사는 게 안전할지도 모르겠네.” 실제 주민성이 소유한 모든 건물은 전부 게이트에 있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다. 관리가 되고 있는 건물은 등급이 높아서 당장 소유조차 못 할 테니까. “그런데 왜 소유물 복제만 레벨이 있는 걸까.” 주민성은 다시 의아함을 느꼈다. ‘건물주’ 등급도 레벨과 비슷한 개념이었지만 레벨로 표기되는 건 ‘소유물 복제’뿐. 여태 새로 생긴 능력들은 ‘소유물 복제’와 달리 레벨 개념이 없었다. 하지만 주민성에겐 인벤토리를 통해 얻은 교훈이 있었다. ‘이런 건 분석해 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일뿐이고. 이것 말고도 분석하고 검증해야 할 게 산더미다.’ 이미 게이트에 온 이후부터 주민성의 게이트 생활은 비상식의 연속이었다. 몬스터를 다루질 않나, 건물을 멋대로 점령하질 않나. 불을 뿜고 초능력을 쓰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영화 같은 능력을 자랑하는 기존 능력자들과 달리, 주민성이 사용하는 능력은 전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물론 싸워도 지겠지만 주민성은 자신의 능력에 애착을 두고 합리화를 마음먹었다. ‘그 어떤 능력자들도 나처럼 몬스터를 다루진 못할 거다. 그 누가 나처럼 돈을 벌겠어?’ 하지만 주민성의 상식에는 TV에 출연했던 다른 능력자들의 활약과 수입이 있었다. ‘A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마석이 개당 100만 원 선을 돌파했지. 작년 SS급 게이트에서 진행된 연합 레이드에서 나왔던 극상 마석은 감정가가 10억이 넘는다고 했었고.’ 한 개에 만 원인 마석이 있는가 하면, 부르는 게 값인 마석도 존재한다. 지금은 F급 게이트에서 성공한 능력자일 뿐. 생각을 마친 주민성은 결국 합리화에 실패했다. “젠장. 부럽다. 밥이나 먹고 짐 정리나 하자.” 내일이면 벌써 게이트 체류 3일 차. 주민성은 부지런히 내일의 일정을 위해 남은 식량과 짐들을 정리했다. ‘그래도 훌륭하게 살아남았어. 앞으로 4일만 더 사냥하고 돌아가서 정비하면 되겠군.’ “어라?” 주민성이 챙긴 식량은 일주일분. 양이 조금 부족했다. 경비병에게 빼앗긴 라면과 건물 폭발 직전 꺼내 먹은 햄버거가 문제였다. ‘3일분인가. 도시로 돌아가면 다시 끔찍한 일상이 펼쳐지겠지.’ “하……. 라면만 뺏기지 않았어도.” 결국, 주민성의 앞길을 방해하는 건 협회였다. “다음에 올 때는 불판과 고기까지 전부 챙겨 올 테다. 나도 이제 돈 좀 번다 이거야!” 의미 모를 상대에게 한탄한 주민성은 텐트로 들어와 잠이나 자기로 정했다. “그전에, 몬스터들이 오지 못하게 방비는 해 둬야겠지.” 주민성은 다시 인벤토리를 띄웠다. 쿵! 쿵! 쿠궁! 주민성은 인벤토리에 남아도는 건물 잔해를 떨어뜨려 텐트 주위를 울타리처럼 둘러쌌다. “문조차 부수지 못하는 놈들이니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오늘은 꿀잠 확정이구나.” 텐트로 돌아와 몸을 누인 주민성은 자신의 안전함의 크게 만족하곤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쿨…….” “키엑…….” “쿨…….” “키에엑!” “음?” 소음에 잠이 깬 주민성은 눈을 비비곤 손전등을 꺼내 텐트 밖을 비췄다. “키에엑!” “아 깜짝이야.” 울타리 너머엔 자신을 노려보는 고블린 한 마리가 있었다. “잠 좀 자자. 귀찮게스리.” 잔해를 떨어뜨리며 난 소음에 몰려온 고블린인 듯하다. “이럴 땐 콩이가 없는 게 좀 불편하군. 빨리 회복이 끝나면 좋겠다.” 주민성은 아침까지 콩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내버려뒀다. “키에에에엑!” “목청도 좋다. 그보다 저건 어떻게 잡아 줄까. 잔해를 떨구면 다른 놈이 몰려올 텐데.” 주민성의 잔해 떨구기는 확실한 몬스터 사냥 수단이었지만, 소음이 너무 심한 게 단점이었다. 게다가 게이트의 몬스터들도 은근히 맷집이 있는 편이라 어중간한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잔해로는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음이 날 수준의 높이는 필수 조건이었다. “하. 답이 없네. 그래도 한 놈만 왔으니까 참아 보자.” 결국, 참기로 정한 주민성은 다시 텐트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체력 보전을 위한 인내였다. “키에에! 키에에에에에!” “아, 안 돼. 참아야 해. 쿨…….” “키에에에엑!” “쿨…….” 어제의 고생 때문인지 소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성은 금방 잠이 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아침. 주민성의 눈 아래 깊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은 간밤에 얼마나 제대로 잠을 못 잤는지 알려 주는 훈장이나 다름없었다. “키에에에에엑!” “키엑! 키에엑!” “쾌애액!” “하…….” 오기가 생겼는지 더욱 목청을 높인 고블린은 자신의 일행까지 끌어들여 합창하고 있었다. 심지어 처음의 고블린도 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진짜 짜증나네. 이제 콩이는 괜찮겠지?” 주민성은 결국 콩이의 상태를 체크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눈앞에 등장한 텐트 2와 콩이. “크르르!” “콩아!” 콩이는 무사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오히려 멀쩡했을 때보다 더 상태가 좋아 보인다. 주민성은 상대가 몬스터라는 사실도 내려놓고 콩이를 끌어안았다. “고생했다 이놈아!” “컹!” 파스스……. “음?” 주민성의 어깨에 보랏빛 가루가 뿌려졌다. 콩이의 입가 역시 보랏빛으로 반짝였다. “뭐지. 색깔이 마석 같은데…….” 불길한 상상을 한 주민성은 차분하게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물건을 떠올렸다. “어라?” “컹?” “나와라! 마석! 마석 소환! 최하급 마석 소환! 꺼낸다! 마석! 제발!” 주민성의 바램에도 인벤토리는 감감무소식. 그의 싸늘한 시선은 콩이에게 향했다. “너냐.” “컹!” 그리고 잠시간의 침묵. “키에에!” “크르르…….” “……하.” 콩이의 치료비는 수십만 원 수준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