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라는 능력 (3)2021.12.05.
피로한 몸을 이끌고 텐트에 누운 주민성은 오늘 하루 동안 얻은 수입을 정산해 보기로 했다. “자산 가치 조회.” [보유 자산: 794만 원 상당] [건물 다수 760만 원, 소지품 74만 원] “크~.” 만족스러운 수입이었다. 현금으로 바꾸지 못하는 폐건물이 가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콩이 몰래 챙겨 놓은 마석들은 존재감을 뽐내며 주민성에게 끝없는 성취감을 부여했다. ‘이런 페이스로 한 달만 더 사냥한다면 생활비 걱정은 없겠다!’ 행복한 상상을 더하자 경직된 몸의 근육마저 풀리는 기분이었다. 만족감에 기분 좋게 잠이 몰려왔다. “콩아. 자는 동안 여기 잘 지키고 있어.” “크르르…….” 소중한 자신의 배낭을 베개 삼아 눈을 감은 주민성은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적막해야 할 텐트 안에서 작은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작. 아작.” “으음…….” “아그작.” 소음에 눈을 뜬 주민성은 싸구려 텐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보고 날이 밝았음을 깨달았다. “잘 잤다~.” “아그작!” “음?” 그리고 주민성의 옆에는 콩이가 있었다. “니가 여기 왜 있어?” “컹?” 평소 사나워 보였던 눈망울은 초롱초롱한 마석 빛을 띠며 주민성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가에는 수많은 마석 조각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너……. 설마…….” “크르르…….” “자산 가치 조회…….” [보유 자산: 767만 원 상당] [건물 다수 760만 원, 소지품 7만 원] “…….” “크르르…….” “맙소사…….” 당황한 주민성이 콩이를 거칠게 밀고는 입구가 열린 배낭을 급히 뒤집었다. “없어…….” “크르르…….” “내 마석이……, 내 마석이!” “크르르…….” 주민성의 눈치를 보던 콩이가 텐트를 슬며시 떠나가기 시작했다. “동작 그만.” “컹?” “마석 어쨌어. 이 가방에 있던 마석들 어쨌냐고.” “크르르…….” 하지만 콩이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하지 못한다. 텐트 안에 다시 적막이 흘렀다. 자세히 살펴보니 햇빛에 반사된 콩이의 털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보였다. “다 먹은 거냐……. 그 많은 마석들을…….” “크르르…….” ‘저놈의 식탐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게 실책이다.’ ‘운수 좋은 날’이란 지금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놈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비록 등급은 낮지만, 자신이 머무는 지금의 장소도 결국은 게이트. 앞으로도 꾸준히 콩이를 착취해야 하는 갑의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아직 시작일 뿐이다. 시행착오를 거쳤을 뿐. 콩이에 대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주민성은 콩이를 자세히 살펴봤다. 콩이의 눈에는 조금의 피로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수는 잠을 안 자는 건가. 그건 다행이군.’ 생각과는 다르게 입 밖으론 괜한 심술이 튀어나왔다. “너는 앞으로 수면 금지다.” “크르르…….” 쓸데없는 명령이었지만 주민성은 이런 명령들로 소심하게나마 분을 풀었다. ‘밤새 먹어도 계속 먹는다라. 식사량을 제한하든지 사냥 속도를 늘리든지 해야겠어. 오늘은 반드시 자산 가치 1000만 원을 찍겠어.’ 주민성은 그동안 떠올랐던 메시지 중 중요한 내용은 메모를 해 두고 있었다. -자산 가치 1000만 원 달성시 추가 능력이 부여됩니다. 무슨 능력이 부여될지는 모르지만 메시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능력이 생겼다고 하면 정말로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절대 평범한 능력이 아니다. 할 수 있어.” 주민성은 자신의 메모장을 뚫어질 듯 노려보며 의욕을 다시 불태웠다. 물티슈를 꺼내 간단하게 얼굴을 닦은 주민성은 텐트에서 나와 가볍게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으드드드……!” “크르르…….” “뭘 봐 인마. 나 밥 먹을 동안 몬스터 다섯 마리만 잡아 와. 너무 멀리 나가진 말고.” “컹!” 이러나저러나 게이트 안에서 이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콩이 덕분이다. 자신의 몸을 직접 지킬 수단은 없었기에 밤새 마석을 먹었다고 콩이를 다른 몬스터들에게 던져 놓을 수는 없는 법. 전투력이 없다시피 한 주민성에겐 콩이의 존재가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어제는 삼각김밥이었으니 오늘은 샌드위치로 때워야겠군.’ 주민성은 배낭 한구석에 고이 모셔 놓은 샌드위치를 꺼냈다. “‘능력자를 위한 가성비 있는 선택’이라…….” 샌드위치 포장지에 적혀 있는 문구였다. 게이트가 생겨나면서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산적인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들은 각종 기술 발전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바로 포장 기술. 포장된 음식들은 뜯지 않는 이상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데다 가격대와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주민성처럼 벌이가 좋지 않은 능력자들은 대부분 이런 편의점 음식을 구매하는 게 최선이었다. 찌익! 주민성은 포장지를 조심스레 뜯곤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기 시작했다. “오. 맛있는데?” 수많은 능력들은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 줬다. ‘능력에 따른 차별이 만들어진 게 문제지.’ 이것만 아니었다면 주민성은 충분히 일반인으로서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갔으리라. “협회가 문제야……. 쩝……. 맛은 있네.” “컹!” “아 깜짝이야!” 어느새 주민성 뒤에 도착한 콩이가 짖으며 헐떡이는 몬스터의 시체를 툭 던져 놓았다. 마석을 뜯기 편하게 사지까지 뜯어 놓은 채. “하…….” “크르르…….” ‘입맛에 썩 도움 되는 상황은 아니군. 어쩔 수 없지.’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는 결국 수입 때문이다. 능력자가 되겠다고 뛰어든 이상, 평소 이상의 수입을 올려야 하므로 조금도 벌이 활동을 쉬어선 안 된다. 특히 마석을 손해 본 지금은 더욱. “에휴. 해 보자, 그래.” 콩이를 최대한 굴려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들에게 마석을 채취해 어제의 손실을 메꿀 방법은 확보했다. ‘그래도 직접 뜯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네.’ 우드득!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며 마석을 뜯어낸 주민성은 나지막이 콩이에게 말했다. “이건 내 거야.” “크르르!” 인간과 몬스터의 유례없는 눈싸움이 시작되었다. 승리는 당연하게도 갑의 차지. “불만 있으면 다시 태어나든가.” “컹!” 콩이는 주민성에게 몸을 휙 돌리곤 다시 몬스터를 사냥하러 떠났다. 주민성은 챙긴 마석을 소중하게 갈무리해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젠 뺏기지 않는다.’ 오늘은 마석을 끌어안거나 바닥에 파묻고 잘 생각들을 한 주민성은 배낭에서 콜라를 꺼냈다. ‘식후엔 역시 탄산이지.’ 벌컥벌컥! “크으!” 주민성에게 있어 콜라와 커피는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음료였으며 라면을 비롯한 인스턴트식품들은 유일하게 지갑을 풀어서라도 챙겨 먹었던 사치품이었다. ‘언젠가 떼부자가 되면 방에 한가득 인스턴트식품들만 진열하는 방도 꾸며야지. 아예 집에 편의점을 설치해 버리자.’ 꽤 소박한 취향이었지만 실제로 주민성과 비슷한 마인드의 능력자들은 제법 존재했다. 잘 나가는 유명 능력자 집엔 아예 패스트푸드 가게가 직접 입점했을 정도. 순간, 주민성의 등 뒤에 묘한 감각이 스쳤다. 슥! 빠르게 몸을 돌려 뒤를 보니 콩이가 피가 철철 흐르는 데빌도그를 물고 몰래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풋.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크컹!” 왜인지 콩이가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시체를 멀리 뱉어 놓고 빠르게 텐트촌을 떠났다. “저놈이 진짜 누굴 닮아서 저렇게 속이 좁은 건지.” 우득! ‘이걸로 2만 원.’ 콩이가 괘씸하긴 했지만, 아침 식사를 하면서 누군가 대신 돈을 벌어다 준다는 사실은 주민성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했다. ‘이 능력도 나름 괜찮은 것 같군.’ 단순히 콩이를 얻었을 뿐이었지만 주민성이 얻은 이득은 기존의 생활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인력사무소에 다닐 때만 해도 종일 일하고 11만 원 근처로 받는 게 고작이었지.’ 인력사무소에 처음 출근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일수입은 7만 원에서 8만 원 사이가 보통이었다. 11만 원도 몇 년간 부지런히 출근해 실적을 쌓은 결과였기에 지금의 수익은 큰 만족감을 줬다. 물론 인력사무소에서 받았던 돈도 일반인들에겐 상당히 큰돈이었다. 주민성은 사무소 소장 이수길을 떠올렸다. ‘수길 아저씨는 잘 계시려나. 능력 각성하고 연락 한번 안 드렸네.’ 대부분의 사무실에선 노동자에게 최대한 돈을 적게 주고 많은 수수료를 챙겨 갔었기에 이수길의 인력사무소는 서울 전체를 통틀어 봐도 몇 안 되는 양심적인 사무실이었다. “정말 운이 좋았어.” 인력사무소는 기본적으로 협회나 시청에 의해 법적으로도 보호를 받는 데다 강력한 담당 능력자들 때문에 이런 불합리함에도 보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수길은 한결같이 생일이나 명절마다 보너스 선물을 꼬박꼬박 챙겨 줬다.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에 있는 연락처를 전체 차단해 버렸네.’ 주민성은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을 뒤져 이수길의 차단을 해제했다. 게이트라고 해서 통신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통신사에도 능력자는 있었으니까. “전화는 지금 상황에선 좀 찝찝하긴 하지.” 통화 내역까지 방송사에 넘어갈지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통화 버튼에 손이 올라갔다. 이건 프라이버시를 떠나 사람의 도리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시도는 몰래 뒤로 다가온 콩이에 의해 무산됐다. “내려놔라.” “컹.” 왜인지 콩이가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흉측하게 찢어 놓은 채 물어왔다. ‘저거 일부러 그러나. 시위라도 하는 것 마냥.’ 우드득! “이걸로 5만 원 끝.” 주민성은 이번에도 나온 마석을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크르르…….” 콩이의 원망 어린 으르렁거림은 무시한 채. 띠링! 주민성은 다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메시지는 역시 이수길에게 온 메시지. 차단이 해제되며 스팸 처리 되었던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리라. -민성아. 너무 심려치 말거라. 시간이 지나면 곧 잠잠해질 거다. 마음이 좀 진정되면 오거라. 술이나 한잔하자꾸나. 친구라고 여겼던 놈들의 메시지와는 달리 이수길의 메시지에선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좀 감동이네. 세계 최초 FFF급인데도 그저 민성이구나, 아저씨한테는. 탐험이 끝나면 선물이라도 사 가야겠다.’ 고아로 커 온 주민성에게 있어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각성 비를 모으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이수길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잠시 메시지를 보며 미소 지은 주민성은 감사의 말을 적어 답장을 보내곤 미소 지은 채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이제 슬슬 움직이자.” “컹.” “형이 지금은 기분이 좋다. 몬스터 3마리 잡으면 마석 한 개를 먹게 해 줄게. 그리고 내일 3개를 더 주마. 이득이지? 많이 잡을수록 더 많이 먹을 수 있어.” “컹!” 그동안 불만을 가졌던 콩이는 더 많은 마석을 먹게 해 준다는 말에 왜인지 기뻐 보였다. ‘단순한 놈.’ 주민성의 작전은 간단했다. 식사량을 계속해서 내일로 미뤄 콩이의 계산을 과부하 상태로 만드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한 움큼의 마석을 넓게 뿌려 주면 되겠지. 나머지는 전부 내 거다.’ 발칙한 작전을 세워 놓은 주민성은 탐험을 재개했다. “오늘은 이쪽으로 가 보자. 건물도 많이 보이네.” “컹!” 기분이 좋아 보이는 콩이가 앞장서 달려 나갔고 순식간에 몬스터들과 교전에 들어갔다. ‘와. 이젠 세 마리 상대로도 잘 싸우네. 전투를 학습하는 건가?’ 콩이는 어제와는 달리 고블린 3마리를 상대로도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며 교묘하게 고블린들을 몰아세웠다. “키에엑!” 콰직! “키에에에에!” 5분쯤 지났을까. 어느새 고블린들은 사지가 한군데씩 뜯긴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우드득! “좋았다. 콩아. 너 싸움 좀 하는구나.” 주민성은 마석 한 개를 콩이에게 던져줬다. “나머지는 내일인 거 알지?” “컹!” “그래.” 갑과 을이라는 연결 고리 덕분에 콩이는 주민성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로 2만 원 추가.’ 주민성은 이미 계산을 마쳤다. 하루 동안 모은 마석 수입의 이 할 정도를 콩이에게 넘기고 나머지는 전부 자신이 챙기는 것으로. 주민성에겐 나름대로 큰 양보였다. ‘즉석 지급용 마석은 콩이가 눈치 못 챌 때마다 까먹은 척해야겠다. 4마리당 1개씩 주는 거로 하면 대충 100마리당 60만 원 넘게 벌 수 있겠지.’ 오도독! 주민성의 음흉한 계략을 눈치 채지 못한 콩이는 신나게 마석을 오독오독 씹어 먹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