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79화 (179/183)

외전 1. 예비역 병장의 북한 통치기 (3)

하지만, 마철규는 말을 아꼈다.

“먼 길을 온지라 피로할까봐 그냥 관저만 소개해주고 마무리 지었소. 구체적인 건 오늘 관료를 불러서 얘기하겠다고 하더군.”

그는 신중하게 판단했다. 만일 자신이 나서서 관료들을 규합하게 된다면? 아마 이건우가 절대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이건우도 당장 자신을 쳐내지는 않을테니, 적당히 상황을 지켜본 후에 판단하기로 했다.

“그렇군요.”

리일환은 더 묻지는 않았다.

‘하긴 어제 막 도착한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어.’

그는 그저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건우를 판단했다.

그리고 소집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당장 이건우가 뭔가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관저 대회의실에 관료가 속속들이 모였다. 좌석에는 명패가 놓여있었기 때문에 리일환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착석했다. 리일환은 주위에 앉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을 많이도 불렀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선에 있는 공무원까지 부른 것 같은데요.”

몇몇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질색하기도 했다. 간부 중에서도 최고위간부에 속하는 그들은, 저 밑에 있는 일선 공무원과 같은 선상에 놓고 자리를 만들었다는 게 불쾌했다.

“소문을 들어보니 이건우가 보통 사람이 아니더군요.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그래도 회사의 수장일 뿐입니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요."

“남조선도 이제 막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됐으니, 남조선 정부에서는 온건한 태도를 취하고자 할 겁니다. 우리도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고 이득이나 보면 됩니다.”

“그래요. 적어도 김정안 때만큼 피바람이 불지는 않겠지요.”

그들은 지금 정권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김정안의 집권체제 아래에서는 틈만 나면 칼춤을 춰댔으니, 무슨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공포스러운 김정안은 사라지고, 북한은 무주공산이었다. 티 안 나게 해 먹던 것들을 대놓고 해 먹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대회의실에 사람들이 가득찰 때쯤, 마침내 이건우가 들어왔다. 단상에 선 이건우는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많이도 모였네.’

그는 고위관료 중 죄질이 심각한 사람만 불러모았다. 원래는 자잘한 비리를 저지른 놈들까지 남김없이 뿌리 뽑으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진짜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당장은 참았다.

모인 군상들을 보니 가관이었다.

경계심과 탐욕이 반쯤 섞인 얼굴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였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으니, 다들 변동의 기회를 틈타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 셈이겠지.

그리고 이건우는 그 생각을 친절히 박살 내줄 생각이었다.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먼저 서류부터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군요.”

이건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직원들이 들어와서 각 사람에게 서류철을 배부했다. 서류철에는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류를 받았다. 한 사람이 질문했다.

“이게 뭡니까?”

“보면 압니다.”

리일환 책임비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표지에는 ‘리일환 평양시당 책임비서’라는 이름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뭐지? 벌써 앞으로 맡길 업무를 분배한 건가?’

그 순간 경악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몇몇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했다.

궁금해진 리일환은 서둘러 봉투를 열고 첫 장을 넘겼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그도 앞선 사람들과 똑같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 조카 리준희에게 호위사령부에 납품하는 수산사업을 맡기고, 오 년 동안 용돈 명목으로 매달 천 달러씩 받음

- 나선시 카지노에서 공금을 탕진한 후, 보복으로 카지노 업체에 과징금을 부여해 망하게 함

- 나선시 선봉구역 일대의 땅을 소유한 신창일을 무고하여 재판소로 보낸 후, 그 땅을 차지함

- 30만 달러 상당의 재산을 해외에 은닉함

그가 수십 년 동안 저지른 불법이 날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 추징금 180만 달러

치부가 낱낱이 까발려진 리일환은 얼굴을 붉혔다. 그는 책상을 탕 치며 일어났다.

“지금 우리를 협박하는 거요?”

리일환이 나서자 다른 관료들도 덩달아 일어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조선에서 온 놈이 뭣도 모르고 우리를 좌지우지하려고 하다니!”

“미제 기업가가 나랏일을 하려고 설치고 다니는군.”

그들이 이렇게 성토하는 데에는 계산이 다 있었다.

아무리 이건우라고 해도 혼자서 북한을 통치할 수는 없다. 지금 모인 관료들을 정말 한번에 쳐낸다면 행정이 마비될 것이다.

‘기선제압을 위해서 뒷조사라도 했나보군.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일 수는 없지.’

하지만 이건우의 계산은 그들의 계산법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들의 항의에도 이건우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게 협박하는 걸로 보입니까?”

“그럼 뒤에서 이런 자료를 왜 모으고 다니는 겁니까!”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우는 미소지었다. 리일환은 그 미소를 보며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협박이 아니라 통보입니다. 좋은 말로 할 때 지금까지 먹은 돈을 토하고 자리를 비우세요.”

리일환은 콧방귀를 뀌었다.

‘젊은 놈이 승승장구만 하다보니 세상 모든 게 쉬워보이나 보지.’

이건우도 알아야 한다. 나랏일은 혼자서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는 것을.

“혼자 잘 해보시오. 나는 절대 당신에게 협조하지 않을 테니까.”

리일환이 으름장을 놓으면서 나갔고, 그 뒤를 따라 관료들이 씩씩거리며 나갔다. 순식간에 커다란 회의장의 절반이 비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건우가 중얼거렸다.

“후회할텐데.”

혼자서 잘 해보라니 한번 해 봐야지.

그리고 쓸모없어진 놈들은 사퇴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줘야겠다.

*

마철규는 순식간에 텅 빈 회의실을 보며 미소지었다. 이건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지만, 마철규는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수백 명을 모아놓고 협박하는 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말도 안 되지.

이쯤되면 이건우도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마철규는 대충 어떻게 태도를 정할지 감이 왔다.

‘이건우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리일환과 붙어먹어야겠군. 사람들을 더 선동해서 여론을 만들어내면 이건우도 적당히 처벌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짓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아까 이건우가 준 서류를 보고서는 가슴이 어찌나 떨리던지.

마철규는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저녁을 들면서 TV를 보려고 하는 순간 행복이 와장창 깨졌다.

- 반갑습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미친”

화면에서는 이건우가 쌈빡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저녁 시간이 되었다. 어느 집 밥상에는 쌀밥과 나물 반찬이 올라왔다. 바로 한국에서 지원받은 음식이었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봉밥을 퍼먹으며, 소년은 TV 채널을 넘겼다.

“요즘 뭐 재미있는 게 안 하네요.”

사실 요즘이 아니라 원래 북한 방송은 딱히 재미가 없었다. 옛날에는 그런 방송도 재미있게 봤었다.

하지만 한 달 전 이건우의 먹방을 우연히 본 후, 소년은 이제 뭘 봐도 밋밋할 뿐이었다. 특히 최근에는 김정안 체제가 붕괴하고 남한의 문물이 급속도로 밀려온 덕에 북한의 방송이 얼마나 쓰레기였는지 매일 깨닫고 있었다.

아쉬운 건 소년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TV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테레비 끄고 밥이나 먹어라. 이참에 테레비를 보지말고 책이나 좀 읽던가.”

“그래도 책보다는 테레비가 재밌죠.”

“어허.”

“네네 끌게요.”

소년은 입이 댓발이나 나와서 TV를 끄려고 할 때였다.

지지지직!

갑자기 흔들리는 화면.

소년은 이전에도 이런 현상을 본 적이 있다.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 반갑습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소년이 환호했다.

“우와! 이건우다!”

“좀 앉아서 밥이나 먹어라.”

아버지는 툴툴거렸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곁눈질로 힐끔힐끔 TV를 쳐다보았다.

이건우는 후드티를 입은 편안한 차림으로 있었는데, 지난번에 정장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어려보이고 친근해 보였다.

- 아쉽지만 오늘은 저 혼자 와서 세나가 없습니다. 그냥 가볍게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닭발에 소주를 먹으려고요.

화면이 식탁을 비추었다.

새빨간 양념이 된 닭발과 주먹밥, 계란찜. 그리고 소주까지 있었다.

소년은 입에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북한에도 닭발은 있다. 하지만 저런 군침 도는 비주얼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일 끝나고 선술집에 들어가 시키는 게 닭발튀김이나 닭고기꼬치 구이였다.

이건우는 닭발을 야무지게 발라먹은 후, 소주를 한 병 깠다. 잔도 없이 그대로 시원하게 병나발을 불었다.

- 쓰읍. 소주도 오랜만에 먹으니까 찰떡이네.

그 모습을 보던 아버지가 슬그머니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가져왔다.

이건우는 먹방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북한에 와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남한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런 썰들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입담도 괜찮아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 채 집중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 리일환 책임비서를 만났는데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딱 느껴지더라고요. 아, 이 새끼 구린 곳이 있구나.

- 그래서 뒤를 털어보니까 먼지가 꽤 많이 묻어나오더군요.

원래 남의 뒷담 까는 얘기가 재밌는 법이다. 두 부자는 어느새 밥 먹는 것도 잊고 이건우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건우의 먹방은 어김없이 북한의 최고시청률을 갱신했다.

*

리일환은 숟가락을 든 손을 덜덜 떨었다.

“이, 이, 이 미친, 미친 새끼가!”

리일환은 결국 이건우에게 반기를 들기로 결정했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자신과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단체 행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다들 이건우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래도 집단행동을 하면 이건우도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주도권을 뺏어와 차기 북한의 지배 구조를 확고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다 함께 식당에 들어가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는 도중, 갑자기 수행비서가 들어오더니 조선중앙TV를 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TV를 켜자 화면에는 이건우의 얼굴이 나왔다. 그 순간, 리일환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 리일환 이 새끼가 나선시의 땅을 먹으려고 억울한 사람을 무고했더군요.

이건우는 자신에 대해서 입을 털고 있었다.

-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빈민촌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은 이번에 포비드에 걸려서 죽었고요.

- 이번에 한풀이라도 하시라고 게스트로 모셨습니다.

화면 속에는 분명 리일환이 아는 사람이 나왔다.

‘저 새끼를 어떻게 찾아냈지?’

나선시에 있는 땅을 팔라고 명령했는데, 저 사람은 선조가 물려준 땅이라며 안 팔고 끝까지 버텼다. 그래서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처넣은 다음 땅을 뺏었다.

그 뒤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그는 문득 싸늘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금 전까지 떠들며 먹고 마셨던 관료들이 다들 멀찍이 떨어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흠흠. 집에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아, 저도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오늘 저는 여기에 없었던 거로 해주십시오.”

관료들은 허둥지둥하며 도망갔다. 다들 이건우의 경고를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여기서 더 개기다가는 한 명씩 차근차근 짓밟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리일환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망했다.’

그것도 쫄딱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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